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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2년 6월 9일 토요정례법회
□ 원불교를 만나서 - 이정현 교우님 강연
어린 시절 늘 교당을 다니면서 지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거칠어지신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이 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일을 체험하면서, 결코 죽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시간이 흘러 누나들은 각자 취업을 하고, 나는 학교를 다니다가 창원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버지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는데 전에는 누나들이 집안일을 해 주었는데
남자 둘이 하게 되니 무척 힘들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저녁을 먹는데, 아버지가 많이 늙으시고 흰머리가 있으신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예전에 내가 너무나 무서워하던 모습이 아니셔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예전의 원망심이 다시 살아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원불교를 다니면서 늘 법문을 나에게 전해주던 누나가 변해가는 모습이 보였고,
누나가 다닌다는 안암교당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은 녹아나지 못했다. 어느 날은 비오는 날 넘어졌는데
모두가 다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버지와 지금까지의 오랜 이야기들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버지의 숨겨온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사실은 가족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던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시는 은혜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전부터 해 주셨던 것인데,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동안 원망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 때부터 사은의 은혜가 눈에 띄기 시작하였고, 정전의 부모은이 새롭게 다가왔다.
만약 내가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지만 내가 어떻게 생사와 부모의 은혜, 인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을까.
□ 질문과 답변
Q. 나도 어릴 적부터 정현을 보았는데, 예전에는 애가 무뚝뚝하면서 사나운 기색이 있었는데
요즘은 유들유들한 면이 보였다.
나는 강연을 들으며 우리 집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이 들었는데 아직은 그냥 참자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이 정말 다 녹았는가?
A. 이정현 : 다 녹았다.
- 이진우 : 좋은 말씀을 들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가장 큰 감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Q. 서덕안 : 강연에서 진실됨이 많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법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A. 이정현 : 아버지가 혼자 계시니 많이 위축되는 면이 있다.
진성교우님이 하루에 두 번씩 아버지를 챙기고, 교당에 가시라고도 말씀드린다.
Q. 이제선 : 가까운 사람들과 싸우지 않기가 쉽지 않은데 원불교 다닌 이후로
진성교우님과의 관계에 대해 달라진 점 ?
A. 이정현 : 안암교당에 다닌 이후로 과연 몸이 편한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누나랑 싸울 때 심하게 싸웠는데 요즘은 다 웃음으로 끝난다.
□ 김제원 교무님 설법
강연을 듣고 느낀 점
강도인 : 나는 평소에 부모님 은혜에 대해 생각을 많이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됐다.
김명선 : 들으면서 나와 세명이 관계와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공부가 깊고 힘이 느껴진다.
박순명 : 나도 나와 윤호와의 관계, 윤호와 나는 원불교를 다니면서 이 법이 너무나 좋았고,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너무나 기뻐서 얘기하다가도,
사실 작은 일로 다투곤 했다. 그 관계가 변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정현교우는 속이 꽉 찬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은 일도 일심을 한다는 말을 했는데 작은 일에도 깨달음을 얻으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좋다.
만약 정현교우가 원불교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원불교를 다니면서 얼마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사실은 자기도 모르는 새
많이 얼굴도 펴지 못했을 것이다.
은혜 발견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만약 말씀을 털어놓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대화를 통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과 이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자꾸 술을 먹고 불을 지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모두가 이해를 못하는데 가족들을 이해를 해 주더라.
어린 시절에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게 된 것들이 괴로움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들어보면 이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중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가, 아버지에게서 보상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임을 알았다고 하셨다.
만약 본인이 은혜를 모르고 강자가 안 되면 원망의 삶을 살기 쉽다.
사실 부모가 나를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이다.
부모는 죽어서도 자식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한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사실 스승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진성교우님의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
훈련이 나오고, 전화를 통해 이 법을 적극적으로 안내했던 것이 결국에는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생활에 대한 변화가 감동을 주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살며 저녁만 먹고 말도 없이 각방에 들어가 버렸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본인도 괴로웠겠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난 자식이니 더 괴로웠을 것이다.
홀로 남으신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효도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학생이 부모에게 효심이 있다면 공부를 잘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서 자기 인생은 끝이다.
부모는 자기 수입의 80% 이상을 자식을 위해 쓰며, 오직 자식을 위한 생각만 하게 된다.
