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작품을 좋아한다. 산수화를 가장 좋아하지만 미술작품은 모두 좋아한다.
난 오래도록 인사동을 다닌 사람이다. 인사동 인사아트회원이고 아트선재 회원이 된 건 2000년에 한겨레기행팀이 주관한 이주헌님과의 미술관기행을 인연으로 해서다.
난 정말 그때 이주헌님과 유럽미술관 기행하면서 지낸 13박 14일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다.
그땐 정말 대학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서양미술사를 읽고 미술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런던거리를 지하철로 돌아 맛난 음식점에 들러 되지도않는 영어를 하며 동무들과 즐거웠던 추억이
그때의 그 행복이 지금의 힘든 나를 살리는거다.
영국 루브르박물관,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프랑스의 몽마르뜨언덕거리의 미술품들과 예술가들의 삶의 모습들 이탈리아의 보르게재미술관등, 미술관에서만 보낸
우리의 기행은 참 사랑이었다.
햄버거로 때우면서 미술관 시간을 맞추어서 차에서 내려준 후 이주헌님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일행과 돌아볼때 미술의 그 드넓은 경지를 중등에서 배웠다면 내 인생 이리도 돌아돌아 이 자리가 아닐것을 싶은 아련한 추억 한자락 상상하게 되어 맘이 쓰리면서도 기쁨은 지금이라도 이 세계를 알게되어서다.
난 정말 하나만 한다.
이 기행이후 인사동, 평창동,광화문등 미술관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
미술을 즐겼다.
어떤 설명을 통해 듣는게 아니고 그냥 내 눈으로 본다. 도슨트가 있는 경우는 들으면서 즐기기도 하나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서 그냥 내 혼자 또는 우리 두 아이와 본다.
정말 행복했다. 미술의 세계에 빠져 먹는 걸 잊은 유럽미술관기행!
이주헌님의 유럽미술관 기행을 가족과 한 점이 특히 좋아서 그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그 작가와 함께 한 기행은 따스함 자체였다.
이주헌님은 아들만 셋인가 그런데 딸아이를 입양해서 기르고 있다.
부인은 전업주부인데 참 미담인 그 부부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서 그만하련다.
이주헌님의 설명은 간략하면서 진정한 미술의 경지를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주었고 참 스승의 자리를 보여준 분으로 오래도록 내 뇌리에 남았다.
참 따스한 분이라 내 제주도 미술관 기행한 글을 보내 조언을 듣고 싶을 정도라서
보냈더니 참 역시나 멋진 분임을 알게 해주었다 .
따스하면서도 솔직한 답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나와 연배가 한 살 차이인데도
큰 어른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고 참 겸손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미술평론가로
남아있다.
이 기행 이후로 내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미술관,박물관을 즐기고 글을
써놓는 습관이 생겼고
가장 사랑하는 미술관은 제주도의 이중섭미술관이다.
화가가 따스한 분이고 집이랑 주변경관이 빼어나서다.
난 이탈리아의 보르게재미술관을 특히나 좋아햇는데 그 이유는 자연이 들어가 있어서다.
산책로가 아름답게 되어있고 미술관은 작았다. 이중섭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돌담으로 쭉 둘러쳐져 있고
온갖 식물들이 길러져있고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화가가 살았던 서귀포시에 미술관을 지었기에 책을 보던 곳이라든가
그림을 그리던 장소라는 설명까지 있어 마치 이중섭씨를 직접 만난 대담하는
상상을 하게 했다.
우리 두 아이와 제주도 기행하면서 가장 따스했던 장소 중 하나다.
난 참 행복했다 .미술만 있으면 밥을 아니먹어도 배가 불러 이날 이후로 사군자를
배웠다. 정말 난치는것이 너무 맛나서 남 한시간 하는데 난 시간되는대로 했고 언제나 우리 두 아이와 같이 배웠다.
큰 애는 한문서예하고 작은 아인 한글 서예 ,난 문인화 하기 전 단계인 사군자를 배운건데 참 맛나고 좋았다.
넘 그리운 내 두 아이! 그러나 난 최선을 다한 에미이므로 후회는 없다.
그냥 두 아이가 자기가 살고 있는 장소,위치에서 최선을 다함을 믿기에 그냥 난
기다려주고 기도만한다.
내게 닭은 아빠로 기억된다.
닭이 울때 아빠는 일어나셔서 소제를 하며 하루를 여셨다. 아주 부지런함에 몸에
베인 부모밑에 자라서 늦잠을 자본 기억이 별루 없다.
