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나날들> 코냐 먼드류사, 드라마, 헝가리, 2002년, 99분
제목을 보고 뭔가 아름다운 것을 상상했지만, 뜨거운 현실의 환멸을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현실은 구제불능의 수렁 같다. 그 속에 자라는 청춘은 수렁에 더욱 빠져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지 통 알지 못한다. 그저 성장통으로서 나이브한 경험으로 겪어야 하는 걸까? 온갖 컴플렉스로 얼룩진 인간군상의 문제는 모두 개인화되지만 사실 그것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의 근본을 문제삼는다면 모두들 정신나간 소리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덕분에 성장통은 사회적 질병까지 덧붙여 열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를 보며 느낀 불편함은 자유롭고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억압하며 비틀어버린 현실의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그 뿌리와 줄기의 끝을 관망하거나 더듬을 수 없다. 그저 개미들처럼 발버둥치며 타오르는 나무토막에 달라붙어 악몽같은 현실과 씨름할 뿐. 어찌보면 지옥같은 이 세계를 천국의 나날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겠지만, 불가능한 것이기에 더욱 역설적으로 더욱 강한 천국의 나날이 되지 않았겠는가? 철저히 무너진 사랑을 이름하여...
= 시놉시스 =
감옥에서 형량이 반으로 줄어서 출감한 피터는 여권을 만들러 가지만, 아직 서류가 안 되어서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없다는 얘길 듣는다. 여권이 나올 때 까지 누나인 마리카의 집에서 기다리기로 한 피터는 누나의 세탁소에 갔다가 마야가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그러나 마야가 낳은 아기는 마리카가 자신의 아이처럼 키우기 시작하고, 마리카의 남편 조셉이 외국에서 돌아오자 아이의 세례까지 진행한다. 누나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일거릴 찾기 위해 옛 친구 소니와 함께 야누스를 찾아간다. 동네에서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야누스는 피터와도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 야누스를 만나러 가던 길에 피터는 그의 정부인 마야를 만나게 된다. 피터는 차츰 아름다운 마야의 매력에 연민의 마음과 사랑, 그리고 질투의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는 동안 피터는 마야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마야가 아이를 팔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피터는 점점 자신과 그녀를 둘러싼 모든 관계 속에서 혼란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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