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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9)
교회의 직분⑥ : 집사의 의무(직무)
말씀 : 사도행전 6:1-7, 디모데전서 3:8-13
목사와 장로에 이어 이제 집사에 대해서 배우고자 한다.28) 교회의 직원들 가운데에는 장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사들도 있다.29) 그러면 집사의 직분은 어떻게 해서 생겨지고, 무엇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우리가 생활하다가 보니까 ‘아, 이런 것들이 필요하구나!’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임의로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그냥 사교 단체에 불과 할 것이다.30)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교회라면 우리가 행하는 하나하나 모든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도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지침이 되어서 그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하나하나 운행에 나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직원들 중에서 ‘집사’라는 직분도 주님께서 주셨고, 주님께서 집사들을 세우도록 하셨다. 그러면 성경 가운데서 어디서 주님께서 집사를 세우도록 하셨는가? 그런데 성경 가운데서 이러이러한 사람을 집사로 세워야 한다는 말 외에는 이에 대해서 별로 많은 언급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감독 즉 장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1-7), 그 다음에 집사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이러이러해야 된다는 말이 나온다(8-13). 그러나 성경에 보면 집사라는 말은 많이 나온다. 집사(διακονος)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일꾼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교회의 일군들이다. 성도가 교회의 일꾼이 되지 않으면 일감이 된다. 누군가가 그 사람을 위하여 작업을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아무튼 교회에서는 누구든지 다 일군이 되어야 한다. 우리 마음 가운데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어서 그것을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잘 표현해 내고 아주 대표적으로 해 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이 있는데 그것이 집사의 직분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그런 것이 있었는가? 대개 사람들은 사도행전 6장에서 처음으로 교회가 집사를 세운 것으로 생각한다.31) 그러나 본문을 잘 읽어보면 어디에도 집사를 세웠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일곱 사람을 세웠을 뿐이다. 우리가 관례적으로 이분들을 일곱 집사라고 하지만 성경 가운데서는 일곱 집사라고 하는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들을 일반적으로 일곱 집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 사람들을 선출할 때 그 선출 기준, 곧 어떤 사람을 집사로 선출하는가 하는 그 기준하고, 디모데전서 3장에 ‘집사로 세울 사람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기준하고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제 이분들이 선출이 되어서 하도록 되어진 일들이 나중에 성경 가운데서 말하는 집사의 일하고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6장에 나타나는 이분들이 ‘교회에 처음으로 집사들로 세우신 것이다’라고 봐도 무방하고, 그것이 좋은 해석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행전 6장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과연 무엇을 하도록 집사를 세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신약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주로 믿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오늘날도 교회를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들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없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정말 나의 하루하루의 삶을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고 살아가는 것이 없으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나의 하루하루의 삶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을 특별히 사도행전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은 그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잘 알듯이 처음에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예수께 미친 사람들이라는 조롱하는 말로 붙여진 것이었다.32)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그렇게 신실하게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주변에서 ‘아, 나도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이렇게 바뀌어진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까 이제 제자들이 많아져서 그들이 하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게 되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도 하면서 중요한 일을 하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구제하는 일을 교회가 하였다.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어떤 사람들을 구제했는가? 과부들을 구제했다. 여기서 말하는 과부들은 오늘날의 과부하고는 성격이 좀 다르다. 오늘날의 과부들은 여자들이라 해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오늘날과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과부들에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 사회는 주로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없을 때에는 경제력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 가서 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누군가가 그들의 삶을 챙겨주어야 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도 보면 늘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33)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누군가가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통은 신약교회에서도 계속되어졌다. 그래서 교회에서 계속해서 가장 중요한 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일 곧 구제의 일이었다. 우리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을 늘 도와주는 일, 이것이 중요한 일이다. 교회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것을 구현해 내야 하는 것이다. 또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 그 일을 구현해 내는 일, 그 일들이 우리가 해야 할 구제의 일들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제자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교회가 열심히 일을 한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교회 가운데 문제가 발생했다.34) 무슨 문제인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과부에게는 구제가 가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한테는 구제가 잘 안가는 문제가 발생했다.35) 이로 인해 불평과 원망이 생기게 되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사도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헬라파 과부들의 의견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했다(행 6:3). 사도들은 말씀을 제쳐두고 공궤를 일삼은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구제의 일을 이 일곱 사람들에게 맡겨서 은혜롭게 해 나가게 하고자 했다. 곧 업무의 분담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도들이 거의 모든 일을 다 해 왔다. 말씀도 선포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도 하고 그러다보니 그 많은 일들을 원만하게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듣는 일곱 사람을 택하여 구제의 일을 맡기고 자기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고자 한 것이다. 교회가 이 일을 좋게 여겨서 일곱을 뽑아 구제의 일을 맡겼다.
