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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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하나되어
당신을 초대합니다.
제가 빛이 되지 못해
이 세상이 더욱 어두워진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의 마음이 빛으로 오시는
당신께 열려있게 하소서.
[성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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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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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통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왕이신 주님.
같은 형제 자매이면서도 자유 안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살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루빨리 평화로이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에게 큰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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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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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루카 14,1-6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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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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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인간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착한 마음을 지녔다는 성선설을 가르쳤던 맹자는 인 (仁) 에 대해 설명하면서 유명한 비유를 든다. 아이가 우물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달려가서 구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겠는가 ? 누구에게 칭찬을 받거나 자신의 선행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측은지심’ 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착하고 이타적이라는 가르침이다.
어떤 법이나 정의의 명분으로든,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으로든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범죄 행위가 법과 정의와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던가 ? 불행히도 그리스도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인간을 옭아매는 법의 굴레, 종교적 계율의 굴레를 벗겨주신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리고 하신 그분.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진정 하느님을 향한 길과 상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은 웅변하셨다. 성경은 사람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말은 사람 안에 하느님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아픈 사람을 보면 아파하고 슬픈 사람을 보면 슬퍼하는 마음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인간적인가. 그런데 환경과 교육의 영향으로 그 본래의 마음 인 (仁) 을, 하느님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간혹 종교적 계율로 무자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무리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로마 시내 바티칸 교황청 가까이에 ‘레지나 첼리 (천상의 모후)’ 교도소가 있다. 요한 23세가 즉위한 해인 1958년 이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1870년 이후 교황이 처음 로마 교구에 사목 방문한 곳은 ‘제수 밤비노 (예수 아기)’ 병원의 중환자 어린이들이었다. 그날은 성탄절이었다. 이튿날엔 레지나 첼리 교도소로 갔다. 당시 언론은 이 방문을 상당히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부 관리와 사진 기자, 수감자와 교도관들이 사방에서 교황을 에워쌌다.
참으로 인간적이었던 그분은 수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나를 찾아올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 내가 (자유로운 몸으로) 밖에 있고 여러분이 이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여러분이 나보다 훨씬 더 불운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이 말에 수감자들은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교황은 어떤 사건으로 감옥 생활을 한 삼촌 얘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훈계보다도 사람에 대한 연민, 측은지심을 보여주었다.
[신한열 수사 (프랑스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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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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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신 주님을 통하여 만사에서 참으로 거룩한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현재 있는 피조물과 발생하는 일 가운데 그분 안에서 또 그분을 통하여 창조되지 않았거나 지탱되지 않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음사가 요한은 말합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음악가가 연주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하여 고음과 저음과 중간음을 능숙하게 결합시키어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하느님의 지혜께서도 온 우주를 악기처럼 손에 드시고는 공중에 있는 것들은 땅에 있는 것들과, 그리고 하늘 공중에 있는 것들과 융합시키어 부분들을 전체에 맞추시고 당신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그것들을 연결시켜,하나의 우주, 하나의 질서를 이루십니다. 움직임이 없이 아버지의 면전에 계시는 같은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아버지의 의지와 피조물의 내적 법칙을 존중하시면서 만사를 움직이십니다. 만사는 그 자체의 성질에 E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어 지속하고 그분을 통하여 놀랍고도 참으로 신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함께 노래하는 큰 무리의 예를 들어 말해 봅시다. 거기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른들도 있고 아이들도 있으며 부녀자들이 있는가 하면 노인들도 청년들도 잇습니다. 한 지휘자 아래 각자는 자신의 능력과 특성에 따라, 즉 어른은 어른으로서,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노인은 노인으로서, 청년은 청년으로서 노래하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조화를 이룹니다.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 영혼은 오관을 그들의 여러 기능에 따라 한꺼번에 작동시킵니다. 어떤 물체를 맞이할 때 이들 오관은 함께 움직이어 눈은 보고 눈은 보고 귀는 들으며 손은 감촉하고 후각은 냄새를 맡으며 미각은 맛을 봅니다. 그리고 그때 몸의 다른 지체들도 함께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발은 걷는 일을 합니다. 이상의 것들은 별로 좋은 예들은 아니지만 이런 예들을 더욱 고차적으로 생각한다면 우주의 만물이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당신 의지의 한 결의로써 다스리시고 각자가 자신의 특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시지만 , 만물이 하나의 공통된 완전한 질서를 이루게 하십니다.
** 성 아타나시오 주교의 「이방인을 거슬러」에서(Nn. 42-43: PG 25,83-87) **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사이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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