만약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부모를 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충신도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 하며, 사실은 효는 사은보은의 근본이다.
부모는 내 몸을 낳아주셨고, 대종사님은 우리의 마음을 낳아주셨다.
몸이 없이 우리가 살 수 없다.
대산종사님의 법문에 보면, 원불교 회상에서 만나 항마를 하지 못하면 큰 죄 짓고 불효하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항마를 못했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었다는 것이요,
사은의 은혜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요, 작은 욕심에 묶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러분들 욕심이 많이 있으실 것이다. 그러나 욕심이 많다고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셨다.
오히려 사나운 말이 길만 들여놓으면 영마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큰 욕심이 있으셨기 때문에 설산에서 구년간 수도를 하셨다.
마음만 한 마음을 돌리면 된다. 어떤 사람이 한 떄의 잘못이 없었겠는가.
한번 마음을 돌리면 그것이 항마다, 그리고 새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만약 내가 힘이 부족하면 동지와 스승의 힘을 빌려서 가면 된다.
내가 광주가려는데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가지 않는가. 이처럼 동지와 스승의 힘을 빌려라.
대종사님은 혈심가진 사람이 귀하다 하셨다. 우리 회상은 무서운 회상이다.
내 한 몸과 가정을 넘어서 세계와 일체 생령을 위해 몸바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언제가 성불할 떄인가. 전 생령을 위하여 몸을 바칠 수 있을 때가 성불할 때라는 법문이 있다.
참으로 좋아하는 법문이다. 내 것 다 챙겨먹고 남으면 여유있으면 하겠다라는 것은 성불할 때는 아니다.
전탈전여라는 법문이 있다.
전부다 빼앗아간다, 그리고 전부 주시는 것이다.
전신전수라는 말도 있다. 온통 전체를 믿었을 때 그 사람은 전체를 따르게 되어 있고
오롯이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친구간의 관계든 사제간의 관계든, 부자든 모녀간의 관계든간에 좋을 때
누가 안 좋겠는가
그러나 경계에 빠지고 힘들 때, 그 때 비로소 효도의 가치가 나오는 것이다.
언제가 믿을 때이며, 언제가 공부할 때인가.
믿어지지 않을 때 믿으며, 공부하기 싫을 떄 공부하는 것이 진짜 공부이다.
우리가 지옥생활을 원망생활이라고 하였다.
원망생활은 하다 못해 미물 곤충에게까지 해를 입게 된다.
정현 교우는 아버님이 술을 드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때문에 매일 싸움을 하시고 원망을 하셨다고 하는데,
사실 정현 교우는 세상 많은 사람들 중에 행복자이다. 잘 생기고, 건강하고, 누나들도 있다.
마스시다 고노쓰께 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다. 세가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첫째는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덕분에 자력을 기를 수 있었다.
둘째는 건강이 약하기 때문에, 덕분에 건강에 유의하여서 80이 넘게까지 살 수 있었다.
셋째는 무학자이기 때문에, 덕분에 누가 말하든간에 정성스럽게 들었다.
덕분에 자기 밑에 박사가 수백명이 있었다.
내가 비교를 설명하고 싶다. 거기에 대면 지금도 정현교우는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를 다니며, 생활 속에서 변화하며 그 속에서 재미가 진진한 것이다.
이 교당을 다니며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다른 교당으로 가시면 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대종사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할 뿐이다.
모든 일은 내가 시킨 것이 아니라 대종사님이 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진성교우님이 법문을 하셨다.
“네가 아직도 교당을 재고 있는가.
힘든 네 마음은 돌려볼 생각도 못하고
” 이 정도의 경계에 힘들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어디에 가서나 마찬가지이다.
어떤 힘든 경계를 임시로 잊어본다고 하여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자신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진성교우도 처음부터 법문을 잘 했던 것은 아니다. 많이 잘못하고 실수하고 혼나면서 큰 것이다.
교당에 마음 편하려고만 오려 하지 말라.
기도를 해도 내 욕심만 이뤄달라고 하는 삶으로는 본인의 삶이 변화하지 못한다.
칭찬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혼날 때도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한 번도 혼난 적이 없는가.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분들을 혼냈을 수도 있었다.
