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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사포, 파온, 그리고 사랑의 신>이란 작품이다.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와 그의 연인 파온과 예쁜 활통을 매고 있는 사랑의 신 에로스를 그렸다. 곱슬거리는 금발머리의 소년 에로스는 날개가 달린 신인지라 왼발 앞꿈치가 살짝 대리석 바닥에 닿았을 뿐 사실상 거의 허공에 떠있는 상태다. 이 그림은 러시아의 돈 많은 귀족이며 유명한 아트 컬렉터인 니콜라이 유스포프가 자신의 모이카 궁을 장식할 용도로 프랑스 화가 다비드에게 의뢰했던 작품이다.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유일한 다비드의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의 시를 짓고 있던 사포는 어느 날 신전에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바칠 시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아프로디테를 찾아온 파옹이란 늙고 추한 이방인 청년이 사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너무나 황홀한 사포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파옹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신전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아프로디테에게 마법을 청하게 된다. 젊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하는 특별한 향을 부탁한 것이다. 며칠 후 신전으로 찾아온 사포를 본 파옹은 그 향을 신전 한구석에 몰래 피워둔다. 그리고 향로 옆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향기에 취해 무의식중에 마법에 걸려든 사포는 파옹이 지닌 본래의 추한 모습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를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적인 배우자로 생각한다. 그때를 틈타 파옹이 사포에게 다가가자 환각에 취한 사포는 그에게 얼굴을 기대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사랑은 이미 비극적 결말이 예고되어 있었다. 한창 사랑을 고백하던 중 향로의 연기가 사라져 사포는 결국 파옹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채 그만 충격으로 실신해 버렸다. 사포는 나중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상하게 파옹과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절망한 나머지 그녀는 사랑을 노래하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거짓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사포는 기원전 6세기경에 실재했던 그리스의 시인이다. 시인의 상징인 면류관과 악기를 19세기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사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당당했던 사포마저도 여인에 불과했다. 파옹에게 머리를 기댄 모습에서 연약한 여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편 여인의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사랑 때문에 약해진 모습은 아름다워 보인다. 연약한 여인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파옹은 젊고 잘생긴 모습으로 변했지만 어딘가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과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며, 그의 자세는 비굴함마저 느끼게 한다. 파옹의 뒤로 향이 피어오른다. 두 연인의 배경에는 침대가 그려져 있는데 마치 곧 침대로 가서 사랑을 나누기 직전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들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에로스가 사포의 악기 루트를 들고 있다. 멀리 베란다에 비둘기 두 마리가 다정하게 애무하고 그 뒤로는 두 그루의 나무가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최면에 빠져 사포가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화가 피에르-클로드-프랑수아 들롬므의 <사포와 파온>이란 작품에는 (너무도 팬들을 의식하는 듯한) 다비드의 나르시시즘적인 경향의 작품보다는 두 남녀의 마주치는 시선도 훨씬 자유롭고 동적이며, 보다 에로틱하게 표현되어있다. 사랑의 신 에로스의 불필요한(?) 중재가 없어서 그런지 나체의 남녀가 훨씬 더 서로에게 밀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화가는 여류 시인 사포를 상징하는 고대 현악기 리라(수금)와 시구가 적힌 두루마리 같은 소품을 잊지 않고 오른쪽 구석에 배치시켰다. 아마도 두 사람의 몸을 유연하게 감싸고 있는 붉은 색과 노란 색 천의 강렬한 대비 때문인지 고풍스런 헤어스타일과 카우치(침상)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매우 현대적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원래 파온은 사포의 고향인 레스보스 섬의 도시 미틸레네의 늙고 못생긴 사공이었다. 그는 어느 날 늙은 할머니로 변장한 여신 아프로디테를 자신의 배에 태우게 되었다. 여신을 소아시아까지 태워다 준 후에 그는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여신은 그의 친절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고약을 하나 선물로 주었는데, 파온이 고약을 피부에 문질러 바르자 그는 갑자기 젊고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춘한 그의 미에 홀딱 반해버렸는데, 사포도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는 사포와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그녀에게 곧 싫증을 느꼈을 뿐더러 그녀를 평가절하했다. 그러자 몹시 절망한 사포는 바다의 절벽 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렇게바다에 뛰어들면 상사병이 치유되든지 아니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다고 한다. 사포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처럼 상사병으로 자살했다든지, 점 점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나 딱히 정설은 없다. 