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져도 허리 펼 수 없는 사람들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고흐의 ‘눈 덮인 들판에서 삽질하는 사람들’
저 그림을 잘 봐라. 세 명 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구부정하게 서 있는 아줌마, 싸움 좀 해본 사람이 확실하다. 지푸라기를 슬쩍 들고, 나머지 손은 좌악 펴 손가락뼈를 맞춘 뒤 주먹 쥐기 일보 직전이다. 등과 가슴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측면 공격을 할 수 있는 저 낮은 자세도 수준급이다. 앞에 두 여자 역시 마찬가지다. 두 여자는 지푸라기를 등 뒤에 숨기고 있다. 아차 싶으면 지푸라기를 던져 상대의 시야를 가리고 곧 치고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우두버리 바로 옆 여자의 주먹 크기는 상당하다. 저 안에 돌을 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치사해도 상관없다. 싸움은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것이다. _김려령, 〔완득이〕중
‘완득이’(김려령 작)에게 ‘이삭 줍는 사람들’은 “싸움 좀 해본 사람”들이다. 본인이 싸움 좀 하는 고등학생이라 완득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그림을 해석한다. 19세기 프랑스 농촌 현실을 몰라도 완득이는 나름대로 그림을 감상할 줄 안다. 그래도 된다.
소설 속 완득이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고, 아빠는 척추 장애가 있는 카바레 탭댄서다. 젖을 떼자마자 엄마와 헤어졌고 고등학생이 되어 엄마를 다시 만났다. 영화 속 완득이는 이삭 줍는 사람들을 이주민으로 해석한다. 이삭 줍는 사람들은 싸움 좀 할 줄 알고 “자기 나라에서는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다.
밀레가 주인공으로 그린 ‘이삭 줍는 사람들’은 과연 이주민처럼 보인다. 피부색이 검다. 북아프리카 지역이 프랑스 식민지였으니까, 식민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거나 그 후예일 수 있다. 식민지에서 온 이주민들이 이삭을 줍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 떨어진 낟알을 줍는다. 착취당하는 땅 식민지에서 살 수 없어, 프랑스로 건너와 나그네가 된 사람들에겐 소유할 땅도 없고, 경작할 땅도 없다. 땅 위를 걷지만 어디에도 먹고 살만한 땅이 없다. 식민지 사람들에게, 그리고 식민지를 떠난 이주민들에게도 땅은, 거기가 어디든 겨울이다.
지평선 아래로 해가 지는데, 코발트 빛 그림자 같은 두 사람이 여전히 일하고 있다. 해가 지는데, 통치마 입은 농부들이 허리를 펴지 않는 데엔 까닭이 있다. 햇살이 없어도 삽날로 눈을 녹여버려야 한다.
햇살에 미처 녹지 않은 눈이 삽날에 녹은 걸까, 드문드문 초록 이파리가 보이고, 녹은 눈 사이로 붉은 흙뭉치도 드러났다.
순백의 눈으로 덮인 들에선 아무 것도 심을 수도 캘 수도 없다. 새하얗게 덮인 밭은 무서웠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순백의 들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눈이 녹아 흙과 섞여 지저분해질 때에야, 들은 비로소 아름답다. 녹은 눈 때문에 흙이 질퍽거려야 희망이다. 봄이다.
무섭도록 새하얗던 밭을 성급하게 삽날로 뒤집는 이유는 봄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깨우기 위해서다. 땅 속으로 숨어버린 봄의 머리채를 끌어당기려는 것일까, 햇살은 쉬지만 삽날은 멈출 수 없다.
하얀 눈으로 덮인 밭을 삽으로 뒤집고 있는 통치마 입은 여인들을 고흐(Gogh,1853~1890)가 직접 관찰한 건 아니었겠다. 고흐는 밀레(Jean-François Millet,1814~1875)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모사했다. 고흐가 생레미(Saint Remy) 병원에서 입원 치료받을 때 동생 테오(Theo,1857~1891)가 사진으로 찍은 밀레의 그림들을 보내주었고, 사진으로 찍힌 밀레 그림들을 2개월간 모사했다.
