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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자각 전단계
밝은 파워에너지 단계
선형적 마음의 단계
깨달음은 헌신적 비이원성(비선형적)
서론
낮은 의식수준들에서
에고는
일차적으로
동물생존의 기술과 감정들을 바탕으로 하는
삶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삶은
'쾌락, 포식, 이득'과
정렬되어 있다.
세월과 함께 의식이 진화함에 따라
인류의 일부는 물론이고
어떤 동물 종은 의식수준 200까지 상승했다.
이 수준은
낮은 힘이 아닌 힘에 대한 의존을 예고하는
주요 경계선이다.
인간의식에서 이러한 이행은
변형을 일으키는 영적 에너지의 점점 커가는
영향력을 반영한다.
영적 에너지의 영향력에는
점진적 앎이 그리고
사랑의 에너지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동반되며
그 결과
행동, 감정성, 정신화는
갈수록 온건해진다.
사랑의 에너지는
또한 진실에 대한
점진적 앎과 정렬되고
저변의 실상과 정렬되는데,
존재와 창조는
물질성과 영성
모두의 진화로서
저변의 실상에서 출현한다.
물질성과 낮은 힘은
그 선형적 표현들에서의 진화를 나타내는 반면,
기본적 생명에너지 자체는 물론 영적 에너지는
비선형적이며, 형상과 본질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러한
대조적 성질들을 구별하는 능력은
영적 앎으로 그리고 영적 실상을
진실로 인지하는 능력으로
출현한다.
생존능력을 도운 것은
지성이었는데,
지성은
먼저 선형적 영역을
이해할 수 있고,
점점
진보하면서
추상적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생명의식의 성질이다.
사람과에서 지적능력의 진화적 진보는 전뇌의 출현으로 가능해졌는데, 전뇌는 양족동물의 진화와 더불어 우세해졌다. 이 신생의 정신능력, 인지는 의식수준 200이하에서 일차적으로 생존, 공격, 지배의 동물본능을 돕는데 이용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형상이라는 제한된 선형성을 보조했다.
의식이
200수준 이상으로 진화하면서
생명과 앎의 에너지는
점진적으로
사랑의 비선형적 실상들과
박애, 영적 진실의 탐구와 정렬되었다.
타자의 고유한 가치가
하나의 실상이 된 것은
오로지 200수준에서의 일이다.
뇌생리와 진실의 기능
진실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의식수준과 일치하는데
이것은
뇌의 해부학적 구조의 진화에서 뿐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간 뇌 생리의 변화 및
뇌의 우세한 정보처리 방식의 변화에서
반영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은 차례로 저변의 보이지 않는 영적 에너지 장들에 의지한다. 인간에게 결정적이고 심오한 변화는 의식수준 200에서의 뇌 생리와 정보처리 방식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의식수준 200이하
좌뇌(오른손 잡이의 경우)는
정보처리가 우세하다.
입력은 중계중추(시상)을 거쳐
빠른 정보를 통해 감정/본능중추(편도체)로 곧장 처리되고,
전전두 피질에서는 느린 경로를 통해
입력이 뒤늦게 처리된다.
그래서
감정반응은
지성과 인지가
반응을 수정할 기회를 갖기 전에
일어난다.
시간에 대한 기억은
학습으로서 그리고
회상을 위해 뇌의 해마영역에 저장된다.
이 좌뇌과정은
기능상으로 동물뇌와 유사한데,
그것은 좌뇌과정이 개체의 생존에 경도되어 있고
그래서 인간에게서 그것은 에고에 봉사하기 때문이다.
좌뇌 과정의 이러한 지향으로 인해
가족이나 부족(무리) 구성원을 포함하는 타인은
일차적으로 개인적 생존을 위한
대상이나 수단으로 비친다.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은
전전두 피질에서 나온 정보의 지연입력을 통해
공급된 정보가 반응중추에 도달하는 것은
느릴 뿐 아니라 반응중추에 도달했을때는 이미
미리 유발된 감정반응에 종속되게 된다.
그래서
지성은
일차적으로 동물욕구와
이기적 목표의 도구가 된다.
따라서
후속반응은 원시적이고
생존 지향적이며 투쟁 혹은 도주패턴을 거쳐 나오는데,
여기에는 코르티손이나 아드레날린 분비와 같은
신경호르몬적 귀결이 동반되고
이는 차례로 경락과 면역계의 생리에 부담을 준다.
