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케이트 커크패트릭 지음/이세진 옮김/교양인 2021년판
남성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becoming)
현대 프랑스가 낳은 걸출한 여성 철학자이자 문학 작가였고,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해 전 세계가 주목했을 정도로 새로운 사상과 사회운동 방면으로 평생 맹활약을 펼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일생을 탁월하게 서술한 전기(傳記)다.
또래보다 총명했던 그의 유년 시절과 ‘철학’이라는 학문을 평생의 지기로 선택하고, 진학한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는 시간을 거쳐 비록 정식 결혼을 해서 이룬 것은 아니지만 평생 그의 가족처럼 지내게 되는 사르트르, 올가, 보스트, 란즈만 등의 지기들을 사귀는 과정들을 연대기 순으로 소개한다.
그런가 하면 그가 집필해서 발간한 각종 서적-사상, 문학 작품, 수필, 자서전, 지인들과 교류한 각종 편지, 일기 등-들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들이 이 책에서 아주 세세하게 드러나 독자들의 깊은 이해를 수반하게 도와준다.
이 책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철학사상적으로 특출한 여성의 ‘사랑의 철학적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실행한 복잡한 애정편력사이기도 하다. ‘보부아르’에게 젊은 시절 ‘결혼은 일종의 함정이다’라고 말한 ‘사르트르’의 사상에 힘입어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2년간의 계약 결혼’을 성사시켜 시작한 부부지간은 계속 계약을 연장해 사르트르가 지병으로 보부아르 곁에서 사망할 때까지 평생 이어지게 된다. 이 정도 되면 오늘날의 법적 시각에서 보면 ‘사실혼’이라고 판정해도 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다소 문란하고 파격적이며, 복잡한 애정 편력은 그녀가 《제2의 성》과 같은 탁월한 철학적 사상과 그에 걸맞은 저서를 발간할 때마다 사회 각층의 보수적이고 주류 엘리트인 남성들로부터, 심지어는 그가 대변하려고 했던 여성들로부터도 격렬한 저항과 비난을 받게 하는 원인제공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의 《제2의 성》과 문학작품 《레 망다랭》같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책은 로마 카톨릭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로서 그녀가 오래 전부터 그 기본 개념에 대해 사유해 왔고, 먼저 제기하기도 했던, 그의 사상적 일생의 배우자였던 사르트르와도 틈만 나면 즐겨 토론했던 ‘대자적 시각’과 ‘대타적 시각’이라는 개념은 사르트르를 거쳐 그 후 20세기 철학과 문학계를 풍미했던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바탕이 된다.
이런 그녀의 날카롭고 명민한 지성은 당시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여성 인권에 대해 눈을 뜨게 했고, 마침내 《제2의 성》을 출간함으로서 여성해방 운동의 원조를 이룸과 동시에 1970년대부터 프랑스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페미니즘’의 선봉자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보부아르의 일생은 철학적으로 무장하고 실천적 삶을 실험적으로 살아낸 투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제2의 성》에서도 나타나지만 과거 관습과 인습의 수동적 삶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삶’을 살고자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에 과감하게 저항하며 개선시키는 투쟁의 점철이었다. 그녀의 평생에 걸친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과 이 책 전 부분에 걸쳐서 드러나는, 다소 문란하고 복잡한 애정편력은 그런 확고한 신념의 체계 위에서 시도된 혁명적 생(生)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보부아르의 인생은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전 세계의 많은 나라를 공적인 일로 방문하기도 했지만, 틈만 나면 사르트르와 혹은 다른 연인과 쿠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동유럽 등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여행을 일상화시켜 즐기며 살았던 여성이다.
그녀는 노년에 이르러 발간한 책들이 연일 베스트셀러가 되어 거액의 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고향 근처에 집을 사서 일정 기간 안주하기도 했지만 인생의 태반을 일정한 주거지 없이 호텔을 전전하며 보헤미안적 삶을 살았던 그야말로 ‘나그네’적인 여정을 보낸 인물이다. 이 책에서 저자 ‘케이트’가 밝혀낸 “삶에 대한,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그녀의 신념이 이런 삶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내가 철학자가 아니란는 말은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 왔고, 철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철학을 가르쳤고, 철학에 물들어 있다는 의미에서는 나도 여전히 철학자입니다. 내 책에 철학이 들어가 있다면 그 이유는 그게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내 책에서 그 방식을 제거하려야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책, 제16장 ‘보부아르의 유산’ 중에서)
남녀의 성적 차별을 넘어 사유(思惟)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절대적으로 살고자했던 보부아르의 일생을 축약하는 본인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