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자매의 브루나이 수학여행기
네 자매가 아시아의 부국, 부르나이로 여행을 떠나기 전 날, 설레서 잠이 오지 않더니 정작 현장에서는 그렇게 웃지도 않고 그렇게 호기심 천국도 아니었다.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놀란 것은 서울을 끊고 오지 않았다는 거다. 모두가 한 생을 살고 두번째 삶으로 들어간 입장이다. 피정이나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멀어져서 잠시 잊고 새로운 것을 그 자리에 채우고 돌아가는 것인데, 틈만 나면 자기 딸이나 가족에게 카톡질을 하였다.
그렇다면 나타나는 현상은 합류하는 힘이 약해진다. 나는 일체 카톡도 끊고 빈 시간으로 만들었는데 동생들은 모든 창을 열어놓고 두고 온 곳에 집중하였다. 그 것도 안되면 지나간 동영상을 보여주며 화제를 과거로 돌려놓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건강한 피드백을 한다.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한 사람을 보는 나는 그들이 매여사는 것같았다. 홀로이며 여럿이어야 하는데 홀로를 견디지 못하더란 말이다.
알아도 갈 수 없는 상황이면 현재 거기서 충실해야 하거늘 손자가 유치원에 갔는데 울고 왔다고 걱정이다. 그 걱정은 하나마나 한 걱정이다.
아픈 남편을 두고 온 동생은 병원 검사 결과가 궁굼해서 수시로 카톡질이다. 수치가 정상에 가깝다고 하니 그 때부터 안심인듯 했으나 웬걸, 이번에는 강아지가 밥이나 먹는지 걱정이라고 한다. 걱정을 취미삼는다.
한 동생은 손녀의 동영상을 못봐서 걱정이다. 모두가 멀리 두기, 홀로서기, 고유한 자신으로 살기에 접근되어 있지 않다. 나는 이들이 무엇하러 여행을 왔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제 버릇을 개 주지 못하는 것은 자기 선택이지 남이 시키는게 아니라는 점, 문제는 평화와 행복의 주관자가 자신이라는 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우선 인천공항에서의 일을 생각해본다. 면세점 순례를 할 필요가 없이 미리 구입하여 물품을 찾으러간다. 나에게는 말도 없이 저희들끼리 진행했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동생들 덕분애 실로 엄청난풍경을 만났다. 중국사람들의 쇼핑 규모는 우리네와 댈 것이 못되었다.
물건을 찾은 다음 쇼핑을 하려고 기웃거리다가 내가 필요로 한 스킨로션을 사고 눈독 들여둔 키플링 신형 가방 하나를 둘러메는데 재수좋게 30% 디스카운트라고 한다. 아무데서나 궁글러도 재수가 붙는 나다. 그러고보니 막내와 내가 한 세대차가 난다.
돌이켜보니, 20대에 한방에서 인생 대학원을 꾸리고 엄마를 학장으로 모시던 날이 지나고 처음으로 네 자매가 떠났다. 자매끼리니 일단 편하다는 게 큰 장점이고 너무나 잘 알아서 서로 가릴 게 없다는게 단점이었다. 그래도 동생들이 무엇이든 배려하여서 어려움이 없었다. 습관처럼 웃기도 하고 긴장감이 떨어져서 신선감은 적었다. 오래 직장생활을 한 두 동생은 감정 표현이 자유롭지 않아서 나는 저들이 답답하기도 하고 저들은 내가 굳이 그래야 하느냐고 다른 점을 드러낸다. 나는 말했다. 생명의 법칙대로라면 나팔꽃은 화들짝 피고 초롱꽃은 다소곳이 피는게 정석이므로 같기를 바라지 말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남이 아니라 얼른 인정하고 천사 고스톱도 치고, 가져간 옷을 골고루 입고싶은대로 골라 입기도 하고 신랑들 흉도 보고, 자식 자랑질도 하고, 걱정도 하고, 그 중에 한국에서 날아온 따끈한 굿뉴스를 물어다주는 동생의 소식도 들었다. 떠나온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소식은 안 팔리던 집이 팔렸다는 내용과 건강수치가 좋아졌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묵은 호텔이 세계에서 두 개 밖에 없다는 7성급 호텔인데, 규모가 커서 일차적으로 놀란다. 둘쨋 날 보니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그렇게 높아져 있다는 증명이다. 천혜의 자연 조건 덕분에 나무가 많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각 동 앞마다 분수대가 있고 수영장이 있으나 덥지 않다.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산책을 할 수 있으니 좋고 바다를 끼고 있으니 더욱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동해안 도로를 가 본 사람은 감탄을 하지 못한다. 다만 야자수가 많아서 풍경이 다른게 이국적이다. 나는 공기좋은 곳에서의 운동과 힐링요소가 흡족하여서 자주 걷기를 원했다.
