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통술의 역사 |
한국 최초의 술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 때 행사에서 사용되었으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제조되었던 술의 명칭이 기록에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술의 이름이 구체화되는 동시에 양조기술이 정형화되어 조선시대로 전해졌다. 조선시대의 고급주에는 각종 곡물과 과일을 비롯하여 인삼, 솔잎, 대나무 잎 등 약재를 넣은 약용주, 국화, 진달래, 매화, 장미꽃 등 꽃을 넣어 향을 더한 가향주도 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 전통술의 전수가 잠시 주춤하여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원료인 곡류에서 고구마, 밀가루 등을 사용하면서 맛과 질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1971년부터 쌀로 빚은 막걸리가 다시 생산되었고, 1985년에는 각 지역별 주요 전통술을 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1994년에는 주요 전통술을 제작하는 기능 보유자가 민속주 명인으로 지정되어 전통 민속주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여러 민속주는 각 가문을 대표하는 술이 되어 맏며느리들에게 전수되면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유추해 보면 원시시대의 술은 얻기 쉽고 만들기 쉬운 과실주가 성행하였을 것이고 유목시대에는 유주, 그리고 농경시대에 늘어가면서 곡물을 이용한 곡주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 |
|
2. 술의 어원(語源)과 효능(效能) |
술의 어원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수울 혹은 수을'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수블은 '수블 > 수울 > 수을 > 술'로 변화를 거쳐 술 로 정착되었다. 수블 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술을 빚는 과정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즉, 술을 빚을 때 발효가 이루어져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며 거품이 괴어오르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발효 현상은 옛사람의 눈에는 참으로 신비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물에서 난데없이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정확히는 물불'이겠지만, 물은 한자의 수(水)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술이 발효하는 이 오묘한 현상에 대해 옛사람들은 여기에 주술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술 만드는 일(釀造)만은 자기 암시에 걸리기 쉬운 부녀자들이 맡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궁중요리는 원래 남자들이 맡고 있었으나 유독 주인(酒人), 장인 등의 술의 발효와 관계되는 일은 여자들이 담당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또한 술 중에서 불과 관계 깊은 것이 소주인데 알코올 성분이 강한 이 술은 화주(火酒)라고도 하며, 불이 붙는다는 의미의 소(燒)를 술 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유추된다.
술은 좋은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식화지(食貨志)에는 술을 백약(百藥)의 으뜸이라 하였으니 적당히 마시면 이보다 더한 영약이 없지만 지나친 과음은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된다. | |
|
3. 제주도지역의 전통술 |
|
|
4. 전라도지역의 전통술 |
진도홍주(전남 진도)
진도홍주는 여느 소주와 마찬가지로 밑술을 증류해 만드는데 여기에 지초(지치과의 다년초 식물)를 사용해 빚는 술이다. 이 술은 붉은 빛이 도는데 그 이유는 지초를 이용하기 때문인데 원료로 쌀이 아닌 보리가 쓰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술이 처음 빚어진 때는 고려시대라는 말이 있으나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이다. 세조 때 허종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한씨 성을 가진 현명한 부인이 있었다. 9대 성종 때에 윤비의 폐출 문제로 어전회의가 있었는데 허종의 부인은 윤비폐출로 인해 후에 분명히 화를 입을 것을 알고 아침에 허종에게 독한 술인 홍주를 마시게 하여 회의에 갈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윤비의 소생인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의 복수를 하기 위해 '갑자사화'를 일으켰을 때 허종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후에 한씨부인의 후손들이 홍주의 비법을 전수 받고 진도지방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진도구기자술(전남 진도)
 진도의 구기자술은 진도 홍주와 담그는 법이 같다. 먼저 구기자주를 담그는 데 쓸 쌀소주(밑술)를 빚는다. 그리고 잘 마른 구기자와 지골피를 알맞게 넣어, 다시 3개월쯤 숙성시켜 건져낸 다음 오래 보관할 용기에 옮겨 계속 숙성시킨다. 일반 과일주와 마찬가지로 3개월이 지나서부터 먹을 수 있지만 1년 이상 3년을 숙성해야 진도 구기자술은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잘 익은 구기자술은 밝은 갈색으로 투명하고 순하지만 혀끝에 톡 쏘는 듯하면서 쌉쌀한 여운이 남아 고급주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술의 도수는 13∼15도로 떨어져 누구나 마시기에 편하면서 약효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한다.
담양추성주
추성주는 현존하는 민속주 가운데 가장 많은 약재를 사용하는 술로 알려지고 있어 제세팔선주 라고도 불리 우는 술이다. [추성지]에는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약초 등을 캐다 술을 빚어 마셨는데, 이 술은 신선주로 허약한 사람들과 애주가들이 애음했으며, 그 비법은 구전하고 있다 고 한다. 추성주는 특수한 향취와 은은한 맛이 있어,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보양효과가 높으면서 해열, 진정, 구충, 혈압강하, 소염, 고혈압, 당뇨, 신경통, 방광염, 동맥경화 예방, 중이염, 노화, 간염, 피부염, 신장염, 심장병에 그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송화백일주(전북 완주)
송화가 술에 담겨져 최소 1백일 이상 소나무 밑 땅속에서 발효된 다음 다시 증류과정을 거쳐 알코올도수 38도의 화끈한 약소주가 된다. 색깔이 투명하며 은은한 솔향이 입안에 감돈다. 알코올도수가 38도이므로 급히 마시지 말고 포도주처럼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송화 백일주는 인조 때 명승 진묵대사가 모악산에 수왕암을 짓고 경선중 산에 서식하는 각종 약초를 중심으로 만든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곡차라 하여 지극히 정성을 기울여 제조된 술이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왕사는 독특한 향취와 자색빛 송화 백일주와 송곡오곡주가 전수되는 유일한 곳이다.
