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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Allegory)는 그리스어 ‘다른(allos)’과 ‘말하기(agoreuo)’라는 단어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알레고리아(allegoria)’의 영어 식 표현이다. 이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수사법의 하나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이를 구체화할 만한 적합한 대상이나 상황을 대신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솝 우화’가 알레고리의 쉬운 예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동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탐욕, 게으름, 어리석음 등을 드러내는 알레고리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수사의 한 갈래로 전해진 알레고리가 미술의 영역에서도 주요한 표현 방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이래 고대 시인과 같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소망해온 많은 미술가들은 마치 시에서처럼 상징과 암시를 매개로 하는 알레고리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알레고리의 두 가지 의미 읽기

‘다른 것으로 말하기’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듯이, 알레고리는 두 겹의 의미 층을 갖는다. 표면적인 의미로는 인물, 행위, 배경 등 통상적인 요소들을 형상화하여 일차적인 의미를 이루고, 그 내면에는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개념과 같은 이차적 의미를 배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알레고리적인 작품을 대할 때,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와 내용보다는 그것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의미의 가치와 기능에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는 당대 철학적 개념의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동굴에 갇힌 죄수는 오로지 동굴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을 진실된 세상이라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그림자를 만들어낸 실체다. 즉 모방의 세계가 아닌 참된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플라톤 철학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명계(冥界)의 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 가서 천상의 노래와 리라 반주로 그들을 감동시킨다. | |

조아키노 세란젤리 [간청하는 오르페우스] 18세기경, 파리 음악 박물관. 화면 중앙에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뒤로 죽음의 강을 건내줄 늙은 사공이 노를 들고 있고 그 옆에 에우리디케가 불안과 간절함이 섞인 눈빛으로 오르페우스를 보며 서 있다. 그러나 신은 오르페우스의 청을 들어줄 모양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취한 하데스와 그 옆에서 오르페우스를 향해 팔을 뻗고 있는 페르세포네의 몸짓이 이를 뒷받침한다.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마침내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그녀와 함께 이승의 문턱에 다다르지만, 온전히 도달해 햇빛이 비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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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카노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775~1776년 돌, 코레르 미술관, 베네치아. 지하에서 불쑥 올라온 손이 에우리디케(왼쪽)의 오른팔을 잡아 끌어내리고 있다. 허망한 표정으로 다시 죽음으로 빠져드는 아내를 돌아보는 오르페우스(오른쪽)의 얼굴은 이미 절망감에 일그러졌고 한 손으로는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카노바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의 탁월한 묘사를 통해 신화의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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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화의 이야기 역시 알레고리 구조를 지닌다. 여기서 오르페우스와 그의 음악은 고결한 존재의 지혜와 구원의 힘을 나타내는 한편, 에우리디케는 죄악에 빠지기 쉽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알레고리의 역사를 철학적,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한 존 맥퀸(John MacQueen)에 따르면 오르페우스가 그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겪는 고난과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결국 죽임을 당하는 일련의 내용은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 희생, 속죄라는 개념과 연관된다. 따라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는 신학적 알레고리의 원형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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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라자리니 [오르페우스와 바칸테스] 1710년 캔버스에 유채, 베네치아 18세기 박물관, 베네치아. 에우리디케를 저승에서 구해오지 못한 오르페우스는 절망감에 다른 여인들의 구애를 계속해서 거절한다. 이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 디오니소스의 여신도들(바칸테스)은 오르페우스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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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고대 철학과 신화, 그리고 신학적 텍스트의 알레고리는 이를 대하는 이들에게 그 의미를 읽어 내도록 요구한다. 미술 작품에 표현된 시각적 알레고리 역시 재현된 이미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 이미지 속에 숨겨진 의미를 마치 암호처럼 해독해서 주제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면에서 알레고리는 사실상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고 비교적 고정되어 있는 ‘상징(Symbol)’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예컨대 십자가, 어린 양, 물고기 등은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연관된 상징으로 제시된다. 반면 알레고리는 인간 삶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인 내용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건을 주로 의인화된 형태로 나타낸다. 또한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대게 비판적이고 교훈적인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어 사랑, 운명, 예술의 알레고리는 아프로디테(사랑과 미의 신), 티케 (운명의 신), 무사이(예술의 신)와 같은 각각의 개념에 부합하는 신화적 인물의 형태를 취하고, 참조 유형이 없는 경우는 그에 적합한 인물상을 창조해내는 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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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피노 리피 [음악의 알레고리 또는 에라토] 1500년. 패널에 템페라, 61x51cm, 베를린 국립회화관, 베를린. 에라토는 아홉 무사이 중 서정시와 노래를 담당하는 여신이다. 이 작품은 에라토를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리피는 이 작품에서 황금 줄을 들고 음악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의 백조들을 이끄는 에라토를 묘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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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문화적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알레고리