레프카다 바위에서의 사포의 자살은 아마도 날조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특히 19세기 말에 이 낭만적인 자살 테마는 아주 인기 있는 화제 중에 하나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사포는 기원전 630년경에 출생하여 580년이나 570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는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레스보스 출신의 서정시인 알카이오스Alcaeus(620-기원전 6세기)와 함께 활약했던고대 그리스의 시인이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시성 호메로스와 견줄 정도로 대중적인 명성이 높았지만 오늘날 그녀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소실된 상태다. 이른바 '자기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걸출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녀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사포의 상상력이 풍부한 초상화
그녀는 매우 부유한 귀족가문의 태생이라고 하는데 부모의 이름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문헌에 따르면 그녀에게는 3명의 남자 형제가 있었고, 대략 기원전 600년경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실리 섬으로 유배를 갔지만 그 후 다시 레스보스 섬으로 복귀했다고 한다. 고대 칠현인 중 하나인 정치가 솔론과 동시대인으로, 기원전 570년까지 계속 시작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포는 시인인 동시에 작사가이기도 했다. 사실상 그녀의 시는 리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리라 라는 악기에서 이 서정시 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시는 다른 남성 시인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녀의 관심은 신들이나 서사적인 영웅들의 모험담보다는 인간들끼리의 열정적인 연애사에 온통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포의 시는 고대에 매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고, 9명의 최고 서정시인 중 하나로도 선정되었다. 오늘날에도 그녀의 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른 근대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포가 오늘날까지도 화제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것은 그녀가 아마도 그녀의 고향 레스보스에서 유래한 레즈비어니즘l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포는 무려 9개의 시집을 썼지만, 오늘날에는 오직 파편시의 조각들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포 시의 주요 주제는 사랑의 기쁨과 절망이다.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시 한편에서는 어떤 여성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간절히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를 문어가 아닌 일상 속어체로 썼으며, 간결하고 직선적이며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그녀의 많은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었던 고대 작가들은 그녀가 동성연애자였다고 주장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시 가운데 사포나 그녀와 어울린 여성들이 동성연애자였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고 한다. 아래는 그녀의 파편시 중의 일부다. 독자들은 한번 읽어보시고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하시기 바란다.
나는 정말 눈물을 쏟으며 죽기를 바랐네. 그녀는 내 곁을 떠나며 "사포여! 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나요' 라고 말했네....... 나를 위해 꽃과 장미 화환을 너의 부드러운 목에 걸었네.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팔과 다리에 향기로운 향유를 발라주었을 때 섬세한 너의 욕망은 만족했었지. 우리가 함께 추어보지 않은 춤은 없었고 가보지 않은 신성한 사원도 없었지. 그리고 함께 불러보지 않은 노래도 없었고 가보지 않은 숲 속도 없었지.
사포는 이른바 미혼 여성들을 위한 신부아카데미(학교)의 교장으로 시와 음악, 무용 따위를 가르쳤는데 여학생들과 한 사람씩 사랑에 빠졌다고도 한다.혹자는 그녀가 글을 배웠고 이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고급 유녀인 헤타이라였을 가능성도 제기한 바 있다.
Sappho and AlcaeusLawrence Alma-Tadema
영국으로 귀화한 알마 타데마는 자신의 빅토리아 시대 고객들의 부르주아적 취향에 맞추어 주로 고대 로마의 럭셔리한 일상 생활사를 많이 그렸는데 이번에는 서구문화의 원류라는 그리스를 모델로 했다. 기원전 330년경에 활동했던 그리스비극 시인 헤르메시아낙스의 시 구절을 테마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기원전 7세기 말 레스보스 섬의 도시 미틸레네에서 사포와 그녀의 여자 친구들이 푸른 지중해가 보이는 한적한 장소에서 서정시인 알카이오스가 연주하는키타라의 선율에 마치 홀린 듯이 열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을 매우 운치 있게 묘사했다. 턱을 괴고 앉아서 알카이오스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인이 바로 사포다. 알마-타데마는 고대의 배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유적지인 디오니소스 극장의 대리석 의자를 고스란히 베꼈다고 한다. 물론 알마-타데마는 사포가 레즈비언임을 암시하기 위해 여신처럼 곱게 성장한 여자 친구들을 그녀의 주변에 배치시켰다. 원래 극장석에 새겨져있는 관리들의 이름들을 사포의 레즈비언 여성회 멤버들의 이름으로 슬쩍 바꾸어 놓기도 했다. 우리는 극장의 좌석 밑에 낙서처럼 새겨진 여자들의 이름을 볼 수가 있다. 오른쪽에 앉아서 키타라를 연주하는 알카이오스는 사포의 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사포는 안드로스 섬 출신의 부자인 케르콜라스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딸도 하나 있었다. 그럼에도 알카이오스와도 연인 사이였다는점을 미루어볼 때 아마도 그녀는 십중팔구 양성애자였던 것 같다.