이 좌뇌의 자기중심적 반응체계는
신체근육의 일시적 약화와
부정적이거나 약한 운동역학반응을
동반한다.
하지만
신체의 에너지계는
경락균형을 신속히 복구하고 회복시켜주며
그 결과 전체적 에너지계는
다음번 자극 반응주기에 앞서
다시 평형상태를 이룬다.
한스 셀리에는 스트레스 반응패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경보반응
2. 저항단계
3. 피로 및 생리적 손상단계
좌뇌우위는
제한적이거나 존재조차 하지 않는
영적 앎을 통해서도 반영되는데,
그것은 좌뇌는 동물적 생존을 위해
프로그램되기 때문이다.
사건들의
이러한 연쇄에 대한 기억은
뇌의 해마영역에 저장된다.
그래서
나중에 일어나는 회상은
사건들의 그러한 연쇄에 대한 기억을 다시 일깨우는데,
그것은 기억이 에고의 원시적 생존목표와
생존기술로 맥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은
부정적 감정에 물든 채
두려움, 불안, 분노, 분개,
혹은 이득의 쾌락과 더불어 저장된다.
의식수준 200이상
오른손잡이의 경우 우뇌(왼손잡이는 좌뇌)는 200이상의 의식수준에서 우세해지게 된다.
입력은
중계중추를 경유하여
전전두 피질로
여기에서 감정중추로 빠르게 전달된다.
따라서
지각은
지성에 의해 수정되고
사건의 전체적 의미는
우세한 의식수준에 따라 맥락화된다.
일반적으로
회상은
순전히 좌뇌반응으로 기록되었을 경우에 비하면
보다 온전해진 사건들에 대한
회상이다.
우뇌의 영화된 뇌 정보처리와
영화된 뇌생리로 인해
신경호르몬 반응은 동화적이어서
엔돌핀을 방출하고
경락균형을 유지한다.
또한
편도체(감정중추)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분비되는데,
이것은 모성본능, 부성행동, 암수결합,
그리고 포유동물의 사회적 뇌를 매개로한
사회적 능력과 관련된다.
옥시토신은 말초적(호르몬적) 작용이 있고 뇌에도 작용한다. 작용은 특정 옥시토신 수용체(oxytocin receptor)가 매개한다. 옥시토신 수용체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rotein-coupled receptor), OT-R인데, 이는 마그네슘과 콜레스테롤을 필요로 하며, 자궁 근층 세포(myometrial cells)에서 발산된다.[9] 이는 G-단백질 연결 수용체의 로돕신 유형군(rhodopsin-type (class I) group)에 속한다.[10]옥시토신 연구에서는 오르가즘(orgasm), 사회적 인정(social recognition), 페어 본드(pair bonding), 불안(anxiety), 내집단 편향(in-group bias), 정직성(honesty)의 상황적 결핍, 자폐증(autism), 모성행동(maternal behaviors) 등과 같은 다양한 인간 행동에 있어서의 옥시토신의 역할을 주목해 왔다
알기닌 바소프레신(Arginine Vasopressin;AVP)은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하는 펩티드호르몬으로, 알기프레신(Argipressin)[1] 또는 항이뇨호르몬(Antidiuretic hormone;ADH)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대뇌와 혈관에서 다양한 작용을 한다. 성관계시 분비가 촉진되면서 파트너와의 유대감을 증대시킨다. 남성에게서 다른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다.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이나 알코올 등의 화학 물질에 의해 분비가 억제되기도 한다.
동시에
운동역학 테스트반응은
강하고 긍정적이다.
보다 건강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경향을
어린 시절의 교육과 더불어
고전음악, 아름다움, 종교활동에의 노출에 영향받는데,
이 모든 것이
뉴런의 패턴화와
뉴런 연결에 영향을 미친다.
뇌연구는
비우세 뇌반구가
미술, 자연, 음악, 영성, 아름다움으로 자극받는다는 것과
이는 결국 이타주의와 내면의 평온을 심화시키고
의식수준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는 뇌의 "신경가소성"과 명상결과로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를 입증했다. 의미있는 주된 차이들은 다음과 같이 도표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림 참조
의식수준 200에서의 정신적 변화
의식수준은
측정가능한 에너지 장과 정렬되는데,
비선형 동역학에서는
이러한 에너지 장을
끌개장이라고 한다.
