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발이 휘날린다.
겨울을 알리는 무당산의 첫눈. 그러나 낭만을 연상케하는
첫눈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한 남자가 휘날리는 눈발을
고스란히 맞으며 쓸쓸히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고 있다.
불과 몇시진 전이었던 그 일을 남자는 떠올린다.
"현허야... 너는 무당파의 제자로서 무당파의 이름을 더럽혔다.. 지난 수년간 네가 무당파를 위해 한 일과 너의 무공이 적지 않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네가 화산파를 비롯 수많은 타 문파들을 건드렸으니 네 죄가 적지 않다. 너를....... 파문시킨다"
"사부님....! 억울합니다 필시 누군가 저를 모함함이 틀림없습니다"
현허.. 사내의 이름은 현허(玄虛)였다.
그렇다면 이 현허라는 자는 누구인가?
현허. 그는 현 무당파 장문인 운학(雲鶴)진인의 제자로서 차기 무당파 장문인이라고 불릴정도로 운학진인 문하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출했다.
그런 현허에게 지금 이러한 불상사는 믿을수 없는 것이었다.
현허는 무당파를 떠날때 자신을 보던 삼대장로(三大長老)들의 차가운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어쩌면 모든것은 현허가 너무 특출했던 탓이었는
지도 모른다. 30대 초반의 현허가 이미 대성하여 무공수위가 삼대장로에
버금갔으니 삼대장로로서는 현허가 위협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아....이것이 꿈인가.... 이 어린 다섯놈들을 어찌해야 할꼬...'
현허는 불과 며칠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여진 다섯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런일이 일어날줄 예상치 못한 현허는 남들은 하나만 들이는 제자를 다섯이나 들였었다.
'이 역시 나의 잘못일지도... 어쩌면.. 내가 너무 자만했던것은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 아이는 자신의 사부로 정해진 현허의 뒤를 따랐다. 갓 다섯살이나 되었을까.
다섯 아이는 사부의 뒤에서 장난을 치며 눈쌓인 길을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었다.
정처없이 떠도는 현허에게 있어 다섯 아이들은 여행을 지체시키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현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차마 아이들을 버리고 갈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아이들인데 어찌 내가 버리랴...'
갈곳도 없이 떠도는 현허의 발길은 중원의 명산인 태산을 향하고 있었다.
현허(玄虛)가 무당파로부터 파문당하고부터 10년후..
무림은 무당파의 차기 장문인 감이었던 현허라는 이름을
잊어가기 시작했다.
이곳 태산의 봉우리에는 여섯명의 사내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를 하고 있었다.
"청운(淸雲)아, 내 너에게 일찍이 가르친 태극검법(太極劍法)과
태청검법(太淸劍法)에는 어느정도 진척이 있는게냐?"
청운이라고 불린 소년.
덩치가 그다지 크거나 키가 그다지 큰편은 아니었지만 결코
작은편도 아닌 소년이었다.
얼굴이 잘 생긴 미남은 아니었지만 이목구비는 반듯하여
제법 똘망똘망하게 생겼다.
"예, 사부님. 태극검법과, 태청검법은 거의 몸에 익혔습니다.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과 양의신공(兩儀神功)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허는 청운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짓는다. 아직 어린나이이지만
노력하는 제자의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청운의 옆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유운(流雲), 신운(神雲), 경운(耕雲)
백운(白雲)은 양의신공(兩儀神功)을 연마하기에 바빴다.
아직 어린 소년들이지만 무당파의 검법과 권법, 장법, 신법,
내공수련까지 무림에 나가도 절대 뒤지지 않을 실력이었다.
풍운검 청운과 낙화검 유운. 천령검객 현허의 제자들중 가장
기대되는 유망주들이었다.
뇌화검 신운, 패도검 경운, 유령검 백운. 이들 역시 아직 나이
15세의 소년들이지만 무림에 나가면 충분히 그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현허는 확신하고 있었다.
'기특한 것들..'
현허는 10년전 태산에 막 도착했을때를 떠올렸다.
먹을것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었던 그때 태산이 있던
동굴은 그들이 그해 겨울을 보낼수 있는 좋은 보금자리였다.
비록 먹을것도 변변치 않았지만 자신의 말을 잘 따르며
무공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제자들이 현허의 눈에는
기특하게만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출했던 청운과 유운은 무당파 최고의 절기로
유명한 태극혜검(太極慧劍)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아직 어려 태극혜검이 완전치는 못했지만 태극혜검을 조금씩
연마하며 몸에 익히고 있었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마 지난 겨울처럼 여섯은 태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가
겨울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겨울이구나....." 현허가 조용히 말했다.
백운(白雲)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사부님, 제가 이번 겨울을 보낼만한 집을 산아래로
내려가서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핑계는 집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지만 필시 민가로 내려가
사람구경을 하고 싶은 것이리라.
