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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눅16:19-31 고후6:2
요즘처럼 가을은 하늘은 맑고 산과 들은 붉고 노란 색으로 물들은 자연을 보노라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농촌에서는 일년동안 씨뿌려 가꾼 곡식들을 추수하여 창고에 보관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런 풍성한 계절을 통해 결혼시즌이라 한다. 그렇게 새로운 가정이 생겨나면 머지않아 자녀들이 태어 낳고 커나가는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어느 새 내 자신은 늙어 여기 저기 아프다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인생을 가리켜 생로병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인생이란 '태어나 살다보면 어느새 늙게 되어 마지막은 병들어 죽는다'는 의미로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자성어이다. 인생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학교다닐때는 공부하느라고 바쁘다가 가정을 갖고 자식을 키울 때는 먹고 살기위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나 질병 등으로 불행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생로병사와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럴적 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뭔가 착한일도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없이 간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확언하건데 인류역사상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던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누구도 죽음앞에서는 두려워 할 수 밖에는 없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무덤에 장사지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를 인류의 구세주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역사의 분기점을 BC(BeforeChrist)와 AD(AnnoDomini)로 나누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하기야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이 뭐 중요한가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나의 생년월일도 오늘의 시간도 정해졌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그분을 믿는 우리들도 부활할 소망을 갖게 되면서부터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생의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고자 오늘도 신앙안에서 영생에 대한 소망을 누리고자 한다. 성경은 많은 민족들 중에서 특별히 아브라함을 택하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샘플로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브라함을 통해 선택된 이스라엘 자손들은(창15: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택함받은 자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예비되어 있었지만 이를 모른 채 이집트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꿈도 없이 노예처럼 살아갔었다. 그러나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면서 홍해를 건넜고 광야를 지나는 40년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으면서도 때로는 어려운 일만 당하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는 삶이란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다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들이지만(엡1:4)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천국을 향해 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함 보다는 불안과 염려로 인생광야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 옛날 이스라엘백성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도 함께 하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건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낙심과 절망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땅을 직접 보여주시고자 12지파의 대표들을 미리 가나안에 보내서 그들이 미리 본 것을 알려주고자 그들이 바란광야의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가나안 탐방보고를 하면서 (민13:26-27) 26 증거로 그 땅의 열매를 보여 주며 27 모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우리가 간즉 참으로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열매이니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증언과 그들이 가져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았을 때는 즐거워하였지만 다른 10명의 탐사보고는 그들과는 반대로 즉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장대같이 큰 아낙자손들이며 자신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는 것과 특히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에는 불가능하다는 정탐보고를 들으면서 그들은 원망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겼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부족함만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 약속된 천국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과 흡사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속에서 행복을 잃고 갈등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정말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행복해 보이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복이 곧 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보면서 불행해 빠지기도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 인생관으로 인하여 불행과 실패의 늪에 빠져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믿음이 없다면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서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요1:12-13).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는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이것이니 곧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생각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것들을 기록하여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한 백성이 되리라(히8:10)고 하셨습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는 마귀의 자녀라고 합니다(요일3:10).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 도움 없이는 행복해 질 수도 없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일시적으로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영원하고 진정한 행복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로서 오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행복을 소유에 두지 않고 사랑의 관계에 있도록 디자인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과 이웃과의 성숙한 사랑의 관계 속에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였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줄 때 비로소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을 믿는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이 땅의 것으로만 으로는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떠나 천국까지 연결이 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 대해 히브리서에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히9:27)고 하였는데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어느날 예기치 않게 죽음이 온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앞에 가는 화물차에서 갑자기 줄이 끊어지면서 장대같은 나무들이 당신 차 유리창을 깨면서 운전하는 당신을 가하였다면 당신의 생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런 끔찍한 예가 아니더라도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사망한 자들 둘 중 암이나 심장·뇌혈관 질환으로 죽었던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사망원인 1위인 암이 아니더라도 교통사고나 자살로 인한 사망도 있는데 작년 하루 평균 38명 정도가 자살자라고 하니 이런 것은 당신이 오늘 죽을 수 있는 수천가지 경우 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특히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 재해도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죽음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을 피할 수도 없지만 죽음이란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예고 없이 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인간은 늘 불안합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죽어야 복된 죽음인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복된 죽음이란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은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약 15년 전에 국제심장질환의 전문가인 모리스롤링스 박사가 지은 책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이 발간되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사후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롤링스 박사는 임상학적으로 죽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켰던 심장전문의사이다. 철저한 무신론자인 롤링스박사는 평소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없는 소멸이라고 생각했으나1977년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에게 온 환자 중 한명이 지옥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쳤던 한 남자를 소생시켰던 일을 기억한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는 지옥에 있었다면서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자신에게 간청했는데 그는 지옥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지옥공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을 썼는데 죽음의 문 저편이라는 곳은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을 말하는 곳이다. 국제심장질환의 전문가인 모리스롤링스 박사는 예수님을 모르고 살았을 때보다 지금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알게 되면서 그는 과거와는 다른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그래도 여러분은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겠다고요?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경고는 162번이나 기록되었으며 이중에서 70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마13:42) 그들을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23:33)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마25:41)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막9:48-49) 48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눅16:24)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계14:11)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이상의 말씀은 지옥을 온전히 알고 계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던 일부인데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고 지옥 가게 되었을 때는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로 민16:32-33에서는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에 대해서 기록해 났습니다.
