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 월, 4 월 Corona Virus 가 그위세를 최고로 날뛰고 있을 때 Quebec주와 Montreal 시 에서는 Ont. Toronto 시 보다 거의 50% 이상 많게 환자수를 기록하여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Quebec 주, Montreal 은 New York주
New York 시 와 가까워 Virus Strain 이 남쪽에서 올라온 아주 강한것 때문이라는등 설이 있는데 나 나름 대로 74-80 년도 살다 온 경험으로는 French Canadian 들은 Party 를 좋아 하고 또 Quebec 은 거의 French Canadian Mono-Race 사회와 가까운 곳이라 Ontario-Toronto 같이 다국적 문화 지역과는 달리 상호 거리두기가 ( social distancing ) 비교적 더힘들기 때문일거라고 추측 하기도 했었다.
이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은 Corona로 고생들하고 있으니 한동안은 Canada로 부터 독립 하겠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좀 잠잠해 지겠지.
나의 Montreal 생활 6년을 생각해보면 French Canadian 들은 점잔은 English Canadian 들에 비해 다혈질이고 확근하고 개성들이 뚜렀하여 참 호감이 가는 반면 가끔씩 독립하겠다고 떼거지 쓰는 모습에 질려서 욕을 해주고 싶은 Love & Hate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
먼저 욕부터 하자. 그래야 속이 시원해 질 테니.
Montreal 은 원래 80년도 전만 해도 Canada 에서 제일 큰도시였다.
허나, 난데없이 나타난 Rene Levesque 이 1976년 Separatist Party ( Parti-Quebecois ) 의 대표로 Quebec Premier로 선출되면서 독립을 주장하자 큰회사들이 다른주들로 이사가기 시작하면서 경제난이 오기시작.
그선두 자리를 빼았겼다.
처음에 얘기 들을 때는 나자신도 Montreal 대학에서 French 학생들이 대부분인 Class에서 공부하다 보니 동정감에서 그들에게 힘을 주고 싶기도 하였다.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서울서 공부할 때 영자, 일본어 원서를 들고 다녀야 뭘 좀아는 사람같이 행세하는 시절이있었다.
앞서가는 문화 그늘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망을 너무도 잘이해하는 나로서 English 문화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날이갈수록 느낀것은 English 들과 French들 두 고래등 싸움에 제3자가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고 싸움의 열기가 강해질수록 Minority Community의 Interest 는 소외 당하는 느낌에 이주바람에 동참하기로 하여 Tooronto로
이사.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당시 Toronto Star Columnist " Gary Lautens " ( 지금은 Rosie Di Mano 가 그 역할) 은 글을 Humor를썪어가며 써서 인기가 많았는데 당시 사정을 얘기하면서 " 요즈음 Toronto 시내에 차에 Quebec Plate를
달고 다니면서 왔다 갔다하는 Quebec에서 온 Refugee들을 많이 볼수있다고"
이글을 읽으면서 내신세를 그대로 이애기 해주는겄 같았다. Quebec 에서 온피난민들 이라는 얘기.
그런 이유로 이사는 했지만 40년이 되어 생각해보면 Montreal에서 처음 보낸 6년은 너무나 값있는 투자였다.
서울에 있는 Alliance Francaise 에서 불어공부하면서 Montreal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67년도 EXPO가 열였든 Montreal엘 가면 Buckminster Fuller가 Design한 Dome Style 미국관을 볼수 있깼고
Brazil의 Oscar Niemyer가 Design을 한 Pyramid를 거꾸로 매달은것 같이 보이는 건물을 볼수있다는 꿈에 Montreal 가기로 정한 전부이유였다.
건축공부한 사람의 소원 이나 돌이켜 보면 참 위험한 결정 이었다.
- 몰랐던 것은 Montreal 겨울이 그렇게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는것.
Montreal에 사는 대부분이 French Canadian 이고 곧 독립을 주장 할거라는 것.
French 가 곧 Official Language 가 되어 모든 문서가 French를 사용하여야
된다는거.
어디를 가든 Seoul, Korea 가 Japan 근처 나라인지 Vietnam근처 인지 잘 분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라는거.
- 다행인겄은 겨울이 그렇게 추었어도 지하철이 ( Metro) 시내 중요 시설들과
잘연결되어 잇어 별추운거 모루게 지냇고
매년 조사하는 통계 발표에 의하면 Montreal 은 세계도시 중 다섯째 로
살기좋은곳이라 살기 편하고 안전한 곳이라는것.
Rent, 학교 Tuition 그리고 Health Insurance 가 많이 저렴하다는것.
-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혜택으로 초기에 적응하기가 그리어렵지 않아천만다행이었다.
다음 6년간동안 공부도 끝내고
French 와 English를 같이 사용하는 완전 Bilingual Office 에서 근무하였고 산, 강, 다리 등 자연환경이 평평한 들판에
세워 놓은 Toronto 에서 못보는 운치가 있고 특이하게 설계된 subway역들, 그리고 3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Old Montreal, 지은지 거의 200년이 된 Gothic Style의 Notre Dame Church.
