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 생기는 여드름이야 ‘혈기왕성해서 그렇겠거니…’ 했다. 그런데 20대 중반을 넘어서, 아니 심지어 서른이 지난 후에 나는 여드름은 어떻게 해석하란 말인가. 특히 이마와 볼 주변은 멀쩡한데, 유독 입 주위에만 집중되어서 이미지를 구기는 여드름, 그 원인은 무얼까?
이유를 단언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피부과에서 지겹게 말하는 것처럼 그 원인은 ‘다양’하다는 것. 하지만 다양한 원인 가운데에 당신의 것이 존재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그 원인을 짐작해보기로 하자.
첫 번째 가능성은 호르몬이다. 신 클리닉의 김명신 원장은 “여자에게 있어 입 주위는 남자들의 수염이 나는 부위와 일치하죠. 이곳에는 안드로겐 수용체가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 호르몬이 서서히 감소하는데(폐경 전후로는 급속히 감소한다),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곳에 여드름이 생기는 거죠. 가슴이나 등 부위에 생기는 여드름도 이곳에 DHEA(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의 전구 물질) 수용체가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평소 생리 양이 극도로 적다면 호르몬을 의심해볼 수 있겠지만 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혈액 채취를 통한 호르몬 검사에 의존해야 한다. 만약 결과가 호르몬 불균형으로 밝혀지면 호르몬 제제를 섭취하면 된다. 경구용 피임제(먹는 피임약)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함유된 여성 호르몬이 여드름을 유발하는 안드로겐(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반감시켜주지만, 기미나 유방암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수다.
혹시나 임신을 하면 여드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물론 태아의 성장을 돕기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에스트로겐)이 피지선에 영향을 주어 여드름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프로게스테론의 영향을 받으면 피지가 많아져 더 심해지는 사례도 종종 있다. 특히 생리 전에 여드름이 심했던 사람이라면 임신 중 생길 수 있는 여드름을 각오해야 할 것.
두 번째 가능성은 장 문제다. 장이 나쁘면 입 주변에 뾰루지가 난다는 속설에 일리가 있는 셈. 장내 환경이 안 좋아서 장내 세균이 많이 번식하는 경우 그 세균은 혈액을 통해 우리 몸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때 피부에 온 세균이 감염(이런 경우 반드시 여드름이라고 보기는 어려움)을 일으키거나 또는 뾰루지나 종기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장이 나쁘면 AGE(Advanced Glycosylated Endproduct)라는 물질이 많이 형성되는데, 피부 노화는 물론 트러블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자주 아랫배가 더부룩하고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는 ‘과민성대장증후군’ 증세가 있다면 장 문제를 의심해볼 것.
세 번째 가능성은 간이다. 유전적으로 간 기능이 약하다거나 평소 과음을 즐기는 편이라면 여기에 속할 확률이 높다. 간이 여드름에 영향을 미친다? 생소한 이론일 수 있지만, 간이 제기능을 못하면 몸 속의 독소가 제대로 해독되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 트러블로 이어질 수 있다.
네 번째 가능성은 화장품에 의한 여드름이다. 피부과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원인으로 화장품에 함유된 광물성 기름(라놀린/페트로라툼)이나 라우릴 알코올, 부틸스티알레이트 등이 원인이다. 사춘기 시절 여드름을 경험했던 여성이라면 이런 가능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 하나. 얼굴 전체에 화장을 하는데 굳이 입쪽에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10대 시절 여드름이 나지 않았던 입 주변과 턱 주위는 20대에도 모공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가능성은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부신 피질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때 안드로겐이 같이 분비되면서 피지 분비가 많아져 입 주변에 여드름이 나는 것. 여기서 생기는 의문 하나. 똑같이 사춘기이고 비슷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왜 누구는 여드름이 생기고 누구는 멀쩡할까? 그건 사람마다 호르몬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서다. 여드름이 나는 사람은 그만큼 남성 호르몬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원인이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았는가?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각자의 원인에 따른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여드름이 나는 동안에는 가급적 유분이 없는 오일 프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면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불규칙한 생활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키므로 12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도록. 어떤 식품이 여드름을 유발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특정 음식을 먹은 다음 여드름이 악화되었다고 생각되면 가급적 그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