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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火旺山757m)
<창녕군 대합면 5번 국도에서 바라본 화왕산 전경>
군립공원 화왕산(火旺山757m)의 이름은 불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화왕산 이름이 뜻하는 바를 충분히 설명했다고는 볼 수 없다. 혹자는 산 이름이 불과 관련이 있고 억새분지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 마치,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분화구로 착각하고 지질학자의 이름을 빌어 옛적에 화산이었다는 식으로 이론을 짜 맞추기도 한다. 이는 화왕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화왕산 억새분지의 용늪은 고산분지에 생성되는 고산습지의 하나이다. 이에 화왕산 이름을 이해하려면 풍수지리학적인 측면 곧, 자연환경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해야한다.
밀양남쪽 낙동강 변에 삼랑진(三浪津)이란 곳이 있다. 지금은 경부선 철도와 경전선 철도의 분기점이 되었지만 옛적에는 부산 다대포(多大浦)에서 안동 선어대(仙魚臺)까지 오가는 배들의 선착장이었고 밀양과 김해를 건너다니는 배들의 나루터였다. 이곳의 지명은 낙동강 물과 밀양강 물 그리고 다대포 앞바다의 바닷물, 이렇게 만조 시 3개의 물이 만나 물결을 이루고, 이곳에 나루터가 있어 진(津)을 붙여 삼랑진이라 했다. 낙동강유역에 큰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 내려오는 시각에 만조 시와 겹치면 바닷물이 삼랑진까지 차올라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역류하여 넘쳐서 낙동강 변 남지 등 창녕지역 저지대 농경지는 물에 잠기게 된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던 시대에 한 뼘의 농경지가 아쉬울 적에도 낙동강 변 창녕의 우포늪을 그대로 보존한 것은 유사시 홍수조절용 긴급대피시설 기능을 하기 때문이었다. 물바다가 되면 화왕산 꼭대기 배 맨 바위에 배를 매달아 놓는다고 할 정도로 물난리를 겪는 상황에서 허(虛)하면 보(補)하고 약(弱)하면 강(强)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이치는 음양(陰陽)의 조화(調和)다. 모든 것이 균형을 잃으면 문제가 된다. 이것이 풍수지리 이론이다. 오늘날 자연환경적인 측면에서 조명해도 좋다. 불(火)은 물(水)로 제압하고 물(水)은 불(火)로 말려 제압한다. 햇볕으로 쪼여서 물을 말리고 말려서 안녕을 기원하는 뜻의 창녕(昌寧)이란 지명과 함께 연례행사처럼 강변 농경지가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것을 보(補)하기위해 상징적으로 붙여진 이름이 불이 왕성하다는 뜻의 화왕산(火旺山)이다.
억새분지 안쪽은 경사가 완만한 토산이지만 바깥쪽은 바위로 된 낭 떨어지다. 억새분지 바깥 능선을 따라 화왕산성이 축성되었고 분지 동쪽 낮은 곳에 고산습지의 하나인 용늪이 있다. 화왕산 동쪽 관룡산(觀龍山)에서 해 뜰 무렵 억새분지가 동쪽으로 트여있는 화왕산을 바라볼 때 용늪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룡산 이라 한다. 용늪 부근에 창녕 조씨 득성 비가 있다. 화왕산은 높은 산은 아니나 조망이 좋아 북쪽으로 비슬산, 서쪽으로 가야산, 남쪽으로 무학산, 동쪽으로 가지산등 영남알프스 산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산성 바깥 암벽에 피어나는 봄의 진달래와 철쭉이 볼만하고, 가을에는 능선을 따라 축성된 화왕산성 둘레길 2.7km 5만6천 평의 억새분지의 장관으로 하여, 장흥의 천관산과 더불어 억새 명산으로 알려져 있다.
山上의 억새盆地 山城으로 둘렀네!
<정상에서 내려다본 창녕읍과 낙동강 유역의 들판>
오늘은 개천절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창녕 장날이었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창녕군청 앞, 석빙고를 거쳐 목마산성 등산로 입구까지 약 2km, 20분이 걸렸다. 목마산성 등산로 입구는 화왕산 정상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멈춘 곳으로, 시외터미널에서 화왕산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다가 도로가 우측으로 꺾인 곳에서 찻길을 버리고 정면 능선 쪽으로 난 등산로로 접어들면 된다. 외지에서 온 등산객들은 대개 자하곡 매표소로 찾아들지만, 이 길은 창녕읍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등산로다.