(민16:31-33) 31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매 그들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32 땅이 자기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을 삼키매 33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채로 구덩이에 빠지며 땅이 그들 위에 닫히니 그들이 회중가운데서 끊어져 멸망하느니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모세를 대적하다가(민16:1)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그들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이 산채로 불속에 빠져들면서 다시 갈라진 땅이 덮이니 그들이 산채로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지옥에 관한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정말 큰일입니다. 정말로 지옥을 믿지 못한는 그들은 반드시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들 누구나 심사숙고해야 할 것은 당신이 천국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사는 동안 깊이 상고해야 한다. 만약 아무 대책 없이 살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져 대성통곡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지 않을 기회는 살아있을 때 딱~한번 뿐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 정말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자에겐 엄중한 지옥심판이 있을 뿐이다. 지옥은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영원히 타는 유황 불속에서 고통당하는 장소이다. 살아있을 때는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으나 죽은 후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만이 지옥을 면할 수가 있다. 설마하지 마라. 천국과 지옥은 진짜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구원받지 못한 수백만의 영혼들이 지옥불속에서 울부짖고 있다. 그들이 부르짖는 지옥의 고통과 비교할 만한 것이 이 땅에는 전혀 없다. 지옥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받는 곳이라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는 어떤 악몽이나 어떤 공포영화도 지옥의 두려움을 그려낼 수 없다. 시뻘건 선지피가 뒤범벅이 된 끔찍한 범죄현장도 지옥의 공포에는 비교될 수 없다. 이런 지옥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다 누렸어도 지옥으로 향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다. 80억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에는 매일 240,000명이 죽는데 오늘은 당신이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내일이라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이 당신에게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오늘 죽어도 될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지옥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탐욕적인 육체는 세상에서 한 순간 살지만 지옥에서 당신이 받는 고통은 영원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쾌락을 다 즐긴들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세상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1초 보다 짧은 인생을 즐기다가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서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 따라 다니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듣기 좋아하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세속적 태도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지옥은(마25:41)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지옥에 온 영혼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는 장소이며 영혼들은 그 고통을 면하고자 죽고 싶어 하지만 죽을 수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1. 지옥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진리를 경멸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은 불신자라면 누구도 지옥의 고통 소리에 예외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멸한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인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0:27)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진노하신 손에 빠져드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세속적인 삶과 죄를 좋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의 육적인 즐거움에 빠졌다가 영원한 지옥에 갈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정말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에 처절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부자라도 사람들 앞에 인정을 받았어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으면 죽어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한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요즘말로 부자는 값비싼 자주 패션의 옷을 입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를 부러워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은 그런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이 많고 인정도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사후에 대한 내세없이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이처럼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부자와 그 집 문간에서 살아가는 거지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을 가진 나사로란 이름에서 보듯이 그는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부자집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어느날 사망이 찾아와서 거지도 부자도 다 죽었는데 죽은 이후 저들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이처럼 사후의 세계는 살았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 부자는 지옥 불꽃가운데서 엄청난 괴로움을 받고 있지만 나사로는 천국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지옥불꽃속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는 도움을 청하는데 과연 도움이 허락될까요?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한마디로 부자는 살았을 때 내세에 대하여 준비한 것이 없으니 지옥불꽃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지옥에서도 손가락에 찍은 물 한방울도 허락이 안되었지만 두 번째 요청은 세상에 남아 있는 5형제들에게 제발 누군가를 보내 지옥고통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부자는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라. 하지만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가서 지옥이 있다는 것을 전할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시 지옥에선 어느것 하나 요청하여도 거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앞에 상달되지만 지옥은 물한방울도 허락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은 죽은 이후에는 구원받을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야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죽은 자가 살아나서 지옥고통을 얘기하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1) 모든 사람은 다 죽는다
진리중의 진리는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는 말입니다. 죽음에는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에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온다는 것이다.
