첫댓글수선화님! 더운데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나요? 태풍 바비의 영향력으로 몸은 끕끕하고 몸에 땀이 줄줄 더위를 이겨내기 참 힘이드네요 오랫만에 최 영미 시인의 시를 만나네요 그것도 우리고장 古刹 선운사에서..... 선운사에 살아가는 꽃 낭구들은 참으로 많지요 대표적인 꽃 아기동백 토종 몸뚱이도 노란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수국 능소화 그야말로 꽃대궝 처럼 아늑한 사찰 고창 선운사 그곳 선운사는 서 정주 시인의 탯자리 예닐곱 나이에 禪房에 스님들과 함께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 그의 詩의 母胎는 佛經속에 살아 숨쉬고 있지요 한 때 東國師團(동국사단) 동국대학교 座長으로 우리나라 詩 文壇을 좌지우지 하였죠 그의 출생지 선운사 지역 그의 부모는 남에 집 땅을 붙쳐먹고 사는 소작인이었지요 어릴적부터 영특한 그는 근처 선운사에 혼자 날마다 놀러갔데요 처마끝 풍경소리 사시마지 (점심공양) 올리기 전 종각에서 울어대는 큰 종소리 스님들의 목탁소리 염불소리와 같이 유년에 시절을 보냈지요 그래서 시인은 고향 禪雲寺를 종종 찾아갔지요 서 정주 선운사 선운사 서정주는 같은 등식이 되어갔지요 그의 시 선운사를 아시나요 는 송창식이 노래를 만들고
서 정주 시인이 노랫만 을 써 알만한 사람음 알고있는 참으로 때깔난 노래이지요 오늘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의 시는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한 시 꽃 이별 그리움 아쉬움 꽃은 님 님은 꽃 그런데로 佳作이네요 (이크 내가 무슨 권리로 시인의 시를 판단하다니....) 최 영미 시인에게는 우리 시 문단에 엄청난 파문을 이르킨 미투~운동의 당사자이죠 사건의 발단은 최 영미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요 그 시집에 고 은 시인에게 卷頭言을 부탁하러 고은 시인집을 방문했는데 고 은 시인이 그랬데요 그래 시가 참 좋구먼 잠깐 이리루 와 내 앞에 앉아 봐라며 앞 가슴을 겨냥했는데 최 영미 시인의 진술로는 그대로 고 은 시인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했지요 권두언도 받지 못하고... 둘만의 대화 둘만의 동작 아무도 모르지요 그 후 밑투 운동이 활발하던 때 최 영미 시인이 고 은 시인을 고발하기에 이르렀지요 그 후 경기도에 거부하던 고 은 시인은 자신의 모든 명예를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지요 부탁한 권두언을 받지 못하여서?????? 앙심을 품고 그랬는지 거의 50년 터울의 고 은과 최 영미 사이에 엉큼한ㄴ 수작을 고 은 시인이 걸었는지 아직도
미궁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건이지요 고 은 왜정 때 국민하교 군산중하교 학력이 전부지요 그 후 효봉 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법명이 일초였지요 우리들이 잘 아는 법정 스님과 동기간이었지요 다시 한번 고은은 변신을 꾀하지요 언론인으로 다시 문학인으로 법정 스님은 涅槃하셨는데 고 은 시인은 아직 살아있지요 죽었다는 뉴스가 아직 나오지 않해서... 속인 고 은태 시인 고 은 땡중 일초의 드라마틱한 인생살이 그런데요 중졸출신 시인에게 대졸출신 시인이 권두언을 받으러 갔다 말이 않되자나요 한 때 고 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 물망에도 올랐지요 萬人譜라는 시집으로 참으로 세상은 오지경이죠? 수선화님 오늘 최 영미라는 시인의 話頭를 던져 나를 즐겁게 하네요 너스레 잔소리 용서하세요
첫댓글 수선화님!
더운데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나요?
태풍
바비의
영향력으로
몸은
끕끕하고
몸에 땀이
줄줄
더위를
이겨내기
참
힘이드네요
오랫만에
최 영미
시인의 시를
만나네요
그것도
우리고장
古刹
선운사에서.....
선운사에
살아가는
꽃 낭구들은
참으로
많지요
대표적인 꽃
아기동백
토종 몸뚱이도
노란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수국
능소화
그야말로
꽃대궝 처럼
아늑한
사찰
고창 선운사
그곳
선운사는
서 정주
시인의
탯자리
예닐곱 나이에
禪房에
스님들과
함께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
그의 詩의 母胎는
佛經속에 살아
숨쉬고 있지요
한 때
東國師團(동국사단)
동국대학교
座長으로
우리나라 詩 文壇을
좌지우지 하였죠
그의 출생지
선운사 지역
그의 부모는
남에 집 땅을
붙쳐먹고 사는
소작인이었지요
어릴적부터
영특한 그는
근처 선운사에
혼자
날마다
놀러갔데요
처마끝
풍경소리
사시마지
(점심공양)
올리기 전
종각에서
울어대는
큰 종소리
스님들의
목탁소리
염불소리와
같이
유년에
시절을
보냈지요
그래서
시인은
고향
禪雲寺를
종종
찾아갔지요
서 정주 선운사
선운사 서정주는
같은
등식이 되어갔지요
그의
시
선운사를 아시나요
는
송창식이 노래를
만들고
서 정주
시인이
노랫만 을 써
알만한
사람음
알고있는
참으로
때깔난
노래이지요
오늘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의
시는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한
시
꽃 이별
그리움 아쉬움
꽃은 님
님은 꽃
그런데로
佳作이네요
(이크 내가 무슨 권리로
시인의 시를 판단하다니....)
최 영미
시인에게는
우리 시 문단에
엄청난
파문을
이르킨
미투~운동의
당사자이죠
사건의
발단은
최 영미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요
그 시집에
고 은 시인에게
卷頭言을
부탁하러
고은 시인집을
방문했는데
고 은 시인이
그랬데요
그래
시가 참 좋구먼
잠깐 이리루
와
내 앞에
앉아 봐라며
앞 가슴을 겨냥했는데
최 영미 시인의
진술로는
그대로
고 은 시인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했지요
권두언도
받지 못하고...
둘만의 대화
둘만의 동작
아무도 모르지요
그 후
밑투 운동이
활발하던 때
최 영미 시인이
고 은 시인을
고발하기에
이르렀지요
그 후
경기도에 거부하던
고 은 시인은
자신의 모든
명예를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지요
부탁한 권두언을
받지 못하여서??????
앙심을 품고
그랬는지
거의 50년 터울의
고 은과 최 영미 사이에
엉큼한ㄴ 수작을
고 은 시인이 걸었는지
아직도
미궁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건이지요
고 은
왜정 때
국민하교
군산중하교
학력이 전부지요
그 후
효봉 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법명이 일초였지요
우리들이 잘 아는
법정 스님과
동기간이었지요
다시 한번
고은은 변신을 꾀하지요
언론인으로
다시 문학인으로
법정 스님은
涅槃하셨는데
고 은 시인은
아직 살아있지요
죽었다는
뉴스가
아직 나오지 않해서...
속인 고 은태
시인 고 은
땡중 일초의
드라마틱한
인생살이
그런데요
중졸출신 시인에게
대졸출신
시인이
권두언을
받으러 갔다
말이 않되자나요
한 때
고 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 물망에도
올랐지요
萬人譜라는
시집으로
참으로
세상은
오지경이죠?
수선화님
오늘
최 영미라는
시인의
話頭를 던져
나를
즐겁게 하네요
너스레
잔소리
용서하세요
긴~
댓글에 대한 인사는
다 읽는 것으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