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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 제14기 초기불전학림 『우다나』 제 3 강
◎강사: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스님 ◎장소: 김해 장유보리원 (초기불전연구원) ◎일시: 2021년 9월 7일 (화) 저녁 7시:30–9:30 ⊙교재: 『우다나』 ⊙공부내용: 제 5품 소나 품 (나환자 숩빠붓다 경, 아이 경, 포살 경, 소나 경) ⊙사진 및 방송: 김호동 학림부회장, 장상재 선생님 본 강좌는 YouTube의 초기불교TV를 통해서 송출되었고, 돌려보기를 할 수 있습니다. |
제 14기 초기불전학림 세 번째 시간 후기
본 강좌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기 위해서 온라인 강좌로 진행되며, 현장에는 강좌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인원만 참석하였습니다. 참석자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체온측정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였습니다.
■ 원장스님 인사말
요즘 많은 분이 코로나19백신을 맞고 있는데, 원장스님께서도 2차 백신을 맞고 몸단속을 하는 관계로 따로 인사말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의 쾌차를 빕니다. 3강에서 삼귀의계와 오계는 법사스님께서 대신하셨습니다.
■ 우다나 본문 공부
단명함 경 (Ud5:2)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하마야 왕비가 대략 이십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부처님 출생 후 1주일 만에 돌아가시는 데서 본 경의 제목이 단명(短命)함 경이 되었습니다.
본 경에서 주목할 부분은 대승에서 중시하는 보살이라는 용어의 등장인데, 우다나에서 부처님은 깨닫기 전의 상태를 스스로 보디삿따 (bodhisatta)라 칭하고 계십니다. 담마빨리 스님의 우다나 주석서에 의하면, 보살은 bodhisatta를 옮긴 것이며, bodhi(覺)와 satta(有情)의 합성어입니다. 각유정(覺有情), 보리살타(菩提薩埵)로 음역되고 줄여서 보살(菩薩)이 되며, 문자적으로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빠알리 주석가들은 보살을 두 가지로 어원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첫째는 bodhi-sattva (깨달음의 중생), 여기서 깨달음은 지혜이며, 깨달음을 가진 중생이란 의미입니다. 깨달음을 가진 중생이란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서 필연적으로 바라밀을 끊임없이 완성하여 깨닫게 됨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선재동자 시절에 28분의 부처님 중 네 번째 연등부처님으로부터 깨달음의 수기를 받으셨고, 『상윳따 니까야』제 2권 「위빠시 경」(S12:4)에서도 위빳시 부처님은 깨닫기 전에 위빳시 보살이라 불립니다.
-둘째는 bodhi-sakta (깨달음에 몰두하는 사람). 깨달음을 지속해서 원하면서 삶을 영위한다고 해서 보살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점은 초기불전에서 보살은 예외가 없이 깨닫기 전의 부처님들에게만 적용되는 술어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 반열반 후 500여년 뒤에 이 용어를 대승의 중요한 사상으로 정착시킵니다. 즉 초기불전에서 나타난 보살의 개념을 보편화시켜서,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생명체를 보살이라 부르게 됩니다. 보리심을 내는 (發菩提心) 모든 이를 보살이라 하고, 보살의 기본 서원으로 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중요시하였습니다. 여래장 계열에서는 보살의 개념을 더 강조 발전시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대승불교 운동은 일체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위대한 종교 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보리심과 용맹심을 내게 하여 인류의 정신이 향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본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우리는 태어났으면 모두 죽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청정범행을 닦아야함을 말씀하십니다. 청정범행은 도를 닦는 것을 말하며, 계를 수지하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는 계정혜 삼학의 실천입니다.