창녕(昌寧)의 옛 이름은 비사벌(比斯伐)이다. 여기서 걸어서 10분 이내에 송현동 고분군 (松峴洞古墳群; 사적 제514호), 교동고분군, 창녕박물관, 석빙고(石氷庫; 보물 제310호), 신라 진흥왕 척경비 (眞興王 拓境碑 국보 제33호), 자하곡(紫霞谷) 매표소가 있다. 목마산성 등산로 입구 주변에 있는 고분군은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없는 한 시대 이 지방 권세가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송현동고분군과 교동고분군이 있다.
<목마산성에서 내려다 본 산성아래 송현동 고분군과 들판>
09시 이곳에서 부터 산행이 시작됐다. 10분 정도 오르니 무너진 성 돌이 보이는 곳에 높이120cm 정도의 자세히 살펴야 판독이 가능한 “牧馬山城” 이라 새겨진 석비가 있다. 해발 463,6m에 있는 둘레1,9km의 포곡식 산성(包谷式山城)으로 목마산성 (牧馬山城 사적 제65호) 이다. 북한산비(北漢山碑), 황초령비(黃草嶺碑), 마운령비 (磨雲嶺碑)와 함께 신라 진흥왕 4대 순수비(眞興王巡狩碑)의 하나인 창녕비(昌寧碑)다. 서기 561년에 건립되고 이듬해에 고령 대가야를 통합했으니 아마도 그 이전에 축조된 것 같다. 신라가 가야를 치기위해 군마를 방목하던 곳이어서 목마산성이라 전한다. 산성은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등산로는 산성을 따라있는데 풀이 우거진 등산로는 간밤에 내린 이슬로 온통 신발과 바지가랭이가 다 젖었다. 30분을 걸어올라 돌탑이 있는 곳에서 산성은 끝나고 송림이 우거진 능선 길을 혼자서 걸으며 자꾸만 송이가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자하곡 갈림길에 당도하니 자하곡매표소에서 도성암을 거쳐 올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개천절이라 젊은 부모들은 자녀를 데리고 오르는 모습도 보이고 이제부터 나 혼자가 아니다.
<화왕산 정상>
<화왕산 정상 주변의 풍경>
화왕산(火旺山757m)정상이다. 10시50분 목마산성 입구에서 여기까지3,8km, 2시간10분 소요됐다. 산성분지 안에는 은빛 억새꽃이 만개했다. 일기예보에 맑다고 했는데 구름이 많다. 날씨만 좋으면 조망이 좋은 산인데 말이다. 멀리는 흐리니 가까운 산 아래 창녕의 비사벌(比斯伐) 황금빛 들판을 내려다본다. 저 서쪽 들판 끝에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가 옛 고령 대가야 땅이다.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朴堧1378~1458)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인 가야의 우륵(于勒?~?)이 고령 대가야의 가실왕(嘉實王)의 명을 받아 궁중 악사로 가야금을 제작하고 연주했다.
형제가 다투면 집안이 망하고 권력이 다투면 나라가 망한다 했는데 권력층은 밤낮 백제파와 신라파가 세력다툼을 하여 백제파가 득세를 하자 그는 신라에 망명하여 진흥왕의 악사로 활약했다, 우륵의 가야 음악이 신라의 향악으로 채택될 즈음 일부 신하들이 “망해가는 가야의 음악이 신라의 음악이 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진언하자 진흥왕은 “음악에도 국경이 있는가? ”하고 신라의 향악으로 채택되자 채택이 확정 선포되는 날 진흥왕순수비의 하나인 창녕비(拓境碑, 국보 제33호)가 세워졌다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억새분지 산성밖 암벽>
정상으로부터 억새 길을 내려와 환장(換臟)고개다. 화왕산성 서문이 있던 자리로 여겨지는 환장고개는 지금 아무런 표시가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자하곡매표소에서 자하동천을 거슬러 2,4km 오르면 여기에 닿고 억새분지가 펼쳐지는 곳, 빠른 걸음으로 정상까지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류좌판을 벌려 놓고 등산객을 불러 모은다. 정상에서 배 맨 바위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쯤에서 높이가 가장 낮다. 때문에 겨울철 북서 계절풍이 강하게 불 때면 화왕산을 지나던 바람은 이곳으로 한꺼번에 몰려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산성분지 안쪽에 돌풍을 일으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쉽지 않는 어느 산에도 볼 수 없는 이름도 괴상한 고개다. 환장이란 오장(五臟; 간장, 심장, 폐장, 신장, 비장)의 위치가 뒤 바뀐다는 뜻,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속상할 적에 “환장 한다”고들 말한다. 재래시장 좌판 자리다툼 할 적에 많이 들을 법한 용어이다. 옛적 연례행사처럼 애써 지은 농사 추수를 앞두고 낙동강 범람으로 농경지가 물에 잠겨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이곳에 올라 내려다 볼 때 느끼는 감정을 두고 붙인 이름일까?