전주 이강주
이강주는 전라도 전주, 익산과 완주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 나라 최고급 에 속하는 술로서 옛날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시던 술이다. 이강주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중엽에 그 제조가 성행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황해도지방과 전북지방에만 울금을 재배토록 해 진상품으로 바치게 했는데 울금나무의 뿌리인 울금은 조선왕실의 진상품으로 신경안정에 효과가 있는 약재이다. 이 때문에 울금이라는 독특한 재료를 넣어 만든 이강주는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 198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강주는 이 고장의 명산인 배와 생강을 빚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술 색깔이 연한 노란색. 은은한 계피향이 입안에 감돌며 꿀 등이 들어가 첫잔의 거부감이 없다. 조선 후기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는 최고의 명주로 소개되어 있고, 고종 때는 한미통상과정에서 우리의 대표 술로 소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낙안 사삼주(전남 낙안)
사삼주는 더덕과 찹쌀로 발효한 술로 색깔이 갈색으로 술병을 열어놓으면 더덕향이 강하게 풍긴다. 알코올도수는 14도로 소주와 맥주의 중간이다. 찹쌀로 고두밥을 만들고 더덕을 잘게 잘라 넣어 보름동안 숙성시켜 만드는 사삼주는 거담, 강장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숙취가 없는 술로 알려져 있다.
호산춘(전북 여산)
전라북도 익산군 여삼면의 최고급 특주로서 옛 문헌인 [산림경제], [임원십육지]에서 소개되는데 여산의 옛 이름이 호산(壺産)이었으므로 이 고장 이름을 따서 호산춘이라 하였다. 봄 춘(春)자가 붙는 술은 대개 3번의 덧 술을 하여 100일 동안 빚는 고급 청주로 문인 집안이나 상류사회에서 빚어 마시던 술 이름들이다.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碧香春), 경상도 호산춘(湖山春), 이산춘 등이 있는데 조선시대 때부터 유명하게 알려졌던 고급 청주이다.
죽력고
대나무가 많이 나는 호남지방에서 빚어져 내려오는 특유의 술이다. 소주에 죽력을 넣어 고은 술로 약소주의 일종으로 쓰여 지다 보니까 고(膏)자를 붙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료로는 생지황, 계심, 석창을 가루내어 꿀을 섞고, 여기에 죽력을 넣은 후 찹쌀, 누룩 등과 같이 술을 빚으면 진한 액체가 된다. 푸른 대를 구워 끈끈한 진액을 뽑아 만든 술이기 때문에 죽력(竹瀝)이 라 부르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생강즙을 넣기도 하며 누룩, 찹쌀 대신 소주를 넣어 먹기도 한다.
완주 송죽오곡주(전북 송곡)
원기 회복과 정력 증진에 효과가 크며 신경통과 신경쇠약에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드러우면서 뒤끝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섭씨 6℃ 이하로 차게 해서 마셔야 부드러운 맛과 단맛, 신맛, 쓴맛, 떫은 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송죽오곡주는 조선조 인조 때 명승 진묵대사가 해발 800m의 모악산 정상부근에 수왕사를 중건한 후 참선하면서 고산병을 예방하고 편식에서 오는 신체적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 빚은 술이다.
선운산 복분자술
복분자술은 술 빛깔이 마치 아침에 핀 해당화처럼 맑고 붉은 술로서 일찍이 애주가들의 보양제로 각광을 받아왔다. 복분자 술은 1년생 나무인 덩쿨장미처럼 생긴 산딸기과의 복분자 열매로 빚은 선운산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복분자술은 강장효과가 지나쳐 분자(요강)를 뒤엎는다는 데서 유래가 된 술로서 산딸기를 원료로 하며 강정효과가 높은 술로 알려져 있다. 특히 복분자 열매를 채취할 때는 물론 술을 빚는 동안에도 철저히 금남(禁男)구역으로 통제한 상태에서 부녀자들만의 정성을 쏟는다. 이처럼 정력에 좋다는 복분자술도 한때 시류(時流)에 밀려 생산이 저조해지자 일부러 애주가들은 선금을 주고 부탁해서 겨우 진품의 미각을 맛보고 있는 실정이다.
해남 진양주
알코올 도수가 15도 내외인 청주류로 그 맛이 부드럽고 은은할 뿐만 아니라 오묘한 향이 입안 가득히 퍼지는 독특함 때문에 일찍부터 해남과 인근 남해안 일대에 애주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취기가 진득하게 오랫동안 남으면서도 뒤끝이 깨끗하다.
매실주
 술 담그는 매실은 익기 바로 직전에 딴다. 파란 청매를 설탕만 넣어 설탕에 절어 즙이 나온 뒤에 소주를 붓는 방법이 있고, 처음부터 소주에 담그는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30∼40도 가량의 독한 술이 알맞지만, 소주도 상관없다. 술의 양은 매실의 3∼5배 가량이면 알맞고, 주의해야 할 점은 매실주는 너무 빨리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적어도 담근 지 여섯 달에서 1년쯤 넘겨야 안전하다. 또 술 속에 뜬 매실은 3∼4개월이 지나면 꼭 꺼내 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술 빛깔이 맑고 투명해진다. 너무 오래 두면 술이 탁해질 뿐 아니라 씨가 우러나 시고 텁텁해질 우려가 있다. 이렇게 담근 매실주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주로, 약용주의 대표격으로 여겼다.
| |
|
5. 경상도지역의 전통술 |
청송 불로주
청송 불로주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과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해온 술로서 그 유래는 안동, 청송 등 경상도 북부지방에서 그 제조비법이 전해져 왔다. 청송 불로주는 청송군 진보면 신촌리 지방 암반 층에서 뽑아 올린 탄산약수에 철분을 여과시켜 천연미네랄이 풍부한 약수, 그리고 쌀 100%와 토종 우리 밀로 재배하여 만든 누룩으로 발효시켜 증류한 다음 오랜 기간 숙성을 통해 빚어진 순곡 증류식 소주이다. 청송 불로주는 맑고 투명한 빛깔과 그 맛이 부드럽고 마신 후 신경자극성이 없으며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취가 은은하며 칵테일에도 일품이다.
호산춘
문경군 산북면 집성촌을 이뤄온 황씨 집안의 가양주로 대대로 제조기법이 전수되어 경상북도 무형문화제 18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쌀 1되에 900㎖ 한 병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 여름철에는 변질이 심해 생산할 수 없다.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솔잎향기와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짜릿한 느낌을 온몸에 전해진다. 옛날부터 술에는 알코올도수가 높고 담백한 맛이 있는 술에만 이름에 춘 자를 붙여 왔으며 현재 전국의 민속주중 이 술만이 춘 자를 사용하고 있다
경주 교동법주
 경주법주란 경주의 최씨 문중의 비주(秘酒)로 일정한 규격에 따라 빚는 술이란 뜻으로 법주란 이름은 [고려도경]이나 [고려사]의 기록에 나와 이미 고려시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 교동법주는 입에 착 감기는 맛과 은은하고 독특한 향기를 뿜어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즐겨 마셔온 경북 경주의 술이다. 이 술은 백일 동안의 정성으로 담그기 때문에 곡주 특유의 감미로움과 주향(酒香)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제조량이 워낙 적어서 열흘 단위로 술이 빚어지는데, 그 날이면 경주시 교동 최부잣집은 이 술을 구하기 위한 애주가들이 장사진을 이루나 웬만한 정성으로는 술맛을 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전통방법으로 제조하는 교동법주는 대량생산되는 경주법주와 맛이 다르다.
