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쿠르스크주에 대한 무리한 공격을 개시한 뒤로 러-우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 6일 개시한 공격을 통해 전쟁의 국면을 전환하려 했겠지마는 피해를 너무 많이 입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로는 한 달 사이 쿠르스크 전선의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는 10,000명이 훨씬 넘는다. 러시아 측의 프로퍼갠더일 수 있어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어도 우크라이나군이 단일 전선에서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 더 심각한 일은 전쟁의 중심 지역인 돈바스에서 심각한 패퇴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가 쿠르스크를 공격한 것은 돈바스 쪽 전황 개선에 도움을 얻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다. 쿠르스크의 방어를 위해 러시아군이 돈바스에 배치된 자국 병력 상당 부분을 ‘본토’ 방어를 위해 철수할 것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크라이나군의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쿠르스크 공격으로 인해 러시아군은 수만의 병력을 이동시켜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쿠르스크 공격에 대해서는 그것대로 대처하면서 돈바스에서의 공격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전과도 매우 컸던 것 같다. 우선 우크라이나군이 엄청난 병력 손실을 당하게 한 것을 들 수 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의 사상자 수는 하루 평균으로 따져 3월에 996명, 4월에 985명, 5월에 1,368명, 6월에 1,843명, 7월에 1,966명, 8월에 2,109명이다. 매일 발생하는 사상자 수가 최근으로 올수록 급증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의 발표가 사실에 가깝다면 우크라이나는 병력이 부족해서라도 전쟁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잃는 것이 병력만도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체 조달할 수 없어서 나토, 특히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무기도 거의 고갈된 상태다. 지금 모든 전선에서 제공권은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패트리엇 미사일 등 대공 무기가 다 떨어져 우크라이나는 방공망이 사실상 와해한 상태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는 영토도 급격하게 빼앗기는 중이다. 작년까지는 우크라이나 측 반격을 패퇴시키고자 공세적 소모전을 펼치며 진격을 자제하던 러시아가 올해는 공세로 전환하고 특히 돈바스 전선에서 함락 지역을 늘리고 있다. 러시아군은 차소프야르, 콘스탄티노프카, 우글레다르, 토레츠크, 셀리도보, 포크롭스크 등 전략 요충지를 이미 부분 점령했거나 진격을 위해 주변의 소규모 정착지를 계속 ‘해방’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현재 돈바스에서 진행되는 가장 중요한 전투는 포크롭스크를 점령하기 위한 것이다. 2022년 기준 인구 60,000명 규모의 이 도시를 함락당하면 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에 돈바스의 주요 도시 도네츠크를 포격하는 근거지로 삼은 아브데예프카를 잃은 것보다 군사적으로 더 중요한 요충지를 빼앗기게 된다. 최근 몇 달 러시아가 돈바스에서 공세를 강화하며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아브데예프카를 함락한 뒤 서쪽으로의 진격로를 확보한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포크롭스크가 러시아 수중에 들어가면 우크라이나가 입을 피해는 훨씬 더 클 전망이다. 아브데예프카와 그 서쪽의 포크롭스크 사이에는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는 요새화한 도시 지역이 많았으나, 포크롭스크 서쪽에는 그런 요새들이 드물다고 한다.
물론 포크롭스크가 아직 함락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뉴스 웹사이트 유로마이단 프레스의 8월 28일 기사에 따르면, “전장에서의 힘의 균형과 포크롭스크의 지역 내 러시아 화력의 집중을 고려하면” 포크롭스크가 함락될 “공산은 계속 커지고 있다.” 포크롭스크를 잃으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방어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그곳은 돈바스 지역 전체의 군수물자 보급에 핵심적이다. 포크롭스크에서 서쪽으로 200킬로 채 안 되는 곳에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젖줄인 드니프로 강이 있고, 그 강변에 우크라이나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드니프로가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 분명하다. 전쟁이 당장 끝나지는 않을 것이나 포크롭스크가 함락되는 시점이 중대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전황은 갈수록 절망적으로 바뀌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이 답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협상에 나설 태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것은 젤렌스키 정권이 국가권력을 장악할 정당성을 잃은 점 때문일 수도 있다. 젤렌스키는 전쟁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해 5월에 치렀어야 할 대선을 무산시키고 법외 권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정당성의 결여 때문인지 젤렌스키 세력은 군사적 모험을 오히려 더 선호하고 외교적 협상은 기피하고 있다. 쿠르스크를 침공한 것을 보면 외교적 협상으로 전쟁을 종식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미국과 유럽 등 나토 세력 역시 협상에 임할 자세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에 푸틴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스탄불 플러스’와 최근의 전황 반영을 협상의 조건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스탄불 플러스는 6월 14일에 푸틴이 러시아 외교부에서 언급한 협상 조건이다. 그것은 2022년 3월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미국과 영국의 방해로 불발된 협상 내용에 이후 전황 전개로 생긴 새로운 현실을 추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최후통첩의 형태로 제출한 이스탄불 플러스 협상 조건은 우크라이나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배제한 채 국제평화회의로 대응하면서 ‘젤렌스키 평화공식’을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다.
평화공식은 우크라이나가 아직 공세를 취하고 있던 2022년 11월에 제출된 것으로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할 때의 국경선 너머로 러시아군의 철수와 러시아 전쟁범죄를 기소할 특별재판소 설치, 전쟁 피해에 대한 러시아의 보상 등을 내용으로 한다. 2014년 마이단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신나치 세력인 우크라이나 정권에 의해 돈바스 지역에서 학살당하는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군사작전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러시아가 그런 요구를 수용할 리는 없다. 더구나 러시아는 전쟁 이후 2022년 여름과 가을에 나토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강력하던 기간만 빼면 계속해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고, 최근에는 돈바스에 대대적인 진격을 통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이 제시한 협상 조건은 이스탄불 더블플러스로 여겨진다. 6월 중순에 제시한 조건에 이후의 전황을 추가로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구가 더 많아진 그런 제안을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일 리는 없다. 게다가 러시아 권력층 내부에서도 푸틴의 협상 자세에 대해 거부 반응이 심하고, 푸틴 자신도 실은 협상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가 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브릭스의 우방국들이 협상을 권유하고, 남반구 국가들도 식량 확보나 다른 교역 조건을 악화시키는 전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푸틴이 이스탄불 더블플러스 협상안을 거론한 것은 그래서 브릭스와 남반구의 여론을 고려하되 우크라이나가 거부할 수밖에 없는 요구를 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도 푸틴의 ‘새로운’ 제안에 응할 모양새는 전혀 아니다. 마치 국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려는 태도이고, 나토도 그런 우크라이나를 말리려는 기색이 전혀 없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나 어디를 둘러봐도 전쟁을 종식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포크롭스크가 함락된 뒤에도 우크라이나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협상으로 전쟁을 종식하려는 움직임은 별로 없다. 그런 점 때문인지 러시아의 전 대통령 메드베데프와 같은 강경론자들은 군사적 승리를 유일한 타결책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군사적으로 완전히 패퇴시켜 우크라이나를 무조건 항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토, 특히 미국이 어떤 태도를 드러낼는지가 관건으로 여겨진다. 우크라이나의 패배에도 집단서방이 협상에 불응하면 전쟁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현 정권 또는 그 대체 세력이 영토 밖에서 망명정부를 구성하여 저항을 계속하는 것도 상상된다. 그렇게 되면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두고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평화의 길은 묘연하기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