사실 현허와 그의 제자들은 겨울에 민가에 내려와 지낼때 빼고는
태산에서만 있었기때문에 사람보기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사부님... 빨리 민가를 알아보지 않으면 이번겨울은
이곳에서 떨면서 지내야할지도 모릅니다."
"강호로........출도한다...!"
현허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니 지난 10년간 제자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이었는지도
모를 말이었다.
내공수련을 하고 있던 나머지 제자들이 벌떡 일어난다.
"정말입니까?! 사부~! 하하핫!! 드디어 강호출도군요!"
패도검 경운이 덩치에 걸맞지 않게 손벽을 짝짝 치며 좋아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기뻐하고 있다. 일부는 덩실덩실 춤을추고
일부는 서로 손을잡고 껴안고 좋아 어쩔줄 모른다.
강호란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늘상 사부 현허의 말을들어
알고 있었지만 15세의 혈기왕성한(?) 소년들에게는 그저 기쁘기만
했던 것이다.
천령검객과 다섯 제자들은
호북성(湖北省) 균현(均縣) 무당산(武當山)
근방에 와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곳으로 와버렸구나...'
현허는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무당산을 향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10년만 무당산. 무당산은 10년 전이나 변함이 없었다.
"와~ 사부 멋진 산이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신운(神雲)이 감탄한다.
"후우...... 저기가 무당산...이란다"
"네에~?!"
"사부! 그럼 저곳으로 가서 모함받은것을 풀고
그 삼대 머시기 하는 놈들도 때려잡읍시다!!"
제자들은 사부가 무당산에서 모함을 받아
무당파에서 파문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됬을때 제자들이
얼마나 노(怒)했던가..
"그럴 필요 없다. 이미...........지난 일이니........."
차가운 한줄기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사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것처럼 보인다.
"일단 묶을 객점부터 찾아보자꾸나...후....."
균현의 중심가는 시끌벅적 했다.
수많은 사람이 북적북적 거리고 다섯명의 제자들은 처음보는
물건들이나 음식들이 즐비했다.
"우와~ 신기하다~"
현허는 그윽한 눈길로 제자들을 바라본다.
'허허헛... 신기할만도 하겠지.... 저 나이가 되도록
세상구경을 제대로 못해봤으니... 그나저나 저 아이들이
아직 강호의 도의를 잘 모르는데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이구나....'
현허는 강호 첫 출도를 한 제자들이 염려되었다.
그러나 현허는 훗날 강호도의보다 더 중요한것을 가르치지
않은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 했다.
그것은..... 세상이었다
그무렵 무림은 일대의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수 없는 마교(魔敎)의 마두들은
중원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뿐아니라 황실의 과도한 세금독촉으로 인해
녹림(綠林)이 세력을 크게 떨쳐 산에 있다가도
민가에 내려와 약탈을 일삼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20여년간 결속력이 강했던 무림맹은
점차 와해되기 시작해 결국 해체되었다.
화령(華鈴)객잔에 짐을 푼 현허는
제자들과 함께 균현의 중심가를 좀더 배회하며
강호의 도의에 대해 제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툭!
"이런 쓰불~ 이 꼬맹이들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지나가던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청운의 등을
툭 치며 밀었다.
한참 강호의 도의에 대해 설명을 듣던 청운은
짜증나지 않을수 없었다.
'무공이 그리 높아보이지도 않는데, 성질만 고약하군'
"야 이 망할놈아! 이 형님을 쳤으면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할것 아니냐!! 내가 누군지..."
"시끄럽군"
사내의 말이 채 끊어지기 전에 청운이 사내의 말을 끊었다.
"뭐..! 뭐라고!! 이자식 너 오늘 죽었어!!"
사내가 등에서 커다란 검(劍)을 빼들고 청운에게 일격을 가했다.
청운은 양의권법(兩儀拳法)과 무당장권(武當長拳)을 펼쳤다.
사내의 검이 청운의 몸에 채 닿기 전에 청운의 권(拳)이 먼저
사내의 얼굴을 쳤다.
"우욱..... 사내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으음..... 이 아이들이 이정도였던가....
강호에서는 내가 가르친 무공들을 잘 쓰지 못할까
걱정되었는데 실전에서도 잘 쓰는구나...'
"잘 했다 청운아. 저런놈은 맞아도 싸지"
현허가 청운을 칭찬하며 사내를 비웃었다.
그때..
주위에서 칼을 찬 도사들이 몰려들었다.
"이놈들....! 감히 우리 대(大) 무당파(武當派)문하의
제자를 건드려?! 너흰 오늘 죽었다....!"
'아뿔사..! 이놈이 무당파였구나!'
무당파의 20여명의 제자들은 현허 일행을 중심에 두고 둥그렇게
포위여 포위망을 좁혀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