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위치하는 밀양(密陽) 박씨 효자문(孝子門)은 남향의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사면(四面)은 홍살을 설치하였다. 내부(內部)에는 2기의 비석(碑石)을 칸마다 1기씩 세워 놓았으며, 후면 중앙에는 중수기를 걸었고 좌측 벽 상단에는 사업기를, 우측 벽 상단에는 중건기를 걸어 놓았다.
또한 각 칸마다 비(碑)와 함께 현액(現額)도 걸려 있는데 좌측에는 “효자처사박세주지문숭정후재기유육월일명정(孝子處士朴世胄之門崇禎後再己酉六月日命旌)” 라고 각서 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 효자통훈대부행사헌부장영박승건지문숭정갑신후육십삼년구월이십이일명정(孝子 通訓大夫行司憲府掌令朴承健之門崇禎甲申後六十三年九月二十二日命旌)”이라고 각서 되어있다.
박승건(朴承建)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號)는 성은(星隱)이다. 광해군(光海君) 1년(1609)에 출생하여 인조 8년(1630)에 진사(進士)에 오르고 삼릉제랑평시봉사((三稜齋郞平市奉事)를 지내고 효종 1년(1650)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는 예조, 병조좌랑 사련원정언, 시강원사서를 역임, 해운(海運) 판관(判官)이 되어 해운을 개혁하고 성균관(成均館) 직강(直講) 예조 좌랑(佐郞)에 재임되고 정언(正言)이 되었을 때에는 형조(刑曹) 판서(判書) 허적을 탄핵(彈劾)하니 모두 그를 앙시하였다.
그 후 사헌부(司憲府) 시평 전라도정, 제용감정, 상주목사를 지냈다. 그는 우암 송시열과 도의지교를 맺어 왕래하였으며 천성(天性)이 지효하여 부모에게 효도(孝道)하였으며 형제에게 우애함이 높이 사져 효자(孝子)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박세주의 호는 정수당으로 박승건의 아들이다. 어렸을 때 모친이 항질로 침을 맞으려 할 때 그가 먼저 목에 침을 꽂은 다음 어머님에게 침을 놓으라고 청할 만큼 효도(孝道)가 지극하였다.
그가 13세 때에는 용인군수로 가 있던 부친(父親)이 병으로 고생할 때 겨울에 죽순(竹筍)을 먹고 싶다고 하자 설중(雪中)에 대밭에 나가서 천신께 빌어 죽순(竹筍)을 구하였다 한다. 또한 부친(父親)이 상주목사로 재임 중 단지(斷指)하여 소생케 하였으며 모친(母親)의 병환에도 단지(斷指)하여 효험(效驗)을 보게 하였다. 이에 조정(朝廷)에서 그 효행(孝行)을 높이 사서 정려(旌閭)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