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영화제와 음악회, 그리고 불꽃축제
최 화 웅
올해 가을은 바람이 드세고 흐린 날씨에 비가 자주 내렸다. 부산의 10월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제22회 국제영화제(2017년10월12~21)와 제13회 부산불꽃축제그리고 다양한 음악회가 풍성했다. 1995년 첫 울음을 터뜨린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올해로 스물두 살이 되었다. 이번 영화제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개막 나흘 째 되는 날인 10월 15일 현직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영화제에 참석해 여성영화『미씽』를 본 뒤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문대통령은 "근래 한 2~3년간 아주 많이 침체한 게 너무 가슴이 아파서 부산영화제 힘내라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영화제에 왔습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세계 5대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부산시가 좌파 영화제라는 이유로 탄압하고 간섭하며 블랙리스트에 올리고는 국고 지원금을 반 토막 내는 등 영화제가 크게 위축되었다며, 새 정부에서 이를 바로 잡아 세계5대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를 힘껏 지원하되 그러나 영화제 운영은 100% 영화인들에게 맡기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 부산영화제가 다시 되살아날 거라고 믿습니다." 라며 영화인들을 격려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는 75개국에서 300편의 다양한 영화를 출품했다. 강바람 부는 수영강 하구 센텀 지구에 자리 잡은 영화의 전당을 비롯한 5개 극장에는 전 세계에서 부산을 찾은 영화인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팬들로 축제분위기를 달구었다.
지난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위원회가 이상호와 안해룡 감독이 연출한 다큐맨터리『다이빙벨』을 초청상영작으로 결정하자 세월호 침몰사고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가 이를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부적절한 조치“라며 상영을 극구 막았다. 그러나 영화제측은 ”예정대로 상영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아니냐며 완강하게 맞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세월호 침몰참사’에 늑장 대응한 잘못을 지적하는 국민과 언론의 비판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 “상영을 금지하라”며 다그쳤으나 영화『다이빙 벨』은 기어이 상영되고 말았다. 이를 쾌심하게 생각한 부산시가 돌연 감사에 들어가 ‘세월호 침몰참사에 늑장 대응한 잘못을 덮으려다 국민과 언론의 지적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영을 금지하라며 다그쳤으나 끝내 영화제측은 영화『다이빙 벨』을 예정대로 상영했다. 리에 대응한 부산시가 영화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직원채용문제를 비롯한 19가지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히고 그 책임을 물어 임기 1년여를 남겨둔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부산시가 영화제에 대한 간섭에 나서자 지역문화계는 물론 해외영화인들까지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한편 학계에서도 미디어로서의 영화가 가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항의가 드높았다. 그러고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밝힌 국가안전 현안과제와 수습책은 말의 성찬이 되고 어디에서 뺨 맞고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하는 꼴이 되었다.
우리는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영화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시 필자는 졸고 “그 대통령에 그 시장”이라는 에세이를 쓴 바 있다. 빈정거리며 내뱉는 세인들의 말이 예사스럽게 들리지 않는 시절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단풍 들고 낙엽 지듯 독선과 제왕적 권력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때가 되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기 마련이다. 산과 들에도 성장을 멈춘 나뭇잎 색깔이 벌써 달라 보인다. 가을이다. 나는 해마다 10월이 오면 문우들과 문학기행을 떠나거나 소박한 콘서트를 찾아 계절의 정취를 즐겼다. 우리 부부는 친구 부부와 함께 10월에 마련된 음악회에 갔다. 금정문화회관에서 한 차례와 414석의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네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의 콘서트에 함께 했다. 10일 저녁에는 금정문화회관에서 플루티스트 정주연의「클래식 탱고와 째즈의 선율을 따라서」가 열려 플루트의 감미로운 선율을 들을 수 있었고 15일 저녁에는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김주영 귀국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17일에는「박유미 피아노 독주회,」 21일에는「강수이 비올라 리사이틀」,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브람스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브람스 서거 120주년 기념음악회」가 열려 만석을 이루었다. 오는 3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브람스 서거 120주년 기념음악회」두 번째 연주회가 열렸다. 나에게 브람스하면 귀국할 때마다 나의 침대에 올라와 내 몸을 도닥거리며 자장가를 불러주던 손녀 리아의 추억이 새롭다. ‘브람스의 눈물’은 현악 6중주 2악장의 부제를 이번 연주회의 타이틀로 쓴 것이다. 부산에서 11년째 실내악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트뱅크코레아 대표이자 공연기획자 김문준 대표가 기획했다.
모든 연주회에 초대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투석치료를 받은 날과 인문학 강의가 있는 날을 뺀「김주영 귀국 바이올린 리사이틀」과 두 차례의「브람스 서거 120주년 기념음악회」등 세 차례의 음악회에 갈 수 있었다. 15일 저녁 7시 반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열린「김주영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414석의 좌석을 메울 만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라서인지 팬이 많았다. 첫 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하나인 바이올린 소나타 Op 30의 세 번째 곡으로 빈 교외를 산책하면서 느꼈던 전원의 느낌을 담은 곡이 연주되었다. 바이올린 선율이 생동하는 자연을 묘사하듯 활기차고 신선했다. 두 번째로 현대 작곡가 하차투리안의「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노래 시」는 동아대 교수 피아니스트 박정희와 김주영의 바이올린이 한 쌍의 연인이 가을을 속삭이듯 귀를 모았다. 바르톡의「바이올린 랩소디 1번」은 항가리의 민속음악에 기반을 둔 경쾌한 곡이었다. 이어서 쇤베르크의「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은 부산에서 처음 연주되는 곡이었다. 마지막 브람스의「바이올린 소나타 Op108의 세 번째 곡」으로 자신감과 활력이 넘쳐 불꽃처럼 타오르는 선율이 새로웠다. 앵콜곡으로 크라이슬러의「사랑의 기쁨」을 연주한 뒤 퇴장하자 관객들의 계속 되는 환호와 박수가 길게 이어지자 커튼콜을 두 번이나 무대로 나와서 인사했다.
10월28일 밤에는 화려한 불꽃이 광안리 밤바다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어어둠을 훤히 밝혔다. 10월에 시작된「브람스 서거 12주년 기념음악회 ‘브람스의 눈물」연주회가 11월 6일 저녁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열려 순박한 선율이 먼 가을산의 단풍숲을 연상케 하는 선율로 관객의 마음을 끌었다. 두 번의 연주회에서 모두6곡의 브람스 작품이 연주되어 가을밤에 현의 선율이 잔잔한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완벽을 지향했던 브람스의 독창적안 표현력과 독보적안 아름다움을 지닌 ’소나타 3번‘과 여유롭고 목가적안 분위기에 취하게 하는 브람스 유일의 ’혼 트리오 내림 마장조, Op.40‘, 그리고 ’클라리넷 5중주 나단조‘ 등 세 작품의 실내악곡을 연주해 만년의 삷에 깊어가는 가을밤의 서정에 젖게 헸다. 객석에는 부산의 디자이너 배용씨가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씨와 나란히 맍았고 음악해설가 곽근수씨와 세계 여행가 도용복씨의 모습에서 만년의 사랑과 고독한 삶의 마지막 시기에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다. 고전이나 낭만파음악은 멜로디와 선율이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지며 자연스럽게 흥얼거려지기도 하는데 현대음악은 낯설고 거칠며 이미지의 전달이 난삽해서 생소하기만 했다. 좀 더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자주 접해서 감상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일행은 낙엽이 흩날리는 보도를 따라 모차르트 레스토랑에 들러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와 낭만, 그리고 우정에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