끌개장은
특정한 의식수준과 관련된
일치하는 에너지 장의
개별적 수준을 지배하며,
지성의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
일차적으로
생존과 정렬된 끌개장을
낮은 마음이라고 하며,
이것은 155수준으로 측정된다.
낮은 마음은
육체적 생존, 감정적 쾌락,
개인적 이득과 관계한다.
낮은 마음은
본질적으로
자기이익과 정렬된 것으로
표시된다.
의식은
진화를 계속함에 따라
갈수록 타인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더욱 큰 식별력과 함께
결국에는
높은 마음으로 표시되는
275수준에 도달한다.
높은 마음은 비선형적 추상과 본질을 다룰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원리에 대해 그리고 본질의 미묘한 성질에 대해 한층 민감하다.
태도
태도는
지각, 감정, 정신작용, 합리성이
의식의 다른 수준들에서
영향받는 정도를 반영한다.
155 수준의 낮은 마음과
대비되는 의식수준 275의 높은 마음에서
세상은 전혀 다르게 경험되고 보인다.
이러한 수준들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심원한 영향을 미친다.차이의 정도는 두개의 다른 대조적 문명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과 흡사한데, 이 두 문명은 인간관계의 성질, 쾌락, 삶의 행복, 세속적 성공, 철학, 정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영적 앎과 영적 정렬의 수준이 다르다.
낮은 마음이
상황의 선형적 세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자기 이익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높은 마음은
전체적 맥락을 포함하며,
그로 인해
영적 의의를 포함하는
추상적이고 비선형적인 의미에 대해 안다.
도표
모든 점진적 변화는
온전성을 반영하는
대조적 쌍들 사이에 존재한다.
예를들면
갈망, 원함, 욕망, 꼭 가져야 함, 요구와
이와 대비되는 선택지들인
선호, 희망, 소망, 선택, 애호, 수용간에는
차이가 있다.
이 단 하나의 성질에서의 차이만으로도
살인, 격노, 우울, 비참함과
이에 대비되는
만족, 이완, 느긋한 기대간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심리학, 정신의학, 뇌화학분야에서는 지금 태도에 대한 연구에 크게 주목하고 있는데, 이것은 태도가 인간의 행복, 만족,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입증해준다.
태도는
지각된 자기를
지각된 세계 및
지각된 타인들과 관련시키는
정신적 습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태도는 이른바 "자기개발"분야에서 연구되며, 이에 대해서는 연수회들과 방대한 문헌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집단적 경험에 따르면
자기와 타인에 대한 기대는
성장과 점진적 성숙 및
영적진화와 더불어
수정된다.
그래서
성장의 문화적 장은
최근에 문화적 창조자로 명명된
사회의 진보적 부문을 끌어당긴다.
간단한 연습삼아 다음을 포함하는 대조적인 목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지는 효과를 낳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동안 간과되어 온 다양한 선택지들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표2. 마음의 기능 - 태도
표 2는 자기 앎에 도움이 되는 그 이상의 선택지와 가능성들을 드러내준다. 한계가 있는 태도는 "성격 결함"으로 불렸는데, 영적성장을 지지하는 단체는 이러한 결함을 인지하고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자마자 그것이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자신의 결함을 부정하는 대신 수용하는 것의 이로움은 자기정직성의 내적감각의 증가, 안심, 고양된 자존감으로 나타나며, 이와 함께 방어적 태도 및 자각된 무시에 대한 신경질적 예민함이 크게 줄어든다.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감정을 다치거나
남에게 따져야할 일이 없는
경향이 있다.
정직한 통찰에는
잠재적인 것은 물론
실제의 감정적 고통을 줄여주는
즉각적 이로움이 있다.
사람이 겪는 감정적 고통은
자기 앎의 정도 및 자기수용의 정도와
정확히 관련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약점을 인정할 때
타인은 그부분을 공격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감정적으로 덜 취약하며
보다 안전하고 무사하다고 느낀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언쟁은
단순한 성격 결함에 대해서조차
인정하거나 책임지기를 거부하는데서 비롯된다.
