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선 풍경/조혜경
기차는 몸을 철로에 납작 엎드렸다. 추수를 끝낸 논에는 낟알 털린 볏 가지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백로 한 마리가 안개 더미 위로 머리를 내밀고, 검은 부리를 흔들었다. 아침 해가 잠을 덜 깬 시각, 빈 가지에 달린 주홍 까치밥 몇 개가 몽환적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찝찔한 갯내음을 실은 하늬바람이 긴 하품을 했다. 엉덩이를 비스듬히 빼고 의자에 걸터앉은 촌로의 구수한 사투리도 잠시 멈추었다. 그는 목이 마른 듯, 생수병 뚜껑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수탁처럼 고개를 들고 창밖 들녘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고속열차로 온 승객 한 무리를 실었다. 천안아산역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젊은이들 때문에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기차는 환승역을 지나 서너 정거장 가다서다 하더니, 분주함이 채 식기도 전에 청년들을 온양온천역에 쏟아놓았다. 굼벵이 달리기에서 해방된 그들은 게딴으로 통하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제서야 촌로와 아낙들은 늙은 퇴물의 허벅지에 지친 다리를 걸쳤다.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짝꿍들과 느린 수다를 시작했다. 통로 건너편에 앉은 노인은 새벽에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초면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자리 승객에게 아들 푸념을 했다. 그는 베기가 힘들어 들깨밭을 엎어버리겠다는 아들의 말에 화가 났다. 지난여름 땡볕, 휜 허리를 두들기며 아들의 밭에 들깨 모종을 심어주었다. 깨가 농익어 알갱이가 툭툭 떨어지는 이제야, 농사가 귀찮다고 밭을 갈아 엎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아침 세수도 못 하고 기차를 잡아탔다. 노인은 아들 욕을 한바탕 하고 나서야 분이 좀 삭은 듯, 허기가 달려오는 뱃가죽을 잡았다. 시장기와 갈증으로 마른기침이 튀어나왔다. 하릴없이 젖어오는 눈시울을 감추려고, 무성영화 같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렇던 황금색 논은 수확을 거의 끝냈다. 곤포사일러스가 부드럽고 달콤한 마시멜로처럼 누워있다. 눕거나 서서, 또 겹쳤거나 혼자서기에 상관없이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편안한 미소를 눈가에 떠올렸다. 늦가을, 갈색 논에 늘어선 짚 덩이는 풍요 후 휴식을 알리는 이정표였다.
어깨를 걸친 집 서너 채가 철길 가에 나타나는가 싶더니, 또 논이다. 할 일을 다 한 논들은 안개 속에서 늦잠에 들었다. 부사 사과를 매단 과수들은 다음 역이 예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익숙한 수다에 바쁘던 아낙들도 슬쩍 고개를 꾸벅였다. 아들의 미운 짓을 곱씹던 노인도 철커덕거리며 자장가를 부르는 낡은 요람에 졸음을 참지 못했다. 기차는 피곤한 그를 달래듯이 살짝 좌우, 앞뒤로 의자를 흔들어주었다. 회전판 고정 나사가 마모된 낡은 의자는 기차 바퀴의 리듬에 따라 쉼 없이 껄떡댔다. 레일도, 기차도 그르릉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장항선에는 노인 같은 털털한 여유가 실려 있었다. 삶이 미친 졸음으로 몰려오는 날이면 나는 장항선을 탔다. 어미 품의 아기처럼 딱 그만큼 눈이 감겼다. 머릿속에서는 경쾌한 휘파람 한 가닥이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깜빡 졸고 나면 머릿속은 박하사탕을 먹은 듯했다. 두 눈이 환하게 커졌다.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 홍성이다. 도청이 있는 지역답게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제 열차 한 칸에 여남은 사람만 남았다. 신나게 게임을 하던 건너편 옆자리의 젊은 청년은 어느새 자기 길을 갔나 보다. 미드에 빠졌던 옆 짝꿍도 말없이 이별을 고했다. 그제야 몸이 가벼워진 듯 기차도 신이 났다. 신나게 춤추며 속도를 냈다. 폐자재 수집소가 모여 있는 광천역을 지나갈 때는 기관사는 옛 추억처럼 귀여운 기적을 두어 번 울렸다. 짧고 경쾌하다.
