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신문기사를 통하여 위대한 군인 두 사람의 죽음을 접하였다. 한 분은 지난 14일에별세하신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준장 이대용 장군(李大鎔, 전 주 베트남공사
역임)이고 또 다른 분은 지난 13일에 유명을 달리하신 미국합중국
예비역해군대위 토머스 제롬 허드너 주니어(Thomas J. Hudner Jr.) 이다.
이대용(李大鎔, 1925년11월20일-2017년11월14일) 주 베트남
공사는 1975년 4월30일
월남이 패망 할 당시 월남 현지 한국대사관 공사였다.
월남 패망 이틀 전 대사관이 폐쇄되었으나 탈출 하지 못한 잔류교민을 데리고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들어갔다
월맹 군에 잡혀 5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포로시절 이전공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북한공작요원의 귀순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 공사는 끝까지 대한민국에 대한 충절을 지켜냈다. 이 공사가 포로시절 월맹의 심문 관으로 자신을 혹독하게 심문한 즈엉 징
톡이 2002년 주한 월남대사로 부임하여 이 공사와 화해하고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존경한다”고 심중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 공사는 육군사관학교 7기 생으로 1950년
6.25 당시 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참전해 한국군의 첫 승전 보를 전한 춘천전투를 이끌었고 1950년
10월 26일 압록강에 가장 먼저 도착해 수통에 압록강 물을
담은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1960년
미 육군 참모대학을 졸업했고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을 받았다. 이전공사의 유해는 지난 17일 국립대전 현충원에 안장 되었다.
허드너 대위(Thomas J. Hudner Jr., 1924 년8월31일-2017년 11월13일) 는 아일랜드계
후손으로 선친이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식료품가계 체인점을 운영하는 부유한 백인 집안 출신이다. 미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6.25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투입되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동료이자 미 해군 최초의 흑인 조종사인 제시 브라운 소위가 탄 전투기가 격추돼 적진에 추락하자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 자기 전투기를 불시착
시켜 구출작전을 시도 했다. 하지만
비행기잔해에 깔린 브라운 소위는 끝내 구출하지 못하고 구조헬기의 일몰 시간 임박으로 허드너 소위는 구조 팀과 함께 기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허드너는 정전 협정 체결 60주년인 2013년
7월 브라운 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유해발굴단을 이끌고 민간인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해 두번째 구출작전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폭우로 인하여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만 했다. 허드너는 1951년 4월 13일 전우를 구하고자 목숨을 건 구조 활동을 한 공로로 투르만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무공훈장인 Medal of Honor Action을 수여 받았다. 허드너는 베스트셀러 작가 아담 메이코스와
7년 간의 협력 끝에 2015년 10월에 공식적인 자서전 헌신(Devotion)을 출간하였다. 아마존 Book Section에 나와 있는 이 책에 대한 서평 중 미국 41대
대통령인 조지 에이치 떠블유 부시 대통령의 것이 눈에 띈다. My great respect for Tom Hudner knows no
bounds. He is a true hero; and in
reading this book, you will understand why I feel that way. (헌신의)한계를 초월한 톰 허드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드너의 유해는 워싱톤 아링톤 묘역에 묻혔다.
지금은 세인의 기억에서 멀어진 6.25 전쟁과 월남전을 통하여 두 전쟁 영웅들은 잔류교민을
구출하기 위해 그리고 적진에 격추된 전우를 구출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헌신했다. 나는 이들의 용감한 행동을 애국심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지도자들이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해 선인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하여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시진평 주석이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개교 80주년 경축대회 에서 내세운 시구는 청나라 명신 임칙서의 부수등정구점시가인(赴戍登程口占示家人, 군 복무를떠나며 가족에게 부침)의 제2구절 즉 구리국가생사이(苟利國家生死以) “나라와 민족에 이로우면 이 목숨 바칠 것인바” 기인화복피추지(豈因禍福避趨之) “어찌 화를 당할까 두려워 두려워 숨겠는가” 이다.
청나라 최고 명신인 임칙서(林則徐,1785-1850)는
영국과의 아편전쟁 직전 황제의 특명을 받고 현장으로 파견되었다. 광저우 현장에 도착한 임칙서는 아편 1200여톤을
압수한 뒤 전량 소각하고 아편상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등 강경조치를 취했다. 영국이
자국상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아편전쟁을 일으키자 청 조정은 협상파 기선(琦善)을 파견하고 임칙서를 변방으로 좌천 시키고 만다. 사실상의 귀양 길에서 그가 읊조린 시가 “부수등정구점시가인”이다. 임칙서는 후에 복직되어 여러 관직을 거친후 1850년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라는 명을 받고 광시순무(廣西巡撫)에 임명되어 부임도중 병사하였다.
며칠 전에는 대북 강경파 김관진 전국방장관이 국군 사이버 사령부의 온라인 여론 조작활동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이 있은 후 국방장관으로 발탁된 김관진 장군은 장관이 되자 마자 “북이 도발 하면 도발 원점은 물론 지원, 지휘 세력까지 타격하라”며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다. 그가 국방장관이 된 후에는 북한의 국지 도발이 없었다. 구속 전 적당히 타협하라는 측근들의 조언에
“부하들에게 미루면 어떻게 하나. 내가 안고 가야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그의 단호한 자세와 부하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그가 자기희생으로 어려울 때 부하와 동료를 보호하는 진짜 군인 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때 우리나라도 파병을 하여 공산주의 북 베트남과 싸운 월남전쟁과 관련하여 소설가 복거일씨 는 “나쁜
평화가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밥딜런 을 위시한 반전주의자들의 논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의 배신으로 남 베트남이 멸망한 뒤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그는 끝내 외면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 갇히고
처형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조각배에 목숨을 걸고 탈출해서 바다를 떠돌았다.
지나가던 배들에 구조된 사람들도 많지만, 끝내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보트피플’의 비극을 노래한 미국가수는 없었다. –중략-
그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런 피상적세계관은 엄청난
비극을 부른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성찰해야 한다.” –대한민국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 중에서.
애국은 공동체 구성원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정신적인 힘이다. 남송 때 강직한 애국시인 육류(陸遊)는 관직에서 해임되어 20여일을 끙끙 앓다가 쾌유 한 뒤 병기서회(病起書懷) 2수을 지었다. 그
한 수 가운데 “위비미감망우국(位卑未敢忘憂國)즉 지위는 비천해도 나라 걱정 잊지 못한다”는 시구를 이용하여 시진평(習近平) 주석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개교 80주년 경축대회에서 인민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민족을 부흥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
하였다.
“지위는 비천해도 나라 걱정 잊지 못한다”는 우리나라의 촛불집단과 태극기집단이 공유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싶다. 부부가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자식의 장래와 가정을 지키기 한쪽이 이해심을
발휘하여 양보하고 화해 하는 경우를 본다.
최근 우리사회의 정권교체과정에서 분출되고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념의 충돌이 애국심이라는 용광로 속에 용해 되여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If a house is divided against itself, that
the house will not be able to stand.
(Marks 3:24-25) 한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마르코복음
3장 24-25절)
첫댓글 옳소.
Old soldier never dies, but fade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