아빤 당신이 일어나신 후 우리 오남매를 깨워서 일을 시키셨고 생활이 곤란해서
당연했다.
자식 차별이 심한 아빠인지라 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맏이므로 희생을 하게했다.
엄마 살림 거들게 하대학은 아니 보냈으나 언니는 스스로 대학을 마쳤다.
정말 우리 가족사가 현대사일것이다
아주 어려운 가정 형편을 지닌 도시빈민의 대표격일것이다.
가족이 헤어져 살아야할정도로 내 초등학교시절은 불행했다. 언니들은 할머니와 함께하고 우리 남동생과 나만 엄마,아빠곁에 살아야했고 고향을 등지며 서울하늘아래
삶의 터전을 일구느라 자식교육은 뒷전이라 우리 남동생과 난 놀이대장이었다.
그냥 놀며 배우며 그렇게 살았는데 지금 이 자리다.
난 미술도 잘하나 악기 다루는 거 외에는 못하는 것이 별루 없다.
그건 내 억척스럽게 내 필요한 공부는 독학으로 해서다.
엄마가 되어서는 밖에 나갈 형편이 안되어서 연수를 들을 수 없어 난 책으로 공부를 했다.
그것이 지금 이렇게 오랜 세월지나니 꽃피우게 된거다.
난 연구교사이기도하고 여러분야에서 참 열심히 살아서 지금은 행복하다.
돌아온 세월 후회아니한다.
난 매순간 단순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지금 내 두 아이 떠나 보낸 자리 아무리 아파도 다시 전진한다.
내 자리에서 지금 이순간 가장 필요한 공부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여행이었다.
다시 회복이 필요해서다. 다시 공부를 하기위해 참 교사로 거듭나기위해선 건강회복을 위한 여행이 가장 급선무라 광주에 다시 내려와 이렇게 시내기행 한다.
난 그럼 다시 회복되어서 학교생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또다시 할거다.
그러니 머물러 있음이 결코 실이 되는것만은 아니고 다시 앞을 좀더 자세하고 깊게
보는 힘을 길러줌을 내 인생을 통해 알게되었다.
참 따스한 가족 사랑그림이라 한장 찍는다. 아름답다. 우리 농촌 풍경은 나눔이 아니고 화합이라서다.
정말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일이 있고 일속에 가꾸는 참 행복을 알았다.
난 이 그림 앞에 오래도록 서있었다. 참 따스해서다 .솜이불 덮고 화로에 넣어둔 밤 까주던 할머니손이 눈물나게 그리운 그림이다.
난 할머니가 무릎에서 놓아준 적이 없었단다.
왜냐 화상을 입은 7개월된 손녀가 하두 안스러워서 당신은 곡기를 끊고 매일 울며 보채는 날 안고 업고 어르고 당신의 모든 삶 포기하고 나와만 놀았단다.그래 난 이런 가족그림 사진을 보면 꼭 동백기름 곱게 머리에 바르고
한복단장 곱게 하고 쪽진머리로 시장가던 울 할머니 손 붙잡고 가던 생각이나서 눈에 이슬바람하게된다.
내 할머니는 혼자되셔서 사남매기르고 쌀가게로 부를 일군 성전댁이란다. 그 분은 평생 혼자 사셨다. 할아버지는 행불이라 네 남매 입 해결하느라 당신의 고달픈 인생 고달프다 생각할 겨를없었고 그러나 상당한 멋쟁이고 여장부로도 소문나서 참 다부지게 가문의 영광을 일군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신분이다.
엄마 손 붙잡고 걸어가는 아이가 나다. 아빠 새참 나르러 가는 중이다.
할머니랑 삼촌이랑 고모들이 들에 나가 일하고 있고 언니들은 학교 남동생,여동생은 낮잠 재워놓고 나만 엄마 손붙잡고 들에 나간 아빠 새참 가져다준다. 동네 아낙네들은 탈곡을 한다.
다부진 아낙네 덕에 우리 농촌이 이만이라도 한거다. 참 억척스럽고 끈끈한
삶의 여정이다. 이 그림에 오래도록 눈놓아 상상의 들녁에서 헤매이다 길을 잃었다.
