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산막이 옛길 최 건 차
하루거리로 비가 내려 산과 들이 미친 듯이 녹색으로 휘감긴다. 지난 4월은 ‘슬로우시티’로 알려진 남녘의 청산도엘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던 터라 즐거운 마음이었지만, 자정에 출발하여 장거리를 밤샘으로 달리는 노정이라서 그렇게는 한 번으로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5월은 어디로 정해질지 궁금했는데 수원에서 가까운 충북 괴산으로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등반이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곳에 큰 호수를 이루는 ‘산막이 옛길’ 연하협곡의 물가를 걷는다는 것이다.
괴산에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 몇 분이 있어 친밀감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괴산이라는 지명 때문에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던 게 영 잊혀지지 않고 있다. 내가 들었던 바로는 오래전으로 아마도 6‧25전란 때였다는 것 같다. 충청도의 어느 곳 사람들이 이상한 괴질怪疾로 병이 들어 죽거나 시름시름 앓고 있어서 그 지역을 괴산怪山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미군들이 그 현장을 찾아 지질탐사를 해본 결과 그곳에는 뜻밖에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방사능이 밖으로 약간씩 분출되는 것을 모르고 그곳에 접근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혼란기에 있었던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풍설이었는 지는 알 수 없어 잊혀가는 듯하다.
요즈음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심하게 위협하는데, 언젠가는 당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고들 걱정이다. 북한은 남한과 일본을 넘어 하와이와 괌은 물론 미국의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판국이다. 현실적으로 저들의 핵 공격을 이대로 미국만 믿고 막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들 보는 견해다. 이에 우리도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괴산에 우라늄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탁월한 기술로 발굴하여 핵무기를 만드는데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괴산은 아름다운 자연으로서 뿐만 아니라, 핵 개발을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는 지역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늘의 행보에 남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지금의 괴산에 대한 한자의 뜻은 ‘느티나무 괴槐’자에 맷산山인 그냥 <괴산>이다. 그저 ‘산막이 옛길’을 찾으려다가 생각에 맴도는 추론 한 토막을 꺼내 본 것으로 여기서 멈추어야겠다. 사실 나는 2년 전 문학회의 단체여행으로 괴산에 잠 간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 보고 느꼈던 바는 전국의 이름난 어느 곳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풍광이 아름답고 넉넉해 보였다. 주변에는 잡다한 시설이 없고 아늑해 내륙의 특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기에, 마음이 끌려 이번에도 한걸음에 달려와 걷고 있다.
수원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2시간여 만에 낯에 익은 ‘산막이 옛길’ 초입에 도착했다. 버스2대로 온 80여명 회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색찬란한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스틱을 든 군상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움직인다. 소나무 숲이 울창해 검푸르고 맑디맑은 호수를 낀 산마루 길을 이리저리 굽어 돌며 걷자니 솔 향기가 전신에 젖어 든다. 이전에 왔을 때는 초가을이었고 오늘은 초여름이라 주변 색깔은 비슷한데 숲의 냄새가 맑고 상쾌하여 머리가 더 맑아지는 것 같다.
고요하게 느껴지는 호수 가를 산책하는 양으로 걷는다. 요한 스트라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선율이 흘러 마음을 적시는 느낌인데, 바윗길 비탈에 웬 호랑이조형물과 호랑이굴이 시선을 소스라치게 빼앗는다. 산새가 길고 깊어 물가를 좋아하는 호랑이가 살았을 것도 같다. 내가 아직 손자를 보기 전에 옆집 어린아이 남매가 친손자처럼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그 시절 단골 메뉴로 들려주었던 ‘호랑이와 가재’ 이야기가 뭉글뭉글 떠올려진다. 어느 한겨울 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호랑이가 사냥을 못해 배가 몹시 고파 도랑에서 가재라도 잡아먹으려는 중이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토끼가 가재를 단번에 많이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게 된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털이 많은 꼬리를 물속에 푹 담그고 밤새 꿈적 말고 기다리기만 하면 가재들이 모여들어 내일 아침, 내가 건지라는 시간에 꼬리를 꺼내면 실컷 먹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다음 날 아침 토끼가 나타나 강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호랑이에게 말했다. 이제 그 꼬리를 꺼내어 털 속에 붙어있는 가재들을 몽땅 털어 입에 넣으시지요.라는 것이다. 그리하려니 꼬리가 물속에서 꽁꽁 얼어붙어 빼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상처만 입고 피를 흘리다가 죽게 되었다. 늘 호랑이의 먹잇감이 되어 당하기만 했던 토끼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애들이 어엿하게 커서 떠난 뒤라, 그때를 그리며 호젓한 마음으로 걷는다. 호수인 듯 깊은 강이라서 유람선이 낭만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지난번 왔을 때는 편도만 걷다 중간 기착지에서 배를 타고 나갔는데, 이번에는 ‘연하협’이라는 계곡으로 더 많이 올라가고 있다.
물가 언저리에는 요즘엔 보기 드문 야생복숭아들이 열매를 많이 달고 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개복숭아’ 열매가 한 참 굵어지고 있어 어릴 때 탐진강 상류에 살면서 한여름이면 ‘오파시’라는 땅벌에 쏘이면서 새콤달콤한 개복숭아를 따 먹던 시절이 그림처럼 펼쳐 보인다. 아름드리로 높게 솟아 있는 소나무 지대를 벗어나 시간이 멈춘 듯한 수변 길을 계속 걷는데, 상상을 초월할 느낌으로 높이 세워진 은색 구조물이 시야를 압도한다. 어떻게! 이렇게! 깊숙한 곳에다 보기에도 좋고 건너기에도 좋은 현수교 구름다리를 세웠을까.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리만 보기에 너무 아까워 내 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주고 싶다. 202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