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언제나, 어떻게 하면 저 물건이 자신에게 쓸모있게 되겠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겠는지를 생각한다.
그것도 대게,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떤 사나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내 머리는 내 것이지, 내가 아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건 그렇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트집을 잡을 수 없다.
손[手]의 임자 이상으로 그 손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는 없다.
여기 까지는 좋다.
빠빠라기는 정당하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 빠빠라기는 이렇게도 말한다.
"이 야자나무는 내 것이다."
야자나무가 자기 오두막집 앞에 서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마치 야자나무를 자기가 자라게 한 것처럼.
야자나무는 절대로 어느 누구의 것일 수 없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야자나무는 대지[大地]로부터 우리들을 향해 내뻗치신 하느님의 손이다.
하느님은 많은 손을 갖고 계신다.
어느 나무도,
어느 꽃도,
어느 풀도,
바다도 하늘도,
하늘의 구름도,
어느 하나도 하느님의 손 아닌 것이 없다
우리들에게 허용된 것은 다만 그 손을 잡고 기뻐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손은 내 손이다."
그런데도 빠빠라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말에 "라우"라는 것이 있다.
"내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네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둘은 구별할 수가 없고, 똑같은 것이다.
하지만 빠빠라기의 말에서, 이 "내 것"과 "네 것"이상으로 차이가 큰 말은 거의 없다.
"내 것"이란 오직 나 한 사람, 나만의 것이다.
"네 것"이란 오직 너 한 사람, 너만의 것이다.
그러므로 빠빠라기는 자기 오두막집의 범위에 있는 것을 전부 자기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그것에는 권리가 없다. 그 외의 어느 누구도.
만약에 네가 빠빠라기가 있는 곳에 가서, 무엇이든 거기에 있는 것을 본다고 친다면,
그것이 과일이든,
나무이든,
물이든,
숲이든,
설령 한덩어리의 흙이든 ㅡ 언제나 누군가가 곁에 서서 말할 것이다.
"이건 내 물건이다. 조심해라. 내 물건에 손대지말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가 그것에 손을 댄다면, 그는 큰소리로 외치며 너를 "도둑놈"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건 불명예스러운 말인데, 단지 네가 이웃 사람의 "내 물건"에 잠시 손을 대 보기만해도 이런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그의 친구들이나, 대추장의 부하들이 와서, 너를 사슬로 묶어서 파레 푸이푸이(감옥,교도소)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너는 일생 동안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것은 내 물건이다"라고 선언한 물건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대지
않도록, 이것은 누구의 것이요 이것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특별한 율법에 의해서 빈틈없이 정해져 있다.
게다가 또 유럽에는 누구나 이 율법을 어기지 않도록, 전문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빠빠라기의 물건이 아무 것도 빼았겨 버리는 일이 없도록 망을 보고 있다.
알고 보면 그 물건들도 빠빠라기가 딴 곳에서 빼았아 온 물건인데도.
빠빠라기는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재산을,
또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히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권리를 마치 자신의 손에 넣고 있는것처럼 겉을 꾸민다.
야자도,
나무도,
꽃도,
바다도,
하늘도,
그리고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도 정말로 자기 것으로 되기나 한것처럼.
빠빠라기가 자신의 많은 "내 물건"을 위해서 율법을 만들고, 파수꾼을 두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내 물건"을 아주 조금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또는 조금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많은 "내 물건"을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것은, 많은 "내 물건"을 가지는 사람이 많이 있는 만큼,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내 물건"이 많이 몰려오는 마법이나 주술을 아무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
"내 물건"을 모으는 것은 일종의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용기처럼 반드시 명예와 통하는 그런 용기는 아니지만.
하느님을 괴롭히거나, 하느님의 것을 빼앗거나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 자신은 거의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빠빠라기 가운데에서는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은 확실히 흔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빠빠라기는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의 물건을 훔치고 있다.
그밖에 할 일을 모르는 것이다.
뭔가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것 같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전혀 마음에 걸릴 것도 없으며,
아무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많은 "내 물건"을 물려받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ㅡ 어쨌든 하느님의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이 모두 훔쳐 가서 내 것과 네 것으로 나눠 가지고 말았다.
모두의 것으로 정하고 만드신 태양을 하느님도 이제는 모두에게 고루고루 나눠 줄 수가 없다.
모두가 다 남보다 많은 태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넓고 깨끗한 양달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햇볕을 쬐고 있는가 하면, 좁고 더러운 응달에서 아주 많은 사람이 오글오글 초라한 햇살을 쬐고 있다.
하느님도 이제는 그 위대한 거처의 더없이 높은 아리이시리(지배자)계시지 못하며, 이제는 진실한 기쁨을 잃어버리셨다. 빠빠라기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하느님을 부정한다.
"모두가 내 물건이다."
빠빠라기는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 가득히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아득하게 먼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훌륭하고 옳다고 잘라 말한다.
정작 하느님 앞에서는 훌륭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은데 말이다.
만약에 빠빠라기가 올바르게 생각한다면, 그도 역시 알게 될 것이다.
확고하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은 어느 누구의 물건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확고하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이란 원래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이 그 위대한 거처를 만드신 것은, 모두가 거기에 기쁨의 땅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빠빠라기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거처는 규모가 충분히 커서, 누구에게나 양지쪽과 작은 기쁨이 넉넉히 돌아갈 것이며, 그리고 누구에게나 작은 야자나무의 덤불과 발로 밟고 설 땅이 확실히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며, 그것이 또한 하느님게서 정하신 일이기도 하다.
