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정월 대보름 이야기
안부 문자를 보낼 때, 그 시기가 명절이나 절기일 경우에 옛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려 글을 쓰다보면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 되고 만다.
수년 전에 쓴 글을 소환하여 조금 덧붙여 안부 문자를 보낸다.
오늘은 을사년 정월 대보름이다. 날이 흐려 보름달 뜨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곳곳에서 보름달이 뜨기를 기다려 달집태우기 행사를 할 건데 기관장이나 인삿말 하실 분들은 좀 아쉬울 것 같다.
오늘 우리집 아침 밥상은 찹쌀에 검정콩, 강낭콩, 팥, 수수, 조, 율무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중 강낭콩은 내가 생산한 거다. 고슬고슬 맛났다.
나물도 여러 가지! 지난 가을에 직접 따서 말린 고구마줄기, 고춧잎, 가지, 배추 무 시레기 나물도 있었다. 묵나물이 해조류나 생야채로 만든 나물보다 맛날거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입맛이 변한건지...
고마울 따름이다. 이 나이에 오곡밥에 갖가지 나물 반찬으로 정월 대보름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마음 속으로 엎드려 절한다.
집사람은 어제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에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하여 아들 일터에 전해주고 왔다. 음식을 만들어주면 잘 안 먹는다고 조금만 조금만 노래부르는 녀석이 뭘 좋다고 사흘이 멀다하고 갖다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옛날 생각이 난다. 이날만은 가마솥 위 찜솥 가득 오곡밥을 쪄 밥 얻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담아주던 할머니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밥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끼니 잇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여러 집에서 받은 대보름 오곡밥으로 얼마간은 양식 걱정 덜었을 것이다.
이웃간에도 서로서로 바꾸어 먹기도 했다. 여러 집 오곡밥을 먹으면 복 많이 받는다고도 했다. 우리 엄마가 해주신 우리집 오곡밥이 제일 맛나다고 느꼈듯이 내 고향 친구들도 자기네 오곡밥이 제일 맛나다고 그리 생각했을 것 같다.
이날에는 소한테도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주었다. 큰 바가지로 수북하게 떠주면서 맛있게 먹는 소를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모습도 생각난다. 잘 먹고 올 한 해 농사 잘 부탁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소도 가족이었다.
부럼깨기와 귀밝이술도 한잔 했다. 부럼은 지난 해 내가 생산한 땅콩이다. 을사년 올해는 부스럼 걱정 없고 잘 들리지 않는 오른쪽 귀로도 전화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부럼깨기 귀밝이술 이런 거 아니 하면 은근 염려된다. 혹시 혹시 잘못 되면 어쩌지 하고...ㅎㅎ
기억하나? '더위 팔기!' 누구야 하고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다 사가라." 했던 그 추억의 '더위 팔기' ㅎㅎ 대답하면 진짜로 여름에 더위 먹을까봐 입 꾹 다물고 못 들은 척 했던 그 날의 모습들! 우습기도 하다.
옛날에는 여름철에 더위를 먹으면 몸을 해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미리 더위를 먹지 않도록 예방하려는 주술적 방법이 세시풍속으로 정착된 것이라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다.
지신밟기! 귀를 째는듯한 꽹과리 소리, 심장을 울리던 북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집집을 돌며 지신을 달래는 동네 농악대를 한참이나 뒤따라 다녔다.
달집 태우기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불길에 대나무 마디 탁!탁! 터지는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벌겋게 불타는 달집 주위를 동네 농악대 꽁무니를 따라 빙빙 돌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동네마다 있던 농악대는 아주 예전에 사라졌고 자연마을 단위로 지었던 달집도 행정단위별로 한다.
그 옛날 어른들은 그 불타는 달집 앞에서 두손을 비비면서 빌고 또 빌고 했다. 그랬겠지. 내 새끼들 잘 되게 해달라고... 우리 식구들 다 건강하게 해 달라고... 올해는 농사 잘 되어 배곯지 않게 해 달라고...
나이 들어서야 그 때 그 어른들을 이해했다. 활활 타오르는 그 불길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과 어디 가서도 풀 수 없었던 서러움을 타오르는 불에 태워 버렸을 거라고... 달집 태우기는 민속놀이 그 이상이었다.
그 달집에 겨우내 날리고 놀았던 연을 태웠다. 아까웠지만 어른들이 이제는 태워 날려보내야 한다는 말에 그 의미도 모른체 불에 타 사그러지는 내 연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금 이렇게 별탈 없이 살고 있는 그 이유가 그 연에 액운을 태워 없앤 덕분일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불꽃이 좋아 뛰고 또 뛰고 놀았다. 동네 어른들도 아이들도 다 들어간 뒤에도 홀로 남아 사그러지는 불을 대막대로 뒤적이면서 늦게까지 바라보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 어린 나를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다.
동네 경로당에서 남자 노인들과 대보름 행사를 했다. 70이 넘어도 노인이라는 의식이 별 없어 참석하기가 어색하고 쑥스럽다. 짜장면 팔보채 등 중화요리로 점심. 정월 대보름에 중국음식이라니! 세상 많이 변했다.
경로당에 가면 나는 청춘이다. 아니 아기다. 친구 아버지, 친척 아재들도 계신다. 그 옛날 약주 한 잔 드시고 호탕하게 웃고 말씀하시든 어른들이 약주도 음식도 잘 드시지 못 하고 말씀도 많이 안 하시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 짠했지만 나도 저 나이될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대보름 세시풍속의 외형적인 모습은 점차 사라져 가겠지만, 그것에 담긴 의미 - 나눔 어울림 등 이런 내면적인 것은 계속 전해졌으면 좋겠다.
날이 아직 차갑지만 곧 추위도 풀린다니 건강 지키면서 봄 기다리자. 봄되면 좋은 일도 많이 생길거라 믿는다.
을사년 정월 대보름 날에
삼천포에서 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