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聖地) 순례
8. <스페인> 말라가(Malaga) 대성당
말라가 대성당 / 말라가 성당 입구 / 히브랄파로 성곽
말라가(Malaga)는 스페인 남부(南部)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대문 역할을 하는 도시로 주도인 세비야(Sevilla)에 이어 두 번째로 큰데 남부 해안인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일뿐더러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계지역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로 숱한 영욕을 겪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말라가는 기원전 13세기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고대도시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피카소의 출생지이기도 한데 현재 인구가 60만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제법 큰 도시에 속한다.
히브랄파로성은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에 세웠던 요새가 무너진 자리에 14세기 초엽 새롭게 세운 대규모 요새로, 높이 131m의 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그라나다(Granada) 왕국을 통치하던 이슬람 군주 유수프 1세(Yusuf I)가 건설했는데 히브랄파로는 이름은 ‘빛나는 바위’라는 뜻의 고대 페니키아어 히벨파로(Jebel-far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인 1487년, 이사벨 1세(Isabel I)와 남편인 페르난도 2세(Fernando II)의 군대를 맞아 무슬림인 말라가 시민들이 결사 항전을 벌였던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말라가 시민들은 3개월 동안이나 포위되어 배고픔에 지친 나머지 결국 항복했고 요새는 기독교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후 이사벨 1세는 한동안 이 요새에서 살았는데 육중한 돌로 쌓은 튼튼한 방벽이 요새까지 오르는 지그재그 형태의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로마극장과 알카사바 요새 / 피카소 미술관 / 말라가 성당 앞에서
말라가의 자랑꺼리로는 피카소 미술관, 대성당, 고대 로마 원형극장, 알카사바 요새 등이 유명한데 기후가 온화하고 인근의 말라게따(Malagueta) 해변이 여름철 휴양지로 이름이 나서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정상 부근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말라가 항구를 포함한 시내 전경과 드넓은 지중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소이다.
말라가 대성당(Catedral de Málaga)은 1528년에 짓기 시작하여 1782년에야 완공된 성당이라니 완성되기까지 실로 250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된 성당이다. 건축양식은 르네상스형식인데 안달루시아지역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1528년에 디에고 데 실로에가 처음 설계할 당시에는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탑을 세우기로 계획했으나 자금부족으로 북쪽의 탑만 세우고 중단하고 말았다. 그래서 양쪽에 균형을 잡고 있어야 할 탑이 하나밖에 없어 ‘외팔이 여인(La Manquita)’란 별명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탑은 안달루시아 지역 성당들 탑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이라고 한다. 말라가 대성당은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가대석과 조각상, 부속건물들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피카소 미술관은 2003년 10월, 피카소가 죽은 후 그의 어릴 적 꿈이었다는.... 생가를 고쳐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는데 그의 유족인 며느리 크리스티네(Chritstine Ruiz-Picasso)가 133점, 손자 베르나르드(Bernard Ruiz-Picasso)가 22점을 기증하여 총 155점의 피카소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1901~1972년 사이의 작품이고 말년에 그린 소품들과 미완성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9. <스페인> 그라나다(Granada) 대성당과 왕실예배당(Capilla Real)
이사벨 여왕의 황금관 / 이사벨 여왕 가족 묘실 / 그라나다 대성당 / 화려한 내부모습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지방의 고대도시 그라나다(Granada)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히던 역사의 장소로, 볼거리들이 무진장인 관광명소인데 이슬람(무어인)들의 건축인 화려한 알람브라(Alhambra) 궁전과 그 궁전을 지키는 알카사바(Alcazaba) 요새, 그리고 술탄(Sultan)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원 등이 있다. 또, 다로(Daro)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언덕은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바이신(Albaicin)’ 지구와 ‘사크레몬테(Sacro Monte)’ 언덕이다.
그라나다 대성당(Catedral de Granada)은 도시의 중앙에 있는데 대성당 앞 광장과 주변은 온갖 상점들이 모여 있고 대성당 자체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원래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1523년부터 1703년까지 180여 년에 걸쳐 가톨릭 성당을 지었다는데 탑은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고, 초기에는 고딕 양식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이슬람교도들의 영향으로 내부 장식은 무슬림 양식도 활용되었다.
대성당의 주 예배당은 에스파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에 속하는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황금빛 내부 장식이 특징이며, 창문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신약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도시 가운데의 대성당과 붙어서 이사벨 1세 여왕 부부의 유해를 모신 왕실예배당 ‘카피야 레알(Capilla Real)’이 있는데 이 건물은 1504~1521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화려한 건물로, 예배당 안에는 스페인 통일의 주인공 이사벨 여왕(IsabelⅠ)과 페르난도(FernandoⅡ) 부부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그라나다를 이슬람의 손에서 되찾은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그라나다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들의 묘소를 이곳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둘 다 사망했다. 그러나 1521년 준공식과 함께 부부의 유해는 이곳으로 모셔와 안치되었으며 나중 차녀 후아나 1세와 사위 펠리페 1세도 이곳으로 모신다.
왕실예배당 입구 / 페르난도 2세 / 이사벨 1세 / 산타페 협약
내부는 이사벨라 여왕의 수집품과 다양한 성화들로 장식하여 대성당보다 더 화려하고 오래되어 오히려 역사적인 가치가 더 높다고 한다.
예배당 한가운데에 이사벨 여왕 부부의 석관(石棺)이 있는데 외부 조각이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고, 내가 방문했을 때는 예배당 앞쪽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여왕의 황금관도 놓여있었다.
예배당 바로 옆쪽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는데 열 계단쯤 내려가면 극히 소박하게 꾸며진 이사벨 여왕 부부의 관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은 모두 다섯 개인데 나머지 하나는 포르투갈 왕실로 시집간 장녀 이사벨의 아들 미겔 왕세자의 관인데 왕세자는 두 살 때 죽었다고 한다.
대성당 앞은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으로, 중앙에는 이사벨 여왕을 찾아와 대항해의 꿈을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는 콜럼버스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있다.
당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와 갈릴레오(Galileo Galilei)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지동설이 처음으로 제기되고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이 나오자 모두 반신반의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지구는 평평하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멀리 나가면 폭포처럼 공중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서 근해에서만 고기를 잡거나 항해를 하고 먼바다는 두려워서 나가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커다란 지각판(地殼板)을 네 마리의 거북이 받치고 있는데 이따금 거북이들이 꿈틀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는 허무맹랑한 설(說)까지... ㅎㅎ
콜럼버스는 이 지구는 둥글다는 이론을 확신하고 지구는 둥그니까 동쪽으로 가지 말고 배로 서쪽 바다(대서양)로 가면 훨씬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황금도시 인도(印度)로 가기로 한다.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허황한 꿈이라고 미치광이 취급을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과감히 돈을 대주며 계약서를 쓰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Santa Fe Capitulations)’이다.
이사벨은 1496년 바티칸 교황청(교황 알렉산드르 6세)으로부터 ‘가톨릭의 왕(Los Reyes Católicos)’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이후 이사벨은 ‘가톨릭교도 이사벨(Isabel la Católica)’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