나환자 숩빠붓다 경 (Ud5:3)
주석서에 의하면 숩빠붓다는 예전에 바라나시의 왕일 때 벽지불에게 욕설을 퍼부은 과보로 지옥에 태어났다가 나병에 걸린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라자가하에서 구걸을 하다가 부처님 법을 듣고 예류과를 얻게 되었으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에 받혀 임종합니다. 소에 받혀 임종한 비구에 관한 내용은 앞서 바히야 경 (Ud1:10)에서도 나타났는데, 아라한과를 얻은 바히야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본 경의 배경은 라자가하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입니다. 숩빠붓다는 부처님 회중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음식이라도 구걸하기 위해서 회중에 참석했다가, 음식 대신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려는 선한 마음을 내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숩빠붓다를 보시고 법을 알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고 보시, 계율, 천상, 감각적 쾌락들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원(10가지 오염원, 貪·瞋·痴·慢·疑·見·懈怠·掉擧·無懺·無愧), 출리의 공덕 등을 순차적으로 설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숩빠붓다의 마음은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가 없어지고, 고무되고, 깨끗한 믿음이 생겼고, 부처님께서 고집멸도의 4성제를 설하시자, ‘생긴 것은 모두 멸하기 마련이라 [集法卽滅法]’는 법의 눈 (法眼)이 생겨나게 됩니다. 법(4성제)을 보았고, 법을 얻었고, 법을 체득했고, 법을 간파했고,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무외를 얻었고, 스승의 교법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게 된 숩빠붓다는 부처님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합니다. 초기경전에서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할 때 다음의 정형구가 나타납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색을 보라고 어둠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있는 그 날까지 귀의하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숩빠붓다는 소에 받혀 임종하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예류자의 정형구로 숩빠붓다가 성인의 경지에 들었음을 밝히십니다.
“그는 법답게 도를 닦았다.
그는 법을 이유로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나환자 숩빠붓다는 세 가지 족쇄(有身見, 疑心, 戒禁取)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 (預流者)”
숩빠붓다가 벽지불을 모욕하여 그 과보로 나환자로 태어나서 고통을 겪다가, 부처님 교법에서 다행히 예류과를 얻게 되지만 곧 임종한 것을 아시고 절박한 심정으로 우다나를 읊으십니다.
“눈을 가진 사람이 몸을 움직일 때
애를 써서 위험한 곳을 피하듯이
현자는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사악함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가 성인인지 깨달았는지 알기 어려우므로, 항상 다른 이를 성자 대하듯이 공경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깨달으신 분을 칭하는 벽지불, 성문승, 정등각자는 조금씩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벽지불(獨覺, pacceka-buddha)은 스스로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며, 연각(緣覺)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 진리를 깨달았고, 다른 이를 인도할 인연도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성문승(聲聞僧)은 부처님을 의지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들이며 부처님의 제자들이 주로 해당합니다.
-부처님(정등각자, sammāsambuddha)는 스스로 바르게 깨달음을 성취하고 다른 이들의 의지처가 됩니다.
아이 경 (Ud5:4)
본 경의 배경은 사왓티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원림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물고기를 괴롭히며 놀고 있는 것을 보시고, 괴로움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면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설하신 후, 부처님께서는 우다나를 읊으십니다.
“만일 그대들이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만일 그대들이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사악한 업을 짓지 마라.
만일 그대들이 사악한 업을
지으려고 하거나 짓고 있다면
그대들이 아무리 위로 날아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본 우다나를 정리하면 善因善果 惡因惡果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몽둥이 경 (Ud2:3)에서는 아이들이 몽둥이로 뱀을 때리는 것을 보고 따로 설법없이 다음의 우다나를 읊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나니
몽둥이로 해코지하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죽은 뒤에 행복을 얻지 못한다.
존재들은 행복을 바라나니
몽둥이로 해치지 않는 자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는
죽은 뒤에 행복을 얻는다.”