그런데 사도들이 구제를 섬길 일곱 사람을 뽑도록 했는데 어떻게 뽑았는가? 자격 있는 자들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곧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사람들을 뽑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제의 일을 맡긴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제도다. 이 전통을 오랫동안 교회가 이루어 왔다. 교회 안에서는 늘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듣는 사람들을 선출하여 그 직임을 맡겼다. 우리가 지난번에 장로를 선출 할 때도 성경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잘 봐서 선출해야 하는 것을 배웠듯이 집사들도 마찬가지다.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곧 주님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 성령님과 가까운 사람,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들로 ‘공궤하는 일’(Table Service) 곧 성도들이 예배하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섬기는 일, 특히 구제하는 일을 총괄하는 사람들로 집사를 세웠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일곱 사람이 세움을 받았다. 우리는 이들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과 전도를 잘한 빌립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서만 이름이 나오고 다른 데서는 별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최초의 집사들로서 그 역할을 잘 해 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집사들이 전부 남자라는 것이다. 다른 데서도 보면 대개 집사나 목사나 장로들은 남자들만 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다.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그런데 집사의 경우에는 여자들이 집사가 될 수 있는 근거가 하나 있긴 있다.36) 로마서 16장에 보면 ‘뵈뵈’라고 하는 여인이 나온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라고 바울이 그렇게 써 놓았다. 그렇게 해 놓고 거기다가 주를 달아 놓았다. 주를 달아놓은 것을 보면 ‘혹 집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말이 헬라 말로 ‘디아코노스’(διακονος)다. 이 말은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일꾼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누구한테 사용된 말이냐 하면 집사한테 사용된 말이다. 흔히 한국 교회에서는 안수 집사라고 한다.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일곱 사람을 세웠는데, 우리 교회는 두 사람이 집사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이분들이 뭘 하도록 세움을 받았느냐 하면 여기에 맡겨진 일들을 하도록 세움을 받았다. 그런데 만일에 그 ‘뵈뵈’라고 하는 여인이 그냥 일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집사라고 하는 의미에서 불림을 받았다면 여자들도 집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아직까지 서로 논란이 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여자 분들에게 집사(안수 집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이 분들은 무엇을 하도록 되어 있는가? 집사들은 교인들이 정말 주님 앞에 자기 자신들을 잘 드릴 수 있도록 다 돌아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일곱 분의 집사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그런 역할을 하되 특별히 구제하는 일, 교회 안에서 구제하는 일과 교회 바깥에서 구제하는 일을 전담했다고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흔히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집사들만 구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성도인 자신은 구제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구제는 온 교회가 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가 과부한테 어떻게 구제했는가? 온 교우들이 헌금을 한 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교우들이 헌금을 예배 때 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다.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서 마음에 감동이 되는대로 온 교우들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해서 어떤 사람은 밭을 팔아서 가져오고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초대 교회는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감동이 되는대로 그렇게 하였다. 그렇게 헌상된 물질을 구제하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이 나가도록 하였다. 연보는 늘 그런 식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도 지켜져야 할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면 이것이 제대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온 교우들에게 잔잔한 사랑의 감정들이 마음속에 풍성히 있어야만 한다. 사랑의 감정이 우리 속에 풍성히 있지 않으면 구제는 되어 질 수 없다. 그래서 온 교우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서 예배 때나 교회에 새로운 성도가 오셨다면 그 성도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셨기 때문에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인가? 그래서 반갑게 인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고 맞이하여야 한다. 이렇게 잔잔한 사랑의 마음들이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런데서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지면 나중에 구제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여 잘 감당하시도록 하시는 분이 누구이냐 하면 우리 집사들이다. 집사들이 그 일을 전담해서 교회가 아주 의미 있게 구제의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구제해야 하고 교회 바깥에서 구제해야 된다.
