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피서는 오싹함마저 느껴지는 천연동굴로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지점에 형성된 종유석, 수십 개의 고드름을 이어 붙인 모양을 하고 있다. <단양군청 제공>
여름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산이나 계곡, 바닷가로 향한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은 피서지가 있는데 바로 천연동굴이다. 천연동굴은 내부 온도가 바깥 온도보다 20도 이상 낮은 섭씨 14~16도를 항상 유지한다. 이 때문에 무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깊고 좁은 길을 오르고 내릴 때 긴장감마저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가 볼만한 천연동굴은 어디가 좋을까. 석회암 동굴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충북도 단양군을 추천할 만하다. 우리나라 동굴은 강원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제주도와 충청북도에 분포하고 있다. 동굴관련 학계에서 위치와 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충북의 동굴 수는 89개 정도다. 개방동굴은 단양군에 집중돼 있으며 고수동굴과 천동굴, 온달동굴, 노동동굴이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종유석과 석순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단양군청 제공>
이들 동굴 중 가장 으뜸은 국내 최고의 석회암 동굴이라 불리는 ‘고수동굴’이다. 단양 고수동굴은 남한강 상류 충주호반의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에 있다. 1973년 10월 한국동굴학회의 고수동굴 종합 학술조사와 1975년 11월 한국동굴 보존학회 조사 보고에 의해 1976년 9월21일 천연기념물 제256호로 지정됐다. 고수동굴은 소백산 줄기의 하나인 고수봉 자락, 해발 160m 지점에 형성됐다. 주굴 길이가 600m이며 지굴 길이 700m, 총연장 5400m, 수직 높이 50m이다. 가장 높은 곳은 70여 m에 이르며 1700m가 개방돼 있다.
단양 고수동굴은 누가 발견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고수동굴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출입이 있었으며 6.25 때는 피난처로도 이용됐다고 한다. 이 동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73년 10월 한국동굴학회 조사단에 의해서다. 조사 당시 동굴입구 부근에서 마제석기와 타제석기가 출토돼 선사시대 주거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경기도 수원에 소재한 유신고등학교, 창현고등학교를 설립한 학교법인 유신학원에서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76년 개발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동굴의 꽃이라 불리는 석화는 아라고나이트란 광물로만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암석으로부터 아주 적은 양의 물이 천천히 스며 나와 침 모양으로 된 결정이 한 지점으로부터 여러 방향으로 자라 석화가 된다. <단양군청 제공>
개발되기 이전에는 지금 공개된 구간 중 일명 ‘도담삼봉’, ‘독수리바위’까지만 사람들이 출입했다고 한다. 현재 입구로 사용되는 곳은 자연적인 통로이며 출구는 1983년 3월에 인공적으로 뚫어서 만든 것이다. 고수동굴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임진왜란(1592년) 이후부터다. 고수동굴이란 명칭은 ‘고수리’란 지명에서 유래됐다. 구전으로 전해지는 설화에는 임진왜란 때 한양에서 충북지역으로 피난 온 밀양 박씨 형제가 있었다. 아우는 청주에 정착했고 형은 안식처를 찾아 계속 산간벽지를 배회하던 중 경치가 아름다워서 이곳(고수리)에 머물렀다고 한다.
형이 이곳에 머문 또 다른 이유도 전해진다. 타고 가던 말의 발에 병이 나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도 있다. 키가 큰 풀(갈대)이 우거진 이곳에 정착해 살았다고 해 ‘키큰풀 고’자와 ‘덤불 수’자를 사용해 ‘고수리’라 했다고 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고’자가 ‘옛 고(古)’자로 바뀌어 불리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고수동굴은 이런 연유로 ‘고숲굴’, ‘고수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현재는 고수동굴로 고정됐다. 박쥐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박쥐굴’이라 불리기도 했다.
동굴은 땅 밑으로 난 길, 지구에서 가장 발굴이 더딘 곳이다.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도 짜증스런 습기도 고수동굴에서는 반갑기만 하다. 고수동굴 입구에 서면 한기가 느껴진다. 동굴 내부로 들어서면 동굴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는 사자바위가 하층 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웅장한 폭포를 이루는 종유석, 선녀탕이라 불리는 물웅덩이, 7m 길이의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 땅에서 돌출돼 올라온 석순, 석순과 종유석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등이 많다.
고수동굴 미공개 구간에서 자라나는 석화 <(사)한국동굴연구소 제공>
또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다리, 굽어진 암석, 꽃모양을 하고 있는 암석,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 희귀한 암석들도 많다. 상층부의 대 광장에는 길이 10m에 달하는 대종유석이 비단폭처럼 줄을 지어 내리 뻗고, 동굴 안쪽에는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정교한 많은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어서 웅장한 지하궁전을 방불케 한다.