예를들어 그것은
어떤 심부름이나 사소한 일을 깜박하는 것인데,
기묘하게도 이러한 것들이
대인관계 갈등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말다툼은
감정적 성숙함과 정직성이 있었다면
미연에 방지되었을 사소한 일들에 대한
끝없는 상호비난을 나타낸다.
가정폭력과 배우자 살해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자기애적 에고를 풀어놓으면서
점점 고조된다.
놀랍게도
자기애적 에고에게 정당성은
생명 그자체보다 중요하다.
고통없는 성장의 비결은
겸손함인데,
겸손함이란
자부심과 가식을 버리고
오류 가능성을
자신과 타인의
정상적인 인간특성으로
수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낮은 마음은
관계를 경쟁적인 것으로 보지만,
높은 마음은
관계를 협력하는 것으로 본다.
낮은 마음은
타인에게 관여하게 되고
높은 마음은
타인과 정렬되게 된다.
미안합니다라는
단순한 말이
대부분의 불을 고통없이 끈다.
삶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누구 잘못이냐?'에 대한 강박적 사고를 포기함을
의미한다.
상냥함이
호전성보다 훨씬 강력하다.
승리보다는 성공이 더 낫다.
표 3. 마음의 기능 -태도
부정적 태도 대신
긍정적 태도를 채택할 수 있는 힘은
의지의 영역안에서
이미 이용가능하다.
도움을 구하는
신성의 간청은
결국 변형을 일으키는
어떤 과정을 낳는데,
이 과정은
수행과 더불어
더욱 강력해지게 된다.
왜냐하면
성격은 이제
나약한 선형적 에고 대신
강력한 긍정적 끌개장에
정렬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행초기에는
거짓이나 인위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놀랍게도
자연스럽고 쉬워지는데
왜냐하면 실상과 정렬되고 실상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선형적 에고/자기는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영적 참나의 힘은
무한한 장으로 지지되고
생명은
이 무한한 장으로 인해
진화하고 생존한다.
사랑은
지지를 불러내고,
분노는
지지를 쫒아낸다.
저항이라는 납추를 던져 버리면
코르크는 자신이 가진 부력의 귀결로서
자동적으로 해수면으로 떠오른다.
성격특성 - 성격형성
건설적이면서
보다 성숙한 태도의 학습과 적용은
보다 유쾌한 성격을 낳고
이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더욱 큰 전반적 만족감과 정렬된다.
155수준에서
주관적 행복률은
15%에 불과하지만
의식수준 275(높은 마음)에 이르면
그 비율은 4배인
60%가 된다.
에고는
서로 맞물린 벽돌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벽돌한장이라도 빼내면
무더기 전체가 흔들리고
그 다음
그것은
자체의 중력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표면상으로
사소한 노력조차
매우 큰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사람은
단순한 미소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발견한다.
자기계발과
영적 길에 따르는
수많은 사람은
이러한 발견이 실상임을 확증한다.
다음은 승자의 태도에 대한 목록인데, 이 모든 것은 아주 간단하게 선택할 수 있고 그 이로움은 지극히 장기적이다. 측정수준 200이상의 에너지 장에서 사는 삶은 그 수준이하에서 사는 삶과 전혀 다르다.
긍정적 성격특성 - 1부
위의 표는 200이상으로 측정되는 역사상의 모든 성공한 사회가 소중히 여기고 지지해온 성질들을 드러낸다.
영적 앎에 이르는 길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높은 동기는
힘을 반영하는 에너지로 강화되는 반면,
이기적 위치는
약하고, 제한적이며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부정적 성질이 서로 얽혀 있는 것처럼
긍정적 성질 또한 서로 얽혀 있고,
그 결과 한 영역에서의 진보는
의식적으로 다뤄진 적조차 없는
다른 영역들에서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온다.
의식연구를 통해
긍정적 태도의 채택은
곧장
어느 의식의 장 전체의 끌개장을
불러들인다는 것과
이것은
그 다음
부지불식간에
성격을 바꾸기 시작하고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을
이롭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된다.
낮은 마음에서 높은 마음으로의 이행은 50%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단 8%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어낸다. 또한 빈곤률은 22%에서 1.5%로 떨어지고, 범죄율은 50%에서 단 9%로 극적인 하락을 보여준다.