이렇게 창조된 알레고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와 문화적 상황을 반영하여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기도 한다. 라틴어 여성명사 ‘유스티치아(Iustitia: 정의)’의 알레고리의 경우, 법의 엄정함을 의미하는 저울과 장검을 든 여인으로 그려지다가 르네상스 후기에 가서는 법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콤파스, 우주의와 함께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술 작품에 표현된 알레고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 신화와 문학, 신학, 역사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작품 제작 당시의 구체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까지도 파악해야만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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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치오 라파엘로 [정의] 1509~1511년
천장 톤도 프레스코, 지름 180cm, 바티칸 폰티피치 궁전, 서명의 방, 로마.
2 지오르지오 바자리 [정의] 1542년 패널에 유채, 79x188 cm, 아카데미아 갤러리, 베네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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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를 ‘해독’하는데 이처럼 복합적인 지식이 요구됨에 따라 과거의 알레고리적인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의미가 파악되지 않은 대표적인 알레고리 작품들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독일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판화 [멜랑콜리아 I]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기하학과 수학과 같은 지적 능력을 갖춘 ‘지상의 신’으로서의 예술가, 즉 르네상스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멜랑콜리아’라는 의인화된 알레고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몇몇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티프들이 남아 있고, 또한 함께 제작된 두 점의 판화 [기사와 죽음과 악마],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연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을 위해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는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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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 [멜랑콜리아 I] 1514년 동판화, 23.9x18.9cm, 동판화 진열실, 카를스루에 국립미술관, 카를스루에. 15세기 후반 경 신플라톤주의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에 따르면 토성 별자리 아래 태어난 멜랑콜리(4대 기질 가운데 ‘검은 담즙질(Black bile)') 기질의 사람들은 ‘창조적 열정’과 ‘신성한 광기’를 가진 이들로 분류되었다(사실 이러한 긍정적인 멜랑콜리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같은 고뇌하는 천재로서의 멜랑콜리 개념은 뒤러를 비롯한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뒤러의 [멜랑콜리아 I]은 이러한 천재 예술가를 ‘멜랑콜리아’라는 여성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알레고리인 것으로 해석된다. |
뒤러의 [멜랑콜리아 I] 못지않게 베일에 싸인 작품은 이탈리아의 매너리즘 화가 아그놀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가 그린 [아프로디테와 에로스의 알레고리]이다. 화려하고 육감적인 색채와 묘사가 매너리즘 시기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무수한 알레고리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사랑, 쾌락, 질투와 기만, 그리고 시간의 인물상들을 통해 지나친 애욕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경고하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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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화가의 아틀리에] 역시 의미 해석에 있어 의견이 분분한 작품이다. 역사의 여신 클리오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여인이 월계관을 쓰고 명예와 승리를 의미하는 트럼본을 들고 있다. 그녀 뒤편 벽에는 당시 분리된 네덜란드 지도가 아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직후의 네덜란드 17주 지도가 걸려 있고, 이젤 앞에 앉은 화가는 이제 막 월계관 그리기를 마친 상태다. 작품 속 이미지들을 종합한 결과 이 작품의 주제는 ‘네덜란드 회화의 명예와 승리’를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되었으나, 이후 ‘네덜란드의 명예로운 역사’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또 다른 해석이 제기되어 현재까지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18세기 후반 이후, 신고전주의 미술가들은 알레고리를 ‘혁명의 정당성’이라는 정치적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게 된다. 이로써 고대의 덕목들이 정치적 선전 선동의 문구로 전락하자 알레고리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19세기 들어서는 독일의 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미술에서 알레고리의 도식성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게다가 점차 높아지는 예술의 자율성과 순수성에 대한 요구, 즉 모더니즘 미학의 출현은 미술에서 점차 전통적인 알레고리 방식의 퇴조를 가져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문화적 양상,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새로운 예술적 조류는 알레고리의 귀환을 예고하게 된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전체에서 떨어져 나와 비체계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알레고리가 절대적인 진리나 보편적 개념이 부재하는 현대사회를 읽어내는 방법으로서 매우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은 크레이그 오웬스(Craig Owens)와 같은 현대의 비평가들에게 이어져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설명하는 방법론으로 확대되었다. 알레고리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중인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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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고자 하며,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부설교육원에서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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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0.11.06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파리 음악 박물관, 베네치아 코레르 미술관, 베네치아 18세기 박물관, 베를린 국립회화관, 바티칸 폰티피치 궁전,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갤러리, 카를스루에 국립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빈 미술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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