국왕의 50주년 기념으로 지은 이슬람 사원 오마르 알리 사이프틴은 자그마치 500만불을 들여지은 아시아의 대표적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그 곳에 갔는데 놀랍게도 영적 기운이 넘치는 곳에서 마구 찬송하고 싶어졌다. 기도가 누적된 장소에는 영적 기운이 풍부하여 들숨하면 내게 그 기운이 들어오는 것같다. 기쁘고 즐거워 용약한다는 느낌이랄까.
왕립 박물관에는 조촐하게 국왕의 가계도와 외국사절단이 주고간 선물이 나열되어 있고 왕이 납실 때 앉는 어좌대가 있는 대관식 전시실은 구경할 만 하지만, 아직 문화의 정점을 찍으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국왕의 절대 권력 통치로 국가 기강이 망가지지도 않았고 인간의 욕망이 분출되지 않아서 그저 살기좋은 상태이지만 불안을 잉태하고 있다. 외지인이 들락거린다는 것은 정보가 유입되고 돈이 있으므로 언젠가는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서 그 나라가 변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왕궁을 일년에 한번 개방하여 밥도 주고 선물과 세뱃돈도 준다. 그러한 행사를 치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4천명이 들어갈 수 있다. 산유국이라 돈을 쓰고도 남는 나라를 다스리기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다. 세금이 없는 나라, 좋은 물건을 사들여 국가가 돈을 보태서 싸게 백성들에게푸는 왕, 일상이 모자라지 않고 안락하니까 국왕만세하고 사는 나라다.
그 나라가 주는 풍경의 힘도 적고, 그 호텔이 주는 놀람도 적은 편이다. 제주도의 신라호텔의
음식이나 규모도 값진데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는 점은 그 것 밖에 외국관광객을 수용할 곳이
없다는
이야기다. 남해의 리조트도 주변 볼거리와 골프장 그리고 먹거리까지 곁들이면 우리에게는 그
곳보다 멋지다. 그래도 새로운 곳이니까, 집과 거리가 머니까. 경기도의 절반 크기에 인구 40만인데 자동차가 12만대라니 거리에서 대중교통 버스를 볼 수 없다.
한 가지, 밀림으로 간이 트래킹을 갔는데 미니폭포가 있는 곳의 웅덩이에 서 보니 물고기가 발가락
사이로 드나들며 각질을 쪼아먹는다. 특별한 체험으로 기억된다. 열대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 냄새 때문에 거부감이 큰 두리안도 실컷, 람부탄도 실컷, 무엇이든 1,2 달러면 족하다.
필리핀의 팍상한 계곡처럼 강을 거을러 올라가는 맛도 좋다. 맹그로브와 야자수가 번갈아 나타나는 물길을 가르고 돌아오면서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데 가이더가 우리는 안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나 나는 했다. 동생 둘은 포기하고 윗대 두 사람만 했다. 하고 와야 되는 것을 왜 안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일정을 빼먹지도 않았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체험을 다 하는게 유리하다.
낮은 폭포를 맞는 곳에도 나 혼자 들어갔더니 슬금슬금 둘이 들어왔다.한 명은 여전히 노노.
그렇게 수시로 만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알 수 없는 자매였다. 그래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조식 뷔페 식당으로 고고, 짱 재미나는 아침이 열린다.
뭐니뭐니 해도 의기투합하여 웃을 때는 어느 모임에서 간 여행보다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어릴 때 놀던 때와 같아진다. 비록 크게 웃지 말라고 야단도 맞고 방귀뀌지 말라고 혼이 나도 안하무인 동생들이니까.
마지막 날에는 일행들에게 수지봉으로 진찰을 해주었다. 놀랍게도 적중하니 그들이 내 말을 믿는다. 더욱이 가이더가 제 몸을 은근히 걱정하는데 오히려 건강 상태가 좋다고 하니 진찰료로 과자봉지를 사들고 온다. 다른 사람은 빵 한 봉지를 사들고 왔다. 기분이고 재미났다. 웃고 압봉을 선물로 붙여주고 헤어졌다.
그 와중에도 어른을 어른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자신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것 , 람부탄을 얼른 까서 한 그릇 우리 앞에 두었던 젊은 애기아빠에게 나는 압봉을 붙여주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먼저 베풀고 배려하면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가 길을 내어 그 길로 가더라는 것을 잠시 깨달았다.