포살 경 (Ud5:5)
포살은 불교의 계율 준수일을 말하며,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비구들이 비구 빠띠목카를 암송하게 됩니다. 포살 가운데서 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보름밤에는 자자(自恣)라 해서 연장자부터 자신의 잘못을 발로참회(發露懺悔)하는 의식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빠띠목카 (pātimokkha, 戒目)란 학습계율이며, 지키는 사람을 보호하고, 해탈케하고, 악처등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빠띠목카의 암송은 명령으로서의 빠띠목카와 교계로서의 빠띠목카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제자들이 보름마다 모여서 함께 암송하는 것이 명령으로서의 빠띠목카이며, 비구 빠띠목카와 비구니 빠띠목카로 구성됩니다. 교계로서의 빠띠목카는 부처님만이 암송하시며 제자들은 암송하지 않습니다. 다음의 세 개의 게송이 후자에 해당합니다.
“관용이 그 특징인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고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
남을 해치는 자는 출가자가 아니며
남을 괴롭히는 자는 사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Dhp 184)”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유익함(善)을 구족하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교법이다.” (Dhp 183)
“모욕하지 않고 해치지 않고
계목으로 단속하고
음식에 대해서 적당함을 알고
외딴곳에 침상과 좌구가 있고
높은 마음에 몰두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들의 교법이다.”(Dhp 185)
부처님께서 교계로서의 빠띠목카를 20 안거까지 암송하신 뒤, 본 경의 일화처럼 그것이 오히려 장애가 됨을 보시고 그 뒤에는 암송하지 않게 됩니다. 이 경은 21년 째의 일화입니다. 그 전까지는 계율을 크게 어기는 스님이 없거나 있더라도 미리 적절히 대처가 되었다고 추측되지만, 21년째는 청정하지 않은 쓸모없는 자가 비구 승가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 포살을 진행하지 않으십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계행이 나쁜 사람에게 빠띠목카를 부처님께서 설하시면 7일 후에 그의 머리가 깨져 죽게 되므로 연민의 마음에서 침묵하신 것이라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왓티에서 동쪽원림에 있는 마가라마따(녹자모) 강당에서 초저녁, 한밤중, 새벽의 세 차례에 걸쳐서 아난다가 부처님께 빠띠목카 암송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부처님께서는 회중이 청정하지 않다고 포살 암송을 거절하십니다.
마침내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 ‘계를 지키지 않고, 사악한 성품을 가지고, 불결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비밀리에 행하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감각의 문을 통해 탐욕 등 오염원들이 흐르고, 탐욕 등의 쓰레기를 가져 청정하지 않은’ 사람이 비구 승가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내어 그를 내쫓아 버립니다.
청정하지 않은 쓸모없는 인간이 회중에서 떠난 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모아서 말씀하시길, 여래가 청정하지 않은 회중에서 빠띠목카를 암송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하시고, 앞으로는 부처님께서 직접 포살을 준수하거나 빠띠목카를 암송하지 않겠다 선언하십니다(교계로서의 빠띠목카의 중단). 대신 비구들이 포살을 준수하고 빠띠목카를 암송할 것을 명하십니다 (명령으로서의 빠띠목카의 시작).
부처님께서는 법과 율의 중요성을 큰 바다의 공덕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佛法大海). 아수라들은 큰 바다가 가지는 여덟 가지 공덕 때문에 기뻐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큰 바다는 점차 기울어지고 경사가 지지, 갑작스레 절벽이 되지 않습니다
-큰 바다는 해안을 넘어가지 않고 머무는 특징이 있습니다
-큰 바다는 사체와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큰 바다는 강들을 다 포용하여 하나의 큰 바다란 이름을 가집니다
-큰 바다는 비나 강 때문에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습니다
-큰 바다는 하나의 짠 맛을 지닙니다
-큰 바다는 수많은 보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큰 바다는 수많은 큰 존재들의 거주처입니다
마찬가지로 법과 율에도 여덟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법과 율에는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실천과 도닦음이 있지, 갑작스레 완전한지혜를 꿰뚫음이 있지 않습니다
-법과 율을 따르는 비구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정한 학습계목에 머물고 절대로 범하지 않습니다
-법과 율을 따르는 승가는 계를 파한 사람과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법과 율에 의지해서 출가하면 네 가지 계급은 사꺄의 아들 사문이라는 하나의 명칭을 가집니다
-법과 율에 의지해서 많은 비구가 반열반에 들지만 열반의 요소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습니다
-법과 율은 해탈이라는 하나의 맛을 가집니다
-법과 율에는 37보리분법과 같은 많은 보배가 있습니다
-법과 율은 4쌍8배(四雙八輩, 預流, 一來, 不還, 阿羅漢의 道果)의 큰 성자들의 거주처입니다
이렇게 법과 율의 공덕을 설하시고, 부처님께서는 우다나를 읊으십니다.