하느님께서 어찌 그 자식의 하나라도 잊으시겠는가.
그런데 실제는 놀랍게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작은 장소가 없어 이리로 저리로 헤매고 있다.
빠빠라기가 하느님의 분부를 듣지 않고, 저들 나름의 율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하느님은 빠빠라기의 재산에 많은 적을 보내셨다.
빠빠라기의 "내 물건"을 때려부수기 위해 습기와 열을 보내셨다. 빠빠라기의 물건은 헐고, 너덜너덜해지고, 썩어서 못쓰게 된다.
하느님은 또 그들의 재산과 보물을 덮쳐서 먹어 버리도록 하기 위해 불에 큰 힘을 주셨다.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폭풍우에도 힘을 주셨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이 가장 무겁게 정하여 내리신 벌은 아마도 빠빠라기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는 사실이리라.
빼앗아 온 것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빠빠라기는 절대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낮 동안에 모아 온 것을 밤 사이에 빼앗기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는 자기의 "내 물건"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고, 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온갖 "내 물건"은 빠빠라기를 괴롭히고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하나님에게서 훔쳤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괴롭히고 몹시 고통을 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공포보다도 훨씬 더 나쁜 벌을 빠빠라기에게 주셨다.
"내 물건"을 아주 조금밖에 갖고 있지 못하거나,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 그것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도록 하셨다.
이 싸움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밤낮도 없다.
이 싸움은 만 사람을 괴롭힌다.
만 사람의 삶의 기쁨을 씹어 으깬다.
가진 자는 나눠 줘야만 하는데도,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갖지 못한 자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싸누는 전사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다만 약간 늦게 와서 약탈에 미처 가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운이 좀 나빴거나, 기회가 없었거나 했을 뿐이다.
약탈에서 가장 뒤늦는 바람에 자기 몫이 가장 적었던 사람은, 하느님이 빈털터리가 되는 순간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손에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돌려 드리도록 하자고 말하는 올바른 사람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오오, 형제들이여.
이런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모아의 한 마음 사람 전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오두막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그네에게 단 하룻밤의 잠자리도 내어주지 않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나나를 한 아름 끌어안고서는 바로 눈앞의 굶주린 사람이 애걸을 하는데도, 단 하나도 나눠 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너희들의 눈에 노여움이, 입술에 경멸하는 빛이 더오르고 있는 것을 본다.
정말이다.
이것이 언제나 빠빠라기가 하는 짓이다.
설령 백 장의 거적을 갖고 있을지라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 한 장도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주지 않는 것까지는 좋은데, 쓸데없이 거적도 없느냐며 비난하기도 하고, 거적이 없는 것은 갖지 못한 사람의 탓이라며 괜한 말을 하기도 한다.
설령 오두막집 천장의 가장 높은 곳까지 넘칠 만큼의 먹거리가 쌓여 있어, 그와 아이가(가족)가 1년 동안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정도여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서 헬쑥해진 사람을 찾아나서려고는 하지 않는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가까이에 수많은 빠빠라기가 굶주림으로 헬쑥해져 서 있는데도 말이다.
야자는 익으면 저절로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진다.
그러나 빠빠라기는 잎도 열매도 없으면서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야자나무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건 내 물건이다! 가져가면 안돼! 먹으면 안돼!"
어떻게 해야 아자나무가 새로운 열매를 맺겠는가.
야자나무는 빠빠라기보다도 훨씬 현명하다.
우리들 가운데에도 남보다 많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고, 많은 거적이랑 돼지를 갖고 있는 추장에게 우리가 정의를 표한다는 점에서는 빠빠라기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경의는 추장이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지 거적이나 돼지를 향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기쁨을 나타내고, 추장의 용기와 지혜를 찬양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아로오파(선물)로 그에게 선사한 것이니까.
빠빠라기는 그러나 그 형제의 거적이나 돼지의 수효를 칭송한다.
용기나 지혜는 아무래도 좋다.
거적이나 돼지를 갖고 있지 않는 자는, 아주 조금밖에, 혹은 전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거적이나 돼지가 스스로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들에게로 걸어가지는 못할 것이며, 빠빠라기도 또 그것을 자신의 형제들에게 나눠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빠빠라기가 존경하고 있는 것은 그 형제들이 아니고, 각자가 갖고 있는 거적이나 돼지의 수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그것을 내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빠빠라기가 그 형제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리고 "내 물건, 네 물건"의 쟁탈로 싸움질을 하지 않는다면, 형제들에게로 자신의 거적을 가지고 가서, 다같이 자기들의 큰 "내 물건"을 나눠 가질 것이다.
형제들을 어두운 밤의 어둠 속으로 밀어내지 않고, 자신의 거적을 나눠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빠빠라기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야자,
바나나,
맛있는 타로 토란,
숲에서 사는 모든 새,
그리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을 주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그것을 기뻐하고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그것들은 결코, 우리들 중의 몇몇 사람만 행복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가난으로 괴롭히고, 결핍으로 고통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많은 물건을 받으면, 형제들에게도 나눠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건은 손아귀에서 썩어 버린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많은 손은 모든 인간을 향해 뻗어 있으며,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균형이 잡히지 않게 많은 물건을 갖는다는 것은 절대로 하느님의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군가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도 하느님의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다.
"나는 양지에 있겠다. 너는 음지로 가라."
우리 모두가 양지에 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 올바른 그 손으로 모든 것을 지탱하고 계시는 한,
싸움도 없거니와 고통도 없을 것이다.
교활한 빠빠라기는 이렇게 말해서 우리들을 속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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