버려진 기와작품이다. 난 버려진 것들에 애착이 강하다. 산을 가도 유명한 곳이
아닌 그냥 야산에 올라가 멍청히 하늘보고 달보고 나무보고 떨어진 나뭇잎 콧가에 가져가 냄새맡는다. 난 그냥 그렇게 내 혼자 버려진 자연과 시간 을 보내다 다시 세상속으로 돌아온다.
기와는 아주 많이 버려져있다. 농촌 어디를 가든 버려지지않은 기와를 아니
본 적 없을정도로 흔하다. 난 이런 기와속에서 추억을 긷는다.
니 운명은 대갓집 당당한 지붕을 지키던 신세에서 이런 외진 갈대들판에 버려졌구나 허나 혼자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니 동무가 많고 식구랑 같이 버려지기도 했으니 이제 다시 일어섬만 남았구나.
아주 힘들고 어렵겠지만 다시 네 영광을 위해 비상하자. 비상하자. 다시한번 날자꾸나 .날자. 날아서 저 창공을
퍼얼떡 대는 심장을 가지고 날아 날아 날아서 니 설운 꿈, 니 구겨진 꿈을 다시한번 펼쳐보자꾸나
내 도와주마 .니 곁에서 너만을위해 한생을 살거니 내 사랑 기와야 다시 전진하자 .이제 다시 뒤는 보지말고
앞만 보며 희망을 긷고 그 희망송이들이 모여 저 찬란한 무지개가 하늘에 걸리는 날을 소망하며 다시 날자.
너와 내가 할 일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일어섬이니 아무리 널 버린 아픔이 커도 희망앞에서는 다 스러지니
이제 우리 둘이 손을 잡았으니 믿음,소망,사랑만이 함께 할 것이니 가자. 가자. 가기만이라도 하자꾸나.
난 기와 널 위해 자가용을 줄거고
난 기와 널 위해 어여쁜 옷 , 맛난 음식을 준비할거고
난 기와 널 위해 니 청춘을 불사를 자리를 마련할터이니
이제 그만 버림받은 거친 설움이랑 버리고
고운 꿈 갈대풀에 실어 나폴나폴 이 들판에서 저 들판으로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들를 지나 산을 넘고 마을로
마을을 지나 도시로 청와대로 가자꾸나
청와대 앞마당에서 신문고를 울려
니 설운 꿈 다시 피울 자리를 우리 버려진 기와식구들에게
주기만을 간곡히 종소리에 담아 울리나니
기와여!
다시한번 비상하자. 비상해서 저 푸르른 쪽빛 하늘가에 니 둥지를 만들고
그 둥지에서 기와동지들과 따슨 밥에 텁텁한 막걸리 한잔의 목축임이
진정한 나눔이고 행복임을 알자.
내 고향 산천을 들여다보느라 눈빛이 따스함이구만.
청중의 자리가 이리도 좋다. 난 글을 쓰기보다. 그림을 그리기보다 독자의 자리가
편함은 이래서다.
그냥 내 멋대로 상상하고 그 나래속에 행복이 들어있어서 춤만 추면 되어서다.
혼자하는 춤은 망설임도 없고 혼자 웃는 웃음은 눈치봄도 없어서 내 아픔과 설움이
살풀이되고
다시 그자리에 단단한 매화나무 한그루 자리한다.
현대인의 아픔이 드러난 작품이다.
검은톤과 회색톤의 색감으로 현대인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냈고
가족으로 살면서도 외로움을 덕지덕지 달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그림이다.
사슬에 묶여 하루를 버티기가 백년을 지나는 것보다 어려운것임을 이 그림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인들은 경제적 부을 선물로 받은 대신에 고독,암,스트레스라는 질병을 달고산다.
결코 그 누구도 이 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가 현대인이다.
특히나 우리 아이들은 이 물질의 풍요속에 인간다운 만남의 상실의 골이 깊다.
모여서 놀이를 하고 그 놀이속에서 육체적 만족감과 정신적 안정감을 갖게 해야하나 경제적부가 넘쳐 공부에 배당되는 시간의 양이 절대적이라서 동무를 만나 수다를 떠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월등히 줄어들게된다.
그러니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하여 오락이나 다른 탈선에 매몰되고 그러다 다시는 사람과의 소통을 이룰 수 없어 일본의 어느 작가는 그 부분을 소설로 썼다.
나도 5,6학년 교사를 하기 싫음은 아이들의 이런 슬픔이 아주 피부 깊숙이 쳐들어와서 하루하루 학교 가기가 괴로움 자체라서다.
