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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운♤♤낭송시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선운사에서 - 최영미 | 시낭송
수선화 추천 1 조회 36 26.07.14 00:5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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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7.14 12:44

    첫댓글 수선화님!
    더운데
    어떻게
    더위를
    이겨내나요?
    태풍
    바비의
    영향력으로
    몸은
    끕끕하고
    몸에 땀이
    줄줄
    더위를
    이겨내기

    힘이드네요
    오랫만에
    최 영미
    시인의 시를
    만나네요
    그것도
    우리고장
    古刹
    선운사에서.....
    선운사에
    살아가는
    꽃 낭구들은
    참으로
    많지요
    대표적인 꽃
    아기동백
    토종 몸뚱이도
    노란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수국
    능소화
    그야말로
    꽃대궝 처럼
    아늑한
    사찰
    고창 선운사
    그곳
    선운사는
    서 정주
    시인의
    탯자리
    예닐곱 나이에
    禪房에
    스님들과
    함께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
    그의 詩의 母胎는
    佛經속에 살아
    숨쉬고 있지요
    한 때
    東國師團(동국사단)
    동국대학교
    座長으로
    우리나라 詩 文壇을
    좌지우지 하였죠
    그의 출생지
    선운사 지역
    그의 부모는
    남에 집 땅을
    붙쳐먹고 사는
    소작인이었지요
    어릴적부터
    영특한 그는
    근처 선운사에
    혼자
    날마다
    놀러갔데요
    처마끝
    풍경소리
    사시마지
    (점심공양)
    올리기 전
    종각에서
    울어대는
    큰 종소리
    스님들의
    목탁소리
    염불소리와
    같이
    유년에
    시절을
    보냈지요
    그래서
    시인은
    고향
    禪雲寺를
    종종
    찾아갔지요
    서 정주 선운사
    선운사 서정주는
    같은
    등식이 되어갔지요
    그의

    선운사를 아시나요

    송창식이 노래를
    만들고

  • 26.07.14 13:06

    서 정주
    시인이
    노랫만 을 써
    알만한
    사람음
    알고있는
    참으로
    때깔난
    노래이지요
    오늘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의
    시는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한

    꽃 이별
    그리움 아쉬움
    꽃은 님
    님은 꽃
    그런데로
    佳作이네요
    (이크 내가 무슨 권리로
    시인의 시를 판단하다니....)
    최 영미
    시인에게는
    우리 시 문단에
    엄청난
    파문을
    이르킨
    미투~운동의
    당사자이죠
    사건의
    발단은
    최 영미 시인이
    시집을
    냈는데요
    그 시집에
    고 은 시인에게
    卷頭言을
    부탁하러
    고은 시인집을
    방문했는데
    고 은 시인이
    그랬데요
    그래
    시가 참 좋구먼
    잠깐 이리루

    내 앞에
    앉아 봐라며
    앞 가슴을 겨냥했는데
    최 영미 시인의
    진술로는
    그대로
    고 은 시인을
    뿌리치고
    집을 뛰쳐
    나왔다고 했지요
    권두언도
    받지 못하고...
    둘만의 대화
    둘만의 동작
    아무도 모르지요
    그 후
    밑투 운동이
    활발하던 때
    최 영미 시인이
    고 은 시인을
    고발하기에
    이르렀지요
    그 후
    경기도에 거부하던
    고 은 시인은
    자신의 모든
    명예를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지요
    부탁한 권두언을
    받지 못하여서??????
    앙심을 품고
    그랬는지
    거의 50년 터울의
    고 은과 최 영미 사이에
    엉큼한ㄴ 수작을
    고 은 시인이 걸었는지
    아직도

  • 26.07.14 13:17

    미궁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건이지요
    고 은
    왜정 때
    국민하교
    군산중하교
    학력이 전부지요
    그 후
    효봉 스님의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법명이 일초였지요
    우리들이 잘 아는
    법정 스님과
    동기간이었지요
    다시 한번
    고은은 변신을 꾀하지요
    언론인으로
    다시 문학인으로
    법정 스님은
    涅槃하셨는데
    고 은 시인은
    아직 살아있지요
    죽었다는
    뉴스가
    아직 나오지 않해서...
    속인 고 은태
    시인 고 은
    땡중 일초의
    드라마틱한
    인생살이
    그런데요
    중졸출신 시인에게
    대졸출신
    시인이
    권두언을
    받으러 갔다
    말이 않되자나요
    한 때
    고 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후보 물망에도
    올랐지요
    萬人譜라는
    시집으로
    참으로
    세상은
    오지경이죠?
    수선화님
    오늘
    최 영미라는
    시인의
    話頭를 던져
    나를
    즐겁게 하네요
    너스레
    잔소리
    용서하세요

  • 작성자 26.07.19 10:24

    긴~
    댓글에 대한 인사는
    다 읽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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