함양 국화주
국화주는 중양절(重陽節)의 세시음식의 하나로 재료는 해마다 지리산에서 피어나는 야생국화와 찹쌀, 생지황, 구기자 등이 사용된다. 국화주는 알코올 농도가 소주보다 약한 16도 정도라서 음주 후 머리를 아프게 하는 아세트알데히드 등의 성분이 다른 술에 비해 적게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양절(重陽節)은 음력으로 9월 9일이며 양의 최고 숫자인 9가 겹쳐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고 하였다. 이 날 양반들은 국화주를 들고 산 위에 올라 풍즐거풍 을 하였다고 한다. 풍즐거풍이란 상투를 풀고 옷을 벗어 바람과 햇볕에 몸을 노출시키는 행위인데 이런 행위로 몸밖의 음기를, 국화주를 마시는 것은 몸 안의 음기를 내보내는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부산 산성막걸리
부산 산성막걸리는 우리 나라 막걸리로서는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부산의 대표적인 토속주로 토산주 라는 고유상표로 판매되고 있는 전통술이다. 태백산맥 금정산의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동래산성 동문 입구에서부터 그윽한 향취와 술내음이 풍긴다. 금정산의 산수와 전국에서 으뜸이라는 누룩으로 빚어 막걸리로서 그 향과 맛이 일품이며, 탁주로서 유일하게 민속주의 반열에 올라 있다. 부산 산성막걸리는 조선조 숙종 32년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축성을 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이 늘어나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성을 쌓기 위해 각지에서 징발된 인부들이 이 막걸리를 마시고 공사가 끝난 뒤,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하며, 그 이후 전국에 그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
김천 과하주
김천 과하주는 경북 금릉군 내향면에서 50여평 규모의 공장에서 알코올도수 16도로 월평균 0.7ℓ들이 9백여 병이 생산되고 있는 과하주이다. 1987년 5월 경상북도로부터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된 후 1991년 8월 국세청에서 제조면허를 받아 시중에 출하되고 있다. 김천 과하주는 23~25% 정도로 한여름 복더위에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 과하주는 술맛이 달작지근하고 곡주 특유의 향기와 맛이 일품이며 숙취가 없어 애주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데 임금에게 진상되는 전국의 72가지 술 중에서도 상품으로 꼽혔다.
남해 유자주
남해 유자주는 누룩에 유자를 섞어 만드는 민속주로 남해유자주의 누룩은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정성이 필요하다. 누룩은 초겨울에 딴 유자를 깨끗이 씻고 물기를 없앤 다음 속청을 제거하고 껍질을 채친다. 밀을 맷돌에 거칠게 갈고 유자생채와 물을 섞어 되게 반죽한다. 삼베보자기로 싸서 누륵 틀에 넣고 단단하게 만들어 25℃정도의 따뜻한 온돌방에 쑥이나 짚을 깔고 위를 덮어서 30일 정도 띄운다. 밑술은 술 빚는 일이 끝나면 채주하여 여과시켜 마시며 그 빛깔이 황금빛을 띠며 특유의 향취가 있다.
달성 하향주
주향(酒香)이 은은하고 향기를 실은 듯하다 하여 하향주라 이름 지어진 술인데 지방에 따라 유가토주 또는 음동주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20도 정도로 주도가 놓은 청주인데 음지에 보관하면 해를 넘길 수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하향주를 빚기 시작한 것은 대략 신라시대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술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광해군 때 비슬산이 천연 요새로 국방상 가치가 있다 하여 군사 주둔이 시작되면서 이곳 토산주가 본격적으로 빚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광해군 때 주둔 대장이 왕에게 진상하니 독특한 맛과 취향이 '천하명주'라 칭찬받아 그 후 10월 상달이면 조정에 진상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여 내려온다. 그 후 40년 전에는 유가토주라 하여 간간히 빚어 왔으나 지금은 한두 집안에서만 빚어 내려오고 있다.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안동지방의 특유한 물로 쌀을 쪄서 술밑을 빚어 증류시킨 순곡주로 은은한 향취와 감칠맛이 나는 안동의 명물 중의 하나이다. 안동소주가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안동소주의 독특한 맛은 목정산의 맑은 물과 제조방법에 있다. 먼저 소주를 제조할 때 밀을 빻아 누룩을 만든 후 체에 넣고 일주일 동안 발효시킨다. 그런 다음 다시 일주일간 천천히 말려 잘게 부수고 멍석에 널어 며칠 동안 밤이슬을 맞힌다. 또 쌀을 물에 불린 후 한 시간쯤 쪄서 누룩과 골고루 섞어 독에 넣어 10여일 발효시키면 전술'이 된다. 이것을 솥에 담아 그 위에 소주고리를 얹어 장작불을 지피면 증류된 소주가 고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데 처음 나오는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90도까지 되어 아주 높다. 그러나 차츰 도수가 내려가며 증류수에 술을 알맞게 혼합해 45도 정도의 안동소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소주의 유래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인간의 지혜가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다.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되었다고 하며, 아라비아에서 원나라, 만주를 거쳐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 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 라고 하며, 우리 나라 평안북도지방에서는 아랑주 , 개성지방에서는 아라주 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주가 우리 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되었고, 그 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있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재 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증종실록"에는「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 (성종 21년)에 시간 조효동은 세종 때는 사대부 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비용 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지붕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셨던 술이었는데,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 |
6. 충청도지역의 전통술 |
면천 두견주(충남 당진)
 면천 두견주는 충남 면천의 진달래술을 말하는데 담는 방법이 독특하다. 면천 읍성은 충남 당진에서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중간쯤에 위치하며 야산들이 모여 산세를 이룬 아미산 자락의 해발 200∼300m 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이른봄이면 이산허리마다 진달래가 피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진달래를 따다가 꽃술을 빚어 마신다. 두견주의 기원은 고려왕조의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복지겸이 면천 땅을 봉읍으로 받아 면천 읍성에 내려왔으나 원인 모를 병에 결려 백약이 무효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어 그의 딸이 아미산 승가암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드리던 중 신령이 내려준 비법대로 술을 담아 봉양했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두견주에 들어가는 진달래꽃은 아미산 것이어야 하고, 술 빚는 물도 면천의 안샘물을 쓴다.
