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친구가 완벽한 사람이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러나 너의 친구가 완벽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어라.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다.”(마더 테레사 복자 수녀(1910∼1997)).
인간은 자기 의지로 참 선(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진리와 선을 탐구하고 사랑하는 데에서 자기의 완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완덕(完德)·완전성·완전함(perfectio)에 관한 논의(論議)는 어떠한 신분이나 처지에서도 아버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성덕(聖德)에 이르도록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 부르심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이 은총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변화되고 올바로 행동하며 선을 행할 능력을 행사(行使)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일치함으로써 사랑과 성덕에 이르며 은총으로 성숙해진 도덕적 삶은 영원한 생명으로 만개(滿開)한다. 완덕의 끈이며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모든 성화(聖化) 수단을 이끌어 그 목표에 도달하게 만들기 때문에 완전함의 출발점과 목표점은 사랑에 있다. 사랑이란 먼저 만유(萬有)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에 경청해야 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며 성사(聖事)·기도·극기·봉사 등을 통해 사랑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딩거(J. E. Dinger)는 “나의 친구는 세 종류가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유순함을 가르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에게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나에게 자립심을 가르쳐 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필(N. V. Peale)은 “우리들이 인생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 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야말로 우정의 진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장점을 마음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갖고 그렇게 만들어 준 당신에게 강한 우정을 느낄 것이다.”라고 조언하다. 예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말씀하시면서 우정의 극치(極致)를 암시하셨다.
우정은 연령에 관계없이 자발성과 유동성(流動性)이라는 특징을 지니며 지속성과 강도(强度)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여성들이이 남성들보다 더 친밀한 우정을 과시한다. 우정이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생활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확실하며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그리워하게 된다. 친구가 육신과 영혼을 지닌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에게 완벽함을 기대하거나 그의 약점과 허물과 잘못을 수용(受容)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우정은 동등관계에서의 우정이 아니라 상하관계 내지 기대관계에서의 친숙함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신앙인은 진정한 친구의 태도와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해야 하며 완벽하지 못한 친구를 완전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