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국민학교 2~3학년이던 시절
그러니까 196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우리집 뒷산 넘어 동네에 윗말 아랫마을이라는
동네가 있었는 데, 윗말이라는 동네 어떤 부자집에서는
머슴을 사는 순박한 청년이 있었다.
지금 그 청년의 이름은 개인 프라이버시상 밝힐 수가 없는 거고
그 시절 내 어린 눈에는
그 청년은 소처럼 꽤 부지런하고 순박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보였었다.
그 시절 만해도 동네에서 땅좀 있는 부자들은
수시로 일꾼을 사서 쓰면서도 또 수시로 잡일을 하는
머슴을 집안에 두고 살았다.
머슴은 일년동안 그 집에서 먹고 자며 온갖 잡일을 다해주고
새경(요즘은 연봉) 이라는 것을 받았다.
힘좀 세고 일을 잘하는 총각은 일년에 쌀 12가마 정도
그렇지 않고 보통인 사람은 쌀 6 ~7가마 정도
그나마 도 못받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쌀 12가마래야 250~260만원 정도 밖에 안되어
도시 근로자 평균한달 월급정도 밖에 안되는 돈이 지만
그 시절에는 쌀이 참 귀해서 모든 물가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래서 쌀12가마가 돈으로 환산해서 꽤나 많은 액수였다.
사실 머슴이란 말이 쓰기 거북한 말인 거 같지 만
지금도 우리 월급쟁이들 모두가 명칭만 바뀌고 하는 일만 다르고
바뀌었지 현재 사장님들의 머슴과
과거 부농이나 지주의 머슴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
그런 주변이야기는 접어두고 -
그 부자집에서는 논이 많아서 여름 내 농사를 지어
가을에 수확한 벼를 창고에 쌓아 두고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읍내에 장이 서는 날 전에 수시로 방앗간에 싣어다가 도정하여
쌀을 시장에 내다 팔곤하였다.
그 시절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는 농한기라서
아궁이에 땔나무나 많이 해서 쌓아두고
소 죽이나 끓여주고 나면 겨울철에는 머슴들도
농번기 철보다는 쉬는 날이 많았다.
하긴, 겨울철에도 손으로 새끼를 꼬든 지 가마니를 치기 때문에
노는 날이 없고 밤낮없이 일을 해야하는 것이
대다수의 머슴들의 생활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청년은 요즘같은 봄날이면 으례히 하루에 한번씩은
십여리가 되는 방앗간에 벼를 달구지에 싣고 도정하러
소달구지 타고서 노래를 부르며 오가는 것이
하루중의 일과였던 거 같았다.
소가 똑똑해서인 지, 소가 알아서 방앗간으로 가기 때문에
그 청년은 어떤 때는 달구지에 누워서 노래나 부르며
가는 때가 많아서 난 소가 혼자 달구지를 끌고 가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았었다.
내가 먼 십리가 족히 넘는 산길을 따라서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올때면 오후 2 ~3시쯤
그 동네 앞을 지나쳐서, 우리뒷산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던
따스한 봄날 다리도 쉴겸 뒷산 고갯마루에 올라
잠시 쉬고 있으면 내가 지나 온 먼 동네 앞
큰 신작로 길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있었다.
그 청년이 매일같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라훈아의 " 사랑은 눈물의 씨앗", "그리고 임그리워 " 를
휘파람으로도 부르고 노래로도 어찌나 구성지게 불러 대던지
난 산마루에 앉아서 한참을 듣고
저 사람은 노래를 참 잘 부른다고 생각했었다.
그 시절엔 동네 청년들이 낮이나 밤이나 막걸리 한잔 마시고
동구밖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다니는 것이 보통있는 일이 였기에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고성방가로 시끄럽다고 고소한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 때 1970년대 초 유명한 남자 가수들이 " 남진. 라훈아가
쌍벽을 이루었고. 그 외로 김상진. 남일해.백야성.오기택.이상열.
김상국. 이현. 배성. 눈이 안보이던 천재가수 이용복.장현. 진송남.
박일남. 위키리. 배호 등 ---
여자 가수로는 " 이미자. 조미미. 문주란. 김부자.
하춘하.김세레나.이수미. 김추자. 김하정.김상희. 정훈희.
쌍둥이 자매 바니걸스 등---
여러 가수들이 지구레코드. 오아시스 레코드. 신세계레코드사
등 전속되어서 활동을 하던 시절
검은 색 레코오드를 유성기라는 자그만 플레이어에 듣던 시절
어린 나이에 난 많은 것에 관심이 많았었는 지 ~
그 시절 형이나 누나들이 즐겨 들었던 노래들을
나도 옆에서 엿들어서 지금도 그 시절 노래를 많이 알고 있다.
그 시절엔 들에 나가 일을 할 때도 라디오를 가지고 나가서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고
소달구지를 몰고 갈때도 라디오를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지금은 시골길에서도 소달구지를 보기가 힘든 세상
길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대는 사람도 없다.
그 때 그 시절 그 청년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아마도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어려운 겪동의 시기를 육신의 노동으로
순진 무구하게 살았던
그 청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
문득 그 청년의 노랫소리와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그 시절의 그 모습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어느 하늘아래서 잘 살고나 있는 지 ~ ?
이제는 그 시절
그청년의 구성진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단지 그가 즐겨부르던 그 노래만이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
그 시절 그 청년의 노랫소리를 추억하며 들어보는 노래
그 시절 사랑에 빠져서 울고 웃던
많은 청춘남녀를 울리던 노래
어린시절 추억이 그리운 날에~ 시인과 나-
요때만 해도 20대 때니까 많이 신선하죠. ㅎ
지금은 많이 늙으셨던데 ~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가요역사에 있어 전설적인 아까운 가수죠.
너무 자존심강해서 인지 방송활동을 별로 안하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 가요사에 큰 손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