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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향교는 조선 초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전란 후에 현감 이영도가 옛 교동에 중건하였고 영조 34년(1758)에 현감 김광태가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고종 광무 5년(1901)에 다시 현감 허길이 중수하고 1931년 군수 신현구가 대성전, 명륜당, 동·서무를 중수하였다.
현풍향교는 상리마을 뒤쪽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명륜당이 대성전보다 앞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1750년대 건물로 추정되는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에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현풍향교 대성전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27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소재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로20길 27-8
시대 조선 영조 34년(1758)
규모 1동소속종파현풍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현풍향교는 조선 초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1598년(선조 31) 옛 교동에 중건되었던 것을 1758년(영조 34) 현감 김광태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이 향교는 명륜당이 대성전보다 앞에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유명한 유학자들이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현풍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첫댓글 금화사 옛절터에서 가저온 부재들로 지어진 현풍향교.
유교와 불교와의 극명한 모습이랄까 ~~~
와~ 그 바쁜 와중에 사진도 일찍 올려 주셨네요. 그날 답사 되돌아 보며 즐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