계룡 백일주(충남 공주)
계룡 백일주는 조선시대 인조가 반정의 일등공신인 이귀의 공을 치하하여 제조기법을 연안 이씨 가문에 하사하면서 양조법이 전수되었다. 계룡 백일주는 알코올농도가 18도로 부드럽고 감칠맛이 돌며 각종 유기산, 당질, 비타민, 무기질의 영양가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식욕증진, 혈액순환 촉진 등에도 효능이 있다. 특히 백일주는 멥쌀로 빚은 시판곡주에서 맛볼 수 없는 특유의 알싸한 맛을 내는 유기산이 풍부해 감칠맛이 돈다. 백일주는 이씨 집안의 제사 때나 관청의 주문으로 소량씩 제조해 오다가 정부의 민속주 개발정책으로 인해 생산량을 증가시켜 시판하고 있다.
한산 소곡주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은 술잔을 기울이다 과거일자를 넘겼고, 물건을 훔치러온 도적들은 술을 마시다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하여 소곡주를 앉은뱅이술 이라 했다 한다. 소곡주에 들어가는 물은 건지산의 물로 염분이 없는 대신 약간의 철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실제로 소곡주를 입에 담고 한참동안 음미하면 철분이 혀끝에 안겨주는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붉은 기가 감도는 노란색을 띠며 첫잔이 상당히 달콤하다. 과음을 한 후에도 머리가 아프지 않아 이 술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산 연엽주(충남 아산)
찹쌀, 멥쌀, 연잎, 솔잎, 누룩, 감초, 녹두, 밀, 이팥, 연향에 소나무향, 감초향이 배어 있어 은은한 감칠맛과 뒤끝이 좋은 알 코올도수 14도의 술이다. 영조 때 궁중에서 제조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말 비서감승 이원집(李原集)이 제조비법을 전했다. 시 어머니에서 맏며느리로만 전해지던 예안 이씨 문중의 전통약주로 [규합총서], [산림경제] 등 고문헌에 피를 걸러주며 혈관을 넓히고 남성의 양기를 보호한다 고 전한다.
중원 청명주(충북 중원군)
밑술과 찹쌀 고두밥을 첨가하여 21일 후 황갈색의 술이 되는데 갈증해소와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며 알코올도수는 17도이다.
담양 추성주와 죽엽청주
담양의 추성주는 마시기에 부드럽고 빨리 취하며 뒷맛이 깨끗한 것이 특징이며 강장, 신진대사 촉진에 좋고 알코올도수는 25도이다. 담양의 죽엽청주는 멥쌀과 누룩을 발효시킨 후 죽엽 등의 부재료를 넣어 약 2개월 이상 숙성시키는데 대나무 향이 나며 맛이 화끈하고 강장에 좋으며 알코올도수는 40도이다.
산성 대추술(충북 청주)
충북 청주 산성동 상당산성의 한옥 마을에 대대로 빗어오던 대추술은 알코올도수가 13도로 대추의 은은한 향과 누룩특유의 냄새가 적절히 조화된 솔잎의 향기가 어우러져 향토의 맛을 물신 풍기다. 대추술은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위를 튼튼히 하고 피로회복과 이뇨 작용에 큰 효과가 있으며, 특히 무더위와 피로에 적당량을 마실 경우 효험이 있어 전통주로 정평을 얻고 있다. 특히 이 곳 사람들은 위장이 약해지거나 여름철에 원기가 부족해지면 이를 약술로 마셨다고 한다.
충주 청명주
충주 청명주는 청명일에 빚는 계절주로 조선시대에는 임금께 진상되기도 하였던 술이며, 조선시대 창동마을은 뱃길 화물운송의 중심지로 조세창고가 있었다. 이 때 조세인 쌀 섬을 실어 나르는 일꾼들을 위해 빚었던 술이 바로 청명주였다고 한다. 한 겨울이 지나고 얼음이 풀리는 청명절에 조세 쌀 섬을 실은 배가 출항을 할 때 술을 몇 동이 싣고 떠난다.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술이었으나 뱃사람과 사대부와 상인들 할 것 없이 그 술맛을 잊을 수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 청명주이다. 이 소문은 서울까지 퍼져 임금께 진상되었고 그 후 청명주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명주로 이름을 떨쳤다.
가야곡 왕주(王酒)
가야곡에서 8년째 왕주를 빚어온 남상란씨는 친정어머니 도화희씨로부터, 도씨는 친정어머니 민재득씨로부터 술빚는 법을 전수받았다. 왕주는 조선시대 태종·숙종·고종의 와비를 배출했던 여흥 민씨가 빚던 술이다. 왕주는 야생국화·구기자·솔잎·누룩·엿기름과 어울려 소주와 맥주의 중간인 알콜농도 13동의 치기를 전달한다. 빚는 기간은 총 1백일로 다른 민속주에 비해 숙성기간이 빌다. 특히 왕주는 두통과 숙취가 없는 술로 알려져 있다. 백제의 땅에 조선의 술담그기가 천년만에 궁합을 맞춰 탄생된 술이 바로 왕주이다. | |
7. 서울·경기도지역의 전통술 |
문배주
문배주는 밀·좁쌀·수수가 주재료가 되어 만들어진 증류주로 문배나무 과실 향기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주는 고려시대부터 제조되어 내려온 함경도지방의 민속토속주로서 조·수수·밀 등을 발효시켜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증류시키는 구식 증류기를 이용하여 현재 극히 소량 생산되어 시중에 공급되고 있다. 문배주 제조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경찬씨로 4대째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증류된 술은 엷은 황갈색을 띠면 40도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갖는데 40도를 넘는 알코올 도수에도 불구하고 마실 때 목구멍이나 혀에 저항감이 없고 입안에 밴 향기가 가득 퍼진다고 한다. 문배주는 첫잔부터 돌배의 향기가 진하게 나 거부감은 없지만 목젖을 타고 내려갈 때쯤이면 과연 알코올도수 40도의 독한 술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술도가 곳곳을 둘러봐도 메조와 찰수수만 보일 뿐 정작 돌배는 없어 곡식의 교묘한 화학작용이 독특한 주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문배주는 곡류로 빚은 증류주이지만 소주나 일반 증류주와는 달리 상당히 부드러워 아직도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어나가며 외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삼해주
정월 첫 해일(亥日:십이지간 돼지날)부터 다음 해일 즉 12일 후 그리고 다시12일 후인 돼지날만 골라 세 번 안쳐 빚으므로 삼해주(三亥酒)란 이름이 생겼으며 담가 마시기까지 백일이 걸려 백일주(百日酒)라고도 한다. 버들가지가 날 무렵에 먹는다해서 버들가지술이라고도 한다. 삼해주는 고려 때부터 상류계층에서 사랑받던 술로 보통 약주와는 달리 세 번에 걸쳐 빚어 맛은 순하고 진하다. 그윽히 풍기는 향기는 뒷맛을 준다. 색깔은 투명하게 맑으면서 푸른 빛이 도는데 두고두고 일년은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춘주(春酒)이다. 삼해주는 누룩을 적게 사용하여 누룩에서 오는 거친 맛이 없고, 높은 도수의 청주를 만들어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향이 좋고 주도가 높은 약주이다.
