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함께 사는 게 그렇게 힘든 거라네.
개인이 혼자 있는 것도 그렇게 힘든 거라네."
카오스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쓴 특수청소부 김완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김완은 고독사, 범죄 현장 등 여러 이유로 생명이 떠난 '죽은 집'과 저장 강박증으로 오물이 쌓인 '쓰레기 집'을 청소하는 일을 했다. 코를 찌르는 죽음의 냄새와 카오스가 돼버린 쓰레기 집을 무릎 꿇고 앉아 찬찬히 정리하는 그 일을, 그는 '언두잉undoing' 혹은 '컨트롤 제트(Ctrl +Z, 실행 취소)' 라고 명령했다. 그가 하는 일은 한 공간의 기억을 '돌이켜', 아무 일도 없었던 이전의 '텅 빈 상태'로 복원하는 일이다. 누구든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특별히 몇몇 사람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사무쳤다. 생명이 끊어지기 전까지 부탄가스와 신문지를 분리수거했던 사람, 셔츠 색깔까지 맞춰 행어에 정리했던 사람, 전화로 자기 '죽음의 청소 견적'을 물은 뒤 세상을 떠난 사람....... 끝짜기 폐 끼치지 않고 주변을 청소하려 했던 그들의 고독, 결벽, 자책이 아프게 만져졌다.
그 반대편에 냄새피우며 사는 '쓰레기 집' 사람들이 있었다. 무질서 속에 웅크리던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SOS를 쳤다. 오줌과 똥과 명품 가방과 배달 음식이 범벅된 병적인 쓰레기 신이 치워지면, 그들은 그 거짓말 같은 무無의 상태에 감격했다. "다시 시작할 희망이 생겼다"라고.
왜 어떤 이는 실날같은 희망을 붙잡고 혼돈의 쓰레기 더미에서 탈출하고, 어떤 이는 스스로를 '폐기물'로 정리하면 더 큰 죽음의 카오스로 뛰어들었을까. 죽은 자의 정돈된 절망과 산 자의 어지러운 희망 사이에서, 나는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세상은 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득 차 있고,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극심한 무기력에 시달린다. 어쩌면 정리의 문제는 내 삶의 '컨트롤 키'에 관한 문제다.
이어령 선생님의 공간은 항상 정돈돼 있었다. 문 앞의 슬리퍼는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서가에 꽃힌 책들은 키 높이를 맞춰 반듯했다. 손님용 긴 테이블엔 항상 과일과 초콜릿 등의 다과가 놓여 있었다 북악산의 긴 빛이 드리우는 일인용 책상, 안쪽의 응접실 소파 옆에 놓인 설치미술 형태의 명함 나무, 화장실 옆 장식장 위에선 따님인 이민아 목사님이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슬프도록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끔은 선생님의 원고가 테이블 위에 30센티 높이로 도열해 있을 때도 있다.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책 저작물을 하나하나 정리해 놓고 싶어 하셨고, 여러 출판사에 저작권이 흩어져 있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선생님의 병세가 전해질 때마다 촉이 좋은 사람들이 방송과 기사, 유투브 영상으로 선생의 마지막 지혜 부스러기라도 쓸어 담으려고 이러저리 인맥을 동원해 평창동을 노크했지만, 정작 당신이 원하는 방대한 '전집 컬렉션' 정리에는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나는 간간이 선생님이 내비치시는 서운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
" ' 정리정돈'의 욕구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커지는 걸까요? 선생님 댁도 오늘따라 제게는 더욱 정갈하게 느껴집니다."
"아니야. 정반대야. 나는 무질서해."
"네? 무질서하시다고요?"
"그럼. 내가 B형이야. 얼마나 무질서한데. 나는 A형하고는 갑갑해서 못 살아. 너무 깨끗하게 정리돼 있으면 슬쩍 가서 흩어놔(웃음). 그런데 정돈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요만한 거 하나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안 돼. 그래서 남들이 보면 이상하지. 처음부터 정리하는 습관이 밴 사람이 아니라. 어질어놨다가 한번에 A형보다 지독하게 정리하니까."
"제가 요즘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정리'라는 개념인데요. 창조도 어찌 보면 카오스에서 핵심만 남기는 정리 작업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창조는 카오스에서 생겨, 질서에서는 안 생기지. 질서는 이미 죽은 거라네.""카오스는 질서보다 우선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니까 카오스가 정리정돈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말씀이지요? 제 예감이 맞다면 기질적으로 '내적 불안이 큰' 저는 코스모스에서 안도를 느끼는 사람인데, 선생님은 앞선 카오스에서 더 큰 잠재력과 흥분을 느끼시는 것 같군요.""그렇다네. 코스모스가 되면 죽은 거야. 수타면 뽑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 물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된 덩어리가 카오스야. 그것을 탁탁 치면서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국수 가닥이 착착 뽑아져 나오잖아. 그 반죽된 덩어리가 바로 최초의 우주 혼돈이지.혼돈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에 관한 농담이라네.누군가는 태초의 땅과 물의 자리를 만드는 토목엔지니어가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에덴동산의 정원사라고 했어. 마지막 사람이 가장 그럴싸한 대답을 했네. 혼돈이 최초의 비즈니스였다면, 뭘 하더라도 온 세상을 혼돈에 빠뜨리는 재주가 있는 정치가야말로 최초의 직업이 아니겠냐는 거지.""어쨌든 카오스나 아노미는 저처럼 평범한 인간에게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통제할 수 없으면 무력해지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혼돈 그 자체를 에너지로 느낀신다니 놀랍습니다. 선생님이 파고 계신 우물도 혼돈의 우물인가요?"
"혼돈은 내게 목마름 그 자체야. 호기심이라는 덩어리지. 여기 파면 물이 나올까? 저기 파면 물이 나올까? 즐거운 카오스,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지. '대통령이 돼야겠다' '장관이 되야겠다' 하는 그런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면, 그 우물 앞에서 멈췄겠지. '어, 시원하다. 다 돼다' 그러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살아?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갈증을 남겨둔다네. 다 채우지 않아."
"갈증을 남겨두신다고요?"
"그렇다네. 목마름을 다 채우지 않는 거지. 나는 그동안 올림픽도 해보고 희곡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시도 쓰고 기호학도 연구했어. 각 분야에서 웬만큼 이뤄내니, 남들은 '저분이 하나만 하면 대단할 텐데 이것저것을 다 한다'고 안타까워해. 아니야. 나는 이것저것을 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어. 그러지 않았다면 재미없어서 못 했을 걸세. 그리고 정상에 오를 만하면 갈증을 남겨두고 길을 떠나지. 왜? 올라가면 끝나는 거니까."
갈증이 고통인 나는 갈증이 쾌락이라는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카오스를 불안의 흑점이 아니라 창조의 밝은 점으로 바라본다는 것도 우리의 선생님은 혼돈 앞에서 생명력이 용솟음쳤다. 세상의 혼돈과 어떻게 대면하는가가 한 인간의 동선을 결정한다면, 그는 이 산과 저 산을 주저 없이 건너다니며 인식의 행융합 반응을 일으켰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中에서 출판사 :열림원 지은이: 김지수
첫댓글 그런데 선생님은 혼돈 그 자체를 에너지로 느낀신다니 놀랍습니다. 선생님이 파고 계신 우물도 혼돈의 우물인가요?"
아멘 주님께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