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 이후 주요 대선후보 3인에 대해 전담기자를 배치,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오늘의 000후보'란을 통해 보도해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선거운동 기간 중의 후보 동행취재기를 기획하였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이어 두번째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편을 싣습니다....<편집자 주>
"0.1%의 저항 때문에 부유세 반대는 말도 않된다" / 지혜 PD
"권후보 한마디 한마디가 다 좋다"-모란시장에서 / 지혜 PD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하루 선거운동 행태를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아침에는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출근길 유세를 벌이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하고, 낮 시간 일정에는 반드시 현장 사업장과 재래시장 방문이 포함된다. 저녁에는 6월 13일 의정부에서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들을 추모하는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것으로 하루의 유세를 마친다.
이는 '평등한 세상, 줏대 있는 나라', 즉 요약하면 '평등'과 '자주'라는 민주노동당의 대통령선거 캐치프레이즈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침 식사는 공장 구내 식당에서
지난 14일 까지 하루 일정의 첫 유세 장소를 살펴보면 민노당이 이번 대선에서 대규모 사업장에 어느 정도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일 기아자동차 광명 소하리 공장, 5일 경주역 앞 출근길 유세, 6일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7일 만도기계 원주 문막 공장 등으로 4일간의 일정으로 떠난 지역유세의 매일 아침을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지난주도 비슷했다. 11일 제주 한라병원, 13일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 14일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퇴근하거나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하는 '출근길 유세'는 구내 식당에서의 아침 식사로 연결된다. 이어 본격적인 현장 생산라인 유세에 들어간다.
권 후보가 가장 환영을 받는 곳도 여기다. 지난 6일 아침 9시경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권 후보가 트럭제작 공장에 들어서자 "노동자·서민의 대표 권영길 후보가 지금 우리 공장을 방문하셨습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합시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이어 방문한 버스부 제작 공장에서도 방송은 계속됐다. 권 후보가 공장 현장을 돌며 악수를 나누는 동안에는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노당 의 정치실천단이 '일하는 사람들의 대통령 기호 4번 권영길', '권영길과 함께 하자'는 구호를 외친다.
지난 13일 아침에 방문한 기아 자동차 화성공장에서는 일부 노동자들이 권 후보를 지게차에 태우고 현장 생산라인을 돌았다. 공장 내부의 중앙 탑에 권 후보의 얼굴을 담은 대형 현수막이 걸린 것을 비롯해 공장 곳곳에 권 후보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또 14일에는 만도기계 평택 공장에서 헹가래를 받기도 했다.
"TV토론회 이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합동 TV토론회 이후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것이 공통된 얘기다. 권 후보의 현장방문에서 바람을 잡는 '길라잡이'들도 "TV 보셨죠"라는 말부터 꺼낸다.
권 후보의 지역유세를 수행하고 있는 허영구 경제특보(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는 " 공장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이번 대선 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이것이 2004년 총선 에서 결실을 낸다면 폭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권 후보가 가장 힘찬 모습을 보이는 곳도 현장 생산라인을 방문할 때다. 각종 장비들이 보행을 어렵게 하는 곳이지만, 그는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가까이 악수를 나누면서 현장을 돌아다닌다. 지난 6일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트럭부와 버스부 공장 두 곳을 다 돌았다.
권 후보에게 물었다. "공장 한 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 전체적으로 보면 손해 아닙니까?"
"노동자들은 저 사람이 사진 찍으러 온 건지, 진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 건지 금방 알지. 민주노총 시절부터 공장 방문을 많이 해와 현안도 파악이 돼 있고 마음이 편해져. 힘도 나고. 아직도 주물공장이나 화학공장에 가면 얼마나 작업여건이 열악한 지 몰라." 그의 대답이다.
민주노총이 가장 큰 기반인 민주노동당은 각 지에 산재한 대규모 사업장이 가장 중요한 선거조직 중의 하나다. 각 사업장에 뿌리박고 있는 당원들과 열성적인 노조 활동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가 이번 선거를 '성공'으로 이끄는 관건 중의 하나라고 민노당은 보고 있다.
노동자들외에 권 후보에게 자발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여중생과 주부층이 많다. 의정부 여중생 사건에 대한 민노당의 대응이 부각된 것이 여중생들에게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다는 평가다.
주부들의 경우에는 권 후보의 부인 강지연 여사가 아침 주부대상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를 모두 모시고 산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반응이 좋아졌다고 한다.
유세 연설의 핵심주제는 의정부 여중생 사건과 부유세
권 후보는 지난 달 30일과 이 달 7일, 14일의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두 참여해왔다. 지방유세에서도 저녁 촛불시위 참가는 계속된다. 자원봉사자 90여명으로 구성된 중앙유세단은 후보가 도착에 앞서 당의 지역조직과 함께 미리 촛불시위를 벌인다. 그 한 쪽에서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사과와 한미 행정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다.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은 민노당이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다. 전국적인 반미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 사건에 초기부터 관심을 기울여온 민노당도 상당한 정치적 성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유세에서 권 후보는 의정부 여중생 사건으로 연설을 시작한다.
지난 달 27일 후보 등록 이후 첫 공식 유세도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의정부 여중생 장갑차 살인사건 비상시국대회'였다.
지난 5일 전주에서 묵었던 전통한옥 생활체험관도 여중생 사망사건에 항의해 미국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곳이었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잡은 것이었다.
또 하나의 핵심주제는 부유세 실시 문제다. 5만 여명의 불로소득자에게 11조원의 세금을 걷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권 후보의 주요 유세지역의 하나인 재래시장에서는 이 부분이 강조된다.
