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라 불상 이야기
불상의 기원이 간다라라고 주장하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러나 미투라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인도계 학자들이다.
미투라는 고대 인도 도시이다. 델리의 서남쪽 140여 킬로미터 지점이며, 교통의 요지이고, 상업도시로 번성하였다. 예부터 종교도시이기도 하였다. 특히 불교와 자이나교가 성행하였던 시기에 미투라 미술이 번성하였다. 그들은 순전히 인도 양식으로 불상을 만들면서 미투라 불상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간지스 강 유역의 평원지대의 불상 제작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이민족의 침략이 많았고, 이민족의 출입이 잦았다. 샤카족이 지배했고, 드디어 쿠샨족이 지배했다. 쿠샨 왕조가 이 지역을 완전히 지배한 것은 카니슈카 왕때부터라고 한다.
미투라 불상의 형식은 비교적 단순하고, 유형적이다.(양식적이다 라는 말임) 특징으로는, 옷은 우견편단과 통견 두 형식이 있다.(스님의 가사 옷이며, 우견 편단은 옷을 오른 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좌상과 입상이 있다. 우견편단 양식은 통견보다 시대가 올라간다. 옷주름은 간다라의 영향을 받아서 미투라 불상에도 나타난다. 미투라에 미친 간다라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시대가 빠른 불입상으로느 카니슈카 3년이라는 글자가 있는 불입상이 있다.(사진) 거칠고 늠름한 체구이지만 솜씨는 조잡하다, 연대가 빠를수록 거칠고 조잡한 것도 미술사에서는 거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어깨를 펴고, 정면으로 서 있는 모습이 당당하고, 위엄이 넘친다. 일반적인 현상으로 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후대로 갈수록 부드러워 진다.
어쨌거나 쿠산 왕조 시대에 미투라 불상이 나타났으며------ 상세한 내용은 전문가의 몫으로 넘겨드리고, 우리는 여기까지만 공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