<환장고개에서 배 바위로 오르는 산성길 바깥풍경>
키 3m 가 족히 넘을 듯한 억새가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산성 길을 따라 배 바위로 향했다. 이윽고 능선삼거리에 올라섰다. 화황산 정상으로부터 학현산(579m)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과 배 바위 길의 갈림길이 있다. 좌측 길을 택해 5분 거리에 배 바위가 있다. 이곳 능선을 경계로 억새분지 쪽은 완만한 억새밭이고 바깥쪽은 바위 절벽이다.
<낙동강 범람으로 물난리가 날 때 마다 배를 매달았다는 배 바위>
배 바위(船岩742m)다. 여기서 건너다보는 둘레 2,4km의 동쪽으로 트인 산성 내 5만6천여 평의 억새분지가 한눈에 펼쳐지고 건너편 정상주변의 마루 금이 장쾌하다. 이산 서쪽 창녕읍에서 바라보면 산의 모습이 환장고개를 중심으로 정상봉과 배 바위 봉우리가 좌우로 솟아 요(凹)자 형이다. 옛적 낙동강 범람으로 연중행사처럼 물난리를 겪던 창녕사람들은 속칭 배 바우라 했다. 남해안이나 서해안 저지대 상습침수지역에 배 맨 바위 (배 바우) 또는 돛 대산(돛 대봉)등의 이름이 많다. 옛적 물난리에 배를 매 달았다는 전설이 있는 일명 배 맨 바위라고도 하는 바위가 있는 바위봉우리다. 겨울철 강한 북서계절풍이 불면 환장고개를 통과 할 때는 병목현상을 일으켜 돌풍(突風)으로 변하고 억새분지 안에 들어오면 분지 벽에 부딧쳐 역풍이 부는 등 광풍(狂風)으로 돌변한다.
<배 바위 헬기장에서 바라본 화왕산 정상 마루금>
2009년 2월9일 저녁 창녕군이 주관하는 “정월 대보름 화왕산 억새 태우기 축제” 때 전국에서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십여 명이 사망하고 육십여 명이 부상한 대참사가 발생한 곳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배 바위 주변에서 대부분 사고를 당했다. 이곳은 억새분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뒤돌아서면 보름달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철 강한 북서 계절풍은 이지점으로 내몰았고 삼킬 듯 달려드는 불꽃과 검은 연기가 덮쳐 사망하거나 불길을 피하다가 연기로 방향감각을 잃고 바위 낭떠러지에 추락하여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날 나도 여기 오려고 계획을 세워 두었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 보름달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취소했더니 바람이 구름을 몰아냈는지 해질녘이 되자 구름이 걷혀 못간 것을 못내 아쉬워했었다. 이날 저녁에 사고소식을 듣고 세상일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억새 태우기는 달집태우기와 겸했는데 이는 화왕산의 이름처럼 불을 피워 연례행사처럼 낙동강 범람으로 상습 침수지역이 많은 창녕 주민들이, 불로서 물을 말린다는 뜻으로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오랜 풍습으로 행해졌다.
