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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얼러를 떠나 투르판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스바시고성 유적에 들립니다.
수바시 고성은 현장법사가 천축으로 가는 도중 들려서 한달간 설법을 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수바시는 위그루어로 물머리라는 뜻입니다. 쿠처에서 20km외각에 위치하며 쿠처강 옆에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유적이 대부분 그렇듯이 사람이 살지 않은 이후에는 급격한 퇴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는 사막기후라서 1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투르판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해발고도가 낮은 분지입니다. 가장 낮은 사해 다음이지요. 고도가 낮은 분지이며 사막기후입니다. 도착한 날도 낮의 최고 기온이 섭씨 49도 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지역인데 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간다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에서 내리자 마자 부는 열풍이 투르판의 날씨를 대변합니다.
투르판은 돌궐어로 ' 풍요로운 곳' 이라는 뜻입니다. 사방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남북 60km, 동서 120km의 분지입니다. 1년 강수량이 16mm에 불과하고, 기온은 50도를 오르내리고, 최고기온이 섭씨 83.5도까지 올라간 기록이 있는 지역을 풍요로운 곳이라 칭하다니요. 그런데 놀랍게도 카레즈라는 관계시설을 건설해 실제로 풍요로운 지역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포도와 면화같은 특산물을 생산하고 다양한 문명이 나타나는 독창적의 투르판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이곳의 지형은 고온, 건조, 강풍으로 대변됩니다. 그래서 이곳을 火州(모래의 땅), 沙州(모래의당), 風州(바람의땅) 라고 부르게 됩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이 이곳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
해발 800m의 산에서 해발 -60m의 시내까지 내리막이 어어집니다. 그런데 실크로드에서 보기드문 왕복 4차선의 길을 시속 40km의 속도로 기어갑니다. 사고가 많이 나서 속도를 40으로 제한했다고 하는 군요. 거기다가 출발, 도착시간을 기준으로 단속을 하니 위반하면 벌금액수가 엄청나다고 하네요. 그런데 중국의 장거리 버스는 무조건 내 달립니다. 미리 벌금을 내좋고 마음 것 달린다고 합니다다. 실제로 벌금을 내는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돈이 벌금인지 뇌물인지도 불 분명해 보입니다. 역시 중국은 중국입니다^^
어쩌다 조금 속력을 내면 여지없이 가다가 쉽니다. 물론 휴게소가 있을 턱은 없구요. 정차하는 차에서 보니 다 찌그러져서 내버려진 것 같은 차 앞에 어린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어른은 어디가고 혼자서 놀고 있습니다만 어째 이 다 부서진 차가 집 같아 보입니다. 사탕을 주면서 이것 저것 물어봅니다.소년도 열심히 얘기합니다. 물론 서로 못 알아 듣지요^^ 결국 손만 흔들며 잘 가라고 합니다.
투르판은 포도의 고장입니다. 시내중심가에도 포도넝쿨 터널을 만들어 가로수를 대신합니다. 200여종의 포도가 재배되는데 그 맛은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포도의 당도가 14 - 16 정도 나오는 데 투르판 포도의 당도는 26을 넘습니다. 1년 강수량 16m, 300일이 넘는 일조량, 엄청난 고온 등 포도가 잘 될 온갖 조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탐스럽게 달린 포도송이가 보입니다만 손 대면 벌금낸다고 하네요. 입맛만 다셔봅니다. 투루판의 포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레즈입니다.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180배나 많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바로 지하수로입니다. 찬산산맥의 눈녹은 물을 지하 수로를 통해 투르판 시내까지 끌어들이는 대역사를 벌인 것입니다. 카레즈는 페르시아어로 '지하수'라는 뜻이라고 하기도 하고, 중국인들은 카레즈를 굴착할 때 쓰는 도구, 즉 흙나르는 광주리를 부르는 운토광(運土筐)의 중국어 발음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카레즈 박물관에 가면 카레즈의 공사과정과 굴착방법을 잘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카레즈는 네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수직으로 파내려 간 水井, 우물과 우물을 잇는 암거(暗渠), 하구로 내려오면서 드러난 물길인 명거(明渠), 그리고 몰길의 종점에 물을 저장하는 노패(澇珼) 가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볼록한 것이 수정이고 그 사이를 잇는 지하수로가 암거입니다.