정말로 사망이라는 주체는 보통 때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도 않다가 어떤 때는 보일 듯 말듯 하다가 또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바깥마당까지 와 있다가 그 다음에는 안마당 가까이 와서 어슬렁거리다 어느 날은 창문에서 앉아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목을 조인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사이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간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지고 참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그 장례식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나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먼저 가고 조금 나중 갈 뿐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죽는 데는 예수를 믿던 안믿던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관련하여 사람들이 지나치는 몇 가지 있습니다.
(2) 떠날 시간을 모른다
사람들은 백년도 살기 어려운데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때로는 더 갖고자 욕심 부리며 치열하게 다툽니다. 이는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땅뺏기 놀이를 하면서 땅을 많이 뺏기 위해 다투다가 해가 질 때 부모가 얘들아 집에 돌아가자 하면 그 많이 빼앗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을 잊고서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차지 하고자 이웃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떠날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러나 만일 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이라는 사망선고를 들었다면 그런 사람은 이제 이웃과 다투던 것들을 중단하고 오히려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하기 위해 누구에게 빚진 것이 있나? 화해하지 못한 것이 있나? 등을 정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정리하고 죽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준비하고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죽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움켜잡은 것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 갑자기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죽음 이후 믿는 자와 불신자와의 삶은 전혀 다르다
이 땅에서도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의 삶은 너무 달랐지만 죽어서도 그들의 삶은 너무나 극과 극처럼 차이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았을 때 나사로는 부자집 대문에서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고 피부에 진물이 날 때는 개들이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면서도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늘 하나님을 섬겼던 나사로도 죽었고 얼마 후에는 부자도 죽었다.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 때는 아무도 애도하지도 않았지만 부자가 죽었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였을까? 부자는 살았을 때 하나님에 대해선 별 관심 없었으며 오르지 친구들과 연락하는데 시간을 보냈는데 이 부자의 사후의 세계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이끌려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부자가 간 곳은 캄캄한 음부로 뜨거운 불꽃이 가득찬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13:49-50) 49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불(영원한 멸망의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악인들이 있는 음부는 불꽃으로 가득찬 곳인데 그 불꽃이 철을 녹일 수 있는 풀무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풀무불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서 소금치듯 고통만을 주는 곳입니다.
(막9:48-49)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불타는 지옥에서 불로 절여진다는 것은 온 몸이 불속에서 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누구든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이런 지옥으로 왔는가? 이런 지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로 오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자는 물 한방울 만이라도 손 끝에 찍어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한마디로 자비와 긍휼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절망 그자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사람은 죽은 후 천국이나 지옥 중 어는 한 곳으로 간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인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으로 갔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인 중립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연옥이라 하여 죽은 자를 위해 살아 있는 가족이 선을 행하면 지옥에서 연옥이라는 곳으로 연옥에서 천국이라는 곳으로 옮겨 간다고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천국 가는 것이고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다. 이제 부자가 이처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옥의 실상을 알아보겠습니다.
2. 지옥의 실상
인간이 참기 어려운 고통중 하나가 살이 불붙었을 때 느끼는 화상고통을 아십니까?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난 부자는 지금 풀부물 같은 불꽃가운데서 고통받는다고 하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불꽃가운데서 고민한다는 그 불꽃은 계시록 21장에는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라고 밝혔는데 유황가스는 조금만 마셔도 불쾌하고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무서운 독가스인데 지옥은 유황가스가 계속 타는 불못이라니 뜨겁기도 하겠지만 불쾌한 유황가스를 맡는 곳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지옥불이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라니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소리치는데 그 소리가 내가 예수믿었을 걸 하는 후회하는 소리만이 애처롭게 들려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지옥갈 인간을 천국으로 보내고자 오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의 길이 전무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3. 누가 지옥에 가는가 ?
(1) 지옥가는 자들의 죄
지옥을 가는 자들의 리스트가 계시록에 나옵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부자가 지옥에 간다는 것은 두 번째 사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한번 사망하면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자들은 마귀를 두려워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인데 그들중에는 당연히 생명을 경시하여 살인도 하고 자살도 하였고 성적으로 음행도 하였으며 우상을 숭배하였던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살이 세계제일이라 하니 자살은 이유가 어떻든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자살을 미화시켜서는 안됩니다. 또 성적인 죄를 비롯한 행음자들과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위반하는 동성애자들, 우상숭배자들, 술객들, 거짓말하는 자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2)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
물질이 많은 것이 죄는 아니라고 한다면 그 물질을 어디에 사용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부자는그 물질로 인생을 즐기는 향락에 빠져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 지옥에 간 것입니다. 소유한 물질이 많은 부자들은 세상일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관을 갖고 있으면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믿는데 전혀 방해가 안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이 없고 내가 물질의 주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섬길 시간도 없거니와 결국 물질에 노예가 되어 지옥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는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이나 물질이나 그 어느 것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줄 압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교훈하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이웃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헐벗을 때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합니다.
