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하반기, 진위현길에서 부터 처음 섶길을 걷기 시작한 나는, 2023년과 2024년에도 간간이 이어가며 때로는 같은 코스를 2~3번씩 반복했지만, 여전히 500리 섶길을 완주하지 못했다. 생업 사정상 섶길 중에서 유독 산성길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왔듯이 완주와 상관없이 섶길을 걸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농촌과 도시를 잇고 평택의 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섶길은 나에게 다양한 이야기와 걷기의 미학을 안겨주었다. 그중에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적어보면, 이는 단순한 경험을 넘어 나의 정체성과 삶을 탐구하는 여정이었다. 섶길을 걸으며 나의 발걸음은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고, 동시에 현재의 역동적인 평택의 현실을 경험하고 있었다. 섶길에서의 사진이 그 과정을 대변할 수 있을까. 차가운 계절, 폐허의 농가와 현대식 고층 아파트의 대조 속에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쓸쓸함과 그리움이 얽히며 시간 여행을 하기도 했다.
나는 온양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 다음해에 기지촌 송탄 이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을 기지촌에서 보낸 배경에는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랬듯, 실향민이었던 부모님이 겪으신 고난의 현대사가 흐르고 있다. 이 가족사를 이야기하자면 길어지니 생략하겠다.
송신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전, 등교길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집에서 600m도 안되는 등교길에는 논길이 일부 남아 소년을 반겼기 때문이다. 골목길도 있었지만, 나는 자연과 교감하는 이 논길을 더 좋아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작은 시냇가와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 논밭과 바람에 흔들리는 벼는 춤을 추는 듯했다. 개구리와 잠자리의 보금자리였던 작은 연못, 겨울의 썰매와 연날리기, 대보름날의 망우리 돌리기 등은 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그림이었다. 그러나 5학년이 되던 해, 이러한 풍경은 빠르게 사라져갔다. 사람들이 기지촌으로 모여들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논은 매립되고, 맑은 시냇물은 구정물이 흐르는 복개천이 되며 소년의 마음속 고향도 함께 사라졌다.
그 소년이 자연과 대화하던 순간들은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다양한 섶길 코스를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기억을 되살리고 고향을 찾는 시간 여행이었다. 소년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6.25 전쟁 이전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키우던 임진강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아버지는 밤새 찹살떡을 빚어 생계를 책임지셨고 낮시간에 짬이나면, 나를 짐자전거에 태우고 서탄, 진위, 청북, 안중 등지의 저수지와 냇가가 있는 곳곳에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그때 자전거 짐칸에서 바라본 농촌 풍경은 소년의 마음에 아련히 남아 있다. 또 성인이 되어 농협에 근무하면서 송탄, 고덕, 진위, 서탄의 농촌 풍경과 자연을 닮은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억으로 섶길을 걷는 것은 나의 마음속 고향을 찾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소중한 여정이었다. 앞으로도 섶길을 걸으며 나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기억과 감정을 만들어가고 싶다. 길 위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은 내 정서를 깊이 고양시키고,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임을 확신한다. 그 경험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삶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와 기억이 기다리고 있을 섶길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첫댓글 지나간 시절의 기억이 눈에
그려지는 정겨운 글이네요.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마음 서랍 한편에 잠들어 있던
정겨운 추억, 시간들을
잠시 꺼내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편한 주말되세요.
비타민이라는 닉네임에 걸맞는
님의 따듯한 공감의 댓글
원기충전의 비타민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하루되세요!
달맞이 ➡ 망월(望月) ➡ 망우리
달맞이 <=망월(望月) <= 망우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