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다니엘3장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다니엘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 모두는 10대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 온 그날부터 바벨론에서도 믿음을 지켰다. 바벨론의 교육시스템을 거부한다. 바벨론의 음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택했다. 이 방법이 성공을 한다. 그래서 이들은 느부갓네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1:18-20)
이렇게 10대때부터 믿음을 지키는 일 쉽지 않다. 각 나라에서 끌려 온 다른 포로들은 다 먹는 바벨론 음식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대부분의 유명한 운동스타들은 10대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어찌 어찌하다보니 그냥 스타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믿음도 만들어집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신앙의 인물들은 어릴적 부터 만들어진다.
저는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의 인물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어릴적부터 중단 없이 꾸준히 믿음을 키웠으면 좋겠다.
바벨론으로 끌여 온지 약1년후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몽해 준 일로 출세 하게된다(2:48) 이 때 다니엘의 세 친구도 덩달아 출세하게된다(2:49) "다니엘이 추천하여"(공동번역)
"친구따라 강남간다"
우리에게도 다니엘과 같은 친구가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 자녀들 주위에 다니엘과 같은 친구들이 있기를 축복한다.
그리고 우리가 다니엘이 되어 우리 주변의 친구들이 출세하게 되기를 축복한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출세한 지 약 9년후에 느부갓네살왕이 금신상을 세웠다. 금신상 제막식을 연다. 느부갓네살왕은 모든 관리들이 제막식에 참여하도록 명령을 내린다(2)
제막식이 시작되었고, 식을 인도하는 인도자가 "악기소리가 날 때 모든 자들이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요구한다(7) 만약 절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풀무불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알렸다(11)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 이때도 믿음을 지켰다. 절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는 행위를 유독 이들만 하지 않았다. 제막식에 참석한 모든 관리들이 엎드려 절할 때
이들은 꿋꿋이 서 있었다. 이렇게 살기도 쉽지 않다.
직장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유별나다, 별 나다"는 소리 듣게 된다.
그래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다고 고발 당했다(8,12) "왕을 높이지 아니했다"고 고발당했다.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이 왕을 높이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아꼈기에 따로 불러 다시 설득한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다(14-15) 그러나 이들은 왕의 요청을
거부했다(16-18) 이 때도 이들은 믿음을 지킨다.
이렇게 되자, 느부갓네살은 안색이 변하고 분이 가득하여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속에 던져 버린다(19-23) 이들은 풀무불속에
떨어졌다(23) 모든 상황이 "끝났다" "종료되었다"
1.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풀무불을 만났다는 것이다.
실수해서 잘못해서 법을 어겨서 풀무불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우리도 그 동안 수없이 풀무불에 들어간 적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이 드러나 풀무불속에
들어간 적이 있다. 믿음을 지키다가 풀무불속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만났을 때 풀무불 사건을 함부로 누구에게나
적용해서는 안된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예) 무단횡단하다 다친 성도를 병문안가서 다니엘의 세 친구이야기
적용해서는 안된다.
믿음을 지키다가 풀무불을 만나라. 고집부리다가,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풀무불을 만나지 마라.
2.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결과를 기대하고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다(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아도 믿음을 지키겠다는 의지(17-18)
믿음을 지키면 풀무불속에 들어가기전에 풀무불 바로 앞에서
기적적으로 구원 받게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풀무불에 들어가면서도, 풀무불속에 들어가서도
믿음을 지켰다.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보상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고
응답을 기대하고 기도하지 않았다.
우리는 드러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기대하고 사람을 찾아가고,
교회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한다. 내가 이 만큼 하면 하나님도
이 만큼 해 주시겠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보상을 바라고 믿음을 지키지 않았다.
신앙은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 아니다. 협상하고 밀당을 하는
것도 아니다. 풀무불 가운데 떨어져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불속에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하셨다(25)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다가 불속에 던져진 신앙의 인물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풀무불속에서도 계속된다.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이런 묵상을 해 보았다. 이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는 어느 부분일까? 어느 구절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나오는 장면 혹은
풀무불속에서도 한 군데도 상하지 않은 장면, 또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출세하게 되는 장면(30)으로 꼽을 것이다.
그런데 저는 25절을 선택했다. 하나님께서 불속에 던져진
이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왜? 이 부분이 이 이야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 본질이 가져다 준 결과물이다. 잘 생각해 보시라.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그 결과로 이들이 풀무불속에서 다치지도
않았고, 풀무불에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세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에 하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속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이 이들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이 주는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신앙의 핵심은 본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보상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반드시 보상은 주어진다.
그러나 보상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지 마라.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다 불속에 던져져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불속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다.
풀무불속에서 나오지 못해도 괜찬을 것 같다. 저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저와 동일한 생각을 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이들은 풀무불속에 떨어지면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들을
풀무불속에서 건져주실것이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자신들은 믿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하나님이 불속에서도 자신들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했고, 이 사실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므로 본문의 핵심은 풀무불속에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풀무불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속에서 누리는 축복이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불속에서도 축복을 누릴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는 풀무불이 고난이
아니라 고난으로 변장한 축복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통이란? 실패 안 하는 것, 손대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나는 것, 자녀들이 출세하고
건강하게 부자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형통이라면 믿음의 인물중 이렇게 살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형통이란? 풀무불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고난을 만났는가? 사업이 어려운가? 좌절하고 있는가?
그래서 풀무불속에 떨어진 분이 있는가?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풀무불은 고난이 아니라, 고난으로 변장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