<최근에 복원된 동문 주변의 풍경>
<고산습지의 하나인 억새분지 용늪 주변의 풍경>
산성 길을 따라 내려와 용늪이다. 태고의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 습지식물인 버드나무가 용늪을 지키고 있다. 분지 안에는 3개의 못과 9개의 샘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용늪은 옥천계곡수의 발원지가 된다. 15년 전만해도 제법 큰 물웅덩이에 물봉선화, 물 여뀌, 물 창포 등의 수생식물과 여러 곤충들이 보였다. 늪을 지나가면 출렁다리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토사와 부유물이 쌓여 용지가 지금의 용늪으로 변하기 이전에는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습지를 보호 한다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흉측스럽게도 사각형 인공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자연보호는 출입을 제한하여 훼손을 막는 일과 나무을 심는 일 밖에 없다. 산을 파헤치거나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자연보호가 아니다. 환장고개 노점상의 말이 생각났다. 창녕군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서 습지를 보호한다고 파헤쳐 놓았는데 오히려 환경을 파괴했다는 여론이 일자 원상복구를 하려해도 예산이 없어 저래놓고 있단다. 산악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산은 생명수의 근원이고 기근으로 세상 사람들이 굶주릴 적에 마지막 식량 창고였다. 옛 부터 배산임수에 터를 잡고 산에 깃들어 살아왔다. 사람에 의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도 산으로 가고, 육신의 질병으로 병원에서 못 고친다 하는 사람도 마지막으로 산으로 간다. 산(山)이 살아야 사람이 산(山)다. 그래도 안 되면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부모는 나무를 심고 십년 동안 가꾸어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아이가 직접 가꿀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고유한 전통풍습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참 좋겠다 싶다.
<창녕조씨 득성비 앞의 야생화(쑥부쟁이)군락>
자리를 옮겨 억새와 들국화가 만개한 창녕조시 득성비 앞이다. 때를 놓일세라 벌과 나비들이 총 집결했다. 그들에게는 추위가 오기 전에 마지막 꽃이 아닐런가? 비명은 “昌寧曺氏得姓 之 地”다. 비문에 다른 설명이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연을 알지 못하고 지나다닌다. 사연은 이렇다. 대한민국 오천년 사 창녕 조 씨 편에 기록되기를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진평왕의 사위라 전하고 그의 어머니 예향 (禮香)이 혼기에 이르러 우연히 복중(腹中)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계 하고 병이 나은 후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겨드랑이에 조(曺) 자가 있어 성을 조(曺)로 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짓고 이후에 관향을 창녕이라고 했다한다.
<창녕조씨 득성비>
창녕 조씨의 가문을 빛낸 양대 인물은 조선시대의 학자로 수다한 시문을 남겼고 망우당 곽재우장군을 비롯하여 점필재 김종직선생 등 수다한 학자를 양성 배출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선생이고, 또 한사람은 고당 조만식 (古堂 曺晩植1882~?)선생이다. 고당선생은 오산학교 교장, 조선일보사장을 역임한 교육자요 언론인이었으며, 평양 산정현교회의 시무장로로 있을 당시 자신의 제자가 신임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장로들을 호명하자 그는 주저 없이 “예!”하고 기립자세로 응했다는 일화와 함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그를 존경하여 송사가 있으면 먼저 그에게로 가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일화가 있다. 고당선생은 분단 이후 지인들이 공산치하에서 자유대한으로 월남을 권유했으나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면서 거절했는데 지금껏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를 알 수 가 없다.
<동문 앞에서 바라본 정상 쪽 풍경>
<동문 앞에서 바라본 억새분지>
동문으로 자리를 옮긴다. 12시10분 화왕산성 (火旺山城 사적 제64호)이다. 임진왜란 때 재축하여 최근에 일부 복원했다. 화왕산성과 곽재우장군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익공(忠翼公) 망우당 곽재우(忘憂堂 郭再祐 1552~1617)장군은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생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1592~1598)이 일어나자 고향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그곳 자굴산 대의(大義)고개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장군은 관향인 현풍 비슬산 초곡산성을 쌓던 중에 왜군이 재침한 정유재란(丁酉再亂1597~1598)이 일어나자 창녕과 그 인근 고을의 군사를 거느리고 화왕산성에 들어갔다. 수많은 의병들이 모여들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을 맹서하는 서명 문에 서명하고 화왕산성을 지켜냈다. 산성 안에 나무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만약 이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나와함께 저 불 더미 속으로 뛰어들어 이 몸 불태우자며, 그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붉은 옷을 즐겨 입었다. 그래서 왜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백성들을 구하려고 하늘이 내렸다하여, 그는 천강 홍의장군(天降 紅衣將軍)이란 별명을 얻었다. 천강 홍의장군이 지키는 화왕산성 공격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겁을 먹은 왜군은 남원으로 가기위해 함양 황석산성으로 진로방향을 틀었다. 불과 관련이 있는 화왕산의 산 이름과 홍의장군의 별명이 어쩌면 이렇게도 유사한가? 홍의장군의 시
有召命(유소명)
九載休糧絶鼎煙 (구재휴량절정연) 아홉 해 동안 양식이 없어 솥에 밥 짓는 연기 끊어지니
如何恩命降從天 (여하은명강종천) 어찌하여 은혜로운 명령이 하늘로부터 내렸다하는가
安身恐負君臣義 (안신공부군신의) 내 몸을 편안히 함은 군신의 의리 저버릴까 두려우니
濟世難民羽化仙 (제세난민우화선) 백성들을 구제함이 신선이 되기보다 어렵구나!
