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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름난 샘>
뜨거운 샘물
- 산과 들에 더운 물은 많다 -
글 사진 | 오원
한국의 반쪽 남녁은, '어기짱'만 대는 사람이 난장판을 만드는 작은 나라. '큰 집'이라고 믿기라도 하는가. 따라하지 않아도 될, 중국의 문화혁명을 본 뜬, '어설프니스트'들의 꼴깝시대.
무지하게 덥고 지루한 여름, 낯 뜨거운 짓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며 내지르는 나라.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나라. '내 편은 아무렇게해도 옳고 네 편이 하는 짓은 모두 그르다'라고 윽박지르는 나라.
'어설픈 공화국'의 '광끼 문화혁명'도 막을 내릴 때가 거의 되었고, 속상한 백성들은 불황에서 허덕거리는 때이건만.
'지금의 우리나라는 육도(六道)마다 모두 온정(溫井)이 있으나, 경기(京畿) · 전라도(全羅道)만 없다.'하던 조선 땅의 지금은.
대한나라 팔도 어디에나 '뜨거운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나는지라.
경상도나 전라도나, 한양이나 경기도나, 충청도나 강원도나,
옷 벗고 들어가는지 옷 입고 '풍덩'거리는지 모르는 북쪽이나, 알록달록 수영복 입고 쏘다니기도 하고 옷 벗고 나대기도 하는 남쪽이나,
남자나 여자나, 애나 어른이나, 착한 사람이나 성질 고약한 인간들이나,
벌거벗고 '물텀벙'을 하는 곳이 있는지라.
과연, 조선 때는 나라의 어드메에서 '뜨거운 샘물'이 나왔는지를 살펴보건데, 대문장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용齋叢話)에서 그 기록을 보았으니, 몇 줄 소개하는 것으로, 한동안 비웠던 <한국의 이름난 샘>방에 출근부를 찍으려 하노라.
민족사관학교를 세운, 멋진 기업인 최명재 회장이 급자기 뛰어들어 전신화상을 입었다는, 그 '수돗물 데운 뜨거운 물'이 아니다. 사우나 물이 아니다. 땅에서 솟는 온천(溫川), 뜨거운 샘물이야기.
당자서(唐子西)의 논탕천기(論湯泉記)에 이르기를, “어떤 설(說)에는 염주(炎州) 땅의 성질이 몹시 더운 까닭으로 산곡(山谷)에 탕천(湯泉)이 많다 하고, 어떤 설에는 물에서 유황(硫黃)이 나오면 땅 속이 따뜻하니 당초부터 남북(南北)을 가리지 않는다.”하였으나, 지금 임동(臨潼) 탕천은 정서(正西)에 있고, 염주의 남은 물도 반드시 뜨겁지 않으니 땅의 성질에 관한 설은 이미 맞지 않은 것이다. 또 유황을 물속에 넣어도 물이 뜨거워지지 않으니 유황의 설도 역시 맞다고 할 수 없다. 내 생각에는 탕천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자연히 따로 한 종류가 되어 있어 본래 그러한 성질을 받은 것뿐이지, 반드시 땅의 성질이나 유황으로 인하여 따뜻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육도(六道)마다 모두 온정(溫井)이 있으나, 경기(京畿) · 전라도(全羅道)만 없다.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수주(樹州)에 온천이 있다.”하였는데, 수주는 곧 지금의 경기도 부평부(富平府)이다.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어 답사하였으나 그 근원을 얻지 못하였으니, 고서에 잘못 기재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싫어하여 그 줄기를 막아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경상도 영산현(靈山縣)에 온천이 있는데, 샘이 다른 곳보다 조금 차서 목욕하는 사람이 뜨거운 돌을 샘 속에 넣어 따뜻하게 한다. 또 목욕하러 오는 일본인이 연달아 끊이지 않았으므로 현(縣)에서 꺼려하여 임금께 아뢰어 그 샘 줄기를 막아버렸다. 동래(東萊) 온천이 가장 좋은데, 마치 비단결 같은 샘물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오는데, 물을 끌어들여 곡(斛)에다 받아둔다. 따뜻한 것이 끓는 것과 같아서 마실 수도 있고 데울 수도 있다. 일본인으로 우리나라에 오는 자는 반드시 목욕을 하고 가려 하므로, 얼룩옷[班衣]을 입은 사람들의 왕래가 번번하여 주현(州縣)은 그 괴로움이 많았다. 충청도(忠淸道) 충주(忠州) 안부역(安富驛) 큰 길 가에 온천이 있는데, 샘물이 미지근하고 별로 뜨겁지 않다.
온양(溫陽) 온천은 꼭 알맞게 따뜻하여 세종(世宗)과 세조(世祖)께서 친히 여러 번 임행(臨幸)하였고, 그 뒤에 정희왕후(貞熹王后)도 갔었는데 행궁(行宮)에서 세상을 떠났다.
