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가지 수가 많은 호텔 안 뷔페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다.
8시에 김 목사님이 대절한 택시를 타고 연길에서 화룡시까지 가는 길을 달려 "은혜묘령병원"으로 출발했다.
산 골짝에 굽이 굽이 끝없는 하얀 시멘트 길이 작년에 나서 이제는 아주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11년 전에 이곳에 오셔서 농촌 곳곳에 병원을 세우실 때는 길이 없어서 무척 고생하신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
논과 밭에는 벌써 모든 추수가 끝나고 나무들도 앙상하고 눈도 왔고 초겨울의 모습인데 오늘은 아주 화창한 해가 반짝이는 밝은 날씨였다.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짝 농촌마을들을 한참을 달려가서 우리 교회 집사님이 헌금하여 새로 지은 은혜묘령병원에 도착하니 의사 한 분이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우리가 보기에는 초라하고 엉성하지만 이곳에서는 양옥으로 지은 좋은 건물로 환자침대가 있고 유리창 진열대에는 약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위 마을은 초가집 지붕 위에 풀들이 솟아나고 참으로 초라한 마을이었다.
다음은 9번째로 지은 "청두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사람들 왕래가 많은 화룡시내를 달려갔는데 자전거가 끄는 인력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택시비의 오분의 일을 내고 시내 어디든지 간다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리라.
화룡에서 남평으로 가는데 통행료를 5원(65센트)을 내다. 이 길은 북한으로 가는 길로 시원하게 뚫렸는데 남북이 전쟁을 하면 이 길로 북한을 지원하는 식량과 물자를 공급하는 길로 작년에 길이 새로 포장을 했는데 차들이 빨리 달리다가 사고가 많이 난다고 기사에게 빨리 달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신다.
중국의 연길시와 연변 산골짝은 11년 동안 김 목사님이 샅샅이 돌아다니셔서 택시 기사들보다 더 환하게 잘 안다고 하신다. 농촌들 가정의 1년 수입이 400불이니 어떻게 병원비를 낼 수가 있겠느냐고 하시고 김 목사님이 세운 11개의 병원은 정부에서 나와 외국인 목사가 병원을 세워 돈을 벌려고 왔나 하고 장부를 조사하니 약값이 너무 싸고 거의 받지를 않아 자선병원으로 인가가 나고 세금을 받지 않는다는 증명을 해 주어 그 표지판을 벽에 걸어 놓았다.
길가에 어미 소와 귀여운 새끼소들이 놀고 있었는데 어미 소는 400불이고 새끼소는 100불이라고 한다. 미국의 푸른 목장에 수많은 소떼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곳에는 군데군데 소들이 많이 있었다. 청두병원은 들리지 않고 밖에서 보고 그냥 지나 다음 "두만강형제사랑하천병원"으로 달려갔다.
예전에 길이 안 났을 때에는 왕복 8시간 걸려야 다녀올 수가 있었는데 작년에 길이 나서 지금은 6시간 걸려 다녀올 수가 있는 길로 두만강 상류를 끼고 계속 북한 땅을 바라보고 달리는 길로 감회가 너무나 깊었다.
이 지역은 북한과 우호조약을 맺은 지역으로 서로 감시하는 군인들이 없었고 두만강 상류는 조그만 개천같이 얼마든지 쉽게 건널 수가 있었고 그리하여 많은 탈북자들이 건너오는 것이다.
지키는 군인들도 보이지 않고 조용한데 건너편 산은 끝없이 민둥산이 계속되었고 산에 큰 글씨로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우리가 가는 길에 세 군데나 써 붙여 놓았다. 부시 대통령이 “백성을 굶겨 죽이는 자가 무슨 지도자냐?”라고 했다는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다.
북한은 “새 땅 찾기” 운동을 해서 산꼭대기에 밭을 만들어 농작물을 지었지만 비가 조금만 많이 오면 사태가 나서 무너지고 나무가 없어서 땅이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 쪽은 나무 한 그루가 없고 중국 쪽은 나무가 있는 것이 참 이상할 지경이다.
