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의령
재경향우 이종훈
이 세상에서 가정 사랑하는 말은 “어머니”이고, 그 다음이 “고향(故鄕)”이라 한다. “고향(故鄕)”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지고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고향”이라는 낱말은 감동을 주는 낱말에 틀림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의령(江陵)의 산천”을 회상하며, 아침 운동을 할때 취미삼아 촬영한 감자꽃, 작약꽃, 백일홍, 장미화, 벽오동 나무, 벚나무 열매를 감상하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고향(故鄕)’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다정(多情)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라는 정감(情感)을 강하게 주는 말이면서도, 정작 ‘이것이 고향이다’라고 정의(定義)를 내리기는 어려운 단어이다.
고향은 나의 과거가 있는 곳이며, 정이 든 곳이며, 일정한 형태로 내게 형성된 하나의 세계이다.
고향은 공간(空間)이며 시간(時間)이며 마음(心)이라는 세 요소가 불가분의 관계로 굳어진 복합된 심성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비중(比重)이나 우열(優劣)을 논할 수는 없다. 살았던 장소와 오래 살았다는 긴 시간과 잊혀지지 않는 정(情)을 분리시킬 수가 없다. 따라서, 고향은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어느 고을 어떤 지점을 제시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 어느 때까지 살았다는 시간을 제시할 수 있으면서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각인각색으로 모습을 달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움, 잊을 수 없음, 타향(他鄕)에서 곧장 갈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는 면은 공통이다.
사람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은 생물학적(生物學的)인 탄생이며, 고향이라는 장소에서 태어난 것은 지리학적(地理學的)인 탄생(誕生)이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시간이 동일하기에 자연히 어머니와 고향은 하나가 된다. 대화로 고향을 정의하여 본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와 조상(祖上)의 묘(墓)가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런 대화는 한국인의 고향관을 단적(端的)으로 표시한다. “이몸이 삼기실 제 님을 따라 삼기시니……”라는 조선시대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 첫머리에 있는 말대로 탄생(誕生)이 “삼기다;삼다”이기에 고향은 출생지(出生地)로서 ‘삼터’가 되고, 타향이나 객지가 아니기에 본향이다.
고향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사람 외에 산천(山川)이라는 자연도 포함이 되기에 고향산천이라고 한다. 고향이라는 말이 정착되기 이전에는 고구(故丘 : 옛 언덕), 고리(故里 : 옛 마을), 고산(故山 : 옛 산), 가향(家鄕 : 집 있는 마을), 벽향(僻鄕 : 먼 외진 고을), 향리(鄕里 : 고향 마을)라고도 불렀다.
고향을 떠나면 이향(離鄕)이요,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며, 그런 사람은 나그네요 그 삶은 타향살이며 그의 고향 그리는 시름은 향수(鄕愁)며, 객수(客愁, 旅愁)라 하였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본 마음이면 귀향(歸鄕)이요, 어쩔 수 없으면 낙향(落鄕)이라 하였다. 이로써 보면 고향에 대해서는 그대로 눌러 사는 사람과 떠나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과 마침내 돌아가는 사람 등으로 분류가 된다.
그 상황에 따라 실로 다양한 단어가 있음은 한국인의 고향에 대한 심성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다.
이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 주로 국내에 있는 경우이지만, 다른 나라에 가 있을 때는 좁은 고향 땅과 넓은 우리나라 땅이 겹쳐서 고향이 곧 고국이며 조국이며 모국으로 확대된다. 이때 고국을 그리는 교포는 타국살이이며, 일제강점으로 인한 경우는 망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살다가 고향을 떠나 살아 보아야 고향이 무엇인지 그 향수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시대의 흘러감에 따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유행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유행가(流行歌)의 몇 곡(曲)의 제목을 열거하여 보자.
“꿈에 본 내고향”, “고향만리”, “고향초”, “타향살이? ”나그네 설음“, ”고향무정“, ”고향 아줌마“, ”고향의 강“, ”고향이 좋아“, ”물방아 도는 내력“, ”향수“, ..... 등 등
고향(故鄕)에 얽힌 사연을 두고 작사하여 노래로 만들고 세월따라 계절따라 불러온 유행가(流行歌)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노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다. 특히 6.25때 월남가족이나 최근에는 해외근로자, 해외이주민, 새터민(탈북자)들이다. 아예 고향에 갈 수 없는 처지(處地)의 실향민(失鄕民)들은 고향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슴에 얼마나 사무칠까?
필자(筆者)도 유년시절 부터 객지 생활을 하면서 고향을 수없이 그리워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도 마음이 심란 할 때면 그 때를 회상하면서 고향에 대한 노래를 애창(愛唱)하며 우울한 시간을 허물곤 한다.
우리고향 자랑을 좀 해볼까 한다
충효의 고장 의령
천강 홍의 대장군 망우당 곽재우 장군
독립 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저의 조부님도 안희제 선생을 도와서 군자금을 댐,고향집 대문에 독립운동가 생가 팻말이 있음)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 ,전국의 가정에 삼성제품 하나씩은 다 지니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가의 호암 이병철 선생 등 정.재.관계에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고 스포츠인 천하장사 이만기 만능 예술인 작곡가 이호섭 씨등 우리 고장을 빛낸 분들이 부지기수이다
특히 토요애 라는 군 브랜드로 수박 양상추 구아바 등 수많은 농산물들이 전국의 식탁을 누비고 전국 규모의 수박축제 한지축제 전국 소싸움 대회 악성 우륵선생의 출생지답게 전국 가야금 대회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천강 문학상,의병제전 등
특히 한국 가요 백년사에 전례 없는 생존한 분의 함자를 따서 이호섭 가요제라는 전대미문의 거국적인 행사도 우리 의령에서 하지 않는가 이 어려운 행사를 기획하신 오영호 군수님, 재정 자립도가 낮은 어려운 사정에도 가요제 예산편성에 큰 도움을 주신 군 의회 오 용 의장님,김규찬 부의장님 문봉도 예결 위원장님과 동의하신 의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런 전국 규모의 행사를 많이 함으로써 우리고향 의령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향우 여러분 이토록 훌륭한 고장에서 우리가 태어났습니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도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신다면 내 고향은 충효의 고장 의령이
라고 자랑스럽게 당당히 힘주어 말 합시다
(신문사 기고문)
첫댓글 그리운 고향 자랑 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