Sappho and Erinna in a Garden at Mytilene, Simeon Solomon
다음 그림은 〈미틸레네 정원의 사포와 에리나>(1861) 수채화 작품으로 테이트 브리튼 소장품이다. 유태인 태생의 영국 라파엘 전파 화가인 시메온 솔로몬Simeon Solomon(1840-1905)의 작품으로 그는 유태인의 생활과 동성애에 대한 욕망을 잘 그리기로 유명한 화가다. 이 그림은 레스보스 섬의 도시 미틸레네의 한 정원에서 사포가 동료 시인인 에리나를 포용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사포는 시실리 섬으로 유배당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아프로디테와 뮤즈의 여신들을 섬기는 젊은 여성 동호회의 리더가 되었다고 한다. 화가 솔로몬은 사포의 동시대인이며 친구로 알려진 에리나도 역시 이 동호회의 멤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사포보다 약간 뒤인 4세기 말경에 레스보스 섬이 아닌, 도리아의 텔로스 섬에 살았다고 한다.) 솔로몬의 그림에서 사포는 보통 남성의 위치로 지정된 오른편에 앉아 있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 때문인지 약간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색에 노란 드레스를 입은 사포가 월계관을 쓴 채 에리나를 어루만지고 있다. 여기서 사포는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살결에 가슴 패인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에리나의 여성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성성'을 대표하고 있다. 이 두 여인의 열정적인 사랑은 그들 뒤로 보이는 비둘기 한 쌍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오른쪽에 놓여있는 악기와 시가 적힌 두루마리는 역시 사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결정적 매개체다. 에리나 옆의 대리석 의자 위에 9명의 뮤즈를 거느리고 있는 태양과 음악의 신 아폴론의 신성한 동물인 사슴이 서 있는 것은 아무래도 화가 솔로몬이 플라톤이 일찍이 사포를 가리켜 '10번째 뮤즈'라고 칭송했던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Reverie (In the Days of Sappho), John William Godward
그림은 알마-타데마의 수제자이며, 특히 동물 가죽의 묘사가 탁월했다는 영국의 마지막 신고전주의 화가인 존 윌리엄 고드워드 John William Godward(1861-1922)의 - 〈몽상>이라는 별칭이 붙은 - 〈젊은 시절의 사포>라는 작품이다. 사포가 이른바 고대의 눈먼 시인 호메로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유명했다는 의미에서, 사포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여성 모델의 옆에 호메로스의 하얀 흉상이 등진 자세로 서 있다. 고드워드의 화폭에는 이런 포즈를 취하는 여성들이 워낙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그가 혹시 라파엘 전파가 아닐까라고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고드워드는 빅토리아 시대의 신고전주의 화가다. 고드워드는 위의 그림의 제목을 <몽상>이라고 붙였을 만큼, 아름다운 세계의 이미지를 실제보다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내는빅토리아 시대의 몽상가였다. 현실 세계를 너무 이상화 또는 낭만화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도 역시 그의 스승인 알마 타데마와 마찬가지로 '로마 시대의 토가 의상을 입은 빅토리아 시대인들'을 그렸다는 비판을 면치는 못했다. 여기에 사포의 모델이 키톤(속옷의 일종) 의상 위에 허리띠처럼 걸친 종려 잎 문양의 천은 엄밀히 말해서 고대 의상이 아니다. 그리고 만지면 촉감이 느껴질정도로 부드러운 표범무늬의 털가죽도 역시 고대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화가는 사진보다 더 꼼꼼하고 디테일적인 사실주의미학으로 실크와 동물 가죽, 대리석 등을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그려냈다. 이처럼 자신의 미학 세계에 갇혀버린 고드워드는 언제나 고대임을 암시하는 세팅(장치) 속에서 혼자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성을 그리는데 아주 특화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만일 '사포'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독자들은 아마도이 아름답고 시대착오적인 주인공이 누구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