청주(淸州)에는 초수(椒水)가 있는데, 물은 따뜻하지 않으나 그 냄새가 후추와 같았는데 사람들은 이 물로 씻으면 안질이 잘 낫는다고 하였다. 세종께서 친히 임행하였고, 그 뒤에 세조께서 복천사(福泉寺)에 가면서 이곳을 지나다가 머물렀다. 강원도에는 세 개의 온천이 있는데, 그 하나는 이천현(伊川縣)의 북쪽 깊은 산속에 있다. 세종께서 옛 동주(東州)의 들에서 강무(講武)하시고 온천에 들렀었다. 또 하나는 고성현(高城縣)의 속읍인 환가(豢豭)에 있으니 금강산 동쪽 기슭이다. 샘이 큰 시냇가에 있는데, 세조께서 친히 납시어 지금까지도 어실(御室)과 불당(佛堂)이 있다. 나머지 하나는 평해군(平海君) 서쪽 백암산(白巖山) 밑에 있는데, 샘이 상등성이 높은 언덕에서 솟아 나온다. 샘물이 알맞게 따뜻하고 매우 깨끗하다. 중 신미(信眉)가 큰 집을 짓고 쌀을 꾸어주고 받고 하여 목욕하러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베풀었는데, 지금까지도 옛날과 같이 하고 있다. 황해도(黃海道)에 온천이 가장 많다. 백천(白川)대교온정(大橋溫井) · 연안(延安)전성온정(氈城溫井) · 평산온정(平山溫井) · 문화온정(文化溫井) · 안악온정(安岳溫井)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해주(海州)의 마산온정(馬山溫井)이 가장 기이(奇異)하여 미지근한 것도 있고 몹시 뜨거운 것도 있다. 바로 샘 옆이 바다이기 때문에 그 냄새가 좋지 않고 맛은 짜다. 들 가운데 30여 군데쯤 있는데, 그중에는 괴어서 못을 이룬 곳도 있고, 혹은 조그마하게 물웅덩이를 만든 것도 있으며, 혹은 물밑이 뜨거워서 밟기 어려운 곳도 있다. 또 어떤 것은 넘치는 샘이 물을 뿜어내어 뜨거운 물거품이 용솟음쳐서 주위에 있는 진흙이 뜨거워 열 때문에 엉겨서 돌과 같이 단단하다. 채소(菜蔬) 줄기를 그 속에 던져보면 순식간에 익어버린다. 아침저녁에 김[蒸]이 서려서 온 들이 연기가 낀 것 같고, 평지는 따뜻하여 마치 토상(土床)에 누운 것과 같다. 평안도(平安道)에는 삭주온정(朔州溫井)과 성천온정(成川溫井)이 있고, 또 양덕현(陽德縣)에 온정이 있는데, 그 물이 끓는 탕(湯)과 같아서 날짐승이 털을 데쳐 뜯어낼 수 있을 정도이다. 용강현(龍岡縣) 온정이 가장 기이한데, 물이 뜨거워서 아주 참을성 있는 사람이 아니면 오래 들어가 있을 수 없고, 물을 이끌어 곡(斛)에다 받아두어야만 목욕할 수 있다. 천정(泉井) 속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너무 깊어서 바다와 통하지 않는가 의심스럽다. 영안도(永安道 함경도의 옛 이름)에도 온천의 우물이 있다. 전라도(全羅道)에는 다만 무장(茂長)의 염정(鹽井)이 있을 뿐 온천은 없다. 지금 이 사실들을 살펴보면 온천은 북방(北方)의 한랭한 심산 골짜기에 많이 있으며, 염기(炎氣)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고, 수성(水性)도 또한 각각 다른 종류가 있어서 그 이치를 미루어 생각할 수 없다. 註) ---------------------- * 영산현의 온천은 지금의 부곡온천인 듯하다. * 충주 안부역의 물은 수안보? * 청주의 초수는 초정약수인듯 하고. 복천사는 속리산의 암자.
민족문화추진회 번역을 옮기며, 주저리주저리. 반푼 오원 ----------------------------------------------- oh, one !
《용재총화》는 조선 시대 수필 문학의 으뜸이다.
용재총화(용齋叢話)는 성현(成俔 1439~1504)) 선생이 저술한 것이다. 선생은 창령인(昌寧人) 성염조(成念祖)와 안씨(安從約 - 순흥안씨 9 세,판서공파 파조- 女)부인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용재(용齋) 허백당(虛白堂) 부휴자(浮休子) 국오(菊塢). 시호는 문대공(文戴公).
어려서 총명하고 동서 고금의 책을 많이 읽고 잘 기억하였고, 백(任임)씨 · 중(侃간)씨가 모두 문장가,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 문장을 지을 때, 물이 용솟음치고 산이 솟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문병(文柄)을 잡아 평생에 저술이 많았다.
《허백당집(虛白堂集 성현의 시문집)》30권, 《진의비설(秦議稗說)》 12권, 《상유비람(桑楡備覽)》 40권, 《경륜대궤(經綸大軌)》 50권, 《풍소궤범(風騷軌範)》·《악학궤범(樂學軌範)》·《부휴자담론(浮休子談論)》찬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