<MBC-TV 드라마 촬영지(허준, 상도 등)>
동문을 나와 오솔길을 따라 십여 분 만에 십년 전 MBC-TV드라마 “허준”의 촬영지를 지나, 개나리 숲이 우거진 임도를 따라 옥천리에서 고암리를 넘어가는 임도를 만나는 옥천 갈림길이다. 여기서 정면 능선 길을 택하면 관룡산을 거처 영축산을 지나 거리 약17km인 부곡온천 뒷산인 덕암산까지 6시간이면 갈수가 있고 관룡사로 내려 갈수가 있다. 동쪽 임도는 고암면으로 하산하는 길이고 서쪽임도는 옥천매표소로 하산하는 길이다. 다시 오르막 능선이다. 관룡산 삼거리다. 좌측 길은 15분 거리의 관룡산, 우측 길은 용선대를 지나 관룡사를 거처 옥천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용선대 능선에 들어서면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도 화왕산 분지전경을 볼 수 있는데 오늘 보니 숲이 자라 시야를 가린다. 이곳 관룡산 쪽에서 화왕산을 바라보면 억새분지가 동쪽으로 터져있는데, 오전 아홉시 이전 봄가을 일교차가 심할 때 용지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나 물안개는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산이 바로 관룡산(觀龍山745m)이다.
<관룡산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용선대(龍船臺555m)다. 멋진 바위봉우리 위에 앉은 관룡산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龍船臺 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19호)은, 관룡사 서쪽 암릉 용선대 위에 조성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용선이란 험한 인생살이를 불교식으로 표현한 용어다. 이 불상은 특이하게도 왜구의 침략의 동태를 감시하는 듯 동쪽을 향하여 임진왜란때 불탔던 관룡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룡산과 관룡사>
오늘은 산행을 마치고 우포늪으로 갈 예정이라 관룡산으로 가지 않고 용선대와 관룡사를 거처 옥천매표소로 하산하기로 했다. 용선대 관룡사를 거처 옥천매표소에 도착하니 14시50분 이드라. 10분 전에 창녕행 버스가 떠나고 다음 버스는 시간표 보다 10분 늦은 16시40분에 있단다. 잔뜩 짧아진 해에 여기 앉아서 우포늪 구경하기 생겼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창녕군청~창녕 석빙고~목마산성 등산로 입구~목마산성~정상~환장고개~배 바위용늪~창녕조씨 득성비~동문~용선대~관룡사~용천리매표소, 오늘 행로는 거리13,5km, 소요시간 6시간10분이다.
2013년 10월3일 목요일 구름
첫댓글 가을 산행에 유명한 곳 이지요.
자세한 정보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신 휴일이 되십시요.
금년은 더위가 오래 지속되어 화왕산 억새는 다음주가 절정이 될것같습니다.
억새산행은 날씨가 맑을수록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억새로 유명세를 다투는 화왕산이로군요.
화왕산은 장흥의 천관산과 더불어 양대 억새 명산이지요.
다른 점이라면 화왕산은 산정 분지에 군락을 이루고,
천관산은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는 점이 다르다 하겠지요.
그때 억새태울때 큰 충격이였답니다.
환장이란 말은 몰랐는데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 단어는 살면서 안쓰는게 잘 사는것이겠습니다.
산행일기를 쓰실려면 자료 준비와 기록을 늘 하셔야하니 대단하십니다.잘 보고갑니다.
많이 다녀본 산이라도 늘 공부를 해서 가지요. 똑같은 길이라도 다른 사람들 보다 언제나 더 많이 걷습니다.
화왕산 본문중에 고당 조만식선생의 사망 연도와 사망사유를 알수없다 했는데 최근 1950년 평양형무소에서 인민군에 의하여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음을 알려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