비슷한 큰 이익이
삶의 다른 모든 중요한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교육수준, 수입, 결혼생활의 성공, 평판, 외모, 사회적 인정, 첫인상,
언어습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관점들이 거기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은
개인적 책임의 수용을 반영하며
그래서 교통법규 위반률, 신용등급, 주택보유율, 신체적 건강, 수명,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으로 개인적 만족에서 큰 변화를 낳는다.
이러한 점은 개인적 수준에서 매우 분명하고 명백한데, 집단적으로 표현될때 한층 더 그러하다. 155수준으로 측정되는 사회는 혜택받지 못한 특성의 우세를 특징으로 하는데, 예컨대 빈약한 경제발전, 낮은 문자해독률, 높은 출산률과 높은 영아 사망률, 높은 실업률이 그것이다.
그와같은 사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또한 시민권의 악용과 억압, 부패의 만연, 극단적 부의 편중이 있다. 이러한 사회는 빈곤의 만연, 시민적 자유의 부재, 폭력과 억압의 횡행을 보여주며, 집단적으로 미발달 상태라거나 심지어 대단히 원시적으로 묘사된다.
경험적 실상
에고/마음은
삶의 경험에 대한
자신의 지각과 해석이 실제하며,
따라서
진실이라고 추정하고
확신한다.
에고/마음은 또한
타인들이 자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며 느낀다고 믿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투사를 통해
그것은 타인들의 잘못이고
따라서 그들이 틀린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듯 지각은
구체화와 추정을 통해
그것의 지배력을 강화한다.
그동안 묘사해온 것처럼
의식의 각 수준은
의식의 어느 한 지배적 끌개장과 일치하고
또 그것을 반영하는데,
바로 이것이 의미와 가치를 맥락화한다.
따라서
누구나 각자가 만들어낸
동의와 다양한 합리화의 추구로 강화된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세계들 간의 불일치는
공감, 연민, 수용, 성숙의 지혜로써
긍정적으로 보상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정적 태도는
그 세계들간의 차이를 분노, 분개,
기타 부정적 감정의 근원으로 본다.
경험상의 차이가
단지 레스 인테르나(지각)에 한정된 것인지,
혹은 경험자체에서의 외적차이로 인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이 솟아난다.
엄밀한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수준대로
폭넓은 편차를 지각할뿐 아니라,
사실상 전혀 다른 사건들을 경험한다.
적대적인 이들에게
타인은 실제로 냉적하고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따뜻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동일한 환경이
기운을 북돋아 주며
지지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변 사건들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온건한 태도로 인해
긍정적인 사건들을 끌어당기는데,
정반대의 경우도
꼭같이 사실이다.
동물조차도
의도를 직관할 수 있고,
인간은 의도, 태도, 의식수준을 반영하는
식역하 신호들의 안내를 받는다.
한계 내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어 있는 것의
반영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
회의론자가
영적 실상의 확실성을 의심하는 것은
이들은 기적과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
더 높은 차원들의 실재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기계적인 마음은
그런 모든 현상(싯디 등)을
기껏해야 신기한 것,
심지어는 망상적인 것으로 보며,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듯
의식의 각 수준은
스스로를 비준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의식의 진화가
느려보이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요약
전술한 모든 것으로부터
의식수준 200을 뛰어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크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첫댓글 낮은 의식수준들에서 에고는 일차적으로 동물생존의 기술과 감정들을 바탕으로 하는 삶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삶은 쾌락, 포식, 이득과 정렬되어 있다. 세월과 함께 의식이 진화함에 따라 인류의 일부는 물론이고 어떤 동물종은 의식수준 200까지 상승했다. 이수준은 낮은 힘이 아닌 힘에 대한 의존을 예고하는 주요경계선이다. 인간의식에서 이러한 이행은 변형을 일으키는 영적 에너지의 점점 커가는 영향력을 반영한다. 영적 에너지의 영향력에는 점진적 앎이 그리고 사랑의 에너지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동반되며 그 결과 행동, 감정성, 정신화는 갈수록 온건해진다. 사랑의 에너지는 또한 진실에 대한 점진적 앎과 정렬되고 저변의 실상과
사람이 겪는 감정적 고통은
자기 앎의 정도 및 자기수용의 정도와 정확히 관련된다//
감사합니다_()_
의식수준 200을 뛰어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크고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