오히려 요즘 사회에서 서로 적당히 눈가려 주고, 적당히 눈치보면서 사는 삶이 사실은
더 불행한 것 아닌가.
사실 신심과 서원의 크기에 비하면 환경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단순한 시간과 직장 개념으로 보면, 오히려 힘든 사람이 교당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다.
언제 행복할 것인가 나는 10년 전에도 토요일에 이렇게 법회를 보고 있었고, 나중에도 그럴 것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미래에 행복하기 힘들 것이고,
지금 핑계대는 사람 앞으로 핑계가 더 많을 것이며,
지금 미루는 사람은 그 때 가서도 미룰 것이다.
여러분 마음이 고요하고 싶지 않은가. 정말 번뇌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으신가.
그러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원불교 들어와서 마음이 고요해 지기 위해서 좌선과 염불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요해지기 힘들다. 그것은 바로, 고요해지려면 선행요건이 필요한데 그것은 정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왜 학생이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못잡는가.
내가 이럴까 저럴까 마음을 못 낸다면 그것은 정할 수 없다.
정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며, 서원에서 오는 것이다.
고정되고 안정된 마음은 바로 믿음과 서원의 마음이다. 서원의 마음은 바로 목적이다.
나는 어떤 목적적 존재이며, 어떤 마음으로 살겠다 하는 것은 바로 목적이다.
오늘 내가 아침에 영국 이명 교우와 통화를 했다. 런던대학에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을 하는 것이다. 정하지 못하면 요란해지고 복잡해진 것이다.
마음을 정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신심과 서원이 세워지지 않는 사람이
좌선과 염불을 한다면, 하다가 관둬버리거나 한 경계가 오면 도망가 버리기 쉽다.
“교무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이야기하기 바란다.
이것도 못 놓겠고, 저것도 못 놓겠다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복잡하다.
그러나 서원이 세워지면, 에너지가 서원에 집중된다. 주위의 것들이 다 잠자고 조절된다.
참으로 무서운 힘이 있다.
대종사님은 일원상 서원을 내 주셨고 삶의 방향과 가치를 내 주셨다.
평생교육, 고등교육, 교육철학 쪽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무님은 사람을 키우는 고등교육을 하라고 방향을 잡아주셨다.
원불교를 공부하면, 시간과 공간의 관념이 완전히 툭 터지게 된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영생으로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너무너무 편해진다. 수많은 주의주장이 있는데, 결국은 그 뿌리가 도덕이다.
사람에게도 몸이 있는데, 이 몸은 마음이 있어야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정신이라는 데서 오게 되며, 정신은 성품에서 오게 된다.
내가 살아가면서 오직 내 몸 편하고 내 몸 즐거운 데에만 신경을 쓴다면, 안될 것이다.
마음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마음을 깨치고 수양하고 챙겨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는 시야가 달라져 버린다.
여러분들은 이미 원불교를 만나 영생교육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에 받는 것을 보면 전생에 무엇을 했느냐를 알 수 있다.
암? 남의 이야기일 것 같은데 내게 일어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이야기? 남 이야기일 것 같은데 내게 일어났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는 먼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장차 맞이할 생사의 문제,
그리고 지금도 쓰고 있는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영생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바란다. 일년 계획만 세우는 것은 참으로 단견이다.
영생을 통해 어떤 일을 해 나갈지에 대한 준비를 계속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은혜롭지 않을까 생각된다.
□ 질문과 답변
Q. 박만오 : 그렇다면 서원은 어떻게 세워지는 것입니까.
A. 믿음으로, 청정한 마음,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면서 단단해 진다.
이치에 근간한 마음이 서원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몸 하나만 보려고 하곤 한다.
그러나 마음이 진정으로 편한 것은 보은할 때, 복을 받아서 편안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고칠 것은 고치고 땀 흘릴 것은 흘려서 떳떳하고 자신있을 때 편한 것이다.
적당히 감추고 속여서는 편안한 것도 아니다. 서원이 세워질 때가 특신급이라고 한다.
서원이 부족하면 믿음이라도 있어야 하고, 믿음이 부족하면 서원이라도 있어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비례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교전을 볼 때도 내 이야기를 갖다 공부하기 바란다.
“여러분들 80년 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할 것 같은가. 100년 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할 것 같은가.
나는 80년,100년 후에도 이렇게 하고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와~~~~~~`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