백하주
백하주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청주로 [고사촬요],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규합총서] 등에 제조방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에도 이 술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백하주는 원료를 증자하지 않고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으로서 오늘날 이용되는 방법으로 술밥을 찌지 않는 무증자법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원료 증자와 냉각공정이 생략되면 작업이 간편하고 연료도 절감된다. 또한 술맛도 진해져 원래의 술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옛 식품관련문헌에 제법이 수록된 술로 천년을 이어온 전통주로 찹쌀과 누룩으로 생쌀발효법으로 빚는데 생선요리에 잘 어울리며 알코올 도수는 13도이다.
천대홍주
선홍빛의 쌀누룩을 주원료로 하여 [임원십육지]의 기록을 근거로 재현한 술로 혈압강하 효과가 있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고혈압기능성 술이다 .
동동주
경기 화성군에서 만들어진 알코올 도수 13도의 술로 술을 뜰 때 밥알을 띄운 것으로 마치 개미가 술에 떠있는 것 같다 하여 일명 부의주라 한다.
당정 옥로주
경기도 군포의 특산물로 숙취가 없고 반주로 좋으며 여성들의 부기를 빼는데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알코올도수는 45도로 그냥 마시기에는 독하다.
포천 이동 막걸리
포천 이동 막걸리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를 말한다.백운동 계곡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를 원수로 사용해 만들어지는 이동막걸리의 텁텁하고 감칠 나는 맛은 곧 경기지역뿐 아니라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관광객들을 통해 일본에까지 알려져 수출되고 있다. 막걸리는 서민들과 더불어 온갖 애환을 함께 한 술이라 선호도 또한 높으며 곡주로 만든 막걸리는 텁텁하면서도 은은한 취기를 내는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어 손님 접대용이나 농촌의 일터에서 꾸준히 애용되고 있다.
안성 토속주
경기도 안성의 토속주로 알코올 도수는 11도, 13도 두 가지가 있으며 발효 후 강냉이 등 부재료를 첨가해 숙성시킨다. 맛이 좋고 숙취가 없으며 강정,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
칠선주
칠선주는 인주(인천의 옛 이름)지역 궁중 진상품으로 인삼, 당귀, 구기자 등 한약재를 넣어 두통 등 숙취를 없애 건강약주에 대한 조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칠선주는 일곱 가지의 한약재를 첨가한데서 명명한 것으로 두통, 구토 등에 효과가 탁월하여 궁중에 진상되던 술로 유명하다. 또한 칠선주는 마실 때 은은한 누룩향 과 부드러운 맛이 장점이다.
계명주
경기도 남양주에서 생산되는 계명주는 고구려시대부터 민간에서 널리 애용되던 우리 술이다. 1천 5백년전 중국문헌인 [제민요술] 에는 하계명주(夏鷄鳴酒) 는 여름철 황혼 녘에 술을 빚어 새벽닭이 울면 먹는다 고 적고 있어 계명주가 고구려인의 술임을 밝히고 있다. 엿기름이 들어가 술이 달아서 엿탁주라고도 불린다. 조청. 누룩. 솔잎. 옥수수. 수수 등으로 빚는 술로 소화작용을 돕고 폐와 위를 보호하며 원기를 회복시켜 주며 알코올도수는 11도이다.
용인 옥로주
옥로주는 조선 말 전북 남원에 살던 유행룡이란 사람이 제조를 시작하여 서산 유씨 가문으로만 전수된 무색무취의 전통소주로 물맛이 술맛 이란 전통주 제조 비법상 유씨일가는 좋은 물 을 찾아 남원과 경기도 김포 등지로 양조장을 옮기다 몇 년전 용인에 정착했다. 소주 특유의 화근내 가 없고 뒤끝이 깨끗하여 쉽게 취하고 편하게 깬다. 한방약재인 율무로 빚어 종양제거. 소화기능 개선 및 피부미용 효과가 있으며 알코올도수는 45도이다.
약산춘
정월에 빚어 봄에 먹는 술을 관례상 춘주(春酒)라고도 하는데 이런 것들 때문에 이것은 이양주(二釀酒)이면서도 춘주에 소속시키고 있는 것 같다. 약산춘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저어라 하는 것과 빚는 날을 정월 첫 해일(亥日) 손이 없는 날로 잡은 것은 우리 나라의 토속신앙과 관계를 짓고 있다. 이 술은 삼해주와 비슷하여 상류의 사회계층 사람들이 즐겨 마셨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포 별주
김포 별주는 곡물에 누룩을 섞어서 담근 우리고유의 전통적인 약주로 김포, 고양 등 경기 서북부 일대와 서울 장안에까지 널리 알려졌던 명주이다. 알코올농 도 11도의 이 술은 약간 달작지근하고 순하며 은근히 취기가 달아오르면서 술 깬 뒤에 머리가 아프지 않고 갈증과 후유증이 없으며 적당히 마시면 필수 아미노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 등 건강에도 좋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술의 근원이나 유래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지만 본고장은 1930년대에 시작했던 김포 양조장이었으며 물맛을 따라 장능산(현 김포군청 뒷산)에서 약수를 길어다 씻고 지금까지도 그 약수로 만들어낸 술이 김포 별주이다.