이번 여행 중 신의 한 수는 낱개 포장된 김치를 인천공항에서 사간 것이다. 세끼를 개별적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호텔 안에서 컵라면에 누룽지를 넣어 김치를 곁들이니 별미 중 별미였다. 한 끼는 이태리 정식으로 농어 스테이크를 시켜먹었다. 나는 맛있다고 두 번 하고 내 동생에게 혼났다. 그 동생과 여행가면 늘 혼난다. 나를 자기반 학생 취급한다. 여행은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약간 망가지러 가는 것이지 나란히 줄서기 잘 하는 학생이 되러 가는게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지나치게 지키는데 이골이 난 선생님, 나는 네가 나의 담임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좋은 우리 사이, 남을 야단 친 동생 둘이 실수를 하더라는 것, 참고 안에다 더 담아두는 것이 많으므로 놓치는 것도 생긴다는 것 . 부자연스러움으로부터 오는 폐해이다. 알아둘 일이다.
약간 경직된 행동패턴을 가진 두 선생님 출신 동생 중 한 동생은 새로 산 셔츠를 잃어버려 찾으러
되돌아가며 머문 장소마다 짚어보다가 추리력을 발휘하여 기념사진을 뒤졌다. 바다를 향해 앉히고 명상을 유도하던 곳에까지만 그 옷을 입고 있어서 찾는데 단서가 잡혀 홀로 스피드를 냈다.
더워서 벗었다가 바기(카트)에 두고 내린 것같아서 달리면서 기도했다. 그 바기 기사를 만나게
도와달라고 외는 순간 골프장 쪽에서 누군가 아는 시늉을 하면서 내게 다기를 타고 다가온다.
우리가 탔던 바기다. 나는 어른 손을 흔들어 알리고 세워 브로큰 잉글리시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로비에 옷을 가져다 두었다고 한다.
동생 덕분에 많이 걸었고 잃어버린 것은 찾았다. 우리는 한번 더 신바람을 내면서 그 바기를 타고
룰루랄라 산책길을 돌아 우리가 머물고 있는 동으로 왔다. 중간중간 기념사진을 찍은 게 결정적인
추리의 증거자료가 되어 주었다.
옷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바다를 향해 놓인 장의자에 넷이 앉아 동요를 부르지 못한 점이다. 셋째는
기타를 치다가 남편과 인연이 닿았고 넷째는 축제에서 노래를 같이 부르고 인연을 맺었다. 둘째는
방송합창단을 거쳐 국회의사당에서 솔로를 부른 기록이 있으며 나는 현재 중창단 메버가 아닌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동요연곡이라도 불렀으면 한층 행복도가 높았을 것같다는 미련이 남았다.
공기 청정지역이라 마음껏 목청을 돋구어도 목이 아프지 않고 우리 밖에 없으니 소리에 간섭받을
이유가 없었다. 아쉽다.
한 동생은 바나나 한 자루, 람부탄 한 자루를 버스에 두고 내렸다. 생각이 많거나 할 말을 참거나
하는 유형은 여유가 적어서 건망증이 는다. 평소에 좋은 감정만 노출시키는 사람은 여행을 같이 가 보면 순간순간 낯선 그 사람을 보여준다. 솔직한 것이 얼마나 힘인가를 알면 실망을 주지 않는다.
아무튼 여행을 행복하게 하려면 아무리 동기간이라도 소소한 것을 두고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가 보일지라도 문제 삼지 않기으면 팥죽그릇에서 한 숱가락 떠낸 자리처럼 잠시후면 평정을
찾는다. 기호나 성격이 마음에 안들어도 남을 나무라지 말고 무던히 지나가야 하는데 개개이느이
한계량이 같지 않아서 그 또한 무시하고 지내면 좋아진다. 어지간 하면 만족스럽게 생각하면좋다.
나는 침묵하고 먹는 것보다 맛있다 맛있다 하고 먹으며 분위기를 띄우는 편인데 동생은 먹는 숙제
를 하듯 말없이 먹어서 견해차를 드러내보인다. 같이 살 사람 아니면 동기간이라도 그러려니 해야
여행은 즐겁다. 작은 변화에도 환호하면 엔돌핀이 솟구친다고 하는데 기운이 다운된 사람은 별나
다고 표현한다. 지나고 보면 그럴 것도 못된다. 어쩌겠는가. 나보다 덜 살았는 걸.긍정적 피드백을 하지만 종종 립서비스인 것을 보면 고단해보인다.
타인에게 자기가 너그러워야 타인에게도 너그럽게 대하게된다. 모든 것이 여유니까. 사랑이니까.
다름의 발견이니까.
첫댓글 선생님 덕분에 저도 섬 한 바퀴 돌고 온 느낌입니다.
여자들 집 떠나도 집 걱정, 못 말리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