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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성부는 시 ‘봄’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때도 너는 온다’고 했다. 올 들어 가장 포근한 휴일인 5일이 그랬다.
유난스런 한파 때문에 예년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던 ‘히트텍 하의’를 입고 다녔는데 이날은 다리가 거북스러울만큼 햇살에 온기가 감돌았다.
봄기운이 어느새 우리곁을 찾아온 것을 피부로 느꼈다. 4일이 입춘이니 추위가 아무리 맹위를 떨쳐도 절기를 이길 순 없을 터다.
미세먼지 때문에 망서리긴 했지만 화창한 휴일 오후 나들이에 나섰다. 목적지는 만인산과 식장산 자락 사이에 있는 대전 상소동 산림욕장. 숲체험 공간이 잘 갖춰져 있어 젊은층에겐 오토캠핑장으로 인기 있는 곳이다.
이곳의 랜드마크는 돌탑이지만 얼음 동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개울가에 마치 얼음으로 성곽을 쌓은 것처럼 길게 이어졌다. 다리를 건너면 양옆에 눈과 얼음으로 쌓아올린 얼음길도 만들어놓았다.
메마르고 황량한 계절에 색다른 정취를 보여주기 위해 겨울테마 시설로 인위적으로 조성해놓았다. 다소 어설프긴 했지만 흔치않은 풍경에 길을 걷는 탐방객들은 즐거워했다.
하지만 산림욕장의 진짜 자랑거리는 여기저기에 세워진 400여개의 돌탑이다. 그 중에서도 피크닉장 입구의 17개 돌탑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이다.
형태가 워낙 이국적이어서 돌탑 사이에 서있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와트 사원에 온 것 같다.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대전 대흥동에 사는 이덕상(92) 할아버지가 지난 2003년 가을 부터 2007년까지 집과 이곳까지 먼 길을 오가며 4년간 혼자서 돌탑을 완성했다.
1개 쌓는데 3개월이 걸렸다는데 맨처음 동남아시아 불교사원 같은 돌탑의 모양을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희망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돌탑을 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4자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대전의 앙코르와트'를 지나 산림욕장 산책길을 걸었다. 산 허리에 오솔길을 냈는데 그리 길지않다. 겨울이라 나무가 헐벗어 다소 건조한 풍경이지만 부드러운 햇볕때문인지 초봄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지에 물이 오르면 금방 새 순이 돋고 4월쯤이면 봄꽃이 무르익어 산림욕장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풍광이 연출될 것이다. 산책은 한시간만에 끝났다. 코스가 짧아 아쉽긴 했지만 그 길에서 기다림마저 잊은 봄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