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째서 일요일이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에 등극하게 되었을까?
누구도 부인(否認)할 수도 없고, 또 부인해서도 안 되는 천지창조는
그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역이시다.(cf 창1:1-31; 2:3) 그 결과로 탄생된 제도가
바로 “7일 일주일”제도이다.(cf 창2:3; 출20:11) 하나님께서는 그 제도의 기준일로 안식일을 제정히시고 이를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 안식일을 지켜야 할 명분으로 천지창조를 천명하심으로써
안식일은 일개 민족만의 전유물인 양 착각하는 오해들을 불식시키셨다.(cf 출20:11)
그러나 지금 보시다시피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체,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이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로 둔갑되어 있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요일 시스템이 기독교의 한 제도로 도입된 경위는 필자의 글 201-204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나 여기서 대충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 예수님도 승천하시고, 사도(師徒)들도
다 죽고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인 교회의 초창기 시절인 서기 132-135년 경에 불거진 한 사건은
로마에 의한 유대말살 정책이었다. 당시 로마의 제후였던 ‘하드리아누스’는 토라(모세오경)의 낭독금지와 할례의
시술 금지 그리고 안식일준수 금지 등을 표방(標榜)하고 이를 어길 시 사형(死刑)을 구형하겠노라는
칙령을 앞세워 유대를 공략했던 때가 있었다.
이 조치에 일련의 비겁한 그리스도인 무리,
즉 그 후에 카톨릭이라 불리운 세력의 부조리한 계획들이 기획되었음은 얼마듲지 유추(類推)해 볼 수도 있는 바,
그때까지만 해도 안식일의 존엄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이들에게서만큼은 추상같은 로마의 위협에
초연한 척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유대와의 차별만이 목숨을 연명할 유일한 대안이었던 고로
이에 걸림돌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대두됨에 따라
최대의 방해물인 안식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돌입,
여기에 동원된 날이 바로 일요일이었다. 이는 태양을 공경하는 로마의 신앙에 적절히 부합될 만한 대안(代案)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곧이어 실행에 옮기는 참람된 짖은 저질러 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로 불거진 많은 일들 모두가
안식일을 지우고 대신 일요일을 세우는 작업이 주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 김종성 -
첫댓글
상황이 그러했던 지라 안식일을 고수하고자 애섰던 무리들은 알프스의 험한 골짜기나 더 어려운 곳 등에
자연히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으리라. 역사의 흔적은 비성경적인 일요일 옹호론만이 득세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준수의 각 세기(世紀)별 기록들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도 있다. 필자는 선조들의 열악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안식일을 지켜낸 수고에 숙연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