지옥에 간 사람치고 사실 이 땅에서 지옥을 알았다면 모든 수단을 써서 지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이 부자가 아닌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지옥에서도 의식이 있다
병원에 중환자실에 가보면 몇 년 째 식물인간으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는 맥박만 뛰다 뿐이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연명하고 있을 뿐 주사를 찔러도 아픈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이처럼 식물인간은 살아있지만 의식이 없으니 고통을 못느끼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지옥은 의식을 느끼는 곳이므로 유황불 못에 던져졌으므로 지독한 유황냄새도 맡는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그 뜨거운 열기며 갈증이며 모든 고통을 느끼며 또 쉬고 싶지만 쉴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가족들까지 생각을 할 정도로 기억을 할 수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여기 부자는 세상에 있는 자기 5형제를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서 내 형제들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했지만 역시 아브라함은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마지막으로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의 대답은 세상에는 교회들이 있으니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된 성경을 통해 권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하여야 지옥에 오지 않는 것이지 혹시 죽었던 자가 살아 나가서 지옥의 이야기를 열 번 백번 한다 하여도 불신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옥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4.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사람은 살았을 때 보다 사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인데 사후세계는 살았을 때 행한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죽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 받아 승천하셨으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셔서 흰 보좌(계20:11-15)에 앉으실 때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자기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불못에 던지우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운다(계21:8)는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한번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을지라도 당신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기에 짐승이나 다른 피조물들처럼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 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느냐? 그래서 우리 인간에겐 본성적으로 나를 만들어주고 낳아준 창조주를 그리워하는 '선한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구원과 진리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선 지금도 그 분을 대신할 '목자'를 세워서 참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했던 저 악한 마귀는 지금도 이 땅에 거짓 목자 삯군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참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사람들을 미혹해서 저들이 파놓은 함정(거짓 교리와 인간의 계명, 사상)에 빠뜨려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 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어둠의 세력자요 흑암의 왕인 원수 '마귀' 입니다. 우리가 까딱하면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고 잘못 따라갔다가는 하나님으로 가장한 마귀의 음성을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므로 구원을 이미 받으셨다구요?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가게 되어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으시다구요? 그것이 참말인가요? 절대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문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마7:13-14).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행 2:36/요 20:31/요일 5:1).
다시 말씀드리자면 '예수'는 십자가 지기 전 사람의 이름이며, '그리스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곧 영광과 승리의 이름인 것입니다. 십자가 죽음이 없는 죄사함과 영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그분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는 의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 이외는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은 우리에게 열어 놓은 새롭고 보배로운 산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보배로운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20). 흙에서 난것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니, 당연히 한번은 죽지요. 그래서 부활이 필요한 것이고, 사람이 원래부터 영원히 살게 되어 있다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고 우리도 영의 몸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나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의식하며 사나 싶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죽음에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봅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닌지 심판하심으로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5.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우리는 인생살아오면서 우리들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정말 어리석은 자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해본다.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여 임박한 심판을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로 깨어 근신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의 심판 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라는 사실(살전5:2)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들 또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 하라는 말씀을 오늘 내게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자. 이 말씀은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 언젠가 미국 현충일날 한 나이트 클럽에서 400명이 타 죽고 130명이 부상당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배일리라는 한 소년의 경고를 무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화재를 발견한 한 소년은 무대위에 올라가서 "여러분! 불이 났습니다. 조용히 비상구로 탈출하십시요" 사람들은 이경고를 농담으로 여겼고 박수치고 소리지르고 노래하면서 재미있다고 하였던 결과는 엄청난 희생과 비극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중의 하나는 시대적인 경고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비상사태는 준비할 줄 알면서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는 준비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말씀을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하겠다.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자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결과로 사망이 오게 되었습니다(롬5:12). 아담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치고 죄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 하였나이다"(시51:5)하였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엡2:3) 사탄의 자식입니다. 인간은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도 죄의 굴레를 벗어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니라"(롬 5:8)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면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죽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 인생의 끝날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청년이 어느 사무실에서 기독교인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생명보험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보험증서를 받는 날 그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죽은 이후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명보험에 가입하셨지만 영원히 당신을 보호할 영생보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그날 집으로 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가 만약 이 마지막의 기회를 놓쳤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음이라"(잠27:1) 하셨습니다. 여러분! 영원한 죽음과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이 곧 은혜받을 시간이고 하나님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기회가 가버리기 전 주님 만나기를 최우선 힘써여 합니다. 아멘.