모사였지만, 똑같이 그리진 않았다. 그림의 구성과 배경을 똑같이 그릴 때에도 고흐는 ‘색깔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이삭 줍는 사람들’을 모사할 때도 똑같이 그리지 않았다. 세 명이 아니라 두 명을 그렸고, 계절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치마 입은 농부들이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는 것만 똑같다. 고흐는 밀레를 따라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일하는 농부를 모사한 것이다. 밀레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만, 고흐도 따라 그렸다.
밀레가 살던 때, 기차가 실용화됐다. 기차(汽車)는 ‘물 끓는 김으로 움직이는 차’다. 가장 빨리 달리는 말도 20km/h로 달리기 어려웠는데 기차는 50km/h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 두 배 이상 빨라진 것이다. 또 말은 장거리를 달리고 나면 한 시간 이상 쉬어야 했지만 ‘물 끓는 김으로 움직이는 차’는 쉴 필요도 없다. 말 등이나 마차엔 소수의 사람만 탈 수 있지만 기차엔 여러 사람이 동시에 탈 수 있다. 기차가 실용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빠른 시간 안에 교외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됐다. 기차를 타고 교외에 나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온 사람들에게 욕심이 생겼다. 풍경화를 걸어두고 거실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했던 것을 손님들에게 자랑하기도 했겠다. 이렇게 그림 시장에서 풍경화 수요가 생기자 화가들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작업실을 마련해 그림을 그렸다. 일군의 화가들이 바르비종(Barbizon)이라는 숲에 모여 작업하며 화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밀레도 바르비종 숲 근처에 살면서 그렸는데, 동료들과 다른 그림을 그렸다. 풍경을 그리는데, 배경으로만 삼았다. 풍경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주로 가난한 농사꾼들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살만한 중산층들이 굳이 가난한 농사꾼들을 주인공 삼은 그림을 살 이유는 없다. 구매자들의 욕구를 몰랐을 리 없지만 밀레의 시선은 아름다운 풍경에 머물지 않고 가난한 농사꾼들을 따라다녔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둔 채, 밀레는 노동에 지치고 가난에 찌든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허리를 펴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밀레 그림의 주인공이었고, 고흐도 밀레의 시선을 좇았다.
허리를 펴지 않는 ‘이삭 줍는 사람들’은 가을걷이의 아름다운 풍경 속 낟알을 주워 먹고 살아야하는 비참하도록 가난한 사람들이다. 떨어진 낟알 이삭을 줍는 까닭은 한 알의 곡식이라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것 밖에 다른 식량이 없기 때문이다. ‘이삭 줍는 사람들’은 땅을 가진 지주도 아니고, 지주 아래 농사짓는 소작인도 아니다. 땅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땅에서 일할 권리도 없는 사람들, 땅에 살지만 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농사짓는 현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가을걷이의 풍요롭고 넉넉한 풍경화에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전원의 아름다움 풍경은 멀다. ‘이삭 줍는 사람들’에게서 한참 떨어진 저 멀리, 밀을 수확하고 다함께 모여 탈곡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한다. 일하는 사람들 옆엔 이미 탈곡한 지푸라기 더미가 높다. 알곡 담은 가마니를 싣고 갈 마차도 준비됐다. 말에 탄 채 사람들을 감독하는 사람은 땅 주인일까. 땅 주인에겐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넉넉한 현장이다. 가까이에 가면 일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릴 성 싶은데,
밀레는 노랫소리를 소거해버리고 허리 숙여 이삭 줍는 사람들을 라이브포커스로 촬영하듯 크고 또렷하게 강조하면서 멀리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흐리게 처리했다. 풍요로운 풍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여기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낸 밀레의 시선이 따뜻하다. 19세기 초 혁명이 그치지 않던 프랑스에서, 밀레는 사람을 죽이는 혁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을 캔버스 위에 살려내며 자신만의 혁명을 꾀한다. 말 탄 지주는 작고 흐리나 땅에 속하지 않은 이주 여성들이 크고 또렷하다. 밀레의 캔버스 위에서 세상은 뒤집힌다. 완득이가 이해한대로 밀레는 손에 “돌을 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 민들레교회 김영준 목사
*길벗2020년1월호에 함께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