백주
백주는 서울지방에서 쓰이는 것으로 다른 지방에는 거의 없으며 이 백주는 합주(合酒)라고도 한다. 탁주와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란 탁주는 조국을 쓰는데 비하여 백주는 약주처럼 분국을 쓰고 그 양이 탁주보다 조금 많아서 약주와 비슷하고 숙성기간도 탁주보다 조금 길어서 약주에 가까우며, 밑술에서 백주를 얻는 방법은 탁주처럼 체에 걸러 쌀알을 뭉게어 걸러내어 약주와 탁주의 중간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의 순탁주인 이화주에서는 쌀누룩을 쓰는데 비하여 서울식 백주는 분곡을 쓰는 점이 대조적이며, 중국이나 일본의 백주와는 제조 원리가 다른 막걸리 일종이다
사마주
동국세시기 삼월에 의하면 네 번의 오일(午日)을 이용하여 술을 거푸 담그면 봄이 지나자 곧 익고 1년이 넘어도 부패하지 않는 술을 사마주라 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이 술은 정월 오일에 시작하여 오일만을 택하여 빚게 되는데 이 술에는 대개 용안이나 진피가 들어가고 또 엿기름가루를 넣어 감미를 돋구고 있으므로 술이 술잔에서 끈적끈적하게 엉키어지며 줄이 죽죽 난다는 것이다. 사마주는 만드는데 1개월 이상이 걸리고 다시 3개월 이상은 땅속에 묻어두니 오래 둘수록 맑아져 구미를 돕게 한다. 사마주를 만드는 법은 삼해주와 같으나 네 번 술밥을 만들기 때문에 더욱 강한 약주로 알려져 있다. 사마주는 네 번의 술밥을 넣는 술로 인하여 맛이 좋은 고급주라고 할 수 있다. | |
8. 강원도지역의 전통술 |
옥수수술
강원도에서 쌀은 배가 아프거나 특별한 날에만 먹었을 정도로 주곡의 생산이 아주 적은 산간 지역으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옥수수, 감자가 주식이었다. 강원도의 토질은 옥수수 재배에 적합하여 타지방의 옥수수보다 그 크기도 현격히 크고 양도 많이 생산되었다. 자연히 술도 옥수수로 빚어져 농주, 제주, 내방객 접대용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빚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기본 제조법은 비슷하였다.
원주 엿술(강원 원주)
붉은 빛이 감도는 담황색을 띠며 첫 잔부터 엿기름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으며 멥쌀, 엿기름, 누룩, 이스트가 들어간다. 가마솥에 믹서기로 간 멥쌀과 물 그리고 엿기름을 넣고 하루 동안 끊인다. 이 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찌꺼기를 걸러내고 다시 엿기름이 섞인 물을 붓는 공정을 반복한 다음 누룩과 이스트를 넣고 7일 동안 숙성시키며 알코올도수는 12도이다.
평창 감자술(서주)
일제시대 때 잠시 맥이 끊기기도 했으나 구전으로 민간에 전해왔으며 여과기술이 없었던 시절에는 지금의 막걸리와 같은 탁주형태로 마셨다. 감자껍질을 까 솥에 넣고 찐 다음 여기에 효소를 넣고 묽게 만든 후 고두밥을 쪄서 담근 밑술을 부어 약 보름정도 발효시키면 감자술이 완성된다. 감자술은 담백하면서도 단맛이 나 와인처럼 마신 후 뒤끝이 깨끗하고 은은하게 취하는 것이 특징이며 알코올 도수는 11도이다.
토밥소주
토밥술은 시베리아, 중국의 연안 지방에서 유독 많이 만들어 마셨는데 식량이 부족한 시대에 많이 빚어진 듯하다. 이 술이 우리 나라에 유입된 것은 조선시대 말경부터인 것으로 추측되며 고량주나 약주를 빚어 낸 주박을 가지고 만든다. 특히 고량주 주박이 좋으나 고량주 주박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약주 주박으로 만들었다 한다. 향이 아주 자극적이어서 독한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나 중국의 추운 지방 사람에게는 인기가 있다
머루주
머루를 따는 시기는 10월초부터 중순까지 이어지며 한 달뱅이씩 따가지고 내려오면 한 알씩 머루알만 따내 항아리에 담는다. 머루알을 항아리에 절반쯤 채우고 나면 계피와 감초, 설탕을 약간 얹어 뚜껑을 덮은 채 1주일에서 열흘쯤 그대로 재워 놓는다. 이때 술을 붓는데 대개는 소주를 이용한다. 그러나 소주 대신 적포도주를 독의 어깨 부분까지 채워 밀봉한 다음 선선한 곳에서 숙성시키면 그 빛깔이 선명하고 맛도 더 깔끔하다. 겨울을 지나 3∼4월부터 먹는데 5∼7도 정도의 순한 술이 된다. 포도와 머루는 같은 성분이어서 서로 보완을 해 색과 맛이 더 살아나는 모양이다. 완성된 술은 이듬해까지 두고 먹어도 맛과 빛깔이 변하지 않는다. | |
9. 북한지역의 전통술 |
벽항주
맑게 빚는 청주의 일종인데 특히 평안도 벽향주가 유명하였으며 푸르고 향기로운 술이란 뜻에서 벽향주라 하였다. 그 곳의 물과 솜씨가 좋아 평안도 벽향주가 더 알려진 듯하며 조선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이름이 나 있던 술인데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약주 만드는 법과 같으나 누룩의 양이 적고 숙성 기간을 조금 길게 하여 좋은 술맛을 내었던 술이다.
