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인연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삼촌이 대학진학을 실패하여 가까운 절에서 공부하면서, 초등학교시절부터 방학 때가 되면 자연스레 절에서 방학을 보냈다. 동자승들이 행자수업을 하며 저녁에 예불문, 천수경,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을 어깨너머로 배웠던 것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아버지는 신심이 대단한 분이었다. 가을걷이로 지친 몸이었지만, 오후 10시쯤 집에서 20여리 떨어진 절의 중창을 위해 준비해 둔 서까래를 싣고 갔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삼촌이 전방에서 근무하다 월남전 파병을 자원했다. 당시만 해도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들이 많이 전사했고, 다쳤다.
동생을 전장(戰場)으로 보낸 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놓고 장독대에서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한 기도의 원력으로 삼촌께서는 아무런 상처나 후유증 없이 귀국하여 현재 예비군 동대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우리 5남매가 아무 탈 없이 잘살고 있음은 오로지 아버님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대학을 진학하여 대구 반월당 소재 보현사청년회를 다니면서 당시 해인사에 있던 무관스님으로부터 불교 기초교리와 반야심경, 원각경 등을 배워 더욱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제대 후 1990년대 초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 조계종 종정 혜암스님이 주석했던 해인사 원당암 철야용맹정진 법회에 다니면서 참선에 대한 눈을 뜨게 됐다. 스님으로부터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이 뭣꼬”란 화두를 받고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좋은 공부를 많은 도반과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법도량인 영남불교대학을 입학하게 됐다.
영남불교대학은 우학스님의 원력에 맞춰 도심 포교도량답게 공부, 수행, 봉사의 기치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하는 도량이었다. 입학 후 기초교리과정인 〈새로운 불교공부〉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 〈화엄경〉 등을 알차게 배우게 되었다. 2003년도에는 영남불교대학 68기 기장 소임을 맡으면서 더욱 신심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해 가을에 조계종 9기 포교사 품수를 받고, 영남불교대학내 대불회(대학생불자회) 지도법사를 맡아 후배불자들에게 〈새로운 불교공부〉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등을 지도하는 인연을 맺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포교사로서 대불회 지도법사 소임을 맡으면서 후배불자들과의 공부는 제 수행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사이버 아난으로 통하는 법상스님의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무비스님의 〈예불문과 반야심경〉 〈금강경 강의〉,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금강경〉 동영상 강의에서 불교의 대의(大義)를 나타내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 금강경 제1 사구게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와 상관관계의 설명은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새로운 이해와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본서로 충분했다.
일찍이 불교와 인연을 갖다보니 법명도 많이 받게 되었고 많은 스님을 친견했다. 현재 법명인 법공(法空)을 지어주신 저의 영원한 스승이신 스님을 소개할까 한다.
현재 지리산 토굴에 홀로 수행중인 초은(草隱)스님으로 금강경에서 말하는 상(相)이 전혀 없는 스님이다. 설을 맞이하여 지난 주 가족과 후배 도반들과 친견하면서 “스님, 요즘 부처님공부가 잘 안됩니다”하고 토로했더니 “불교의 수행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수행은 나쁜 버릇 고치는 게 참다운 수행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금생에 나쁜 버릇 하나라도 참답게 고쳐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스님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첫댓글 속세에 들어 하루 삶 지나고 나면 죄가 더 많겠다 늘 생각하는데..이렇듯 마음을 닦는 글 묵묵히 올려주시는 님,,늘 감사합니다..건강하시고 그 마음 늘 그러하시리란 믿음을 갖습니다..행복하셔요..^^*
바쁘실텐데 고맙습니다...막바지 더위에 늘 건강 잘 챙기시구요...좋은글 많이 부탁할께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