“오염원의 비는 덮인 것은 흠뻑 적시지만
열린 것은 흠뻑 적시지 못하다.
그러므로 덮인 것을 드러내라
그러면 그것을 흠뻑 적시지 못한다.”
드러내서 참회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그것으로 죄과는 회복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소나 경 (Ud5:6)
소나 꾸띠깐나 존자는 아완띠의 꾸라라가라 출신이며, 이곳에서 마하깟짜나 (大迦旃延, 摩訶迦旃延)존자 문하로 출가합니다. 그가 재가자였을 때, 천만 냥(koti) 값어치의 귀걸이(kanna)로 장신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소나 꾸띠깐나로 불렸습니다.
소나 청신사는 재가자로서 청정범행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고 마하깟짜나 존자께 출가를 간청합니다. 그러나 평생 청정범행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 재가자로서 교법에 헌신하라는 답변을 듣곤 했습니다. 거듭된 명상 수행정진 이후 마침내 마하깟짜나 존자로부터 허락을 받고 어렵게 출가를 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 세존께서는 청신사가 출가하는 경우, 10명의 무리로 된 승가에서 구족계를 받도록 했는데, 소나 청신사가 있던 아완띠 남쪽 지역은 비구가 적어서 3년이 지난 후에야 어렵게 10분의 비구 승가를 모아서 소나 존자는 구족계를 받습니다. 소나 경의 일화 뒤로 변방의 경우는 5명으로 구성된 승가에서 구족계 수계가 허락되었습니다.
초기 교단에서는 부처님께서 직접 ‘오라 비구여’라고 제자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곧 출가가 허락되는 비구계의 역할이었다면, 이후에 교단이 커져서 부처님께서 직접 만나서 출가를 허락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삼사칠증(三師七證) 형태의 수계제도가 생성되었습니다. 三師는 傳戒師와 羯摩師, 敎授師를 말하고 다른 일곱 분은 證明師가 됩니다.
출가 후, 첫 번 째 안거를 마친 소나존자는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싶은 마음을 내게 되고, 마침내 부처님과 독대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 앞에서 숫따니빠따 제 4품의 여덟 편으로 된 게송 16절을 모두 외우니 부처님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소나 존자가 감각적 쾌락에서 위험을 보고서도 재가의 바쁜 삶 때문에 출가가 늦어진 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 우다나를 읊으십니다.
“세상에 대해서 위험을 보고
재생의 근거가없는 법을 알아서
성자는 사악함에서 노닐지 않노라.
청정한 자는 사악함에서 노닐지않노라.”
감사의 글
-학림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불단 공양물 보시를 원하시면, 055-321-8579(보리원사무장님)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 초기불전연구원 행사나 후원, 공부 모임 등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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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_()_
고맙습니다 ~♡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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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참 대단한 후기입니다.
방송 송출하는 미디어팀도 감탄스러운 수준이고요.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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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사두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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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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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후기 감사드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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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띠빠다 총무님,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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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bodhisatta, 보디삿따) 을 두 가지 어원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bodhi-sattva : 깨달음의 중생, 깨달음을 가진 중생, 깨달음을 추구하는, 깨달을 중생.
2. bodhi-sakta : 깨달음에 몰두하고 전념한다고 해서 보살이라 한다.
고맙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