이밖에 나중에 발견돼 새로 개발 공개되고 있는 신동(新洞)지구에는 종유석과 석순의 무리가 밀림의 숲을 이루고 있다. 건국대학교 조사대에 발견된 신동은 주굴보다 7m 높은 곳에 열린, 입구에서 180m의 길이를 가지는 동굴이다. 그 안에 높이 13m의 유석인 종유벽을 비롯해 수많은 석순, 아름다운 석회단구 및 거대한 종유폭포 등이 발달돼 또 하나의 이색적인 지하전당을 이룬다. 지금도 동굴 내부엔 물이 흐르고 맺히고 떨어져 내리며 숱한 유석과 석순들이 활발하게 자라고 있다. 고수동굴의 경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인 미국 버지니아주의 루레이 동굴과 맞먹는다.
국내의 자연동굴은 세 부류로 나뉜다. 바닷가에서 풍파에 씻기고 파여 형성된 해식동굴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용암동굴, 석회암 지층에서 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석회암동굴이다. 석회암동굴은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 석주 등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 많다. 단양 고수동굴이 여기에 속한다.
고수동굴 내부 중 미공개 부분에 자라는 곡석과 석화. 보통 동굴 생성물은 물이 떨어지는 수직방향으로 자라는게 일반적인데 곡석은 자라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뒤틀린 모양으로 성장한다. <(사)한국동굴연구소 제공>
현재 석회암동굴 중 일반에 개방된 곳은 10여 개다. 훼손을 우려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강원도 삼척의 관음굴을 제외하면 최고는 단양 ‘고수동굴’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수동굴은 5억4000만년의 연륜을 지닌 석회암지대에 15만년 전에 형성됐다.
고수동굴의 진가는 덜 훼손된 동굴 내부의 화려한 경관에서 나온다. 다른 지역의 이름난 동굴들이 개발과정에서 또는 방문객에 의해 상당부분이 파괴됐다. 반면 고수동굴은 본디 경관이 눈부신 데다 훼손이 적어 태고의 신비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 고수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휴석, 커튼과 베이컨시트, 동굴진주, 석화, 곡석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전 구간에 걸쳐 발달해 있다. 동굴 생성물의 발달 밀도가 가장 높은 동굴 중 하나다. 또한 동굴 내 최하부층의 통로 형태(사행천)와 벽면과 천장에 용식 또는 침식지형이 매우 발달해 있다. 게다가 고수동굴의 미공개 구간은 훼손되지 않은 다양한 동굴 생성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고수동굴에서 서식하는 유령거미. <단양군청 제공>
동굴 속에는 풍부한 동굴 생물도 살고 있다. 동굴 안을 흐르는 동굴류(洞窟流)는 생물서식에 유리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화석곤충으로 널리 알려진 고수귀뚜라미붙이를 비롯해 옆새우·톡톡이·노래기·진드기·딱정벌레 등의 동굴곤충 및 박쥐 등의 동굴 생물상을 볼 수 있다.
고수동굴은 고생대의 석회암층에서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다. 조선누층군(고생대 전기에 퇴적된 지층)에 속하는 석회암 중에 형성돼 있다. 인근에는 평안누층군(한반도에 분포하는 고생대 석탄기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초기에 걸쳐 형성된 지층)에 속하는 쇄설성 퇴적암이 분포돼 있다. 지질계통은 고생대 오도비스기에 퇴적된 막동석회암이 남북 방향으로 분포돼 있다. 평안누층군에 속하는 만항층은 고수리 동쪽 약 2㎞인 금곡리에서 고성석회암을 부정합으로 덮으며 북동-남서 방향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수동굴 중 공개되지 않은 곳에 형성된 종유석과 종유관, 석주와 유석 <(사)한국동굴연구소 제공>
고수동굴과 가장 관계가 깊은 지질구조는 고수리 단층이다. 동굴부락이 있는 안고수 마을에서 설미기골과 평행하게 발달된 단층으로 서쪽으로 50도 내외의 경사를 가진 역단층이다. 이 동굴은 태백산맥 지역에 형성돼 있는 일명 산악카르스트(Alphine Karst) 이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의 북사면 기슭에 해당하는 내륙 산간분지 지형이다.
용식공은 동굴 천장에 군데군데 발달돼 있는 용식 지형의 하나다. 석회암의 탄산칼슘이 빠져나간 커다란 구멍이다.
<단양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