저학년은 힘은 들어도 교사 하기나름이라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가 있으나 고학년은
배당된 수업부터가 내 맘대로 아니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시험이 있어서 똑같은 것을 가르쳐야한다.
난 그래 고학년 교사를 하면 살이 없어지고 괴롬뿐이라 사표를 또 다시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지싶어 실제로 휴직을 해버렸다.
6학년 사회선생만 하니 11반을 들어갔다.
녀석들 앞에서 잘 가르치려 노력해도 사회참여 행동이 없는 내 자신이 괴로워 우울이 찾아들고 밥맛을 잃어 병가하다가 결국은 사표의 의미인 휴직처리가 되었다.
난 참으로 교사생활하기가 어렵다. 허나 저학년은 누구보다고 맛나고 재밌게 할 만큼 실력을 갖춘 교사가 되었으나 학교는 로테이션이라 어떤 특혜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연구교사가되면 가능하나 다른 관행적업무와 연구계획서 통과등의 제도적문제가 있어 괴로우나 그래도 헤쳐나가려 생각한다.
자기 앞에 놓인 삶은 헤쳐갈 수 있을정도만 준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으니 난 그저 이제는 순종할 뿐이다.
어린이 전시관앞인데 참 포스터가 발랄함 자체다.
빨강의 따스함과 정열 가득한 색의 꽃과 분홍의 엄마빛 마음 닮은 고운 색의
꽃들이 날아다니는 초록풀밭에 아가들아 놀러오렴의 포스터다.
아이들 그림전시를 난 성인물보다 좋아한다. 그래 이곳에서 오래 머문다.
참 좋은 작품들이라 다시한번 오늘 들을까 생각중이다.
난 이쁜 것은 꼭 두세번 가서 보는 습관이 있다.
탁본을 해 둔 작품이다 .나뭇잎이랑 참 아름다워도 내 웃음도 행복이다.
미술관만 가면 행복하다.
어린이 작품전에 어른들이 해놨다.
아이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탁본이라든가 쉬운 작품 설명으로 참 좋았다.
이 작품은 추사 김정희 글씨에 어떤 분이 그림을 그린건데 난이 내가 그린 난하고는
비교가 아니되어 한 장!
이 작품 다시 가야한다 .디지털로 우리의 전통가옥이나 숲을 재연한건데 아주 맛나다.
윗작품과 같은 분이 한 건데 우리의 산천으로 초대하는거다.
난 정말 아름다웠다. 이 작품들에 아주 오래도록 머물고 잡았으나 시간이 없어
아쉬어서 오늘갈란다.
지금이 9;03분이니 이 글 마치고 짐정리하여 서울가기 전 다시 한번 들을 곳이다.
한 시 고속버스이니 들러서 다시봐도 좋다. 왜냐 전시료가 시립이라서 싸다.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전이 상설인데 하두 가서 봐서 외울 정도다.
700원의 입장료가 싸서이고 가면 정말 천경자님의 따스한 보랏빛 세계가 날 따스히 반겨주어 내 세상 속 설움 씻겨내기에 충분해서다.
주변경관도 빼어나서 언제나 갔다하면 저녁이다.
덕수궁들러 국립미술관까지
보기도 하고 덕숭궁 뜨락에 핀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날 즐겁게해주어
내 마음 뛰놀다 하늘가 구름에게 내 맘 잡혀
하늘나라 고운빛 무지개다리 넘어 토끼와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다 해저물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날보고 그냥 웃음 웃어주는 따스한 이가 우리 신랑이다.
내 두아이는 물론 나와 함께였고...
광주시립미술관도 야외가 잘 꾸며져있고 그 주변 산책코스가 나무다리를 비롯하여 아름다움 자체다. 난 그냥 뽕뿅가서 다시 들어간다.
이것은 우리네 장독의 재현이다. 위의 작가 작품이다 .
모두 추억과 고전이다. 우리네 것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사랑가득이다 .
난 그래서 미술작품만 보면 가슴이 뛰고 행복놀이에 빠진다.
그 행복 전해줄 이는 당연 내 가르치는 아이들과 내 만나는 모든 이들이다.
난 그래 다시 세상속으로 돌아와 행복의
기왓장을 엮어 나갈 오늘과 내일이 있음을 믿고 우리 주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이 새벽도 30분은 드린다.
그래 난 내 삶을 사랑이라 부르고잡다.
비록 내 두 아이는 떠나있어도 날 따스히 반겨줄 내 부모 형제가 서울에는 있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