시 가운데 위치한 Mont Royal 산 그리고 그산 정상에 있는 인공 호수 ( Lake Beaver ). 이경험으로 Canada라는 나라의
초기 여건을 Montreal 에서 더불어 보고 느낄수 있었기에 좋은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1995 년 당시 Prime Minister였던 Jean Chretian은 두번째 국민투표 ( Quebec Referendum ) 에서 아슬하게 과반수가 못되어 실패는 했지만 예상 보다 찬성이 많은데 놀라 헌법재판소에 과연 Quebec 단독 찬성만으로 독립할수 있는지
헌법 규정 해석을 의뢰하였었는데 1998년도 에 나온 대답은 1982년 Prime Minister Trudeu가 성공한 새헌법에 이거 하면 최소한 일곱 ( 7 ) province 의 동의가 필요한데 유일하게 Quebec이 그 새 법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라 만일 찬성 표를 과반수 얻게 되면 일곱 province들의 동의보다는 Quebec과 전 나머지 Province들이 조건들을 Negotiation 을 하여서 결정하여야 한다라는 해석을 발표하여 Quebec 투표가 필요조건이나 충분 조건은
아니다라는 결론. 이 결론을 내린 재판관들중에는 QUEBEC 출신들도 인구 비례로 참석하여 Quebec에서도 불공평하다고 주장할수 없는 결론. 두사람들의 입장은 그렇다 치면 우리같이 소수 민족 Community가 우려해야 할일은 이 negotiation
과정에 두고래들이 우리의 의견을 얼마나 수용할수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조건이 헌법에 없으니 고려하지 않겠다면
Minority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 받을지.
반면 Quebec 이없는 Canada는 상상하기 힘들다.
근대 역사에 Canada Prime Minister 80% 이상 Quebec 에서 배출되었고
Canada 처음으로 67 Expo, 76 Olympic 이 Montreal에서 열렸고
Stanley Cup 을 제일 많이 석권한 Montreal Canadienne Team의 선수들 대부분이 Quebec 출신들이고
Havard of North, McGill 대학도 Montreal에 있다.
또 영화 Titanic 주제음악 " My heart will go on " , 신비하게 가슴을 파고 들어가는
노래의 주인공 Celin Dion도 Montreal 출신.
위의 모든 영광의 바닥에는 Canada가 있는데 독립의 의미가 무엇인지.
Quebec 이 없는 Canada는 Source없는 Spaghetti Dish.
나자신 같이 공부하면서, 그리고 직장에서 같이일하면서 생긴 personal connection 에서 얻은 인상은 French Canadian / open 되어 있고 Friendly한 전혀 배타적인느낌을 볼수없었는데 English Community와의 깊은 역사적 관계이라는 얘기도
있고 French 문화를 거센 Anglo-American 문화에서 보호하려는의도도 있다라는 이야기들. 이 6년간을 되새겨 보면 초창기엔 새환경에 무조건 적응하기 바빴고 조금지나선 원주민들 ( English & French) 세계 이해하기 바빳고 마지막으로는 희망,꿈, 의미, 무의미 생각하며 나의 갈길 찾기에 바쁜 시절이었다.
이런 이유등해서 가끔 Montreal 에 두고온 고향 같은 향수를 느끼는데,
또 다른 이유는
Montreal에 도착하여 어려웠던 초창기에 경기선배들로 부터 받은 따뜻한 대접 때문이기도 하다. 도착하고 McGil 대학 동쪽뒷문 Alton Street 에 있는 2층 집에 방을 Rent해서 살었는데 한 5분 거리에 McGil 에서 화학 박사 공부 하든 61회 Dr. 김 이 묵고 있었고 온지가 여러해되 두부찌게 만드는 솜씨도 늘어 가끔 초대 해주어 추운겨울 두총각들이 그두부찌게 먹으면서
고향얘기.
그선배 지도하에 St. Catherine Street 에 있는 Beer Hall ( Tavern ) 도 처음 가서
Labatt Blue Beer 와 Montreal Smoke Meat Sandwich 그리고 오이 Pickle 을 즐겼는데 그맛을 모르면 간첩.
그선배는 Havard에 Post-Doctor 끝내고 귀국하셨는데 잘계시는지.
또 당시 몇명 안돼는 모임이 였지만 먼저와 정착하시고 친절히 여기생활 소개 해주시든 여러 선배들 소식이 궁금한데
어느새 40여년전 이야기.
늦게나마 그선배들께 감사 인사드리면서.
첫댓글 . . . 1970년대 후반 6년 생생하게 설명한 Montreal 생활 - 옛날 애기 잘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올린 글에서도 어떻게 Bonnie & Clyde, John F. Kennedy, Thelma & Louise 가
무슨 자동차를 탔는지 기억하시는 걸 읽으며 - 감탄을했었는데, . . .
계속 훌륭한 글 올리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남은 여름 즐겁게.
정말로 벌써 거의 반세기가 후다닥 지나가는군요... 바다를 건너와서 각자 갈 길들이
바빠서 뒤돌아 보기도 힘든시절이 모두들 있었지요. 술술 써내려간 Montreal 이야기가
재미도 만점이지만 Minority 로 통찰한 Canada 의 정치 사회 이야기도 아주 잘 읽었습니다.
벌써 다음 글은 무엇일지...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남은 여름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