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식으로 칸트읽기3- 칸트에의 길(3)/ 오두범
회의주의에 빠진 경험론
칸트는 루소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한테서 큰 자극을 받았다. 흄 이전에 경험론의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인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감각을 통해 획득된다고 보았다. 태어났을 때는 마음은 백지상태(tabla rasa)이고 감각적 경험이 여러 방법으로 이 백지 위에 글씨를 써서 마침내 감각에서 기억이 생기고 기억에서 관념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오직 물질적 사물만이 우리들의 감각에 작용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오직 물질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유물론적 철학으로 귀결되어 버린다.1)
데이비드 흄은 로크의 경험론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인간의 모든 지식은 경험으로부터 획득된다’고 했을 때의 ‘모든’의 개념에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포함시켰다. 인간이 외부 사물을 지각하듯이 내부의 정신도 지각한다면 사실상 정신(mind)이라는 독립된 실체는 없는 것이며 정신의 개별적 작용들인 관념, 기억, 감정 등에 대한 지각이 있을 뿐이다.
즉 정신이란 관념들(ideas)을 스스로 품고 있는 실체이거나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다. 그것은 지각, 기억, 감정 등등의 집합일 뿐이다. 그러한 정신 작용(process of thoughts)들의 집합의 뒤에는 ‘영혼(soul)’이 숨어 있을 만한 구석이 없다. 흄의 이러한 논변(論辯)은 기독교의 전통 신앙을 파괴하는 무신론(atheism)으로 귀결된다. 왜냐 하면 ‘영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흄의 이러한 사상은 과학도 파괴해 버릴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흄의 귀납추리의 방식을 적용한다면 외부에서 일어난 구체적(가시적) 사실(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지각할 뿐이지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 사이의 ‘관계(인과관계)’와 같은 비가시적인 요소를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흄의 사상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과학자는 과학적 관찰 대상이 되는 두 요소 사건 즉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의 각각을 지각해서 사건 A가 원인이 되어 사건 B라는 결과가 나왔겠다라는 추리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사건 A는 관찰 되었는데 사건 B는 관찰되지 않았다면 A에서 B를 연역(演繹: deduce, 또는 추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찰되는 사실(matter)이 없으니 마음(mind)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No matter, never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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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윌 듀란트(이철민역), 『철학 이야기』, 청년사, 1987, 155쪽
첫댓글 백민: 노고가 많습니다. 매우 유익한 글입니다. 백민께서 철학에 대한 글을 소개하시니, 대학 때부터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던 나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모르겠어요. 복음입니다. 주옥 같이 소중한 글로서 나의 지적인 세계를 넓혀 주고, 동시에 과거에 불확실하게 또는 잘못 이해되었던 개념과 사상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고 있어 참으로 좋아요. 따라서 Computer에 별도의 file을 만들어서 매번 저장을 하고 있어요. 후일에 보고 또 보려고. 나는 원래 <거북이>라는 동물을 좋아합니다. 거북이는 부귀와 장수를 상징하면서, + 여유가 있고. 느리게 걷고. 서두르거나 결코 달리고 뛰지 않는 침착함의 상징이기 때문에. 횡성군 청일면 고시리에 있는 도양, 성재모 거북이와 백민 거북이를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두 분 동일하게 "Steady & Slow"를 slogan으로 하시는 공통점이 있어요. Plus 우리 3인 모두가 부여군 출신 교수. 모두가 1944년생. 하나같이 우직하고 고지식한 책 벌레들. Thanks again. Please keep going. 20220213 해광
해광, 황송 감사, 너무나도 감사해요. 힘이 납니다. 우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