여기가 명거입니다. 집 앞으로 흐르는 시원한 명거 옆에서 낮잠을 자고 있군요. 역시 더운 투루판이지만 사람 사는 지혜는 있는 것이겟지요. 같이 낮잠 한잠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느라 고생했습니다.
카레즈는 3인- 5인 1조로 작업을 하는데 한명이 흙을 퍼내면, 뒤로 날라주고 다른 한명은 수정에서 흙을 위로 퍼올리는 것입니다. 상류로 올라갈 수록 고도가 높기 때문에 우물은 그만큼 깊이 파야 합니다. 하나의 카레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킬로에서 수십키로미터 수로를 파야합니다. 불과 지름 1m정도의 공간에서 이루어 지는 이런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 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카레즈가 천여갈레나 되며 총연장은 무려 500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힘과 자연에 대한 도전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카레즈를 만리장성, 베이징,항저우간의 경항대운하(3200km)와 더불어 중국의 3대 토목공사라고 불르는 것도 결코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포도는 투르판 사람들이 수천년간 혹독한 자연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놀라운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제배되는 과일의 3/1이 포도입니다. 그러나 투르판의 포도가 유난히 달고 맛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인간의 피와 땀이 배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카레즈 박불관에서 이런 환대도 해주는군요. 위그루족 아까씨들이 친절하게 포즈도 잡고 사진도 찍어줍니다. 이쁜아가씨들과 사진을 찍으니 입은 함박꽃만큼 벌어졌네요. 물론 유료입니다.
고창고성으로 향합니다. 고창고성은 당나귀 마차를 타고 둘러봅니다. 덥기도 하거니와 원주민(?)들의 엄청난 친절에 안 타고는 못뵈깁니다. 못 이기는 척하고 당나귀 마차 시승. 앞에 가는 일행이군요. 대전사는 제 친구녀석과 신촌에 사는 이쁜 처자 상미입니다.
고창고성은 고창국의 도읍터로서 당나라에 멸망한 국문태가 왕이었던 나라입니다. 국문태는 현장법사가 인도 여행을 할때 많은 도움을 준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현장은 짧은 기간동안 고창국에 머루르려 했으나 국문태의 부탁으로 한달간 고창국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곳이 현장이 한달간 설법한 자리입니다. 이곳에 단이 있었고 현장은 국왕 국문태의 어깨를 밟고 단위로 올라서서 설법했다고 전해집니다. 국왕이 일개 승려를 위해 자신의 어깨로 발 받침을 해주었다는 일화가 국왕 국문태의 신암심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국문태는 심지어 고창국 사람 전체를 제자로 만들고 현장을 도사로 삼겠다며 떠나지 말라고 부탁을 합니다. 결국 현장은 사흘간의 단식 끝에 고창국을 떠나는것을 허락받습니다.
고창고성 옆에 있는 아스타나고분군입니다. 고창국과 당나라 무덤 456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무덤들에서는 2700건의 문건이 출토되었습니다. 대부분 불교와 마니교, 경교 등의 종교문서입니다. 그 중 특이하게 216호 분 묘실에는 유교의 윤리적 가르침을 풀이한 6첩병풍이 발견되었습니다.
216호 묘실을 구경하고 올라오는 사람은 저군요. 저 파런 것은 이곳 실쿠로드의 특산품인 파시미나입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해서 여러 개를 사서 한장을 둘러 봤습니다. 한 20장 사다가 집 사람에게 안겼더니 동네방네 선물하고 인심을 씁니다. 가격대비 만족도 최고입니다. 실크로드 가시면 꼭 사다가 집에 안기십시요. 물론 가격을 얘기해 줄 필요는 없겠지요^^
화염산입니다. 산색깔도 빨갛지요. 햇빛에 그을려 그러다고 하니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화염산은 작은 봉우리가 하나가 아니라 투르판 분지 북쪽를 둘러싸고 있는 산을 지칭합니다. 무척 크지요. 동서 길이가 100km, 남북 길이가 9km에 달하며 최고 높은 봉우리가 해발 851m입니다. 산은 대부분 홍사암으로 되어 있어 남쪽을 향해 기울어 있습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여기입니다. . 그 중도 가장 유명한 것이 위에 보이는 복숭한 화염산입니다. 북숭아 화염산은 베제크리크 천불동 입구에서 잘 보입니다.
같이간 친구녀석과 가이드인 규호군이군요. 그런데 어째 차림들이 난민입니다.
