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가 밭을 쟁기로 갈고 로타리 쳐서 말끔히 해놓았는데 和光同塵이라 할까? 며칠 지나면 연녹색 양탄자를 깐듯이 고루 풀에 덮이게 된다. 신비로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무슨 조화로 이리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풍지관으로 공기가 풀씨를 품고 있다가 지풍승으로 밭에 깔리게 된 것이겠지만 이를 보면 바람이 곧 木(목)의 기운임을 알게 된다. 공자 제자 중에 번지라는 인물이 있다. 번지의 성품은 麤鄙近利 (추하고 비루하며 이익을 탐함) 하다고 주석은 말하고 있다. 공자의 수레를 몰면서 공자에게 직접 물을 기회가 많았다 하니 공자를 모시고 무우지하(舞雩之下)를 거닐면서 숭덕(崇德),수특(修慝), 변혹(辨惑)을 물었다.(논어 안연21) 이러한 번지가 스승께 농사짓는 법을 물었는데 (논어 자로4) 공자는 번지가 퇴장하자 “소인(小人)” 이라고 貶하였다. 군자가 되어 정치를 잘하면 되지 농사짓는 법 따위를 묻느냐는 의미인 듯하다. 주석은 번지의 성품이 이익을 탐하고 一朝之忿의 화를 잘내기에 경계를 주기 위함이라 풀었다. 그러나 이는 건지덕(乾之德)의 공자가 안고 있는 시대적 한계일 수도 있다. 맹자 역시 농사짓는 성자(農家)인 허행을 떼 까치가 짖는다고 모질게 욕하였는데 (맹자 등문공상4) 곤역(坤易)에서 건역(乾易)으로 교체된 시기였기 때문인 듯하다. 여하간 공맹은 곤지덕(坤之德)을 멀리했고 곤역의 맥을 끊었다. 이는 문명의 손실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맹이 농사를 멸시하지만 않았어도 자연을 대하는 현대인의 안목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류의 “덕지적야(德之賊也)”는 이른바 군자가 되어 정치한다고 날뛰는 하늘 기운, 육식동물 기운이 강한 자들이지 식물을 다루면서 사는 곤지덕(坤之德) 지향의 사람들이 아니다. 공자가 번지에게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지금 동북아의 문명은 건곤 之德의 조화를 상상할 수 있는 모습에 근접되지 않았을까. 근세에 와서야 一夫선생, 海月선생 같은 분들이 곤지덕(坤之德)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역을 공부하는 우리는 공맹의 건지덕(乾之德)의 편향을, 곤지덕(坤之德)으로써 광정한 정역 8괘도를 완미해본다. <돈암서원 판본 정역8괘도>
|
첫댓글 건지덕과 곤지덕, 잘 읽고 공부하였습니다. 곤지덕은 연산역(하나라)에서 찾고 정역팔괘도는 건곤이 합덕된 조화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만....,
품에 있음을 알리니라
임자일 병오시에
좋은내용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