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심 심사평
2022년 제11회 시인수첩 신인상 본심은 며칠간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맛비가 갠 산뜻한 토요일 오후에 열렸다. 모처럼 쏟아지는 햇살 가득한 여름날 오후는 시단에 첫 발을 딛고자 성심으로 써서 보낸 시편들을 읽기 좋은 시간이었다. 문정희 시인과 최진석 평론가는 예심을 통과한 열두 명의 응모작 목록을 살펴본 후, 심사의 기준과 방법에 대한 논의를 거쳐 곧바로 열독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이번 신인상 본심에서 최종작 선별 기준은 나날의 일상적 삶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일상에서 마주친 감정의 동요를 언어적 형식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낸 작품을 찾아내는 데 있었다. 시가 무엇보다도 언어의 산물이라는 근본 원칙을 전제하지만, 난해한 형식놀이나 실험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소통의 감각을 잘 살린 작품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예심을 거쳐 심사위원들 앞에 당도한 열두 명의 응모작들은 대체로 이런 기준을 잘 살려 쓰여진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다음 세 작품들은 심사위원들을 선택의 곤혹에 빠뜨릴 정도로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
노위연 씨의 「어떤 사랑이 여기 있다」는 ‘당신’과의 만남과 재회의 기원을 통속적 감정을 덜어낸 채 문학적 수사를 통해 세련되게 직조해냈다는 점에서 이채로웠다. 만리장성과 행위예술가의 작품을 적절히 변용하여 시에 담아냈고, 이로써 의미의 결정을 정갈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김다일 씨의 「미래는 변죽만」은 신산한 삶이 만든 고통의 정경을 비루함을 덜어낸 시어 속에 잘 녹여냈다. 현재의 꽉 막힌 상황을 의연하게 직시하고 상투적 감상 속에 매몰되지 않는 모습은, 시가 일상으로부터 길어낸 언어인 동시에 일상을 넘어서고 벗어난다는 역설적 성취의 장면을 포착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김은닢 씨의 「소녀는 북풍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심사위원들이 이견 없이 일치하여 골라낸 유일한 작품이었다. 북방의 거센 바람을 몰고 다니며 마치 모험을 떠나는 듯, 또는 유랑을 다니는 듯 가볍고 날렵하게 유유자적하는 소녀의 이미지는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연마다 행마다 적절하게 선별한 시어들은 서로를 단단하게 붙잡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은유의 흐름 속에 융해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꽉 쥐어 잡았다. “거인이 소녀의 발꿈치를 깎아서 신발을 신겼다”나 “소녀의 옆구리에 이파리가 돋는다”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들은 해석과 직관이 서로를 보조하며, 그 어떤 난해한 독해과정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읽는 이의 마음을 꿰뚫고 북풍 속을 유영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완성해 준 것이다. 그 외에도 「중얼거리는 옥탑」 역시 절제된 어조를 통해 시적 화자의 고독을 적실하게 묘파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고, 응모자가 균일한 문학적 고도를 유지한다고 판단하게 해 주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심사위원들은 제11회 시인수첩 신인상의 당선자를 김은닢 씨로 선정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고 한국시단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맞아들이는 순간에도, 간발의 차이로 우리의 손길을 떠난 다른 작품들이 못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대체로 일상에서 길어낸 낯선 감응들을 적확한 언어 속에 담아내기 위해 애쓴 작품들이라 할 만했지만, 각자마다 여러 가지의 이유로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는 못했다. 예컨대 참신한 시상임에도 상투적인 비유를 남발한다든지, 다소 현학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언어를 비틀어 사용한다든지, 또는 불필요할 정도로 외국어를 섞어씀으로써 시상의 흐름을 해치는 경우들이 그렇다. 아마도 조금만 더 정진하고 다듬어 간다면 그 작품들을 위한 자리가 곧 마련되리라 기대해 본다.
누군가에게 ‘시인’의 이름을 바치는 과정은 일종의 축제이며,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도 동일한 기쁨의 순간이다. 개인의 고독한 시간 속에 길어진 시편들은 이 과정을 통해 모두의 것으로 밝혀지고 함께 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전하는 동시에, 낙선자에게도 큰 용기와 격려를 전하는 이유가 그에 있다. 김은닢 씨의 당선을 하나의 마음으로 축복해주며, 저마다 새로운 시적 감흥의 시간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심사위원 : 문정희 시인, 최진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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