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낯설게 보았던 영화 ‘강원도의 힘.’ 치열한 경쟁 속의 바쁜 서울과 다른, 왠지 먼 타국과도 같은, 익숙한 일상이 아닌 일상을 보여주던 영화 속 영상들이 도무지 제목과 연관을 지을 수 없어 난해했던 영화였다. 그 후에도 ‘강원도의 힘’은 직접 강원도의 산맥과 바다를 만져 보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부권 문화협력관 업무에 강원도가 속하다보니 자주 갈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매번 그 곳으로 갈 때마다 신기하게도 ‘강원도의 힘’이 입속에서 자꾸 중얼거려진다. 왠지 모를 ‘힘’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그 자체가 천혜의 국립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여행자도 아름답게 보인다. 어떤 게으른 영혼도 생동감이 넘치도록 만든다. 하늘이 내린 강원도이다.
지난 6월, 강원도를 더욱 가치 있고 힘 있게 만들 대표적인 지역 문화예술단체가 ‘문화사랑방’이란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6월 2일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강원문화재단이 지역협력형 사업으로 공동 추진하고 있는 ‘레지던스프로그램운영지원사업’ 대상단체들이 강원도 인제군의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그리고 6월 16일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 대상단체들이 강원도 춘천시내 강원대 백령아트홀에서 함께 모여 타 지역의 우수사례를 듣고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 강원지역 레지던스프로그램 운영단체 문화사랑방(6.2)
▲ 강원지역 공연장상주단체육성사업 지원단체 문화사랑방(6.16)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펼칠 때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점들이 ‘문화사랑방’을 통해 토로되었다. 지역에서 이들과 함께 하지 않고서는 진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었지만 지역의 예술창작 여건과 환경을 ‘보다 적합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예술정책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재차 각인시켜 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또한 이들 단체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레지던스 공간들과 공연장 및 공연장 상주단체들이 ‘강원도의 힘’을 새롭게 창조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레지던스프로그램 운영 단체인 하슬라아트월드와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단체인 영북민속문화연구회 ‘갯마당’의 사업들을 모니터링했다.
올해 레지던스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원도 문화예술단체는 강릉, 화천, 원주, 인제, 춘천 등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강릉하슬라아트월드의「강릉하슬라레지던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화천공연예술텃밭 레지던시프로그램 ‘시골마을 예술텃밭’」, 극단 노뜰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예술가 지역을 만나다’」, (재)백담사만해마을의「레지던스 작가와 함께하는 ‘님의침묵 문예학당’」, 그리고 춘천의 극단 Art-3 Theatre의「레지던시 Platform 90-1」이 그들의 사업이다.
독자들 중 혹시 강원도에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경포대와 정동진보다 더 아름다운 하슬라아트월드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그 곳에 다다르는 입구에는 ‘산위에 바다가 있어요’라는 의미심장한 글귀가 있다. 산 위에 올라가 봐야 보이는 바다는 마치 예술처럼 거대하고 신비로운 색채를 띠고 무한히 펼쳐져 있다. 말없이 이들 바다와 대화하는 예술공간이 바로 하슬라아트월드이다. 필자가 모니터링을 위해 방문한 그날은 「강릉하슬라레지던시」입주작가인 중국인 이영 작가의 작품 전시가 끝나고, 전교생 15명의 강릉지역 인곡초등학교 학생들이 이영 작가와 함께하는 미술체험 워크샵이 진행되고 있었다. 작가는 중국으로부터 서해를 건너올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한국의 지상 모습을 모티브로 삼아 하슬라아트월드에서 볍씨, 나무조각 등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고, 작업 방법들을 초등학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접하는 신기한 예술체험에 아이들의 눈동자는 해변 위의 모래처럼 반짝반짝 거렸다. 훌륭한 작가와 함께 이들이 체험한 행복한 시간들은 바다처럼 영원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이렇게 매일 흥미로운 예술프로그램을 통해 공간을 변화시켜나가고 있기에 항상 생동감이 있다. 레지던스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방문한 국제적인 작가와의 교류가 그 힘을 발휘한 순간이다.
올해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강원도 문화예술단체와 공연장 역시 강릉, 속초, 홍천, 인제, 춘천 등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강릉단오제보존회, 문화프로덕션 도모, 극단 새하마노, 강원소리진흥회, 춘천무지개인형극단, 영북민속문화연구회 ‘갯마당’ 등 6개 단체가 선정되었다.
이들 중, 속초시 문화회관의 상주단체인 영북민속문화연구회 ‘갯마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교육프로그램 ‘젊은이의 기상! 사자가 나간다’라는 한의 국악교실을 모니터링하였다.
1992년 속초를 근거지로 창단된 영북민속문화연구회 ‘갯마당’은 주변 고성과 양양지역은 물론, 영동지방 전체를 아우르는 전통예술연희단체이다. 특히, 농사풀이의 과정과 진풀이, 가락의 전개가 독특한 도리원 농악을 복원해냈으며, 실향민 문화인 북청사자놀음을 전수받아 학교문화예술교육 등을 통한 보급과 전승에 주력하고 있다. 전국농악경연대회 대상, 제24회 전주대사습 차하, 제6회 김제지평선축제 전국농악경연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 수상 등 각종 수상 경력과, 국악의 대중화 사업을 위해 19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정기연주회를 통해 신모둠, 상모판굿, 삼도풍물굿, 장구놀이, 모둠북 산조 ‘동해물’, 축제 등의 작품을 창작해 온 강원도 지역의 주요 문화예술단체이다.
특히, 6·25전쟁으로 함경북도 북청에 고향을 두고 내려온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고향의 공동체 놀이문화를 복원한 ‘북청사자놀음’을 ‘갯마당’을 중심으로 한 젊은 예술가들이 전수받아 계승, 발전시켜오고 있다. 이 문화적 자산을 알리는 작업을 공연장상주단체사업의 주요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삼고 관내 초등학생 60여명을 초청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먼저 영상을 통해 ‘북청사자놀음’의 유래와 역사를 알려주고 소공연장에서 학생들이 직접 클레이 아트를 통해 자신들만의 종이탈을 만들어 보았으며, 대공연장에서 넋두리춤과 돈돌날이 등 북청사자놀음에 나오는 춤과 노래를 배워 직접 무대에 서 보는 시간들이었다.
선조들의 공동체놀이를 배워 신바람 나게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속초의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정치, 군사적으로 허리가 잘려져 있는 한반도의 척추가 문화예술을 통해 여전히 신경을 잇고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해 하는 순간, ‘얼씨구’라는 천둥소리와 함께 헤어질 시간을 알려왔다.
이번 모니터링을 통해 속초와 강릉 지역의 두 단체만 둘러보았지만 춘천, 인제, 화천, 홍천 등 강원도 전 지역에 걸쳐 있는 레지던스공간과 공연장상주단체들에게서도 강한 힘들이 기대된다. 앞으로 이들 단체들에 대해서도 차츰 소개하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오고가는 것이 먼 강원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강원도의 힘’이 있기에 결코 멀지않은 곳, 강원도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