베제크리크 석굴입니다. 투르판은 문화유적의 밀도에서 봐도 중국에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투르판 근처에만 무려 170여개의 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고 하니 가히 다양한 문명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투르판은 이런한 문명의 보고로 인해 20세기 초반의 서양의 문화침탈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러 서양인들의 문명파괴 행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베제크리크 석굴입니다. 베제크리크 석굴은 위구르어로 '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입니다. 6세기 고창국시대부터 7세기 당을 거쳐 13세기운때까지 석굴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10세기 위구르 칸국시대가 석굴의 전성기 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석굴은 모두 83개인데 40여개는 벽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읍니다. 그나마 40여개의 석굴에 일부의 벽화가 남아 있는데, 이마저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20세기초 독일의 르콕을 비롯한 영국,독일,일본,미국,러시아 등의 문명 약탈자들은 앞다투어 베제크리크 석굴을 뜯어내고 유물을 훔쳐갔습니다. 무려 1000년의 세월을 견디던 벽화와 유물들을 구제니 보존이니 하는 되도 않는 얘기를 지껄이며 제 멋대로 뜯어내어 자국의 박물관으로 가져갔던 것 입니다. 이들은 분명 극단적인 문명의 파괴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범죄자들인 것이죠.
베제크리크석굴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교하고성으로 행합니다. 교하고성은 말그대로 물이 교차하는 곳에 있습니다. 하나로 흐르는 물이 갈라졌으니, 두개의 물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제고향 충남 아우내의 쌍생아라고 할까요. 교하고성은 평평한 땅 앞에 부딪친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형성된 천혜의 요세입니다.
연약한 흙이 물이 깍여, 양쪽으로 30m높이의 계곡을 만듭니다. 아래를 쳐다보니 그 높이에 현기증이 납니다. 이 버들잎 모양의 교하고성은 2천년전 차사전국의 수도로 남북1,7km 동서 300m의 크기입니다. 대략 5,6000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불교 탑들이 많이 보이고 카레즈가 건설되기 이전에 투르판에 사람이 살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유적 중 200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보전이 잘 된 곳이기도 합니다.
날씨가 더운 지방인 관계로 지하로 흙을 파내려가 여러 시설들을 건설하였습니다. 차사전국은 고창국에 지배를 받다가 다시 당나라 치하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 장군도 이 교하고성을 지나 실크로드를 횡단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이 여행의 종착지 돈황으로 떠나야 합니다. 돈황으로 가는 길은 야간열차입니다.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야간열차를 탄 구간이 바로 여기입니다.
첫댓글 7편이 드디어 올라왔군요. 잘 읽었습니다. 쌤 글 기다리다 제 목이 좀 길어졌습니다.ㅎㅎ
목이 길어지시면 안되는데 지금도 충분히 우아하신데 더 길어어지시면 孤高의 절정입니다.
너무 늦어서 죄송^^ 8편까지 빨리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왕언니 토욜 대천모임은 혹시 참가 가능하신지요
있는게 시간뿐인 사람입니다만, 제가 끼면 평균 연령도 높아질것 같고 술잔 비우는데도 보탬이 안될것 같아서 그냥 멀리서 응원할 생각입니다. 부럽습니다. 10년만 젊었어도~
어! 상미네!! 우리 평균 연령을 하향하는데 큰 몫을 한 상미.. 요즘도 많이 자나? ㅎㅎ
안녕하세요^^! ㅎㅎ 요즘도 가끔 버스에서 자다가 정류장 지나칠뻔하기도 하고...ㅠ_ㅠ;ㅋㅋ 잠이 좀 줄어야 할텐데....☞☜^^ 잘지내시죠~?
토욜에 함 뭉치기로 했어. 문자 못받았남?
고분에서 나오는 깜장소가 아니고 무슨 알카에다 조직 같나. 지하 벙커에서 나오는....
세련된 알카에다... ㅋㅋ
앗! 여행기를 따로 올리는 곳이 여기였군요!^^ 정말 제가 많이 자긴했었나봐요ㅠ_ㅠ;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여행기 첨부터 다 읽으면서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ㅎㅎ 아, 저는 상미예요! 제 사진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ㅎㅎ
상미냐 잘 지내니? 동네도 비스무리한데 한번 뭉쳐야지.
아 정말 부럽습니다.. 전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데.. 언제쯤이면.. 저런곳을 가볼수 있을까용 ㅎ
가까우신 곳인데... 시간 내셔서 한번 가 보시면........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네 고 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