감홍로
예로부터 이 술은 빛이 붉고 감미가 돌아 감홍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관서지방에서는 감홍주라 불렀다. 평양을 중심으로 찹쌀로 만든 술로써 쌀을 잘 씻고 누룩가루를 넣어 먼저 밑술을 만든다. 밑술이 완전히 된 후에 다시 찹쌀을 쪄서 조금 말린 후 계피, 용안육, 진피, 방풍, 정향 등을 가루로 만들어 비단 주머니에 넣어 술이 거의 괴어 갈 무렵에 술에 닿지 않도록 넣는다. 원래 북쪽은 주곡의 생산이 극소하여 탁주나 청주 없이 소주를 만드는 일이 많았다 한다. 소주로 다시 술을 만들 때는 누룩이나 찹쌀을 넣지 않고 소주를 잘 고아 약 종류만 넣으면 된다. 소주에 그대로 약을 타면 간단하게 될 것 같으나 사실은 쉽사리 우러나지 않아 시일이 많이 걸린다. 그러므로 소주를 만들 때 다시 누룩과 밀가루 떡, 찹쌀 등을 넣고 다시 약을 술로 만들 때 한꺼번에 넣어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소주에 약간의 조미를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빚어지는 소주는 고량(수수)을 원료로 하여 만들므로 처음부터 술빛이 붉어진다. 여기에 여러 가지 약으로 조미하여 여러 종류의 소주를 만든다. 가령 장미를 넣으면 장미로, 매화를 넣으면 매화로 등과 같이 계화로, 박하로, 자소로, 감국로, 생강로, 모과로, 산사로, 인삼로 등 넣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각 각 달라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감홍로가 가장 이름 있는 술로서 평양 감사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술은 재료가 많이 드는 까닭으로 많이 만들 수 없어 최고급주의 하나로 인정된다.
| |
10. 우리의 음주문화와 멋 |
1) 한 잔의 술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의 멋
우리 나라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으며, 오히려 격식을 깨는 주법을 더 멋스러워 한다. 그러나 우리 본래의 술 문화는 격식을 차리지는 않지만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그 법도의 유일한 원칙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잔을 돌리되 세 순배(順盃) 이상 하는 것은 술 못 먹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므로 천박하다고 보았다. 사람을 아끼는 문화, 자연을 거슬리지 않는 문화가 우리 문화의 특성이듯 우리 술 문화의 특성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神(신) 사이를 가깝게 해주는 화합과 화해의 술 문화였다 . 그리고 예의와 절제 속에서도 딱딱해지지 않고 마치 흥에 겨워 부르는 우리 전통의 추임새처럼 자연 스러운 파격이 있었다 . 술을 음식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까지도 중시하여 특별하게 제작하였다. 술 마시는 예절을 [小學(소학)]에서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 마시는 범절이 깍듯하였으며, 술을 먹는 모임에는 모름지기 노래와 춤과 시조를 곁들임으로써 운치를 돋우어 우아하고 고결한 풍류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술은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상대의 주량에 한계가 있음을 먼저 명심하도록 했으며, 성인식(成人式)을 한 성인에게만 술을 권했다. 즉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나 체력이 강건한 사람만이 술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것임을 뜻한다. 이러한 음주문화는 곧 술을 대단히 고귀한 음식으로 인정 있는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自然觀)이었다. 즉, 남에게 술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숙한 인격자임을 뜻하게 되어 영광으로 여겼다. 우리 조상의 음주예절은 두 가지가 있는데, 향음주례과 군음(群飮)이다. 향음주례는 세종대왕께서 주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절도를 가다듬어 향교와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게 했던 육례(六禮) 가운데 하나로, 어른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예의절차를 밝히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향음주례의 일관된 정신은 요약해 보면, 첫째 의복을 단정히 입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 둘째 음식을 정결하게 요리하고 그릇을 깨끗이 할 것, 셋째 행동이 분명하여 활발하게 걷고 의젓하게 서고 분명하게 말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절도가 있을 것, 넷째 존경하거나 사양하거나 감사할 때마다 즉시 행동으로 표현하여 절을 하거나 말을 할 것 등이다. 군음(群飮)은 오직 떼지어 모여서 부지런히 마시고 노래하고 즐기기 위한 술 마심으로 군음에는 일정한 형식도 절차도 없이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술을 마심의 자리(술자리)는 사교의 자리로 의사를 표현할 때는 예로부터 세 번을 권하여 요청하고, 세 번을 사양하여 피하는 법이 있었다. 그 중 처음 요청하는 것을 예청(禮請)이라 하고 처음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 한다. 거듭하여 다시 청하는 것을 고청(固請), 거듭 사양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청하는 것을 강청(强請)이라 하며 이를 끝까지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 하였다. 최근 대학가에서 벌어진 신입생 환영회에서의 주사(酒死)는 분명 그릇된 우리 음주문화의 단편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분위기 고취를 위한 술집은 있었으나 몰상식한 주막은 없었고, 술집에 분위기 고취를 위한 기생이 있어서 가무로 음주의 흥을 돋구는 일은 있었으나, 옆에 앉아 망가지기 시작하는 작부는 없었다. 또한 술자리를 반드시 공개했을 뿐 아니라 아들과 제자들을 동행하여 술시중을 들게 함으로써 술 먹는 법도를 익히게 하였으니 술자리를 고상하게 승화시켜 일컬은 바 풍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류란 덕풍(德風)의 유행이나 모든 사람이 그 덕성스러운 행실에 감동하여 본받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조상들의 음주문화를 생각하면서 한 잔의 술 속에 풍류를 담아보는 것을 어떨지?
2) 음주문화사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부족국가시대의 제천의식에는 마을 단위로 술을 빚어 음주와 가무를 한 기록이 있다. 고대에는 일종의 종교행사로 추수 후에 전체 백성이 함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던 것 같다. 삼국 시대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술이 자가(自家) 제조·소비되는 형태였다가 후기에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술을 판매하는 업소가 생긴 것 같다. 김유신 장군이 드나 들던 기생 천관녀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신라시대에 술집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료일 것이다. 그리고 백제 멸망에서 보여지는 의자왕의 삼천 궁녀와의 향연은 술을 잘못 마시면 자신과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교훈일 것이다. 반면 통일신라의 원효대사 이야기로 볼 때 특수계층이 아닌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효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저자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서민들과 어울렸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음주(不飮酒)계를 의식했을 것이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이 술 마실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나라와 원나라로부터 양조법과 증류법이 체계적으로 전해져 청주와 소주, 그리고 약주가 발달하였다. 조선시대의 술 이야기는 풍부하다. 유교에서는 조상 숭배, 제례(祭禮)를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때 제물 중 술은 필수였다. 제사 후 식구들이 제주를 나누어 마시는 음복(飮福)의 관습은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뿐만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술을 마실 기회가 많이 늘었다. 정월 대보름, 오월 단오,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 구월 중양절 등 절기 때마다 민속놀이와 함께 절기주(節氣酒)를 마셨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농무(農舞)가 어우러진 떠들썩한 음주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선비들의 풍류 문화도 발달되었다. 술과 시, 그리고 음악이 한적한 경관과 어우러진 야외 놀이가 선비들 사이의 여가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음주 문화라 하면 조선 중기에 정착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술은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자세와 위엄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며, 취하여 몸을 상하게 하거나 일을 그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하여 타인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으면서 술을 마시도록 하였다.