숭선(중국 마을)에 가서 숭선 세관을 보고 숭선다리를 보다. 건너편에는 북한 남평 마을이 있고 그 다리를 남평교두보(북한 가는 다리)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으로 김목사님이 쌀과 의약품 두 트럭을 들여보냈는데 쌀 한가마를 들여보내려면 쌀 한가마를 세금으로 중국 세관에 내야 하고 약품은 50%만 세금을 낸다고 한다.
쌀은 군인들이 가지고 갔다고 공연히 보냈다고 하고 약은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앞으로 이곳에 세운 것과 같은 병원을 청진에 세울 계획이시다. 산 속으로 가서 동남아에서 제일 큰 함경북도 무산광산을 보았는데 북한이 중국에 팔았다고 한다.
그곳에 가서 북한 쪽을 바라보니 큰 마을이 있고 강가에 여인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시진을 찍으면 벌금이 500불이고 카메라를 압수당한다고 찍지 말라고 하시는데 몰래 빨래하는 모습을 찍었다. 저 북한이 그렇게도 폐쇄된 두렵고 무서운 나라란 말인가?
핵 실험으로 양식 지원을 못 받으면 애꿎은 국민만 더 굶어 죽어 나갈 형편이다. 두만강 하천(下天)병원이 겨울에 너무 추워서 나무를 많이 넣고 때다가 나무 굴뚝에 불이 붙어서 불이 났는데 모두 꽁꽁 얼어 물이 없어서 불을 끌 수가 없어 다 태웠다고 하다.
비포장도로에 왕복 8시간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려가서 약품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오히려 잘 되었다고 했지만 불쌍한 농민들을 생각하고 다시 새롭게 길가에 병원을 잘 건축하게 되었다.
두만강 병원, 그곳 설경선 의사 댁에 가서 배추, 두부, 목이버섯, 버들치 생선국으로 맛있게 식사를 하다. 가게도 운영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다 도시로 유학도 보내고 그 마을에서 부러워하는 존경받는 가정이라고 한다.
두만강 병원에서 산 속으로 5, 6마일 들어가는 "옥석 꿀 농장"에 가서 수많은 꿀통들을 보다. 산 속 깊은 곳의 좋은 피나무들의 꽃 속의 꿀을 따서 벌들이 꿀을 만들기 때문에 아주 좋고 이 꿀들은 설탕을 섞지 않은 순수한 꿀로 변비와 위장병에 좋다고 한다.
다음에는 "합심병원"으로 갔는데 부부가 운영하고 있고 아주 아름답고 깨끗하고 본이 되는 병원이라고 하신다. 그 다음에는 "소망장재병원"으로 갔는데 남편은 의사이고 아내는 간호사였다.
마지막으로 최초로 세운 "성 누가해란병원"으로 갔는데 이 병원은 8년전에 어렵게 기독교 병원으로 허가를 받았고 낡고 쓰지 않은 폐허 소 우사를 수리하여 병원으로 세워 오랫동안 쓰다가 새로 아름답게 건축한 병원이다.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서 이스라엘 시골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셨는데 화룡시 초라하고 가난한 조선족 마을 들을 위해 낡은 버려진 소 우사, 마굿간에 해란 병원이 태어나 지금은 너무나 훌륭한 병원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영육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최초의 병원답게 기분 좋은 약 냄새가 진동하고 크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한약, 양약 등이 갖추어져 있고 김경수 의사와 간호원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모범이 되는 병원으로 아름다운 화분들이 많고 미국 병원보다도 더 훌륭하게 꾸며 놓으셨고 중국에서도 우러러 보는 자랑스런 병원이다.
병원의 모든 일을 돌보는 길총무 부부가 계시는데 순교자의 후손이시고 이곳과 연변에 형제들이 교회를 세우신 믿음이 좋으신 분으로 김목사님이 귀하게 믿고 일을 같이 하시는 분이시다.
이곳은 김목사님이 제일 의지하고 편희 쉬실 수 있는 곳이고 사람들이 천국이라고 하는 곳으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총무 부부가 아래층에 살고 계시고 부인이 언제나 맛있는 식사를 하시는 곳이다.
우리들에게도 정갈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해주셔서 먹고 절구에 찧어 만든 찹쌀떡을 주셔서, 호텔에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灌? 오늘 하루 동안에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았고 감동을 받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