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슈 브리핑 (16)
테슬라, 갑자기 사라진 전기차 EV1, 그리고 석유 이야기]
지난 1월 7일은 세계적인
발명가였던 니콜라 테슬라(Nicola Tesla)가 타계한 지 73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테슬라’라는 이름을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알고 있지만, 원래 테슬라는
전기 부문에서 혁혁한 발명을 많이 한 발명가였습니다. 특히, 에디슨과
벌였던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은 아주
유명합니다. 당시 전기를 둘러싸고 직류와 교류 가운데 하나를 기술 표준으로 선택해야 했는데, 에디슨은 직류를, 테슬라는 교류를 각각 주장합니다. 기술표준을 둘러싼 이 전쟁에서 테슬라는 에디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둡니다. 이후
테슬라는 전기와 관련된 다양한 발명을 하지만, 전류전쟁에서 패한 에디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1943년 1월 7일 숨을 거두게 됩니다.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불운의 천재 테슬라와 ‘전기차 전쟁’ (서울경제, 2016. 01.
07)
테슬라 전기차, 에디슨과 싸운 덕분에… (아시아경제, 2016. 01.
07)
테슬라라는 이름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은, 그의 이름을 딴 Tesla라는 기업이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시중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전기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의 역사는 꽤 오래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기자동차는 1996년에 미국의 GM이 개발한 EV1가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GM은 당시로써는 혁신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전기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당시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캘리포니아 주는 EV1을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는 EV1이 개발되기
6년 전인 1990년에 이미 전기자동차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Zero Emission Vehicle Mandate"(배기가스 제로 차량 법)라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던 주였습니다. 이 법의 핵심 내용 가운데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전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매연이 전혀 안 나오는 전기자동차로 판매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배기가스 제로 차량의 비중은 낮은 수준에서 시작해 최종적으로 20%까지 늘려가도록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캘리포니아 주의 노력에 대응해 개발된 전기자동차가 바로 GM의 EV1이었습니다. EV1은 발표되자마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지지를 얻었는데, 장기 리스(lease)로 보급되던 EV1 차량을 인수하기 위한 대기자 명단만 4,000명을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덕에 EV1은 1996년부터 1999년 사이에
1,117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성능도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초기에는 4시간 충전으로 100km 정도까지만 갈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300km까지 갈 수 있도록 개량되었습니다. 2016년에 쉐보레가 선보이는 전기자동차 ‘볼트(Volt)’가 한 번 충전으로 300km를 가는 정도라면 점을 고려하면, 1990년대 후반에 이미 300km를 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다
대단한 기술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충전으로 300km 주행, 쉐보레 볼트 EV 하반기 판매” (엔카메거진, 2016. 01. 08)
일반 가솔린 자동차와 달리,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모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소음도 거의 없었습니다. 가솔린을
연소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기가스도 당연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비도 아주 간단했습니다. 엔진오일도 필요가 없었고, 오일필터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Zero Emission Vehicle
Mandate"가 제정된 지 13년, EV1이
생산되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2003년 캘리포니아주는
해당 법률을 폐지하게 됩니다. 매년 일정 비율 이상을 매연을 내뿜지 않는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법(mandate)에 대해 자동차업계는 과도한 규제라고 항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자동차업계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자동차업계와
“Master Memorandum of Agreement”라는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 협약에서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자동차업계는 전기자동차에 대해 타협을 한 가지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고객 수요(customer demand)에 따라 전기자동차 보급을 확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구상으로만 보면, 해당 협약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품도 고객이 없으면 팔리지 않고 해당 상품을 생산한 기업 역시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맥상 해당 문구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갑자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전기자동차 EV1의 대기자 명단에 올렸던 이름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마지막에 5명의
이름만 남았고, EV1 자동차도 하나둘씩 거리에서 사라졌습니다. 고객의
수요에 맞춰 생산한다고 협약을 체결했는데, 갑자기 고객들이 사라지게 된 겁니다. 여기에 캘리포니아의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소수의 전기차 운전자들을 위해 세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며 충전소
건설 반대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백악관과 연방정부도 반대 여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자동차의
환경 보호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주장도 나왔고, 충전 방식의 전기자동차보다 수소연료전지(hydrogen fuel cell)를 이용한 자동차가 더 낫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캘리포니아 주정부 내의 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공기자원위원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1990년에 제정된
"Zero Emission Vehicle Mandate" 법을 폐지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는데, 이 청문회에서도 전기자동차에 찬성하는 쪽의 의견은 무시되고 자동차업계 주장만 강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에 전기자동차 붐을 일으켰던 해당 법률은 2003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이후 GM의 EV1 생산라인도
폐쇄되었고, 생산된 모든 전기자동차들은 수거돼 폐차장으로 보내졌습니다.