권 후보는 재래시장에서 연설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시장 안으로 들어가 상인들을 만난다. 여기서도 병원비, 교육비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치를 강조하기보다는 서민의 생계문제를 갖고 접근한 것이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것이 민노당의 자평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심현섭, 박성호 씨 등'개그 콘서트'의 유명 개그맨들을 동반하고, 민주당이 영화배우 문성근 씨와 명계남 씨와 정동영 의원 등이 노무현 후보를 수행하는 데 비해 민주노동당에는 권 후보를 수행하는 유명인들이 거의 없다.
허영구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수호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권 후보와 동행하고 있으나 전국적 지명도가 다른 당에 비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시험과 직장을 잠시 접은 자원봉사자 90명의 중앙유세단
이런 상황에서 권 후보 유세장의 '바람'을 잡는 것은 9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중앙 유세단이다. 대부분이 학생들이고 직장인이 일부 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접었고, 직장인들은 장기 휴가를 내고 권 후보를 따라 나섰다. 지난 25일부터 직장에 휴가를 냈다는 윤용배 중앙 유세단장도 "회사에서 다시 받아 주면 복귀하는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각오다.
이들은 각각 5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고 참여하고 있다. 유세단이 전세를 낸 45인승 관광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한영규 씨는 "하루에 800∼900km를 뛰고 있다"며 "예전에는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생각했는데 요즘 애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유세단은 후보에 앞서 무대를 설치하고 '바람'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쯤 일어나 6시에 이동을 시작하는 유세단 보다도 보통 한 시간 이상 빨리 움직여야 한다.
유세에서 이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흥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는 음악은 보통 서너 가지다.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순이를 살려내라'로 시작되는 '민족의 봄날은 온다'는 그룹 캔의 '내 생에 봄날은'을 개사했다.
트로트 가요인 송대관의 '네 박자'도 '내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모두가 부르는 4번' 등으로 가사를 바꿔 애용한다. 또 인터넷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Fucking USA'도 단골메뉴다. 모든 노래에 각각의 율동을 만들어 권 후보의 유세 앞뒤에 사용한다.
"노무현은 노동자·서민의 대안이 아니다"
선거기간 동안 민노당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권영길을 찍으면 이회창이 대통령이 된다'는 논리다. 지난 7일 권 후보는 수도권 지하철 유세 중에 한 시민으로부터 "사퇴하면 안 되겠습니까? 이회창이 대통령 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라는 질문을 받았다.
권 후보 옆에 있던 허영구 경제특보가 격앙된 목소리로 "정몽준은 노동자를 식칼테러한 사람입니다. 그런 정몽준과 손잡은 노무현은 노동자·서민을 위한 후보가 아닙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런 논리는 두 차례의 TV토론회 이후 권 후보의 지지도가 상승하면서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권 후보의 이회창 후보에 대한 공격의 강도는 노 후보에 비해 현저히 높다. 권 후보는 한나라당에 대해 "장사 지내주겠다"는 강한 표현도 여러 곳에서 썼다. 반면 노 후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을 하면서도 '그의 도덕성을 인정한다'고 밝히는 등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했다.
그러나 노 후보가 집권해도 노동자·서민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입장은 단호하다. 권 후보는 지난 12일 대구 달성공단의 (주)한국 델파이 앞 유세에서 분명하게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후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지난 97년 대선이 끝날 때 저는 여러분에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하는 태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막는 전국적인 운동을 벌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예상대로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됐고, 대량해고의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김 대통령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죠. 신자유주의가 별 게 아닙니다. 노동자들 목 치는 겁니다. 이 신자유주의를 막는 싸움을 여러분과 함께 벌일 것입니다."
이번 대선은 준결승, 2004년 총선이 결승
대선 뒤에 일어날 '대충돌'에서 노동자·서민을 대변할 힘있는 정당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번 대선에서 이를 위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노무현 표와 권영길 표는 그 성격이 다르며, 최근 지지도가 오르고 있는 지역은 노 후보의 취약지역인 대구·경북 등의 영남권이라는 것이 민노당의 분석이다.
민노당 내에서는 '이번 대선은 준결승, 2004년 총선이 결승전'이라고 보고 있다. 대선 지지율 10% 획득과 함께 '5만 당원과 후원회원 10만' 확보가 가시적인 성과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문에 권 후보는 자신에게 찍는 표가 사표가 아닌 희망의 표라고 강조한다.
민노당은 16일의 합동 TV토론회 이후에는 득표전략지역인 울산을 중심으로 부산과 경남지역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권 후보는 물론이고 민주노총의 임원과 각 산별연맹의 대표자들을 이 지역에 집결시켜 막판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런 의도가 성공할 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민노당을 전국적으로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경호를 다 받다니"
권 후보 유세단의 격세지감
지난 97년 대선 때도 권 후보의 운전을 맡았던 김영찬 씨는 "유세 일정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 하는 일이 많았다"며 "지금은 지역 경찰마다 서로 맡겠다고 나선다"고 놀라운 표정이다.
유세단이 하루에 1000km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면서 각 지역마다 예정된 시간에 유세를 벌일 수 있는 것에는 권 후보의 경호를 위해 파견된 경찰관 4명과 각 지역 경찰의 공헌이 크다. 다른 당에서야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도처에서 경찰과 '맞장'을 떠온 민노당의 입장에서 소회가 없을 수 없다.
민노당 유세단 차량 안내를 맡은 한 경찰관은 "시간이 갈수록 위에서 권 후보가 가는데 마다 신경을 더 쓴다"고 전한다.
민노당은 처음에는 경호요원을 받지 않으려 했다. 당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와 유세단의 움직임, 대화내용 등이 노출될 것을 걱정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찰에서 파견 경호 요원들의 인사기록까지 보내는 '성의'를 보임에 따라 이들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