3) 올바른 음주법(酒道)
술 따를 때
예로부터 연장자와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 깍듯이 예를 지켜 왔듯이 술자리에서도 예를 지켜 아래 사람은 윗사람에게 두 손으로 권하고 두 손으로 받아야 한다. 예외적으로 직위는 아래지만 나이가 10살 이상 많을 때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서로 두 손으로 주고받아 존경을 표시한다. 또 항렬이 복잡한 친척들이 모인 자 리에서는 나이가 자신보다 많은 조카님이 있듯이 항렬이 위여도 나이가 많은 아래 항렬과의 대작은 서로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예의이다. 부부끼리도 두 손으로 예의를 갖추어 주고받는 것이 원칙이고, 남과 자리를 같이 하였거나 부부끼리만 있을 때도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 손의 위치는 대부분 두 손으로 따를 경우 정확히 자세를 몰라 천차만별인데 그 왼손의 위치가 자세를 좌우하는 것으로 복식에 따라 다르다 한다. 도포와 같이 소매 자락이 긴 한복에서는 왼손으로 겨드랑이를 끌어올리듯 하여야 하고 양복을 입었을 때는 술병을 받쳐드는 것이 바른 자세이다. 그리고 술을 서로 평교(平交)할 수 있는 5살 안팎의 연령이더라고 경어(敬語)를 쓸 경우에는 반드시 두 손으로 따르고 받아야 한다 술 따르는 법을 보자면 왼손으로 따르거나 오른손을 젖혀서 따르는 것은 정성이 결여된 권주(勸酒)로써 삼가야 한다. 사실 한 손으로 따르면 술이 왈칵 쏟아지거나 술병을 놓칠 우려가 있으므로 예의를 떠나서도 두 손으로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한 손으로 던지듯 불쑥 술잔을 내밀고, 역시 한 손으로 술잔을 받은 뒤 콸콸 소리가 나게 따르다 보면 술을 쏟기 쉽기 때문이며 오른손을 뒤집어 따르는 것도 위태로운 자세이다
술을 받을 때
술을 받을 때도 따를 때와 마찬가지로 술을 따르는 이의 연령과 지위 등을 고려하여 공손히 받아야 한다. 술잔을 받쳐 올리는 기준도 서로의 호칭에 맞추는 것이 별다른 실수를 하지 않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 상대방의 술을 모두 받고 나서는 반드시 감사합니다 라는 감사의 표시를 하며 한 모금 이상을 마신 다음에 탁자에 내려놓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 태도이다. 어른께서 술을 내렸을 경우 고개를 돌려 잔을 비우는 것도 술을 받는 예의 중 하나라 하겠다.
멋있게 술 마시는 법
주도(酒道)란 술을 마실 때의 예의를 가리키며 주도 혹은 주례(酒禮)라고도 한다.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는 예법에 대해 [소학]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하고 있다. 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제자리에 앉은 채로 어른에게서 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이는 마시지 않아야 하며, 어른이 마시고 난 뒤에 마시는 것이 예의이다. 술잔을 어른께 먼저 드리고 술을 따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 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 소매가 넓지 않은 양복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으로 오른팔 아래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영국의 극작가 토머스 머틴은 <술 취하는 방법 8가지 패턴>을 제시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1. 원숭이형 : 유쾌하게 노래부르거나 춤추면서 마시는 타입 2. 사자형 : 술잔을 던지기도 하고 싸움을 잘 걸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타입 3. 돼지형 : 몸놀림이 둔하고 또 한 잔이라고 소리치며 곧 잠들어 버리는 타입 4. 양형 : 이치를 따지려 드는 타입 5. 기숙사형 : 사소한 일에도 감동하여 우는 타입 6. 성 마틴형 : 술에 취하고서도 제정신이 있다고 가장하는 타입 7. 산양형 : 여자에게 장난을 치는 등 호색적으로 되는 타입 8. 여우형 : 자꾸 남에게 술을 권하는 타입
이 내용은 시인 조지훈선생님께서 피력하셨던 주도(酒道)18단에 관한 내용이다
조지훈은 전집에서 술에 대한 유단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현사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曆)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이며,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은 높아지지 않는다. 즉, 주도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 셋째는 마신 기회,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으로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음주에는 다음과 같이 18단이 있다.
(1) 부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 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이익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從) 1단 (11)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8단 (18) 폐주(廢酒: 열반주(涅槃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9단
부주, 외주, 민주, 은주는 술의 진경, 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 색주, 수주, 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술이니 술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할 수 있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9급이니 그 이하는 척주(斥酒) 반(反)주당들이다. 애주, 기주, 탐주, 폭주는 술의 진미, 진경을 도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관주는 술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임운목적(任運目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을 부여하여 주도(酒道)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술의 건강학
[안주킬러] 술 보다 안주를 주로 먹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명이다. 안주 발 그만 세우라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술자리에서는 [술을 주로 먹고 안주는 그저 술의 독기를 잊을 정도만 먹는다]는 우리의 술 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체통 없이 비싼 안주에 자주 젓가락 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음이 틀림없다. 술 인심은 후했어도 안주 인심은 야박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 속에는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고루한 관념이 깊게 깔린 듯 싶다. 그러나 비록 사나이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안주발은 세우는 것이 좋다. 안주는 술의 독한 기운을 없애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먹는 음식으로 술을 즐기기 위해 안주는 꼭 필요한 것이다. 안주는 위장과 간장을 보호해주며, 안주를 통하여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 받지 못하면 알코올을 분해시켜주는 간이 힘들어진다. 술 마시는 사람의 체면을 세우느라 간이 피해를 볼 필요는 없으며, 단백질이 풍부한 안주를 많이 먹는 것이 좋다.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으면 건강을 위해 [술 한잔에 안주 다섯 젓가락] 하는 식의 나름의 기준을 세워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