폐차되는 차량의 경우, 재활용할 수 있는 부품을 제거한 후 폐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EV1은 그냥 찌그러뜨리는 방식으로 전차량이 폐차되었습니다. 일부 EV1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남은 차량을 자신들이 인수하겠다고 모금까지 했지만,
2005년 3월에 남아있던 마지막 EV1 차량까지
폐차되면서 모든 EV1 차량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기자동차라고 할 수 있었던 EV1이 캘리포니아에서 사라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 일반자동차 판매가 줄어 수익이 크게 감소할 것을 우려했던 자동차업계와 석유 사용량 감소를 걱정했던
석유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전기자동차의 폐차로 이어졌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왜 자동차업계와 석유업계는
그토록 전기자동차 보급에 반대를 한 것일까요. 석유를 단순히 에너지원(原)의 하나로만 생각해서는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EV1이 사라진 원인을 주로 에너지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석유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에너지원(原)으로써의 석유가 아니라, 부의
창출 원천으로써의 석유입니다. 그동안 석유는 전기를 만들고,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원으로써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달러와 연계되면서 미국과 세계경제에
엄청난 부(富)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에너지원(原)으로써의
석유는, 경제적인 수지만 맞는다면, 천연가스나 태양에너지
등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의 창출 수단으로써의 석유는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전기자동차의 보급은 석유 사용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이것은 다시 구매력을 가진 달러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만큼 부를 잃게 되고, 세계경제 역시 부(富)가 감소하게 됩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은 세계 석유소비량과 세계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자동차가 캘리포니아 지역에 본격 보급돼 미국 내 다른 주로 확장되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까지 보급되기 시작하면, 미국과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로써는 어떤 방식으로는 전기자동차에 대해 대처방안을 마련했어야
했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이것이 EV1을 사라지게 한 핵심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종종 우리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EV1과
관련된 사건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부(富)의 원천으로써 석유를 바라보게 되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아닙니다. 이제 EV1가 세상에 선을 보인지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기자동차 붐이 일고 있습니다. 과연 이번 전기자동차 붐도 EV1처럼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될까요, 아니면 가솔린 자동차들을 대대적으로 대체하는 기회가 될까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전기자동차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위해서는 휘발유 가격이
크게 올라야 합니다. 초기 전기자동차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휘발유 가격이 비싸다면, 전기자동차는 나름 경제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유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상황이라 전기자동차의 상대적인 이점이 많이 약해져 있습니다. 그에 따라, 전기자동차 붐을 일으켰던 테슬라의 매출 역시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전기자동차 가격을 지금보다 크게 낮추기 위해서는 판매량이 크게 늘어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춰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테슬라가 전기자동차의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테슬라 3Q 매출 12억4000만달러…주당 손실 58센트 (아시아경제, 2015. 11. 04)
전기차 인기 시들?… 테슬라 4분기 출고대수 기대 못 미쳐 (중앙일보, 2016. 01. 04)
지금의 전기자동차 붐을 페트로달러(petrodollar)를
만들었던 세력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금처럼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까요, 아니면 EV1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까요. 전기자동차를 둘러싸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관찰하는 것도 큰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EV1이 2005년 완전히 사라진 직후인 2006년에
크리스토퍼 페인(Christopher Paine)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화 "Who Killed the Electric Car"도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한글 자막 없고, 일부 부분밖에 없네요.)
https://youtu.be/11PITIZVik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