구제가 활성화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옛날 한국 교회에서는 6월 달을 절제 주간으로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구제를 내가 쓰고 남은 것으로 하려면 안 된다. 내 생활이 절제가 되어야 한다. 내 생활이 절제가 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어떻게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구제가 활성화 되려면 우선적으로 나의 생활이 절제가 되어야 한다. 곧 내핍이 전제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물론 구제는 물질로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도 할 수 있다. 노력 봉사를 한다든지, 간병을 한다든지 등등 자신의 시간을 내어서 얼마든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서 봉사 할 수도 있다. 이런 시간이 안 나시는 분들은 위해서 기도 할 수도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원칙이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은 우리가 집사들이 어떠한 일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공부했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개혁된 교회가 가는 곳마다 걸인이 없어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도 그런 책임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것이 되려면 교회 가운데 집사들만이 열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집사들이 잘 주관을 하고 모든 성도들이 여기에 마음을 써야 한다. 집사가 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37) 그 중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구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집사들은 ‘이 일에 내가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 우리 가운데서 앞으로 집사가 되실 분들은 ‘주님께서 그런 고귀한 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 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구제와 같은 일에 대해서는 ‘나는 관심 없어요. 나는 그저 주일예배만 잘 드리려고 합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우리가 주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존중하고 그 뜻을 우리 가운데 구현해 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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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집사와 집사의 직무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손재호 목사의 ‘집사란 무엇인가?’, ‘집사의 직무’라는 수요기도회 강의안을 참조하라.
29) 교회의 직원에는 원칙적으로 장로와 집사 두 직분밖에 없다. 장로에는 가르치는 장로(목사)와 치리 장로(일반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장로로 불리는 장로)가 있다.
30) 집사나 장로와 같은 교회의 직원은 친목계와 같이 회장도 있고 총무도 있고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자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3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도행전 6장을 교회가 처음으로 집사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어디에도 집사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좋은 해석의 하나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다.
32) 사도행전 11:25-26절을 참조하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33) 신명기 24:19-22절을 참조하라.
34)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가 잘 되어 나갈 때 항상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들이다. 우리도 늘 이것을 경험한다. 이제 뭔가 좀 될 것 같다 싶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35) 초대 교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히브리파 유대인(계속해서 유대 땅에 살아온 자들로 아람어를 사용하고 유대인의 풍습을 계속해서 지켜온 자들)과 헬라파 유대인(이스라엘 밖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로 대부분 바벨론 포로기 때 전역으로 흩어진 자들로서 오순절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고 유대 땅에 남아 사는 유대인, 우리는 이들을 가리켜서 ‘디아스포라’라고 한다)들이다.
36) 여기서 말하는 집사는 흔히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안수 집사를 말한다. 필자의 교회에서는 안수 집사 - 직분의 명칭이 '집사'이지 '안수 집사'가 아니다. 이는 '장로', '목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안수하여 장로로, 또한 목사로 임직하여 세운 것이지 '안수 장로', '안수 목사'가 아니다. 그러한데 한국교회가 '안수 집사'라고 불러 말하는 것은 한국교회에만 있는 특이한 별종의 '서리 집사' 제도가 있어서 그들과 구별시키기 위한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교회 직분을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집사'에 '서리'라는 하는 직분은 있을 수 없다. '서리'란 '국무총리 서리 아무개'에서 보게 되듯이 어떤 조직에 결원이 생겼을 때, 그 직위의 직무를 대리하는 자이기 때문인데, 교회 직분의 경우에서는 결원이 생기면 서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온 회중(성도)이 참여한 교회 회의(공동의회)에서 해당 직분자를 선출하여 보충함으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원을 채우는 것이다(행 1:15-26). *본 설명은 필자의 글을 이해하는 것에 의해서 까페지기가 필요에 의해 임의보충한 것임 - 라는 개념이 없지만, 교회가 선출하여 세움을 받은 선출자들을 안수하여 세운 집사들을 말한다.
37) 초대교회는 교회가 돌봐주어야 할 가난한 고아와 과부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도들을 도와서 구제의 임무를 맡기 위해 집사가 선택되었다. 따라서 집사는 재정업무와 구제사업을 맡아 봉사하며 섬김으로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오늘날에도 집사는 교회에서 목회자들로 하여금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집사는 교회의 중요한 실무기관인 제직회의 회원이 되어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고 재정을 관리하며 구제와 여타 교회의 살림을 맡아 섬기는 것이 집사의 직무이다. 다시 말해서 집사의 직무는 목회자로 하여금 목회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뒷받침 해 주며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목회자로 하여금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는 공사 간에 다른 것에 마음을 쓰지 않도록 교회 내의 모든 문제를 맡아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그 직무인 것이다. 집사의 구체적인 직무에는 목회 보조적 업무, 구제 업무, 교회 재정 업무 등이 있다. 집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손재호 목사의 ‘집사의 직무’라는 수요기도회 강의안을 참조하라.
*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