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합천 해인사에서 6.25전란 중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故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를 가졌다.
또한 이날 귀빈 참석자 중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었다.
민노당 권영길의원이 단상 맨 앞좌석 가운데 앉아있어 많은 우국 애국지사들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 참석한 모든분들 특히 6.25전쟁 참화를 몸소 격은 분들과 그 가족이 거의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까 결국 객석에서 권영길의원을 가리키며 네가 뭔데 그 자리에 앉아있나 당장 단상에서 사라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장재균
잠시 후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추모사대신 만세3창을 제의해 해군제독께서 만세 선창을 하자 권영길의원도 일어나 두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외쳤다는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환(金英煥)장군 약력(1921-1954)
1921년 1월8일 서울특별싲ㅇ로구 통의동 103 103번지에서 출생
1939년 경기공립중학교 졸업
1943년 3월 일본관서대학 항공과 수학
1946년 국군 창설요원으로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후 통위부(현 국방부) 정보국장 대리직을 역임하며 미 군사고문단을 상대로 항공부대(공군전신) 창설을 역설하는 등 항공력 구비를 위한 산파역을 담당,
최용덕. 장덕창, 이영무, 김정렬, 박범짐, 이근석 등과 함께 공군창설 7인 간부로 활약
1948년 5월 14일 조선경비대 보병학교를 수료하고 소위 임관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6월26일 일본으로 건너가 F-51전투기를 인수하여 7월2일 한국으로 돌아와 첫 출격 감행,
1951년 8월17일부터 9월18일 사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시 제1전투비행단 부단장 경 제10전투비행전대장으로 재임중 직접 출격하여 해인사 폭격을 중지시킴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보존,
1951년 9월25일 강릉전진기지사령관으로서 1951년 10월11일부터 한국공군의 단독출격작전을 지휘,
강릉기지전진사령관 시절 공군최초로 빨간마후라를 착용함으로써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공군조종사의 상징이 되었음,
1952년 10월1일 충무무공훈장 수여
1953년 2월15일 초대 제10전투비행단장에 취임하여 휴전시까지 한국공군의 최 일선 지휘관으로 작전부대 지휘 및 운영을 관장하여 F-51전투기 출격작전을 지휘함,
1953년 12월 공군제1훈련비행단 단장으로 취임
1954년 1월 공군 준장으로 진금
1954년 3월5일 강릉지역에서 비행훈련 중 실종, 순직
이날 추모사에서
그리운 님이시여,
지금으로부터 55년 전, 우리 공군과 대한민국은 큰 별이 되실 영도자 한 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약관 34세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ej나신 당신은 평소에 존경하고 신봉하시던 부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일제의 강점하에서도 오로지 창공에 뜻을 두고 푸른 꿈을 하늘에다 불태우던 20대의 청년. 김영환은 해방을 맞으면서 조국 발전과 국방의 우세를 위해 제일 먼저 항공군의 창설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군정청의 참모장 보좌관직을 맡아 일하시면서도 오로지 항공대의 창림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미군청 말기에 이르러 육군과 행군은 정식으로 창설이 인정된 반면 약속받았던 항공군의 창설은 무산되었고 항공대가 고작 육군의 한 개 예하 단위부대로 결성되자 당시로서는 성공이 보장되는 정보국장 자리를 과감히 내던지고 나와 최용덕, 장덕창, 김정렬 장군등 여섯분들과 힘을 합하여 우리 공군의 전신인 육군 항공대를 창설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다하셨던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당시로서는 하나 밖에 없었던 비행부대를 또한 몸소 창설하시어 몸소 작전처장 겸 제1비행중대장을 맡으셨고 한편으로는 작전을 한편 비행훈령에 앞장서는 지휘관으로서 공군력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20여대 밖에 없는 우리의 항공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항공작전을 감행하셨습니다. 저 유명한 L-5, L-5 경항공기에 수제폭탄과 수류탄을 싣고 적의 탱크부대에 대한 공격을 감행케 한 것도 님이 창안하신 공격방식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터입니다.
기상천외한 기지와 용맹성을 겸비하셨던 당신에게 우리 후배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작전 참모 보좌관이던 저에게 항상 웃으시면서 “대장부 사내 한법주지 주 번 죽나 멋지게 살다 멋지게 가자”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리고 굼꾸는 소년같은 표정으로 나는 독이 공군의 ACE 였던 격추와 만프레트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처럼 멋진 전투조종사가 될거야!! 하시면서 목에는 빨간 마후라 발에는 아무도 신지않는 비행반장화를 신고 비행모에는 공군의 대령모자를 눌러쓰고 활달하게 웃으시던 당신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그리워하며 흠모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후배들은 지금도 당신을 하늘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면서 당신의 뜻을 뒤따르려 노력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영정 사진이 된 이 모습은 사천기지에서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작전을 진두지휘하실 때 적을 쳐부수자며 용감하게 행인사로 출격하기 전 당신의 모습을 제가 찍은 것입니다. 이사진이 오늘의 영정이 되어 공군 영웅 그리고 국민의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실 줄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연의 일치 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이 인연의 법칙을 일깨워주시는 부처님의 자비 원력인 듯합니다.
평소 불심이 돈독하시던 당신께서 1954년 불의의 사고로 부처님 곁으로 가시지 않았던들 우리 공군은 더욱 더 발전을 이룩했을 거라고 믿는 후배들은 늘 당신의 빈 자리에 대해 안타까운 술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니었으면 잃어버릴 뻔했던 부처님의 만법이 담긴 팔만대장경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보존되어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자겨봅니다.
오늘 이 자리 정말 위대한 국가적 영웅 한 분을 너무 일찍 잃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스스로 달래면서 애타게 당신을 불러봅니다.
님이시어, 부디 부처님의 가피 아래 영생하시어 우리공군과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