서너 발자국 떨어져서 계단을 올라온 노부부가 기차에 올랐다. 할머니는 남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그리 산 믿음에서인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둘 다 말이 없었지만 누가 봐도 부부였다. 반백 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연륜이 엿보였다. 마치 서로 남남인 양 뚝 떨어져 걷는 우리 부모를 보는 것 같아 ‘픽’하고 웃음이 나왔다.
기차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이 넘었다. 의자에 앉은 나의 허리도 쏟아지는 졸음만큼 앞으로 미끄러졌다. 읽을거리를 검색하던 휴대전화도 숙면에 들었다. 고된 삶의 허리를 안긴 나는 쏟아지는 졸음을 삼켰다. 안경을 벗어 머리에 올린 채,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눈앞이 침침해지며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깐 졸다 깨어나 보니, 딸 자랑을 구성지게 하던, 아낙들도 보이지 않는다. 광천역으로 젓갈을 사러 가는 중이었는지 김장 이야기에 바빴었다. 창문 너머 논 가의 물억새 한 다발이 하얗게 솜털을 흔들고 있다. 철로를 점검하는 일꾼들의 노란 안전모가 샛노랗다. 그들은 옹기종기 서서 기차가 지나갈 때를 기다렸다.
간이역들을 몇 개 더 지나, 제법 큰 도시인 대천에 도착했다. 잠 깬 고속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철길과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달렸다. 머드 축제로 강렬한 여름을 보낸 이 역도 11월이 되면 한적했다. 너른 벌판이 바다 향해 손짓하는 논두렁으로 트랙터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추수를 포기한 벼가 숙인 허리를 비틀며 서 있다. 이즈음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60년 만에 내린 8월 폭우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쌀농사는 대풍년이라 했다. 그러자, 벼값은 폭락했다. 비룟값도 안 된다고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많았다. 제대로 된 값으로 정부에서 수매하라고 농부들은 시위했다. 올해는 벼가, 작년에는 배추와 양파가, 그 이전에는 돼지와 소 전염병이 축산농가를 덮쳤다. 영세한 농민과 체계적이지 못한 정부가 만든 합작품이었다.
터널을 나온 기차가 햇살에 엉긴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남쪽으로 가는 아침 장항선에서는 늘 오른쪽으로 앉았다. 햇살을 받아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작은 집들을 눈살 찡그리지 않고 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행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아침 햇살을 즐기는 풍경을 훔쳐볼 수도 있다. 부지런한 노파는 집 옥상에 올라 빨래를 탈탈 터는 정경이 지나갔다. 줄을 바지랑대에 걸어 올리는 모습이 정겹다. 나는 귀찮은 표정을 숨기면서, 게으른 자세로 누웠던 의자를 바로 세웠다. 긴 숨을 철커덕 내쉬며 멈춘 것도 잠시, 고물 기차는 갈 길을 재촉받는 나그네처럼 벌떡 일어섰다.
빈둥거리던 재두루미가 나뭇가지 틈새를 타고 날아올랐다. 기적 소리에 놀란 새가 둥근 그림자를 호수 위에 그렸다. 삶이란 각자 선 자리에서 퍼덕이는 날갯짓인가 보다. 새를 좇는 시선 따라 나도 모르게 긴 숨을 토해냈다. 기차 칸에 남은 사람 몇몇은 미동도 없이 새우잠에 들었다.
돌 틈 사이로 풀들이 빳빳하게 고개를 든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역은 장 보러 갔던 지팡이나, 외진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기차는 판교역에 나를 떨궈 놓고 지구상에 홀로 남은 점처럼 사라졌다. 잡초는 끈질긴 생명력을 키우며 정적 속의 역사를 지켰다. 역은 다시 고요에 덮였다. 기차는 사회로부터 탈선된 사람들을 간간이 싣고 와, 텅 빈 역사를 채웠다. 나는 봄날 꾼 꿈처럼 장항선 풍경을 보내고, 나를 오늘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렸다. 요술 버스가 한참 늦어지길 기대하면서.
첫댓글 초록별님에게는 그야말로 장항선 열차는 관광 열차입니다. 객차 안팎으로 풍경을 보는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이 문장이나 어휘에서 반짝이며 독자를 자극합니다. 늘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이야기가 샘솟는 가을 풍경화입니다.
호평 감사합니다. 서주님이나 서주님의 글에서 제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은 걸요.
골절로 발로 딛는 여행은 어렵지만, 사이버 공간이나 글 속의 가을 풍경에 잠기는 것도 시도해 볼 요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